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돈이 많으면 무조건 나쁜 놈인가(11)
월가의 황소 조각상 앞.
마이클 모어가 마이크를 들고 침통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우리의 영웅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FBI까지 동원된 수사팀은 아직까지 그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마이클 모어는 평소에 시위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며 말했다.
“블러드 페니. 그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을까요? 그의 마지막 현장을 본 의사들은 살아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흘러내린 피의 양이 이미 치사량을 훨씬 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의료 헬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마이클 모어는 이미 주코티 공원에 다다랐다.
“아마 어느 병원에 도착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숨은 끊어진 상태였을 겁니다. 저희의 추측은 그렇습니다. 그가 헬기에서 우리가 모르는 유언을 남겼고. 그리고 그들이 그 유언대로 블러드 페니를 처리했을 거라고.”
긴 조문 행렬이 늘어진 공원 한쪽 구석에는 블러드 페니가 사용하던 메가폰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작은 메가폰이 있습니다. 그때의 현장을 너무나 잘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메가폰에서 블러드 페니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진정 희생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 있냐고.”
마이클 모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턱 끝까지 올라온 울음을 삼켰다.
“그가 택한 방법은 처음엔 친근했으며 마지막엔 과격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이미 블러드 페니라는 조직을 만들어 정부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 시작이 모든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합니다. 그의 소원대로 말이죠.”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흩고 카메라는 거꾸로 뒤집어 있는 메가폰을 클로즈업했다.
메카폰 주변엔 페니, 작은 동전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카메라는 동전을 던지고 눈물을 뿌리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잡았다.
마이클 모어가 몇 사람과 인터뷰를 했다.
-페니는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그는 죽지 않았어요. 불사신이거든요. 흑, 흑, 페니 돌아와요. 아직 우리는 끝나지 않았잖아요. 페니. 제발.
-그때를 회상하면 화가 나 미칠 것 같아요. 내 자신이 너무 밉습니다. 처음에 페니가 버피세를 반대할 때 내가 소리쳤거든요. 꺼지라고. 바보같이. 정말 나는……. 전 이제 페니처럼 행동할 겁니다. 페니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미친 어떤 개새끼가 총을 쏘았는지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때 분명히 경찰이 총을 뽑았어요. 퍽, 마더 퍽. 이거 분명하게 해야 할 겁니다. 어제 발표 보니까. 경찰에서 발포한 적이 없다는데. 퍽 퍽. 믿지 않아요. 우린 또 다른 대책을 세울 겁니다. 정부는 우리에게 아니 하늘에 있는 페니에게 확실한 걸 보여줘야 할 겁니다.
-이런 일은 미국 역사상 너무 많습니다. 링컨이 그랬고 케네디가 그랬습니다. 존 레논이 그랬고 마틴 루터 킹이 그랬습니다. 페니도 그들에게 당한 겁니다. 야, 썬 오브 비치. 써킹 독 홀. CIA, 내가 모를 줄 아냐? 니들이 죽인 거 다 안다. 퍽 더 머더 퍽커.
-아, 그리울 겁니다. 마지막 그의 연설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가 없는 세상이 이렇게 허전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무얼 해야 할까요. 오늘도 아침에 빵과 우유를 먹었습니다. 그때를 잊지 않기 위해서죠. 우리는 절대 그를 잊으면 안 됩니다. 그는 미국을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제가 지금 말합니다. 정부는 당장 페니를 죽인 살인마를 찾아야 합니다. 진짜 폭동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말이죠. 지금도, 흑, 흑, 흑, 내 눈물이 마르질 않아요. 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요.
카메라는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마지막 연설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는 국가를 전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과연 블러드 페니는 무정부주의자였을까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아니라고 합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에서 말해 보지만, 블러드 페니가 살아 있다면, 그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그가 다시 나라를 전복하자고 할까요?”
카메라가 멀리서 다가오는 리무진 한 대를 담았다.
차는 공원 앞에 멈췄고 안에서 재준이 내려서 공원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저기 투마로우 오너 임재준이 도착했습니다.”
걸어오는 재준은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메가폰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카메라는 재준을 따라 움직였고 기자는 말을 이었다.
“임재준이 블러드 페니를 추모하기 위해 메가폰 앞으로 다가갑니다.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재준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마이클 모어를 멍하니 쳐다봤다.
생각은 무슨 생각.
지금 내가 나를 추모하게 생겼는데.
재준의 손가락에서 동전이 튕겨 나가고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들 사이에 떨어졌다.
그리고 카메라를 응시한 뒤 몸을 돌려 리무진으로 돌아갔다.
카메라가 멀어지는 재준은 잡고 마이클 모어가 말했다.
“임재준과 블러드 페니. 전혀 닮은 구석이 없지만, 왠지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
AAG 빌딩 66층.
“와! 마지막 멘트 정말 오졌다.”
정말, 인간이냐.
퀴니코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도대체 보스는 머리에 무얼 채우고 사는지 궁금해졌다.
자그마치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직접 계획한 본인이나 아무렇지 않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지켜봤을 동료들에게는 심장을 꺼냈다 집어넣는 정도의 사건이었다는 걸 왜 모를까.
“아니 이게 지금 농담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난 퀴니코가 재준을 다그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준은 자신이 총에 맞는 순간 가슴부터 뒤로 쑥 빠지며 날아올라 땅에 떨어져 푸드덕 경련을 일으키는 장면을 보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우와! 우와!
“이야, 봤지, 연기 진짜 실감 나게 잘했어.”
“정말 그래요. 도련님, 이 기회에 연기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떠세요. 까메오 정도는 섭외가 가능할 것 같은데.”
서형길이 TV 속 재준을 보며 감탄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럴까? 가능하면 하고 싶은데. 도날드 트롤링도 한 걸 내가 못할 리가 없잖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재준에게,
보스!
모두 빽 하고 비명을 질렀다.
“깜짝이야. 이 사람들이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웬 목청이 이렇게 좋아? 일만 잘 해결되면 됐지. 그리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난 분명히 내 계획을 알리려 했어. 그런데 우리 이사장님이 영어가 서툰 걸 어쩌란 말야. 일부러 놀라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니까.”
후.
보스, 제발.
그래, 이럴 땐 일을 해야지.
“그나저나, 윌켄, 버피세는 물 건너갔죠?”
“정부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수렴한다고 합니다. 당분간 의회 상정은 힘들 겁니다. ‘블러드 페니’라는 조직이 모든 입법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만약 입법을 시도한 의원이 있다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이야, 이러면 내가 전생이 아니라 이생에서 나라를 구한 거네. 역시 열일 했다. 열일 했어.”
절레절레.
모두 이제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국은 어때? 위안화는 계속 절하할 것 같아요?”
“미국과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위안화도 당분간 현 상태를 유지할 것 같고요.”
“그럼, 이제 매입은 중지하고 NDF 청산일에 돈만 받으면 되겠네.”
“그런데 중국 은행들이 달러를 내줘야 하니까 인민은행은 달러로 환전되는 액수를 보고 움찔할 겁니다. 자신들이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은 달러가 유출되니까요.”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금융기관이 절반이 넘는다고 했죠?”
“네. 그림자 금융 쪽에서 10억 달러 이상 들어올 겁니다.”
“아쉽네.”
그림자 금융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을 가리킨다고 전에 얘기한 적이 있다.
은행이 파산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금자보호법으로 정부가 인당 5,000만 원까지 책임져 주는 것 빼고는 다 그림자 금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고 다는 아니고.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투자은행이 취급하는 거의 대부분의 파생 상품과 RIETs 같은 유동화기구나 MMF, CDO, MBS 등등.
중국도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정부가 중국 내에 있는 인민들의 돈을 다 관리하려고 했다가, 파산한 은행 대신 물어주는 과정에서 휘청했다.
그래서 GDP의 60% 정도를 정부가 책임지고 40%는 나 몰라라.
그러니까 40%는 ‘니들이 투자하고 싶은 곳에 투자해. 하지만 책임은 못 져’가 된 것이다.
정부가 너무한 거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영국은 GDP 대비 480%, 미국은 160%, 한국도 105% 정도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 그림자 금융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40%면 양호하네 하겠지만 이게 또 금액으로 보면 27조 위안, 한화로 4,400조 원이라 만만한 금액은 아니다.
재준은 쩝 입맛을 다셨다.
쪼잔하게 그냥 1조 정도만 먹었네.
언제 저 4,400조를 홀라당 해 먹어야 하는데.
저 돈 다 빼앗기면 전쟁 일으키려나.
“백악관은 어때요?”
“아, 백악관에서 미팅 날짜를 조율해 보자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위안화 문제가 저희 때문이라는 걸 아는 눈치던데.”
“당연히 중국이 우리 핑계를 댔겠지. 목마른 놈이 우물 찾는 거니까. 다시 요청 오면 마지못해 승낙하세요.”
계속 일 이야기로 본질을 뭉개고 있지만 모두 윌켄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다짐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흠, 흠.
윌켄도 고개를 돌려 ‘하려면 너희들이 해라’라고 답했다.
재준은 모두를 죽 둘러보고는,
“참, 전에 말했는데 도날드 트롤링 그 사업가 좀 만나야 하는데, 어때?”
라고 폭탄을 투하했다.
이제 1년 후면 중국에서 미친 돼지가 주석이 되니 이쪽도 미친 불독을 준비하는 게 맞다.
미친 돼지가 2012년 11월부터 주석이 되고 미친 불독은 2017년 1월에서야 대통령이 된다.
4년이라는 세월을 결코 얕잡아 볼 수는 없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데 미친 불독이 좀 경험이 부족한 느낌을 받았거든.
화끈하게 물어뜯지 못하고 어딘가 눈치를 보는 것 같았어.
트롤링이 제대로 트롤링을 해야 하는데.
당선부터 확실히 준비해야지.
당연히 당선될 건데 왜 준비하냐고?
좀 더 강하게 당선시켜야지.
득표는 적은데 선거인단에서 앞서며 겨우 당선되거든.
하는 일마다 민주당 눈치를 얼마나 보던지 안쓰러웠어.
그리고 트롤링이 당선 전에 월가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줘야 당선 후에 금융개혁법에 도장을 꽉 찍지.
원래보다 훨씬 더 빠르게.
아, 제일 중요한 거.
한국에 방문하면 할아버지를 좀 찾아가라고 해야 하거든.
“빨리 좀 서두릅시다.”
아.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