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그렇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겠어?(8)
“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자, 자세히 설명해 줄게.”
숙덕숙덕.
재준은 한참을 블록에게 설명을 하자 점점 블록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렇게까지…….”
“그래, 뭐든 저 밑바닥에 뭐가 있는지 구경을 시켜 줘야, 모든 걸 내려놓게 되어 있어.”
이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들어오세요.”
벌컥.
중년의 중국인 두 명이 들어왔다.
“연락 드린 사람입니다.”
“네, 딱 봐도 그런 것 같네요.”
중허와 랴오닝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인상을 찡그렸다.
건물이 너무 허름하고 지저분했다.
저 먼지.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거야?
재준은 손으로 낡아 빠진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재준의 협상의 원칙 첫 번째.
내 통제 안으로 끌어들인다.
앉으면 먼지가 풀풀 날 것 같은 의자에 재준이 먼저 퍽 소리 나게 앉았다.
역시나 뽀얀 먼지가 풀풀 일었다.
푸, 푸.
중허와 랴오닝이 손으로 먼지를 흐트러뜨리며 소파를 살폈다.
“괜찮다니까.”
재준이 빙글 웃으며 손으로 펑펑 먼지를 날려 보냈다.
켁, 켁.
이 사람이 정말.
근데 랴오닝이 재준의 웃는 얼굴을 보고 갸우뚱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중허는 먼지를 손으로 저으며 말했다.
“아니, 돈도 많으신 분이 사무실은 왜 이렇습니까?”
“아, 건물은 2층 이상이면 무너질 것 같아서 단층으로 구입했고 사무실은 거의 쓸 일이 없으니 꾸미지 않았어요.”
“무너져요?”
“근래에 지어진 중국 건물들 잘 무너지잖아요.”
흠, 흠.
쓸데없는 소리를.
“우리가 온 목적은.”
“식용유 때문이죠? 전 가격을 인하할 생각이 없어요. 아니 오히려 더 인상하려고요.”
뭐?
여기 미친놈이 또 있네.
“중국이 만만한 겁니까? 왜 중국에 와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장사를 하려는 겁니까?”
성질 급한 중허가 재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재준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손가락을 후 불었다.
“그럼, 장사 안 하면 되죠. 됐죠? 해외에 팔게요. 가격 좋게 쳐 주겠다는 데 많은데. 굳이 내가 욕먹으면서 중국에 팔 생각은 없어요.”
“안, 안 판다고요?”
“네, 얘기 끝난 것 같은데. 그만 가시죠. 거, 피차 되네 안 되네 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일어나세요.”
“이, 이거 보세요. 잠시만. 협상을 합시다.”
그런대로 차분한 랴오닝이 일어선 재준에게 손을 뻗었다.
“협상 결렬 아닙니까? 방금 이쪽에서 나한테 통보한 것 같은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가격이 갑자기 오르다 보니.”
“아닌 것 같은데. 분명 화를 내는 것 같았는데.”
“아닙니다. 자, 다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역시 그래도 해외에서 협상 좀 했다고 랴오닝이 중허보다는 대화 기술이 나았다.
재준이 다시 앉자 먼지가 다시 풀풀 날렸다.
푸, 푸.
중허는 손으로 먼지를 걷어냈다.
이놈의 먼지 때문에 집중이 안 되네.
재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서 랴오닝과 중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디랑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겁니까?”
“저랑 합시다.”
중허가 나섰다.
“나는 시농그레인 사장 중허입니다.”
“아, 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갑자기 식용유 출하 가격을 너무 높게 올렸습니다. 천천히.”
아니.
재준이 중허의 말을 끊으며 치고 들어왔다.
“그건 중국 사정이고 대두 가격이 많이 올랐잖아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제품의 가격도 오르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내가 아르헨티나 가서 파업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 이건 그쪽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냥 가격이 내릴 때까지 오른 가격으로 나가야지 않겠어요?”
“아르헨티나…….”
“그렇다고 대두 가격이 50%가 뛴 것은 아닙니다.”
랴오닝이 끼어들었다.
재준이 랴오닝을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 쳐다봤다.
“뭡니까? 이쪽이랑 이야기하라고 하더니 왜 끼어드는 거죠? 그쪽이 이 협상을 책임질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럼 껴들지 말아요. 웬 오지랖이야.”
뭐? 오지랖?
중허가 재준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흠, 흠.
랴오닝이 ‘한 번 더 참읍시다’라고 말하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천천히 올릴 수 없다는 겁니까?”
“상황이 아니라니까요? 전 그럼 손해 봐야 하는데. 그거 정부가 책임 져 줄 수 있어요? 책임진다면 그렇게 하고요. 다른 나라는 보조금도 주고 그런다는 데 중국은 기업에 도움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투자를 해도 시큰둥하고. 이래서 어디 다른 나라에서 투자를 받을 수나 있나?”
“보조금은 자국 기업한테 해당되는 겁니다. 수에즈는 중국 기업이 아니잖아요.”
“에이, 그럼 우리는 뭐 외국 노동자 데려와서 일하고 있습니까? 엄연히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00% 다 중국인인데 이게 중국 기업이 아니면 어디가 중국 기업이라는 거지? 거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 이러니까 중국이 안 되는 거라니까. ”
결국 중허가 다시 벌떡 일어섰다.
“진짜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감히 중화인민공화국을 욕해? 겨우 사업체 몇 개 거느린 주제에. 당신 시농그레인이 얼마나 큰 회사인지 알고 막말을 하는 거야?”
어라? 화를 내?
“참 이상한 사람이네. 이러니까 내가 애초에 얘기했잖아요. 할 이야기 없다고. 왜 하던 이야기는 안 하고 엉뚱하게. 그리고 뭐 얼마나 큰 회사인데? 그래 얼마나 큰 회사지? 내 회사가 자산이……. 블록, 얼마지? 계산이 잘 안 서네. 펠그리니에게 물어야 하나?”
그게…….
블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일단 미주 자산만 10조 달러는 넘는 거 같습니다.”
10조 달러?
꿀꺽, 랴오닝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래? 그것밖에 안 되나?”
“아, 유럽 자산을 합치면 100조 달러일 수도 있고요.”
100조 달러?
가만 이만한 기업이 존재하나?
프랑스에 이만한 기업이라면…….
아니다. 미주 자산 유럽 자산이라고 말한 거 보니 다국적 기업이다.
“남미를 합치면 좀 더 되긴 하겠네요. 뭐 거긴 석유회사도 있고, 농장도 있으니까.”
막 갖다 붙이는구나.
“그지, 그 정도는 될 거야.”
남미? 이만한 기업이면?
재준이 다시 중허와 랴오닝을 쳐다봤다.
“그렇다네요. 시농그레인은 얼마나 하나요? 뭐 이거 애들처럼 너네 집에 TV는 몇 인치니, 우리 집 자동차 몇 인승이니 따지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시작했으니 결론은 봐야죠. 얼마예요? 아, 물어볼 필요도 없구나. 블록, 시농그레인 자산이 얼마예요?”
잠시만요.
블록이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100억 달러. 이거 맞나? 보스, 100억 달러라고 나오는데요.”
“그래? 거기서 공 하나는 빼도 되겠네. 워낙 구라가 쎈 사람들이라.”
중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면서 재준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당신 중국을 너무 얕본 거야. 중국 안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까부는 거야?”
“어? 궁금해서 그러는데. 중국 안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막 강제로 압류하고 빼앗고 그러나?”
“당해봐야 알겠지.”
“그래요? 그럼 미국 내에 있는 중국 자산 우리가 가져도 되는 거죠. 그럼 이거 가지세요. 이거보다는 미국에 있는 게 훨씬 비싸고 좋지.”
“뭐?”
하하.
재준이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웃었다.
“이봐요. 국영 기업의 사장이란 사람이 협박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면 그게 먹힙니까? 습관인 거 같은데. WTO는 왜 가입한 거지? 그냥 가입하면 선진국 대접해 줄까 봐? 그래 어디 한번 중국 내에 있는 내 자산을 건드려 보세요. 내가 아주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까지 싹 다 털어 버리게.”
중허는 씩씩거리며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좋아. 어디 한번 해 보지.”
그러나 아까부터 재준을 유심히 살펴보던 랴오닝이 중허의 어깨를 잡았다.
“사장님. 잠깐만.”
“왜요?”
“잠깐만 입 좀 다물고 있어.”
“이 사람이 같이 미쳤나.”
중허의 성난 시선을 외면하며 랴오닝은 재준을 노려봤다.
“어디서 봤나 했습니다.”
“뭘요?”
재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투마로우 임재준. 맞아요. 바로 당신. 임재준. 어쩐지 낯이 익더라 했습니다. 맞죠. 임재준.”
음.
“맞긴 한데. 나를 알아요? 난 그쪽을 본 적이 없는데요.”
“직접 인사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단지 신문에 난 건 많이 봤습니다.”
“아, 그렇구나. 난 또 내가 실수한 줄 알았네. 아는 사람을 까먹으면 어쩌나 했는데.”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급 태도가 바뀐 랴오닝.
중허가 다가와 ‘뭐 하는 짓이냐’고 눈알을 부라렸다.
그러자 ‘너나 닥치고 있어’라는 듯 미간을 확 찡그렸다.
잘못하다가는 중국이 망할 수도 있어.
다시 재준을 향해 공손히 물었다.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적극 돕겠습니다. 중국에 투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솔직히요?”
“네. 이렇게 투자하신 것을 보면 중국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 아닙니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알면 제가 적극 돕겠습니다.”
“저 사람은요?”
랴오닝은 중허을 보며 인상을 팍썼다.
“자네 뭐 하나. 얼른 도움을 주겠다고 말해.”
중허는 오늘 아주 여러 가지로 지랄맞은 상황을 보았다.
이것들이 하나같이 정신이 돌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투마로우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임재준의 얼굴을 모를 뿐이지.
근데 투마로우 임재준이 왜 이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에 있으며.
증권 재벌이라고 알고 있는데 왜 곡물에 손을 댔는지.
댈 수도 있다 쳐도 왜 식용유 가격을 50%나 올리려는 건지.
그리고 가장 병신 같은 건 저 랴오닝이다.
대 중국 대륙의 국영 기업 사장이란 놈이. 임재준이면 저 손바닥만 한 나라인 한국 태생으로 알고 있는데 왜 저렇게 저자세로 허리를 굽히는지.
짜증 나네.
“난 그렇게 못 해.”
“중허.”
랴오닝은 중허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냈다.
저 멍청한 놈이 투마로우가 어떤 기업인지 모르는 건가?
“랴오닝. 자네나 열심히 돕게. 난 그렇게 못하겠으니까. 겨우 소국 출신 주제에.”
중허는 재준을 한 차례 더 노려보고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갔다.
쾅.
으, 저 성질머리하고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랴오닝은 재준에게 재차 고개를 숙이고 중허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블록이 재준에게 다가왔다.
“괜찮을까요?”
“쟤들이 뭘 할 수 있는데? 아마 할 수 있는 게 없을걸? 그러니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박차고 나가지. 이게 우리한테는 좋은 결과야.”
“시농그레인이 대두를 더 수입할까요?”
“하겠지. 이런 대박 기회를 놓칠 카킬도 아니고. 중국에게 아주 특별한 가격으로 대두를 수출하겠지.”
“우리는 다음 단계로 진행합니까?”
“그래야지. 옥수수와 밀 생산 기업을 인수하는 척해. 아마 화들짝 놀라서 시농그레인이 지방 정부로 달려갈 거야. 그러면 틈이 아주 크게 벌어지겠지.”
재준은 핸드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보스.
“옥수수, 밀 선물 콜에 걸어. 중국 때문에 가격이 폭등할 거야.”
-알겠습니다.
자, 이제 중국은 바쁘다 바뻐.
대두 수입을 대폭 늘릴 거고 옥수수와 밀도 원래 비축분 15%보다 훨씬 많은 양을 수입할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