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그렇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겠어?(7)
아처대니얼스마들랜드(ADM).
“대단하네. 대단해. 이게 투마로우의 힘인가?”
“보스의 힘이지. 보스는 원래 그래.”
“얘기로 듣던 걸 실제로 보니 실감이 잘 안 나. 어떻게 일 처리가 이렇게 빠를 수 있지?”
“우리 팀이 좀 빠르지. 중간 자잘한 보고는 생략하니까. 서로 믿고 게임을 하니까 빠를 수밖에.”
“이런 팀이 있다는 건 정말 부러워.”
CEO 페리노는 투마로우가 이루어 놓은 결과물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지 ADM이란 이름을 빌려주었을 뿐인데 6개월도 안 돼서 중국 대두 생산의 80%를 장악해 버렸다.
정확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핵심 성의 대두 기업들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중국도 자기가 어떻게 당했는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아직 투마로우가 왜 중국의 대두를 장악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자네 보스는 대두로 뭘 하려는 거지? 설마 중국 안에서 식용유 장사를 하려는 건 아니잖아?”
“아니긴, 식용유를 팔겠지.”
“정말 식용유 장사를 한다고? 그게……. 그래, 중국이야 워낙 인구가 많으니까 그것도 나름 매력이 있는 사업이긴 해. 헌데 뭔가 투마로우랑은 맞지 않아 보인단 말이야. 투자한 돈에 비해 이익이 크지 않잖아.”
“그렇지. 그냥 식용유 장사는 아닐 거야.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이걸 봐. 우리 팀이 아르헨티나에서 보스의 지시로 일을 벌였어.”
윌켄은 신문 헤드라인에 실린 기사를 가리켰다.
[아르헨티나 또 총파업 전국 마비. 정부도 강경 대응 지시.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평행선 대치 중.]
미친, 국가를 마비시켰잖아.
뭐, 아르헨티나야 파업을 밥 먹듯이 하니까.
그래도 그렇지 파업을 유도하다니.
이거 범죄행위 아닌가?
근데 왜 하필 아르헨티나지?
혹시…….
신문을 들여다보던 페리노가 뭔가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벙기?”
“그렇지. 일단 벙기는 꼼짝 못 하게 되었고. 로이드레퓌스는 중국이랑 상관이 없고. 카킬만 남았는데.”
“뭐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대두.”
“그걸 왜 투마로우가 걱정하는데. 중국 안에 있는 대두만 걱정하면 되지.”
“아니지, 마지막으로 ADM이 중국에 대두를 수출 안 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중국에 대두를 수출하면 안 되나?”
가만, 가만, 이게 무슨 소리지?
중국으로 들어가는 대두 물량을 통제하면?
벙기 물량과 우리 물량을 카킬이 전부 떠안는 게 되고 카킬 물량이 늘어나면.
그러면 카킬만 좋은 거 아닌가?
페리노의 미간이 이건 아니라는 듯 좁아졌다.
윌켄이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기억하나? 전에 말했잖아. 카킬의 시장을 능력껏 점령하라고. 중국은 세계 인구의 1/5이야. 단순 계산만 해도 중국에 전 세계 대두의 1/5이 소모되는 거 아닌가? 물론 식습관 때문에 더 많은 대두가 필요하겠지만. 카킬이 중국에게 대두를 몰아주면 빈 곳이 여기저기 생기게 되지 않을까?”
“윌켄, 그 말은…….”
카킬의 영역을 침범하라고?
페리노의 심장 한쪽이 뭔가로 찌르르 울렸다.
급격한 박동으로 고통이 느껴졌다.
예상도 했고 욕심도 부렸다.
하지만 막상 카킬의 시장을 점령하려니 두려움이 앞섰다.
전 세계 물량으로 봤을 때 잉여 곡물은 없다.
항상 적정량을 생산하고 적정량을 유통했다.
만약 중국으로 예상외의 대두 물량이 쏠리면 어딘가는 물량이 부족하게 된다.
그 빈 곳을 ADM이 채운다면 카킬의 점유율이 허물어진다.
곡물의 공급은 안정성을 최우선이어야 한다.
사람이 먹는 건데 좀 미룬다고 미뤄지는 게 아니다.
대두를 시작으로 다른 곡물로 번질 것이다.
어쩌면 진짜 전쟁이 날 것 같은데.
“왜 걱정되나?”
“그게 아니라.”
“좀 느긋하게 즐겨. 이런 일에 놀라면 앞으로 우리와 어떻게 일을 하려고 그래. 하하하.”
“자넨 진짜 걱정되지 않나? 이건 국가 간의 문제로 번질 수 있어. 미국과 중국이 정치적으로 대치할 수 있다고.”
“페리노.”
윌켄이 페리노를 가만히 쳐다봤다.
“지금 그걸 노리는 거야.”
뭐?
카킬이 목적이 아니라고?
“카킬을 죽이기 위해 중국을 이용하는 거라고. 그리고 카킬을 죽이고 중국을 손아귀에 넣는 거고. 그렇다고.”
카킬과 중국을 전부?
페리노는 윌켄의 말을 듣기 위해 숨을 멈췄다.
“중국이 큰 타격을 입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까? 그 누군가가 투마로우가 되어야 하고. 중국이 투마로우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그림이 완성되는 거지. 뭐 한 번이긴 하겠지만.”
중국이 투마로우에게 무릎을 꿇는다. 중국이.
“도대체 자네 보스는 간을 서랍에 두고 다니는 사람인가?”
하하하.
미친!
분명 처음엔 카킬을 인수한다고 했는데.
단지 자금줄을 쥐고 카킬을 죽이는 게 아니다.
은행이라면 그게 당연한 건데.
누가 곡물을 이용해서 카킬에게 싸움을 건다는 생각을 할까?
카킬이 제일 잘하는 거로 카킬을 무너뜨린다…….
제길. 할 말이 없으니 욕만 나오네.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흥분하기는. 말은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야. 어쩌면 보스는 한 발 더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해. 아마 그럴 거야.”
한 발 더?
페리노의 머리가 어질해졌다.
전쟁을 위해서 단단히 준비해야 하는데.
뭘?
윌켄이 빙그레 웃었다.
처음엔 다 그래, 황당하지.
인간이면 겁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보스에겐 그게 없거든.
이때,
띠리리링.
윌켄의 핸드폰이 울렸다.
보스?
“네, 보스. 무슨 일입니까?”
-나 중국에 들어가려고요.
“중국에요? 들어가서 뭘 하시려고요?”
-물 좀 끓이게.
“네?”
-전화로 말하긴 그렇고. 조만간 신문에 기사 날 거예요. 그럼 대충 감이 올 겁니다. ADM도 준비하라고 하세요.
“네.”
툭.
전화가 끊어지고 윌켄도 페리노와 같은 표정을 했다.
뭘?
***
시농그레인(중국 국영 식량비축관리그룹).
“뭐라고 지껄인 거야? 뭐? 가격을 올린다고? 그것도 50%나? 누구 맘대로?”
“그게 대두 가공 기업들이 일제히 올린답니다. 식용유 소비자 가격이 배는 뛸 겁니다. 비축분을 푸셔야 합니다.”
미친놈.
시농그레인 사장 중허는 부사장의 말에 기가 막힌단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보고서에 적힌 예상 식용유 소비자 가격을 보았다.
감히 중국에서 물가를 자기 맘대로 올렸다 내렸다 한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 아냐?
인민공화국에서 통제를 벗어나겠다?
“이것들이 미친 거지? 왜 올렸대?”
“아르헨티나 파업에 의한 대두 가격 상승이 원인이랍니다.”
“웃기고 있네. 괜히 핑계 대는 거지? 그리고 우리가 수입하는 물량이 얼만데 가격 하나 못 맞춘단 말야? 랴오닝 사장 연결해 봐.”
곡물 수입을 담당하는 중국 최대 국영 식품회사 쿠프쿠의 랴오닝 사장이 연결되었다.
“네, 접니다. 잘 지내셨지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미친놈, 지금 문제가 터져서 대가리가 터지게 생겼는데 혼자 잘 지내고 있다고?
“다름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파업으로 식용유 공장 출하 가격이 50% 인상되었다는데 이게 무슨 소립니까? 쿠프쿠에서 대두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겁니까?”
-아, 그 문제는 좀 복잡합니다. 아르헨티나 원인도 있지만, 대두 가공업체들은 이제 더는 중국 기업이 아닙니다. 그들이 근거를 가지고 가격을 올리는 건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아무리 해외 투자를 받았다고는 하나 엄연히 중국 안에 있는 기업인데.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그럼, 이대로 가격을 올리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
-식용유 비축분을 풀어 가격을 낮춰야지요.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
비축분은 전시를 위해 비축하는 건데.
물가 안정을 위해서 풀라고?
천재지변도 아니고?
“아니 말을 해도.”
-사장님, 무슨 생각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당장에 인민들 물가를 잡으려면 비축분을 낮은 가격에 풀어 저들이 가격을 낮추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쪽도 대응한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 한다고요.
“네?”
나 살다 살다 이런 얼빠진 경우는 처음이네.
자기 맘대로 가격을 올리는 놈이나.
그걸 대응하겠다고 비축분을 풀라는 놈이나.
참 가지가지 한다.
“그건 안 됩니다.”
-되고 안 되고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곡물을 살펴봤는데. 곡물은 힘으로 누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힘으로 누르면 저놈들은 아예 공급을 끊어버립니다. 그나마 지금 공급되는 물량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나 참 어이가 없네.
“아니, 쿠프쿠는 해외에서 대두를 사 오지 못하는 겁니까?”
-지금 카킬에 계속 문의를 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ADM과 벙기가 공급에 곤란을 겪고 있어서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이만 끊읍시다.”
통화를 마무리한 중허 사장은 멍하게 핸드폰을 바라봤다.
정말 이따위로 밖에 일을 못 하는 거야?
중화인민공화국의 전 인민의 식량을 책임지고 있는 자가 방법이 없다고 뒤로 물러나서 구경만 하겠다?
이런 물러터진 녀석을 보았나.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장을 보고 부사장이 다가왔다.
“저, 사장님. 수에즈 중국 담당자로 보이는 자가 중국에 들어왔단 정보가 있습니다. 한번 만나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수에즈가 뭡니까?”
“지금 중국 대두 가공업체를 인수한 프랑스 기업입니다.”
“그래요? 당장 갑시다.”
“먼저 미팅 약속을 잡아 보겠습니다.”
“랴오닝 사장도 오라고 하세요. 같이 들어가서 얘기를 들어 봐야겠어. 랴오닝 그 미친놈이 하는 말이 진짠지 가짠지.”
만만디인 중국인으로서도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
수에즈 중국 지사.
허름하고 작은 오래된 석조 건물.
재준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블록을 향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툭.
통화를 마친 블록이 재준에게 미소를 지었다.
“걸려든 것 같은데요.”
“당연하지. 목마른 놈이 우물을 찾아야지. 물론 마실 물은 없지만.”
“보스, 근데 왜 식용유를 50%나 올린 겁니까? 10%나 20%면 이해가 되는데 50%면 갑자기 너무 올린 것 같은데.”
“아, 그거. 뭐, 팔 생각이면 10% 정도 올려도 괜찮지만 팔 생각이 없는데 50%면 어떻고 100%면 어때? 이참에 미친 척하고 1,000% 올릴까?”
“네? 식용유 안 팔 거예요?”
“응. 다 썩어서 버리는 한이 있어도 안 팔아.”
“왜요?”
“그래야 중국이 비축분 풀잖아. 당연히 모자랄 테고. 그럼 또 대두를 왕창 수입하겠지. 비싼 값으로. 그럼 다시 식용유 가격을 올리고. 또 모자라겠지. 또 수입할 테고. 비싼 가격으로. 그럼 또 가격을 올리고.”
악순환이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그러면 카킬만 좋은 거 아니에요?”
“과연 그럴까?”
“아닙니까?”
블록은 빙글빙글 웃고 있는 재준을 보고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을 보고 있는 아이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