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그렇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겠어?(9)
중난하이.
베이징 시에 있는 옛 황실 정원.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집무실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이 있는 곳.
부주석 앞에 랴오닝과 중허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었다.
그들은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눈치를 슬슬 살피며 부주석의 심기를 파악했다.
내년이면 새로운 주석을 뽑는 해인데 상하이방과 공천단이 서로 주석 자리를 줄 수 없다고 싸우더니 태자당의 현 부주석을 내정한 상태.
이대로라면 지금 부주석은 주석 자리에 앉을 것이다.
이 부주석은 앞으로 다가올 중국의 약진과 동시에 온갖 욕은 다 처먹는 전 세계 민폐국의 시대를 열 인물이다.
그는 웃고는 있지만,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얼굴로 랴오닝과 중허를 대했다.
화를 아주 잘 숨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식용유 가격을 잡을 수 없단 말입니까?”
“…….”
‘네’라는 아주 짧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을 만큼 무게가 실린 질문이었다.
“괜찮아요. 말하세요. 식용유 가격을 잡을 수 없는 게 맞습니까?”
“네, 네.”
부주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추시(답 없는 놈).
“그래도 생각해 놓은 게 있을 거 아닙니까?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꼴깍.
랴오닝이 마른침을 삼키며 간신히 입을 떼었다.
“대두를 수입해서 가공하면 빠른 시간에 식용유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럼, 시간만 있으면 해결될 일이네요.”
“그, 그렇습니다.”
“그럼, 됐네요. 뭐, 인민이 조금 참기만 하면 될 일. 가격은 그렇게 매듭지읍시다.”
“네.”
“그러나.”
지금까지 담담한 부주석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번 일을 방관한 당신들은 그만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 같은데.”
네?
털썩.
생각하고 말고도 없다.
중허는 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억울합니다. 주석님.”
부주석을 미리 주석이라 부르며 선처를 바라보았다.
“억울하다. 뭐가요? 일을 제때 처리 못 했으면 일을 제때 처리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억울한 것은 당신의 몫이지 당이 감당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주석님, 우리가 상대한 이는 투마로우 임재준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충분히 대비했을 겁니다. 하지만 임재준이 프랑스 투자자인 척 저희를 속여 대비할 시기를 놓쳤습니다. 거기다 현재 다시 곡물 파동을 일으키려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한 번 그를 겪은 저희가 막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곡물 파동을 일으킨다고요?”
“네, 이번엔 옥수수와 밀 시장을 교란시키려 합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시면 반드시 막아내겠습니다.”
“옥수수와 밀이라…….”
투마로우 임재준이라고.
내가 주석에 앉으면 가장 경계해야 할 놈 중 하나.
윌가를 잡고 흔드는 놈이니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게 아니다.
하늘의 천운을 타고났다고 해야겠지.
주변에 뛰어난 인간들도 몇 있다고 들었고.
유럽을 흔들고 이제 중국으로 온 건가.
중국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건데…….
“이봐요. 중허 사장.”
“네. 주석님.”
“옥수수와 밀은 자급률이 98%가 넘는데 이걸 빼앗기면 나라 전체가 휘청이는 건 알고 있지요?”
“알고 있습니다.”
대두는 자급률이 20%로 80%를 수입하는 반면, 옥수수와 밀은 자급률이 높아 수입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재준이 대두를 노린 것도 이 점 때문인데, 만약 옥수수나 밀이었다면 투자해야 할 자금이 최소 다섯 배는 들었을 것이다.
밀 생산, 저장, 가공 기업을 사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금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이 쓸데없이 줄줄 새는 거지.
“좋아요. 한 번 더 기회를 주겠습니다. 당장 곡물 기업들을 국영화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가 봐요.”
고개를 숙인 둘은 덜컹 내려앉은 심장을 부여잡고 간신히 부주석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말없이 빠르게 걸어서 중난하이에서 벗어났다.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긴 숨을 내뱉었다.
“차라리 난 그만두었으면 했는데. 거기서 무릎은 왜 꿇어서.”
“랴오닝 사장, 정신 차리세요.”
“정신 차리는 건 그쪽입니다. 왜 다시 투마로우와 싸우려는 겁니까? 차라리 부주석이 다른 사람을 내세우게 놔두는 게 신상에 이로웠을 텐데.”
“억울하지도 않아요?”
“뭐가 억울합니까?”
“그놈이 우리 땅에서 우리 기업을 빼앗고 있습니다.”
“허, 별 시답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네요. 이보세요, 중허 사장님. 우리도 해외에서 땅 사고 건물 사고 기업도 삽니다. 사장님은 매일 식량 비축분만 쳐다보고 있으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는데. 내가 알아보니 투마로우가 대두 기업들 사들이고 생산성을 두 배 올리겠다고 합디다. 지금이야 대두 가격이 올라서 마치 나쁜 놈처럼 보이지만, 선진농업기술이 적용되면 우리도 좋은 겁니다. 대두 자급률이 중국은 15%인데 이게 30%가 되면 국가적으로 얼마가 이익이 되는 줄 아십니까?”
정말 억울한 게 자신이라는 듯 랴오닝이 말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그래도 중국 기업은 안 됩니다.”
“그렇게 말을 해도 못 알아먹는군요. 가서 옥수수, 밀 기업이나 국영화시키세요. 전 대두 수입을 알아볼 테니.”
랴오닝은 중허를 버려두고 앞으로 걸어갔다.
중허는 랴오닝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해외 좀 돌아다닌다고 지가 미국놈이 된 거야 뭐야? 애국심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놈. 저런 놈이 국영 기업 사장이라니. 이번만 지나가면 넌 탈락이야.”
중허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
카킬.
“대두 양을 늘려 달라고?”
“네, 지금 중국 대두 시장이 수에즈로 인해 장악된 것 같습니다. 식용유 대란이 일어나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카킬 CEO 그렉 파이는 공급 및 운송 치프의 보고서를 보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식용유 가격이 올라가면 대두 가격도 올라가니 웃어야 하는 일이지만, 중국이 대두 수입량을 늘리면 수량 조절을 고민해야 하니 웃을 일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일부 생산이 재개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옥수수의 경우였다.
이상하게 대두만 생산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
“대두 가격이 올라서 중국으로 들어갈 양을 늘리면 이익은 나겠지만 그럼 어딘가는 수량을 줄여야 하는데. 가능한 곳이 있습니까?”
“수량을 줄일 곳은 없습니다. 비축분을 푸는 선에서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축분을 푸는 건 좀 생각해 봅시다.”
곡물 메이저의 비축분은 필요하다고 해서 함부로 푸는 게 아니다.
비축분은 금이다.
전 세계가 흉작이거나 어디 전쟁이라도 나면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때를 대비해서 20%의 비축분을 유지해야 한다.
그 비싼 보관 비용을 지불하면서.
지금 대두 가격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비축분을 풀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비축분을 풀었다가 아르헨티나 파업이 타결이라도 되면 카킬에게는 큰 타격이 된다.
정작 돈을 벌 수 있는 시기에 비축분이 없으면 남이 돈 버는 거 구경하며 손가락이나 빨아야 한다.
아르헨티나는 대두 제품 수출 1위이고 대두 생산과 수출은 3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나라다.
벙기가 대두 하나만으로 곡물 메이저가 됐을 정도니까.
“벙기는 지금 어떤가요?”
“주가가 거의 반 토막 상태입니다. 아르헨티나 파업이 완전 철회될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 프랑스가 도움이 됐는데. 수에즈는 어때요?”
“창고를 계속 늘리면서 쌓아 놓기만 할 뿐 풀지 않고 있습니다.”
참 나.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초창기 카킬이 써먹던 방법을 지금 수에즈가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ADM이 수에즈 뒤에 있는 게 확실하죠?”
“그렇게 보는 것보다는 ADM이 투마로우와 손을 잡았다는 게 맞을 겁니다. 수에즈가 투마로우의 자회사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뭔가 찜찜한 조합인데.”
“제 생각은 ADM이 수에즈를 키운 후 합병으로 유럽을 장악할 것 같습니다. 식량 자급률이 높은 유럽의 잉여 곡물을 전 세계에 공급할 수도 있고요.”
“로이드레퓌스가 위협을 받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ADM…….”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냐.
수에즈를 내세워 유럽과 중국을 차지하겠다는 건가?
그나저나 중국 대두 물량을 어떻게 처리하지?
“인공위성으로 재배 농장 중 풍작이 예상되는 곳을 살펴보세요. 비축분을 늘려야겠습니다.”
“비축분을 푸실 생각이십니까?”
“네. 중국을 도울 방법은 그것뿐인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나가 보세요.”
치프가 나가고 그렉 파이는 고민에 빠졌다.
재배 농장을 늘려야겠는데.
***
수에즈 중국 지사.
흐흐흐흐흐흐흐.
재준은 신문을 보며 음산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이제 때가 되었네.
[미 정부 3차 양적 완화 발표. 1년간 1조 2,800억 달러 투입 결정]
미국은 드디어 미국 정부가 세 번째 칼을 빼 들었다.
2009년에 1차 양적 완화로 1년간 1조 7,500억 달러를 들여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사들였다.
하지만 국민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다.
2010년에 2차 양적 완화로 7개월간 6,000억 달러를 들여 국채를 사들였다.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그리스가 난리를 쳐서 유럽이 경제 위기에 빠지자 미국도 휘청였다.
할 수 없이 2012년에 1년 3개월간 1조 2,800억 달러를 들여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사들였다.
원래 연준이 공개시장운영을 할 때는 금리를 올리거나 내려면서 시중의 돈을 흡수하거나 쏟아내는 것으로 돈의 양을 조절한다.
금리를 올리거나 내려서.
근데 금리가 0%이면 어떻게 할까?
시중에 돈을 풀어야 하는데 더 이상 내릴 금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올리면 시중의 돈이 은행으로 흡수될 테고.
그래서 은행이 보유한 국채나 모기지 채권을 정부가 왕창 매입해서 시중에 돈을 푸는 방법이 양적 완화이다.
바로 지금 연준 의장이 1년간 금리를 0% 유지한다고 발표하고 3차 양적 완화를 시행했다.
재준이 양적 완화를 기다린 이유가 무얼까?
블록은 재준이 비열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또 흉악한 일이 벌어질 거란 걸 직감하며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세요?”
“미 정부가 드디어 3차 양적 완화를 발표했어.”
3차 양적 완화?
시중에 돈을 푸는 거잖아.
“그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요?”
“대두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을 거거든.”
왜?
“양적 완화를 시작했는데 대두 가격이 올라요? 이상하네. 그럼, 사람들이 대두를 산다는 거잖아요. 특별한 대두 레시피라도 나왔나요? 일반인이 대두를 사게?”
“일반인이 사는 게 아니라 헤지펀드지.”
“헤지펀드가요?”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지?
헤지펀드가 왜 곡물을 사?
하긴 돈이 된다면 못 살 것도 없지만 보스가 말하는 건 헤지펀드들이 다 달려든다는 소린데.
뱅커가 곡물을 산다고?
그림이 안 그려지는데.
재준은 의아하게 생각하는 블록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겠지.
“지금 유럽 금융위기가 끝난 게 아닌 건 알지?”
“네.”
“M&A 할 만한 기업들도 영 신통치 않고. 특히 SNS 기업 주가가 거품이다 뭐다 하면서 떠들어대고 있고.”
“그렇죠. 이럴 땐 숨죽이고 기다려야죠.”
조만간 SNS의 대표주자인 페이스노트 주가가 거의 반 토막 난다.
그 뒤로 SNS 기업들 주가가 줄줄이 70% 이상 빠져 버려 뉴욕증시가 잠시 패닉에 빠진다.
하지만 IT 버블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IT 버블은 IT 관련 기업 전체가 무너진 반면 SNS 기업은 몇 개 안 되니까.
블록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하기는 더 위험해.”
“저라도 안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양적 완화를 한대. 어마어마한 돈이 은행에 들어왔는데 투자할 곳이 마땅히 없네. 자그마치 1조 달러가 넘는 돈인데. 어떡하지?”
“그렇다고 곡물을 사들인다고요?”
“당연하잖아. 우리가 그 타의 모범을 보이고 있잖아. 조만간 투마로우가 곡물에 투자해서 떼돈을 벌었다는 뉴스가 월가의 소식지에 퍼질 거야. 프랑스 곡물과 중국 대두를 장악한 소식을 아주 자세히.”
“투마로우가 시작하면 다들 따라올 거란 말이죠?”
“그렇지, 우리를 따라 해서 손해 본 적이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흐흐흐흐흐흐.
“나의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어. 프랑스에 비축해 놓은 곡물 가격이 치솟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제 곡물 선물 풋을 걸어 볼까?”
하하하.
블록은 재준을 보며 다시 한 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한다는 걸 알고 프랑스 곡물을 사들인 거야?
그리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데 풋을 왜 거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