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89화 (189/477)

제189화 그렇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겠어?(5)

창고를 시찰하며 재준과 대화를 마친 올랑도 대통령은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멀리 사라지는 리무진을 보며 재준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블록, 나야.”

-네, 보스.

“쿠프쿠는 어때?”

쿠프쿠. 중국 최대 국영 식품회사다.

요즘 한창 곡물 메이저 흉내를 내고 다니고 있는데 실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사탕수수밭, 브라질의 콩 목초지를 사들였고. 특히 최근 아시아 최대 곡물 거래회사 노블 그룹의 지분 51%를 15억 달러에 사들였습니다.

해외?

하긴 곡물 메이저에게 보고 배운 게 그거니까.

자국 곡물 자급률이 100% 이상인 국가를 찾아 농지를 매입하는 거.

근데 그게 아닌데.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놈들이다.

진짜는 곡물 메이저의 행동을 의심하질 않는다.

왜 호주 사탕수수밭이나 브라질 콩 목초지를 곡물 메이저가 매입하지 않았을까?

중국은 절대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일단 지르고 본다.

곡물은 생산량이 받쳐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곡물이 1헥타르당 10톤은 나와야 하는데 아직 기술이 부족하거나 환경적인 요인으로 생산량이 나오지 않으면 그건 쓸모없는 농지와 같다.

아니면 아르헨티나나 프랑스처럼 워낙 땅이 좋아서 약간의 투자로 생산량이 급격하게 좋아지든가.

재준은 블록에게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중국 내 투자는 안 하는 거지?”

-네, 거의 안 하는데요. 아직은 해외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설마 곡물을 수입하는 중국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겠어?

가뜩이나 중국 내 곡물로는 자국 소비도 어림없는데.

이러니까 투자자본의 먹잇감이 되는 거지.

“블록, 지금 한창 지방 정부가 외자유치경쟁을 벌이고 있잖아. 지방 정부에서 대두 생산, 가공, 저장하는 기업들에 지분 투자한다고 접촉해 봐. 되도록 지분 전체를 사들이는 데 역점을 두고. 틀림없이 열렬히 환영할 거야.”

이 시기에 돈맛을 본 지방 정부는 해외 투자라면 자기 아내도 팔아먹을 놈들이었다.

왜? 투자 뒤에 딸려 오는 꽌시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한동안 당황했지만 이제 슬슬 해외 투자자본도 중국의 꽌시를 인정하고 오히려 국내보다 더 두둑이 챙겨 주었다.

그만큼 본 계약에 추가해 버리면 되니까.

그리고 지방 정부는 아주 거창한 최첨단 산업 시설 투자라면 눈빛이 반짝반짝했지만, 농업 투자라면 후딱 해치우고 술이나 적당히 마시는 수준이었다.

대두 기업에 투자한다면 앞뒤 보지도 않고 던져줄 것이다.

-대두요?

“맞아. 대두. 대두부터 시작할 거야.”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중국은 2001년 카킬의 로비로 WTO에 가입했다.

WTO에 가입하기 위해 그전엔 무조건 차단했던 무역 장벽을 어느 정도 허물어야 했고 투자자본을 받아들여야 했다.

자기들도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블록과 통화를 마친 재준은 이번엔 윌켄에게 전화를 걸었다.

“윌켄, 지금부터 블록이 지방 정부와 이야기를 마치면 ADM과 수에즈가 합작해서 중국 기업을 합병시키세요.”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일단 대두부터 손안에 쥡시다.”

-알겠습니다.

대두부터 시작이다.

왜 대두부터냐고? 대두를 짜면 콩기름이 나온다.

우리가 말하는 식용유, 그리고 그 찌꺼기는 돼지 사료로 쓰인다.

버릴 게 없는 알짜 곡물이지.

중국인 식탁에 절대 빠지지 않는 돼지고기.

그리고 고기를 튀기는 식용유.

대두를 손안에 넣으면 식용유와 돼지고기, 즉 중국인 식단의 절반을 쥐고 흔들 수 있다.

재준의 기억에도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한 지 30년 동안 지방 정부는 외자유치 명분으로 식량 가공업체를 외국에 80% 이상 넘겼다.

처음에야 저까짓 것을 왜 살까 했지만,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제 슬슬 바닥에서 기포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펄펄 끓으면 중국을 통째로 넣고 삶아 버린다.

자, 그럼, 카킬은 어떻게 나올까?

***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성장 저우샹은 중국어를 아주 잘하는 미국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우리 성에 투자를 하러 오셨다고요?”

블록은 저우샹에게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런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젊은 시절 변호사에 합격하고도 중국에서 사업으로 돈 벌어보겠다고 왔었다.

하지만 이놈들의 꽌시라는 문화에 홀라당 말아 먹고 미국으로 쫓기듯이 돌아갔다.

내가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아 줄 날이 왔다.

“대륙의 일은 대륙이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륙? 그쪽이? 아, 그렇군요. 미 대륙.”

그렇지 미국도 대륙이지.

대륙의 일은 대륙이 돕는다……. 거 괜찮은 생각이네.

대륙을 가진 이의 생각과 조그만 땅덩어리를 가진 이의 생각은 달라도 많이 다르지.

저우샹이 고개를 끄덕이자 블록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대륙이 발전해야 기업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도 맞는 말입니다.”

“대륙적인 마인드로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그럼요. 그럼요. 대륙적인 마인드. 하하하.”

“네.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중국은 면적에 비해 생산량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어? 이 사람이 감히.

험, 험.

저우샹은 미간을 찡그리며 헛기침을 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뭐 맞는 말이지.

대약진운동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데.

지금까지 기계화 대신 남아도는 인민을 투입해서 농업을 운영했으니 생산성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선진 투자가 이루어지면 기술도 전수되는 건 당연한 일.

저우샹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과거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미래가 중요하지요.”

“맞습니다. 지금 1헥타르당 대두 재배량이 2톤에 불과하지만, 저희가 투자하고 기술을 도입하면 4톤입니다. 두 배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확실히 우리 성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이긴 하네요. 흠, 흠.”

“그럼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성이 될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대두는 중국인의 식단에서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곡물입니다. 이는 중국 발전의 주춧돌을 세우는 일입니다.”

“흠, 흠. 그렇군요.”

맞아. 헤이룽장성을 다른 성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여긴 헤이룽장성이란 말이야.

헤이룽장성은 중국 전체 대두 재배면적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대두 재배지다.

하지만 옥수수에 비해 가격이 절반에도 못 미치기에 점차 재배면적이 줄어드는 상황.

이에 중앙정부로부터 대두 재배면적을 늘리라는 지침을 받았다.

돈이 안 되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늘리라는 거야?

저우샹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 찾아온 투자자가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무조건 투자를 받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

블록이 저우샹의 표정을 읽고 서류 한 장을 밀었다.

“성장님. 여기 계약서입니다.”

쩝.

입맛을 다시며 계약서를 보았다.

뭐라고 쓴 거야?

“이건 변호사가 알아서 처리…….”

“아니, 이건 저희끼리 개인적으로 주고받는 겁니다. 헤이룽장성과 기업 간의 계약서는 따로 존재합니다.”

응?

개인적인?

“여기.”

블록이 계약서 하단에 있는 조항을 가리켰다.

순이익의 1%.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나라의 계좌 번호.

아.

하하하하하하.

“역시 미 대륙에 있는 분이라 세심하군요.”

“일이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익을 전부 남의 주머니에 넣어 줄 수는 없으니까요.”

“남의 주머니요?”

“여기.”

블록이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지방 정부를 남의 주머니에 비유했다.

하하하하.

그렇지. 여긴 내 주머니가 아니지.

“자, 그럼 어떤 투자를 하시려는지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해 볼까요?”

“제가 이미 예약을 해놨습니다.”

“아이고, 정말 미 대륙의 세심한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

저우샹과 블록은 밤이 늦도록 술과 여자에 취했다.

그리고 저우샹이 여자를 데리고 호텔로 올라가자 핸드폰을 들었다.

띠리리링.

“보스. 블록입니다.”

-일이 잘 됐나 보네.

“헤이장룽성으로 변호사 두 팀 보내주세요.”

-오케이.

“전 후난성으로 출발합니다.”

-좋아 싹 쓸어버려.

부글 부글 부글.

점점 끓어 오른다.

***

미국 카킬 본사.

CEO 그렉 파이는 카킬아시아태평양지부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ADM이 중국 대두 생산, 가공, 저장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

왜 갑자기 중국에 눈독을 들이는 걸까?

그럴 수는 있다.

미국에선 더는 카킬로 인해 대두로 재미를 보지 못하니까 중국으로 눈을 돌릴 수는 있다.

아직 중국은 곡물 메이저가 진출을 망설이는 곳이니까.

저 공산주의 놈들은 검증이 안 됐다.

단지 카킬이 주는 곡물을 받아먹기에는 딱 좋은 나라.

그래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해외 경작지를 확보하고 생산하는 목적은 남아도는 잉여 곡물을 다른 나라로 수출을 해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인데.

굳이 중국에서 경작지를 사들인다?

전 세계를 따져봤을 때.

한 해 인류가 소비하는 곡물은 1억 9200만 톤.

한 해 인류가 생산하는 곡물은 1억 9000만 톤.

얼추 맞아떨어지게 만들어 놨다.

4대 곡물 메이저는 이 양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생산량을 맞추었다.

인공위성을 동원하여 흉작과 풍작을 살피고 비축분을 활용해 곡물의 이동을 통제했다.

흉작인 나라엔 가격을 올리고 풍작인 나라엔 수출량을 줄인다.

근데 중국?

어차피 중국은 대두 자급률이 30%에도 못 미치고 있다.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차라리 미국 대두를 수출할 생각은 안 하고 중국 기업을 인수해 교통정리를 해 주다니.

설마 중국과 관계를 돈독히 해서 카킬의 물량 중 일부를 ADM으로 대치하려는 건가?

아니야, 그건 서로의 약속을 저버리는 건데.

추가 물량이면 모를까 기존 물량을 깎아내리는 건 싸우자는 소리지.

중국이 아무리 좋은 시장이라 해도 카킬과 싸울 만큼은 아니야.

지금까지 잘 먹고 잘살았는데 갑자기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럼 도대체 왜 중국이냐고?

그렉 파이에게는 이럴 때 해답을 주는 친구가 있다.

비서를 호출하는 버튼을 눌렀다.

“마우오 좀 연결해 주세요.”

-네.

마우오. 카킬의 아시아 태평양 회장.

-그렉, 무슨 일인가? 나를 다 찾고.

“하하하. 그냥 목소리 좀 듣고 싶어서.”

-아이고, 그걸 내가 믿으라고? 어서 얘기해 봐. 자네가 나한테 전화할 때는 항상 문제가 있었어.

“하하하. 그런가. 그게. ADM이 중국 대두에 손을 대는 것 같아서. 뭐 아는 거 없나 하고 연락했어. 혹시 중국에서 이상한 분위기 눈치챈 거 있어?”

-아, 그거라면 우리가 보고서를 작성해 보냈는데.

“보았어. 이거 말고 또 다른 분위기는 없나 해서.”

-그래, 음. 근데 말이야. 최근 정보에 의하면 그냥 흘리기에는 모호한 게 있긴 해. 혹시 수에즈라는 프랑스 회사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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