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84화 (184/477)

제184화 돈이 많으면 무조건 나쁜 놈인가(12)

백악관.

대통령이 머리를 감싸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비서실장이 다가와 보고서 한 장을 내밀었다.

“중국이 더는 위안화 절하를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투마로우도 더는 위안화를 매집하지 않는 분위기고요.”

대통령은 보고서를 한 번 죽 흩어보고는,

“민주당은 종합무역법 수정안 다 되었습니까? 이제 와서 쓸모는 없지만.”

“아직입니다. 공화당과 협의가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이래서야 어디 정책에 필요한 법안을 그때그때 도입할 수 있을까?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갑갑한 사람들이야.

중국의 위안화 절하에 대해서는 둘 다 울분을 토하며 환율 조작국 지정에 찬성했다.

그런데 막상 기존 법을 수정하려고 하자 티격태격 싸웠다.

1988년 종합무역법이 제정되었다.

여기에 환율 조작국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기존 종합무역법 요건으로는 중국을 압박할 수 없었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해 압박하려면 새로운 법안이 필요했다.

어이없게도 지금 대통령이 말하는 새로운 종합무역법인 ‘교역촉진법’은 2016년이나 되어야 입법된다.

자그마치 법하나 만드는 데 민주당과 공화당은 4년이나 싸웠다.

재준이 말한 게 하나도 틀린 게 없다니까.

도대체 제때제때 법안이 통과되는 꼴을 못 봐요.

“차라리 투마로우에게 부탁하는 편이 훨씬 낫겠어. 임재준은 언제 도착합니까?”

비서실장은 시계를 확인했다.

“곧 도착할 것입니다.”

“참 나,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정부가 일개 은행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니.”

대통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비서실장이 작게 말했다.

“전임 대통령도 투마로우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너무 자책하진 마십시오.”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삐딱하게 쳐다봤다.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건가?

대통령이 줄줄이 투마로우에게 엮여서 가는 게?

이러다 연준처럼 시장에 대한 실권을 빼앗길 텐데?

아, 머리야.

연준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기도 정부 맘대로 하지 못하는 곳 중 하나 아닌가.

연방준비제도는 1907년 대공항 위기를 JP스탠리의 도움으로 극복하며 정부가 시장의 지배권을 넘겨주면서 탄생했다.

그 이후로 화폐는 연준이 찍고 동전은 정부가 찍었다.

그렇다고 화폐를 찍어내서 얻은 이익을 연준이 다 가져가는 건 아니고, 연준 지분을 가진 은행들이 6%를 나누어 가지고 94%는 재무부가 가져간다.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권력이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가 원할 때 화폐를 찍는 게 아니라 연준이 원할 때 화폐를 찍는 거니까.

이게 바로 화폐 통제권을 가지고 있단 의미.

정부는 시장을 지배하고 싶어도 원천 봉쇄당하는 꼴이다.

2008년 금융위기부터 미국 정부는 돈에 목이 마른 상태였다.

일단 채무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중국과 대미 무역 적자가 너무 컸다.

과거 일본이 자신들이 G2라고 미국에 큰소리치다 된통 당해서 잃어버린 10년이 20년 되고 30년이 넘어가고 있다.

이제 곧 40년 된다.

중국도 저 꼴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장을 지배해야 하는데, 연준이 저렇게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대통령이 되면 왜 머리가 빠지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 듯싶었다.

재임 선거하지 말까?

대통령이 재임 선거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때.

똑똑.

“투마로우 임재준 도착했습니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나가서 재준을 데리고 들어왔다.

심드렁한 표정의 재준을 대통령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뵙네요.”

서로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자 커피가 나왔다.

재준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국 때문에 보자고 하신 거죠?”

“아, 아, 네. 그렇습니다. 요즘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해서 골치가 아픕니다.”

음.

재준은 ‘뭔가 빠진 게 없습니까’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다예요?”

“네, 그렇습니다. 뭐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도드프랭크법은 입을 싹 닦으시네요.”

네?

대통령은 일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버피세는 어떻고요?”

“그건…….”

옆에서 지켜보던 비서실장이 움찔했다.

이런 말을 대통령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미래는 아무 의미가 없는데. 아시면서 어물쩍 넘어가려고요?”

후.

“당분간은 두 법안은 입법하기 힘들 겁니다.”

“아, 그 말은 다음 대통령은 할 수도 있다. 그 말씀이죠?”

“솔직히 언젠가는 대두될 문제입니다. 잠시 뒤로 밀린 것뿐이고. 제가 나서지 않아도 다음 대통령은 분명 해야 할 법입니다.”

“거 참. 이상하네. 돈이 많으면 무조건 나쁜 놈인가?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님은 ‘정치인은 무조건 나쁜 놈이다’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그건…….”

“솔직히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전에는 월가에 있으면 무조건 나쁜 놈이다. 이제 분위기는 정치인이면 무조건 나쁜 놈이다. 이게 왜 이렇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대통령의 머리에 블러드 페니가 떠오른 건 당연했다.

그날, 블러드 페니가 죽던 날.

국민은 침통했으며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건 정부라고 낙인을 찍었다.

아직도 경찰 중 누군가 발포했다고 믿는 이도 많았다.

평소에 시위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시위에 관한 내용을 검색했고 버피세가 단지 미국 빚을 갚는 데 쓰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또한,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세금 혜택이 왜 1% 부자들에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정치인도 그 1%에 포함된다는 블러드 페니의 폭로에 다들 정부에 치를 떨었다.

“압니다. 누구 때문인지.”

“그런데도 아직도 부자들을 옥죄는 법안에 집착하시는 것 같은데. 아닙니까?”

“집착합니다. 나를 포함해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건데. 부자라고 불법을 저지르거나 탈세를 한다면 당연히 정부가 단죄를 해야죠. 그게 정부의 일이고요. 하지만 돈이 많다는 이유로 내 돈을 아무런 이유 없이 내놓아야 한다면 전 그렇게는 못 하죠. 아니, 지금껏 보아서 아시겠지만, 그딴 식으로 나오면 제 방식으로 싸울 거예요.”

대통령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참모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대통령님, 절대 임재준을 적으로 만들지 마세요. 벌써 여러 나라를 곤란에 빠뜨린 인물입니다.’

그래 내가 참자.

“원하는 게 뭡니까?”

“원하는 거 없다니까요. 그냥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월가를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겁니다. 정 월가를 다스리고 싶다면 뭐, 연준에 힘을 실어 주세요. 정부가 나서지 말고. 그게 서로에게 공평한 일이니까.”

후.

“알겠습니다.”

대통령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통령이 되고 이제 4년이 거의 다 지나갔다.

곧 재임 선거였다.

가장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윌가의 개혁은 물 건너갔고, 의료보험 개혁을 밀어붙이기도 버거운데 중국의 위안화 문제가 불거졌다.

하지만 중국을 몰아붙이기에는 이미 의회가 격투장으로 변해서 의회에 기대기에는 무리였다.

그런데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빙글 웃으며 말한다.

“도와 드릴까요?”

미합중국 대통령이 선뜻 손을 잡기에는 너무도 쪽팔린 상황.

하지만 수가 없다.

“도와주십시오.”

쪽팔린 게 문젠가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최소한 재임 선거에서 이기고 다시 4년의 시간을 벌어야 다음 수를 생각할 수 있었다.

일단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준다.

대통령은 재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중국을 어떻게든 해주면 꼭 보답하겠습니다.”

“에이, 정치인의 말을 어떻게 믿어요?”

“그럼.”

“계약서를 쓰셔야죠. 월가 뱅커는 서류 없이는 일을 진행하지 않는 거 다 아시면서.”

“어떤 걸 원하십니까?”

“카킬.”

“뭐라고요?”

“카킬을 인수하겠습니다. 정부는 모른 척해 주시면 됩니다. 음, 이게 중국을 죽이는 길이거든요. 중국으로 가는 식량의 이동을 바짝 말릴 수 있는데. 어떠십니까?”

“투마로우가 카킬을 소유하면…….”

재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왜, 두려우십니까?”

카킬, 농수산계 업계의 최대의 생산자이며 최고의 빌런이다.

갑질을 논하자면 이보다 센 놈은 러시아 푸 머시기 밖에 없을 정도다.

아니, 푸 머시기 보다 셀지도 모른다.

우리가 먹는 밀, 옥수수, 이것들을 키우는 비료 거기다 소, 돼지, 닭, 그리고 이것들을 키우는 사료, 아,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냥 우리가 먹는 음식의 절반은 카킬이 쥐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카킬이 제시하는 값을 주고 음식을 먹고 있다.

만약 카킬이 사라진다면 우린 지금 절반의 가격으로 식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재준의 말에 뭐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말은 할 수 없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카킬은 투마로우만큼 크고 위험한 놈이다.

고용인원 15만 명이 넘고 매출만 1,000억 달러가 넘는다.

뭐, 투마로우와 카킬이 한판 붙으면 싱겁게 끝날 수도 있다.

왜? 둘 다 상장이 안 돼 있거든.

둘 다 으르렁거릴 뿐 매집할 주식이 없다.

그러니까 그냥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게 다다.

그러면 싸움은 물밑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대통령은 재준을 노려봤다.

“꼭 카킬이어야 합니까?”

“그래야 중국을 잡죠. 내가 중국한테 가서 ‘지금부터 미국 말을 잘 들어라’ 하면 중국이 ‘네’ 하고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뭔가 쥐고 협박을 해야 통하는데, 중국이 돈이 부족하겠습니까, 땅이 부족하겠습니까. 의식주 중 하나는 틀어쥐어야죠.”

“중국이라면 자급자족을 하려고 시도하지 않겠습니까?”

“네? 중국을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시는 거예요? 옆집은 동쪽으로 가서 떼돈을 버는데 나는 서쪽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중국인은 없습니다.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동쪽으로 가서 궁전을 짓고 사는 꿈을 꾸는 게 중국인이에요. 그 넓은 땅을 놔두고 굳이 8억이나 되는 인구가 동쪽 해안가에 몰려 있잖아요. 절대 자급자족 같은 거 못하는 나라가 중국이에요.”

대통령의 고심은 깊어졌다.

카킬을 인수하는 걸 정부가 모른 척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업과 기업이 인수 합병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투마로우와 카킬이 합쳐진다면 미국의 힘은 막대해질 것이다.

하지만 투마로우라는 게 문제다.

여기서 금산분리 이런 걸 따지는 게 아니다.

저 프랑스 농산물 기업을 대타로 내세워 인수하면 끝이니까.

과연 인수 후에도 투마로우를 통제할 수 있을까?

그럼 나도 키를 하나는 쥐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투마로우 지분을 주십시오.”

지분?

“그러시죠.”

네?

의외로 대답이 쉽게 나오자 오히려 대통령이 당황했다.

“근데 누가 소유할 겁니까?”

“그건…….”

“주당 얼마인지는 아시죠?”

“그것도…….”

“모르시면 재무부에게 물어보시든 연준에게 물어보세요. 생각만큼 만만한 가격은 아닐 거예요.”

“알겠습니다. 알아보고 금액을 제시하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카킬을 인수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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