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96화 (196/477)

제196화 그렇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겠어?(12)

띠리리링.

전화기가 울리자 재준이 버튼을 눌렀다.

“네.”

-로비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군데요?”

-중국 부주석이라고 전하라는 데요.

부주석?

미국까지 쫓아 온 거야?

“올려 보내세요.”

“보스, 어떻게 할 겁니까? 식용유를 풀 겁니까?”

“아니, 부주석이 아니라 주석이 와도 못 풀지. 우리도 나름 계획이란 걸 짜고 움직이는 건데. 여기서 풀어 버리면 아르헨티나에 간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뭐가 되겠어? 그리고 프랑스에 4억 달러를 들인 곡물 창고는 어쩌고. 안 돼. 절대로.”

띵.

엘리베이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부주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꽤나 단정한 외모에 날카로운 눈매.

근데 왼쪽 볼에 ‘심’, 오른쪽 볼에 ‘술’이 늘어져 있었다.

저거 태생이 심술쟁이구나.

재준은 부주석이 다가오자 빙글 웃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다 행차를 하셨어요. 그냥 중국에 있을 때 찾아오지.”

“중국에 있을 때는 미처 당신의 행적을 몰랐다고 해 둡시다.”

“몰랐던 겁니까? 아니면 모른 척한 겁니까? 내가 알기로는 모른 척한 게 확실한 거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그러네요. 일단 앉으시죠.”

‘역시 만만한 놈은 아니야’라고 중얼거리며 부주석이 자리에 앉았다.

이때,

띠리리링.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그렉 파이란 분이 오셨습니다.”

오, 마침 잘 왔네.

연락도 안 했는데 다들 알아서 호구(虎口) 안으로 기어 오네.

“올라오라고 하세요.”

재준의 말에 부주석이 인상을 찡그렸다.

감히 내가 있는데 다른 손님을 들여.

날 너무 만만하게 보는군.

재준이 부주석의 표정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표정 관리를 잘하시네요.”

“당신만 하겠소.”

“그런가. 암튼 날 보러 누가 왔다니까 우린 말을 빨리 끝내죠. 절 보러 온 목적이 뭡니까?”

부주석은 여기까지 오기 전에 그동안 재준의 행적을 조사한 보고서를 읽었다.

거침없는 야생마 같은 놈.

하지만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쪽의 목적은 어차피 돈 아닙니까? 중국에서 인수한 기업을 다시 되팔았으면 합니다.”

“그래요? 얼마 생각하시는데요.”

부주석이 손을 내밀자 비서가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죽 흩어보고는,

“당신이 산 가격의 두 배를 드리죠.”

“아, 두 배.”

재준은 심통이 난 표정으로 부주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인중을 긁은 후,

“백 배 이하는 안 팔아요.”

“뭐? 백 배?”

부주석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일어서자.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그렉 파이가 등장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인간을 보고 굳었다.

저 인간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재준이 블록을 향해 손짓한 후 저기서 한잔하고 있으라는 듯 바를 가리켰다.

블록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렉 파이에게 다가가 바 쪽으로 안내했다.

흠, 흠.

새로운 손님이 오자 부주석은 헛기침을 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평정심이 무너졌군.

이런 하찮은 한 마디에.

“당신의 대답은 안 파는 거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제가 언제 안 판다고 했나요? 분명 백 배라고 말을 했는데.”

“그게 안 판다는 거 아닙니까?”

“부주석님. 이해력이 딸리시는 겁니까?”

“뭐요?”

“저는 투자로 먹고사는 사람이에요. 투자는 가격이 오를 만한 곳에 하는 게 투자고요. 모르시는구나. 난 중국이 지금보다 백 배는 성장한다는 데 투자한 건데. 자신 없으세요? 그리고 중국이 좀 넓어요? 그 넓은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하고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한 건데. 두 배요? 차라리 두 배에 팔 거면 칼을 물고 엎어지겠어요. 고생을 왜 하는데요? 누구 좋은 일 시켜주려고 하는 건가요?”

부주석은 재준이 길게 늘어놓은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백 배를 주면 팔겠다 그 말이군요.”

“빨리 결정하세요. 시간은 돈이라는 거 모르세요? 방금 조금 더 올랐어요. 백한 배.”

“뭐?”

부주석은 몸을 앞으로 내밀다가 다시 뒤로 기댔다.

하하하하.

“재밌는 사람이군요. 내 신경을 건드린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합시다. 그냥 당신이 경영하세요. 우린 다른 루트를 만들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곡물이 대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좀 비싸지만 옥수수도 있죠.”

부주석은 재준을 한차례 노려보고 일어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그런데 말이죠. 하나 약속을 해야 하는데.”

다시 부주석의 몸이 돌아왔다.

“무슨 말이죠? 난 당신과 약속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해야 할 거예요.”

“협박입니까?”

“음……. 그렇죠. 협박 맞아요. 근데 협박은 중국 주특기 아닌가? 맞죠. 신문에서 여러 번 본 것 같은데.”

“맘대로 해 봐. 중국이 눈 하나 깜짝하나. 어디서 되먹지도 못한 짓거리를.”

“그러든가요. 다음 제가 갈 국가는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이란, 터키, 우크라이나, 그리고 독일까지.”

“뭐요?”

부주석의 눈이 비서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일대일로(一带一路)를 아는 거지?

비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있는데 말레이시아, 태국,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 스리랑카, 몰디브, 파키스탄, 예멘, 케냐, 탄자니아, 그리스, 이탈리아. 지금 말한 국가에 중국은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오면 죽어요. 아니 죽일 거예요.”

“뭐요?.”

“왜요? 아닐 것 같아요? 지금 말한 국가에 중국이 뭘 건설할 생각이면 그 국가는 디폴트를 선언해야 할 거예요. 어때요? 이제 얘기할 맘이 생겼어요?”

일대일로.

내년부터 부주석이 주석이 되면서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62개국을 연결하는 패권주의적 국책사업이다.

덜썩.

자리에 앉은 부주석은 재준을 노려봤다.

“중국 내에 스파이가 있는지 몰랐군요.”

풋.

“가지가지 하네. 스파이라네.”

“뭐요?”

“거, 뭐요 좀 그만해요. 뭔 말만 하면 뭐요, 뭐요. 놀라지도 않으면서. 굳이 스파이가 누구냐면 거기 부주석님이 스파이예요. 내가 당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잘 알아도 너무 잘 알지.”

“그 잘 안다는 게 중국 내 정보망이 있다는 소리 아닙니까?”

“에헤이,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 전에 일본에서 기자에게 했던 말 알아요?”

“지금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미래를 내다본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

“그래요? 거짓말 같아요? 사실이라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절대 내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푸하하하하.

부주석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점점 소리가 커지며 멈추지 않고 웃었다.

그러고는 뚝 멈췄다.

“그렇다고 합시다. 이렇게까지 나오니 그 약속이라는 게 궁금해지는군요. 당신이 원하는 약속이 뭡니까?”

재준이 바로 시선을 돌려 그렉 파이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부주석에게 돌아왔다.

“카킬과 거래를 끊으세요.”

“뭐요?”

“거, 진짜 뭐요 하지 말라니까.”

“카킬과 거래를 끊으라니. 무슨 말이죠?”

이런 제기랄.

그렉 파이가 일어서려 하자 블록이 그의 소매를 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속삭였다.

“이봐, 그렉. 저기 끼어들면 당신 진짜 죽을지 몰라. 저기 부주석, 아직 당신이 카킬 CEO인지 모른단 말야.”

그렉 파이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그래, 여기서 내 신분을 밝힐 필요는 없지.

중국 물량이 날아가도 카킬은 손해는 없다.

어차피 전 세계는 4대 메이저가 움직인다.

어디가 됐든 중국에 공급을 한다면 거기는 공백이 생긴다.

그 공백을 카킬이 메꾸면 된다.

그렉 파이는 자리에 앉아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말 그대로예요. 카킬과 거래를 끊으라고요. 그리고 다른 공급처를 찾으세요.”

“왜 내가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데.”

재준이 천천히 부주석에게 다가가서 아주 작게 속삭였다.

“안 그러면 당신 일대일로는 물 건너가거든.”

“뭐?”

일대일로를 알고 있다.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비서를 돌아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직 내 머릿속에만 있는 이름이야.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부주석이 입술을 짓깨물었다.

다시 몸을 뒤로 기댄 재준이 말했다.

“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좀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보던 그렉 파이가 인상을 썼다.

방금 무슨 말을 주고받은 거지?

부주석의 표정이 말이 아니게 변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부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하고 알려 주겠소.”

“그러세요. 천천히 생각하세요. 아닌가? 당장 곡물을 받으려면 빨리 생각해야겠네요. 배웅은 못 합니다. 보시다시피 손님이 와 계셔서.”

흥!

부주석은 비서에게 손짓을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부주석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렉 파이가 재준에게 다가왔다.

“그렉 파이입니다.”

“알아요. 앉으세요. 블록, 여기 위스키 좀 가져다줄래?”

블록이 알겠다는 듯 손을 들었다.

나도 마셔야 할 판이네.

재준은 그렉 파이를 돌아봤다.

“얘기는 들어 알겠지만, 중국에 곡물 공급하지 마세요.”

“왜 우리 공급처를 맘대로 바꾸는 겁니까?”

“카킬이 맘에 안 들어서요.”

잠시 그렉 파이는 할 말을 잃었다.

겨우 나온 말이 맘에 안 든다고?

“맘에 안 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카킬이 중국과 너무 가까이 붙었어요. 그거 별로 좋게 보지 않는 사람이 있거든요. 사실 그 사람 부탁도 좀 있고.”

“누굽니까? 그 사람이.”

“에이. 투자은행은 비밀유지가 생명이에요. 그런 거 함부로 물어보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중국과 계속 거래를 한다면 어쩌실 겁니까?”

“그래요?”

음.

“잠깐만요.”

재준은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보스.

“윌켄, 지금 벙기 주가 어때요?”

-거의 페니스탁 수준이죠. 아르헨티나 파업이 풀어질 기미가 없으니까요.

“그럼 벙기 적대적 인수하세요.”

-하하하. 이제야 제가 본업을 하는 겁니까.

“되도록 우리 돈 말고 투자자들 유치해서 소문이 퍼지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월가를 총동원하죠.

이러면 누구든 벙기 인수를 막으려면 월가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

전화를 끊었다.

“그렉, 이제 3대 메이저라 불러야겠네요.”

“무슨 짓입니까?”

“잠깐만요.”

재준은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윌리, 프랑스 곡물 중동지역에 푸세요. 로이드레퓌스 죽이는 겁니다.”

-네, 보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창고 터질 찰나였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이제 2대 메이저만 남았는데.”

그렉 파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가 이렇게 무너진다고?

“잠깐만요.”

“또 무슨 짓을. 설마 ADM까지.”

재준은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랜만입니다.

“페리노. 카킬 재배지 재계약 마무리되었습니까?”

-네. 다 끝났습니다. 카킬의 재배지 절반을 우리가 접수했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시장을 지배하면 투마로우가 ADM 지분 10%를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이미 윌켄과 이야기를 다 끝냈습니다.

“담에 뵙죠.”

전화를 끊었다.

“이제 혼자 남은 것 같은데. 그렉. 혼자 투마로우와 싸울 수 있겠어요? 인제 보니 껍데기밖에 안 남았는데.”

“언제 이렇게.”

“자, 들어 봐요. 이제 재배지에 있는 곡물 창고 운영비에, 300여 대나 있는 선박 유지비도 안 나올 것 같은데. 돈 필요하지 않아요?”

“원하는 게 뭡니까?”

“카킬, 뉴욕증시에 상장하죠?”

“그건 이사회에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그쪽 설득하는 게 당신 임무예요. 잘해 보세요.”

“상장하면 우리 주식이 시장에.”

“아니, 아니, 상장하면 카킬 주식은 저희가 전량 가져갈 겁니다.”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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