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85화 (185/477)

제185화 그렇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겠어?(1)

AAG 빌딩 66층.

재준의 연락을 받고 팀원이 전부 모였다.

박민수와 강호석, 블록도 중국에서 돌아왔다.

모두 같은 마음이겠지만 특히 박민수는 자신들이 부재 시에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접하고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차라리 안 보는 게 낫지.

어유, 임재준이 죽는 걸 실제로 본 사람들은 어땠을까?

끔찍하다. 끔찍해.

아마 나였으면…….

생각만 해도 팔다리에 힘이 빠졌다.

페렐라가 위서스틴을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긴급회의라니. 보스 또 사고 친 거 아냐?”

재준이 백악관에 방문하더니 나오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큭큭큭, 재미난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워서스틴, 그 입 좀 다물어. 지금까지 겪은 일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할 판인데.”

“설마 이보다 더 크게 사고 칠 일이 있을까?”

“모르지, 점점 사고의 최대치도 늘어나고 있으니까.”

윌켄은 페렐라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모두 다 같은 생각이겠지만 윌켄은 지금 평소에 믿지도 않는 하늘에 대고 기도까지 드렸다.

이번만은 정상적인 인수 합병 아니면 채권 발행을 한다든가 그래, 많이 봐줘서 최대 공매도 같은 일이기를 바랐다.

좋은 경영인은 어떤 사람인가.

재정 관리를 강화하고 조직 운영을 통제하며 마케팅을 활성화해서 기업의 내재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훌륭한 경영인의 표상이다.

내재가치.

기업 안을 단단히 만드는 일.

그런데 어째서 보스는 외부에 있는 먹이를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서 내재가치를 키우냔 말이다.

근데 또 그걸로 기업의 가치를 족히 10,000배는 늘려 놓았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제는 좀 편하게 사는 것도 재준을 위해서 바람직한 것 같은데.

벌컥.

헉!

재준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혔다.

“자, 자, 다들 모여봅시다.”

불평은 있어도 프로답게 행동은 빠르다.

재준이 팀원을 죽 둘러보고는,

“카킬을 인수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지금 보스가 뭐라고 지껄인 거지?

카킬이라고 한 것 같은데.

내가 알고 있는 그 카킬 말고 다른 카킬이 있나?

있을 수 있지.

카킬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설마 미국에 한 명뿐이겠어?

“실리콘밸리에 있는 건가요?”

페렐라가 경쾌하게 물었다.

“뭐야? 페렐라 그새 기억력이 감퇴한 거야? 카킬이 왜 실리콘밸리에 있어. 미니애폴리스에 있지. 지금 CEO가 그렉 파이잖아.”

페렐라가 재준을 그냥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니까 지금 말한 카킬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카킬이란 말이지.

15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일년 매출이 1,300억 달러가 넘는 비상장 회사 미국 내 2위인 그 카킬.

부글부글.

페렐라의 속이 끓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왜? 왜 카킬입니까? 카킬이 무슨 동네의 있는 야채 가게도 아니고 자그마치 미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인데. 아아아아, 그리고 거긴 비상장 회사라 인수도 안 돼요. 무슨 수로 인수를 합니까? 네?”

얘, 왜 이래?

“아니, 페렐라. 비상장이면 주식이 없나? 시장에 안 나왔을 뿐인데. 그리고 카킬 가문 30명한테 골고루 나누어져 있으니 수거하기도 얼마나 편한데.”

아아아아아아.

“그게 말처럼 ‘돈 줄 테니 나에게 파시오’ 하면 ‘여깄소’ 하고 주는 겁니까? 또 얼마나 머리를 써서 카킬을 잔뜩 코너에 몰아넣고 두들겨 팬 다음에 억지로 빼앗을 거잖아요.”

“아니야. 아니, 거, 말을 이상하게 하네. 그럼 내가 지금까지 억지로 뺏었단 말이야?”

“그럼 아닙니까? 뱅크 오브 에이스, 정상적으로 인수한 겁니까?”

“아니, 그건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인해…….”

“그랜드월 주식 매도는요.”

“그거야…….”

“JP스탠리, 핸리브라더스, 살로먼스미스 골든패러슈트로 뒤통수쳤지요.”

“거 참 과거 얘기를 그렇게 자세히…….”

“사라크방크, 나쇼날파리.”

“그건 아니다. 그건 정상적인 인수 아닌가?”

“수에즈투자사가 정상적이라고요? 은행이 투자사란 명목으로 대단위 농장을 소유하는 건 엄연히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되는 겁니다.”

“아니, 거기 프랑스라……. 잘 보면 프랑스는 금산분리가 불법이 아닐 수 있다니까.”

“아르헨티나.”

“말을 안 들으니까.”

“ABC암로.”

“아니 왜 상장 사기 카르텔은 그냥 넘어가는 거지?”

“클레이스.”

“그만하자. 페렐라.”

“사바타, 그리스.”

“너 왜 그래? 그리스는 입 밖에 내면 안 돼.”

“로운스타.”

“그것도 진짜 정상적인 거래……. 아니구나.”

“도드프랭크법.”

“그것도 입 밖에 내면 안 돼.”

“그리고 자살?”

“자살?”

“이밖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은 저희도 모르지만 분명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 주고받아 오진 않았지요?”

“그, 금융이란 말이야.”

큭큭큭큭.

“페렐라가 말하고 보니 많이 해 먹었다.”

“워서스틴 너까지 왜 그래?”

“아니에요. 저는 보스 편입니다. 이번엔 카킬. 기대하고 있습니다. 잔뜩.”

후.

윌켄이 드디어 나섰다.

재준을 말릴 생각은 없지만, 페렐라는 진정시켜야 했다.

“보스, 방법은 있습니까?”

“카킬이 당황하게 만들어야겠죠.”

저 봐, 또 상대를 괴롭히잖아.

페렐라가 재준을 노려봤다.

퀴니코도 재준을 노려봤다.

“험, 험. 거, 누구누구 눈 튀어나오겠네.”

윌켄이 페렐라와 퀴니코에게 진정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말을 이었다.

“어떻게 당황하게 만들 겁니까?”

“곡물 가격을 떨어뜨릴 겁니다. 그 전에 CBOT(시카고상품거래소)에 풋을 걸어서 약간의 이득도 취하고.”

“곡물 가격을 떨어뜨린다면 저희가 직접 농산물을 사자는 말입니까? 그건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가격이 떨어지면 저희도 손해가 큽니다.”

“우리가 직접 사는 건 아니죠. 우리 우군을 만들어야죠.”

음.

윌켄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군이라면 아르헨티나와 프랑스를 말하는 거군요.”

“맞아요. ABCD중 ABD를 우리 편으로 만듭시다.”

세계 곡물유통시장에서 장악한 4개의 기업을 ABCD라 부른다.

A는 미국 아처대니얼스마들랜드(Archer Daniels Madland).

B는 아르헨티나 벙기(Bungi).

C는 미국 카킬(Carkill).

D는 프랑스 로이드레퓌스(Lois Dreyfus).

이 중 1등은 당연히 카킬.

2등이 아처대니얼스마들랜드인데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정부는 이미 투마로우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니 말만 잘하면 협력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아처대니얼스마들랜드(A)는 본사가 시카고에 있는데 민주당과 사이가 아주 안 좋다.

공화당 라이레놀과 잘 엮으면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

아무리 1등이라도 3개가 연합을 해서 공격하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혹시 굳이 카킬을 인수하기보단 3개 업체가 단합해서 중국의 식량 줄을 움켜쥐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준이 카킬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카킬이 대놓고 친중 세력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친중이 아니다.

WTO에 중국이 가입할 수 있도록 로비를 벌인 것도 카킬이었고 심지어 쿠바와 브라질에도 로비를 벌여 교역을 할 정도였다.

곡물 수출을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는 게 카킬이다.

이게 돈을 벌려는 목적보다는 시장을 장악하려는 목적이 더 강하다.

그래야 정부도 감히 손을 못 대니까.

“윌켄은 아처대니얼스마들랜드(A)를 맡아서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세요.”

“알겠습니다. 안면도 있고 예전 일로 죽일 듯이 싫어하는 사이니 이야기는 잘 될 겁니다. 근데 ADM이 우릴 도와주면 보상은 무엇입니까?”

“그건 ADM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무주공산이 된 시장을 어떻게 장악하느냐인데. 능력껏 발휘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페렐라와 위서스틴은 아르헨티나로 가서 벙기(B)와 손을 잡도록 해.”

“키칠로와 연계해서 접촉해 보겠습니다.”

“그럼 잘 될 거고, 퀴니코는 CBOT(시카고상품거래소)를 담당해.”

“신호만 주세요. 바로 배팅할 테니까.”

“오케이. 블록은 중국 식량을 코프코(중국 최대 국영 식품회사)와 시노그레인(중국 국영 식량비축관리그룹)에 대해 조사해.”

“알겠습니다. 사람을 좀 많이 풀어야겠네요.”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아. 되도록 자세히. 그리고 펠그리니 곡물 가격 예측해줘.”

“맡겨주세요.”

“박 형과 강 이사님은 윌켄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곡물 엘리베이터에 투자해 주세요.”

“곡물 엘리베이터요?”

“네, 곡물 산지에 가면 대형 곡물 창고가 있어요. 그걸 곡물 엘리베이터라 불러요. 대략 한 개 만드는데 200만 달러밖에 안 하니까. 현지 농가와 조율해서 되도록 많이. 우린 유럽 곡물을 미국에 취급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갑자기 뜬금없이 자기를 부르자 서형길이 의아한 눈으로 재준을 쳐다봤다.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일이 있나?

영어도 못 하는데.

“미키랑 도날드 트롤링 좀 만나시죠?”

“네? 제가요?”

“내가 볼 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제가 어떻게.”

“할 말은 한마디면 됩니다.”

“그게 뭔데요?”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대선 후보 출마해서 현 대통령을 신랄하게 까라.”

도날드 트롤링은 민주당과 공화당을 밥 먹듯이 왔다 갔다 했다.

“그게 답니까?”

“네, 아마 좋아할 겁니다.”

서형길은 ‘과연 그럴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는데 과연 자신과 트롤링이 어울릴까 싶었다.

언론에 워낙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라 엔터테인먼트 하긴 했다.

말 잘하고 유머 있고 욕심 많고.

나랑 어울리나?

나도 말 잘하고 유머 있지만 욕심은 글쎄…….

“난 프랑스로 가서 로이드레퓌스를 만나볼게요.”

자! 밀어붙이자.

이제 벌이는 일마다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일대일 싸움이 아니니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었다.

뭉친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엉킨 실을 죽죽 늘려 멀리 떨어뜨린 후 섞인 부분을 잘 푸는 것이다.

일단 곡물 카르텔을 죽죽 늘려서 카킬만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

아처대니얼스마들랜드(ADM).

“어서 와요. 윌켄.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야?”

“15년은 넘었지 아마.”

“30대에 만나서 50이 다 되어 다시 보네. 세월 참 빨라. 이리 앉아. 이번에 좋은 커피가 들어와서 테스트 중인데. 맛있는 커피 줄 테니 어디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 좀 들려줘.”

ADM의 CEO 리카르도 페리노는 윌켄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둘은 윌켄이 정크 본드의 왕이라 불리던 시절 자주 만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지금 ADM가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 바이오 디젤 회사 ‘바이오퓨엘’이 바로 윌켄이 인수해 준 회사다.

그 후로 몇 건의 LBO에서도 페리노는 자금을 투자해 큰 수익을 벌었었다.

“바이오퓨엘이 이번에 큰 성과를 냈던데 조만간 상품화할 수 있나?”

“응, 이제야 결실을 보는 거지.”

“자네도 독해. 진작에 접었어야 하는 사업인데.”

“무슨 소리. 내가 곡물 유통을 하며 느낀 건데. 이건 반드시 되는 사업이라고. 버려지는 곡물 부산물로 에너지를 만드는 건데. 그야말로 쓰레기를 석유로 만들어 파는 거라니까.”

“하하하. 여전해. 그놈의 에너지 타령은.”

“언제까지 옥수수만 팔 수는 없잖아.”

“바이오 디젤 말고 또 하는 사업은 있어?”

“대체 육류와 탄소 포집 기술에 투자하고 있네.”

허, 여전하네. 남들 안 하는 거 정말 좋아해.

윌켄은 말 없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페리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근데 어쩐 일인가? 신문에서 보니 자네 투마로우에 있는 것 같던데. 우리 회사에 투자할 리는 없고.”

“투자, 음……. 투자라고 할 수도 있지.”

“그래?”

“곡물 엘리베이터를 짓고 싶은데. 내가 아는 게 없어.”

“곡물 엘리베이터? 은행이 왜 곡물 창고를 짓는다는 거야? 설마 이쪽으로 진출하려는 건 아니지?”

음.

윌켄이 약간의 뜸을 들이고 나서.

“카킬을 인수하려고.”

“뭐? 자네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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