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82화 (182/477)

제182화 돈이 많으면 무조건 나쁜 놈인가(10)

주코티 공원.

그날이 왔다.

블러디 페니의 중대 발표 현장.

사실 주코티 공원은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공원이라고 부르는 거지, 빌딩 숲 가운데 공터라고 하는 게 더 어울렸다.

그냥 벤치가 있는 공터.

여기에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으니 얼마나 소란스럽고 어지러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재준은 단상이 된 계단 위에서 사람들을 쳐다봤다.

진짜 개판이 됐네.

처음과 다르게 지역 노숙자와 범죄자도 꽤 몰려든 상태.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민주당 상원 의원과 공화당 하원 의원들이 자진해서 공원에 머무니 당연히 경찰도 주변을 감싸고 있어 범죄 행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게 다 나의 덕이라 해야지.

모든 게 제 덕이라 여기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재준이었다.

슬쩍 하늘을 보니 맞은편 빌딩에 헬기 한 대가 준비되어 있었고 군중들 속에 블랙워터 대원들이 사복 차림으로 재준을 보호하고 있었다.

언제든 출동 준비를 마친 상태로.

그리고 각 언론사의 기자와 카메라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고 그 기자들 사이에 낀 서형길도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을 주무르며 자신감 넘치던 서형길은 어디 가고 남모르게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도련님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옆에 있던 기자가 서형길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아임 오케이.”

고개를 갸웃거린 기자를 서형길은 처량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 근심이 나만의 근심이 아니게 될 텐데. 너 괜찮겠니?’라는 뜻을 담아.

그때,

에에에에엥.

메가폰이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재준에게 향했다.

블러드 페니.

블러드 페니.

블러드 페니.

구호가 울리고 재준이 손을 들어 시위대를 진정시켰다.

“여러분 우리는 월가에게 그리고 정부에게 충분한 우리의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반성하고 있을 겁니다. 바로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입니다. 여러분.”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좌중이 조용해졌다.

“오늘 여러분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저 개인의 의견을 발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팟팟팟팟팟.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버피세는 절대 입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뭐?

잘못 들은 거지?

입법되어야 하는 거잖아.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버피세는 절대 입법되어서는 안 됩니다.”

블러드 페니,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찍어.

팟팟팟팟팟.

저벅저벅.

지책이 일어서서 재준에게 다가갔다.

“페니, 그게 무슨 소린가? 지금 와서 왜 우리의 요구를 바꾸는 것인가?”

재준은 지책을 내려다봤다.

“지책, 버피세는 아직 이릅니다. 더 많은 고통을 낳을 겁니다.”

“지금까지 우린 수도 없이 토론을 거쳤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말을 바꾸는 거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좀 더 살기 편한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버피세가 그런 세상으로 가는 길 아니었나?”

“부자들에게 돈 몇 푼 더 세금으로 거두어들인다고 우리에게 좋은 세상이 열리지 않습니다. 버피세로 거두어들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아십니까? 바로 국채를 갚기 위해 쓰인답니다. 우리가 아니라 국채를 갚기 위해. 앞으로 2년 후 다시 미국은 디폴트 위기에 처할 겁니다. 그때는 버피세가 아니라 소득세를 올리겠지요. 다시 우리의 혈세로 1%를 지키기 위해.”

팟팟팟팟팟.

플래시가 터지고.

다 죽여 버려라.

더 이상 못 참겠다.

블러디 페니를 대통령으로.

막말이 터지고.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터졌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이때, 버니 핸더슨이 나섰다.

“국채는 국민을 위한 것입니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는 겁니다. 국채가 왜 생겼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바로 여러분의 복지를 위해 국가가 빚을 진 거 아닙니까?”

에에에에에엥.

재준이 메가폰을 울리며 버니 핸더슨을 가리켰다.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단 하나라도 우리를 위한 게 있으면 말해 봐. 저 할렘가에서 다리가 곯아 잘라야 하는 지경에 놓인 이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나? 아니면 몸이 성치 않아 직장을 얻을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해 국가가 생활비를 지원해준 적이 있나?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여학생을 도운 적이 있나? 더 말할까? 이 자리에서 하루 종일 말해도 모자랄 거다.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학생.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가장. 돈이 없어 공용 화장실에서 씻고 출근하는 청년을 돌본 적이 있냐고.”

“그건 앞으로…….”

에에에에에에엥.

“앞으로? 앞으로라고? 지금 죽겠는데 무슨 앞으로. 다 필요 없어. 국가가 뭐가 필요해. 이 쓸모없는 인간들아. 여러분 지금까지 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저는 버피세나 지지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습니다. 월가의 처벌을 바라는 내 자신이 병신 같았습니다. 무력하고 처참했습니다. 나에게는 국가가 필요 없습니다. 새로운 국가를 세울 겁니다. 나에게는 국가는 쓰레기일 뿐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지책이 흥분한 목소리로 재준을 달랬다.

“안 돼. 폭력은 안 돼.”

블러드 페니의 두 눈이 붉게 타올랐다.

“왜 안 됩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당장 약속을 할 정부를 만들어 주십시오. 지금처럼 무능한 정부 말고 나에게 진정한 삶을 약속하는 정부 말입니다. 내가 진정 희생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 있는 겁니까? 여러분은 그런 나라에 살고 있는 겁니까? 나는 왜 자꾸 아닌 것 같은지 저에게 해답을 주십시오.”

와아아아아.

우리의 나라는 어디 있는가?

억압이 없는 나라는 과연 이 나라인가?

다 엎고 새로 시작하자.

시위대는 그동안 눌러 왔던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에게 시선이 고정됐다.

버니 핸더슨이 앞으로 나섰다.

“당신들 지금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버니, 비켜. 최소한 당신은 죽이고 싶지 않아.”

에에에에에에엥.

재준의 메가폰이 다시 울렸다.

시위대의 이목이 재준에게 쏠렸다.

재준은 주변을 가리키듯 메가폰을 크게 휘둘렀다.

“그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아니라 저들. 저기 경찰을 먼저 제압해서 우릴 무시하는 시선부터 없애야 합니다. 우리도 힘을 가져야 합니다.”

시위대의 시선이 주위를 둘러싼 경찰을 향했다.

와아아아아.

시위대가 움직이려는 찰나.

“모두 손 들어.”

경찰들이 일제히 총을 꺼내 들었다.

크르르르릉.

경찰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다가서는 시위대와 긴장 가득한 눈으로 시위대를 노려보는 경찰이 대치했다.

“움직이지 마. 허튼짓하면 발포한다.”

“쏠 거면 쏴. 어디 한번 쏴 보라고.”

“다시 한 번 경고한다. 더 다가오면 발포한다.”

“쏴 보란 말이야.”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순간,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모두 자신의 몸을 살폈다.

경찰은 두리번거리며 누가 발포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긴 아니다.

그럼.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푸악!

단상 위,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블러드 페니를 보았다.

풀썩.

페니!

블러드 페니는 자잘한 경련을 일으키며 입으로 울컥울컥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페니!

단발마를 지르며 지책이 달려갔다.

페니!

시위대 모두가 블러드 페니를 향해 달렸다.

이때,

두두두두두두두.

헬기 한 대가 공중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재준 위에 머물렀다. 달려들던 사람들이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소리쳤다.

비키세요.

헬기에서 우락부락한 의료진(?)이 뛰어내리더니 블러드 페니를 살피지도 않고 다짜고짜 들것에 실었다.

들것이 천천히 헬기 쪽으로 올라갔다.

이내 들것이 헬기에 실렸다.

의료진(?)이 헬기에서 내려온 줄을 잡았다.

그리고.

두두두두두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멍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내 비통에 찬 목소리들이 군중 속에서 울렸다.

안 돼. 블러드 페니.

죽으면 안 돼.

팟팟팟팟팟.

카메라의 셔터가 바쁘게 눌러졌다.

***

“아고, 아고, 삭신이야.”

“괜찮으십니까?”

“확실한 거 두 번 했다간 진짜로 죽겠어.”

“그냥 쓰러진 것뿐인데요.”

테론이 ‘엄살이 너무 심하십니다’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가슴에서 터졌잖아. 가슴을 심하게 누르던데. 그리고 이것도 좀 꺼내주세요.”

테론이 재준 어깨에 있는 피 주머니를 뺐다.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터트려 마치 입에서 핏덩이를 쏟는 것처럼 꾸미는 장치였다.

“그래도 진짜 경련을 일으킨 것 같은 연기는 일품이었습니다.”

“하하하. 카빌이 잘 지도해준 덕이지 뭐.”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방금 재준은 죽었는데.

이게 바로 ‘확실하게 작전’이었다.

“이제 보스를 찾는 이들이 설치기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스의 흔적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미국 역사의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되는 거죠.”

“근데 이 헬기는 추적이 되지 않을까?”

“우린 중간에 빌딩에 뛰어내리고 이 헬기는 멀리 사라질 겁니다.”

“확실히 확실한 작전이네.”

“우선 얼굴 페인트를 지우고 옷을 갈아입으십시오.”

“오케이.”

재준은 역사에 길이 남을 대국민 사기를 쳤다.

만약 살아서 재준이 시위대를 나왔다면 그를 찾는 인간들이 어디든 추적하기 시작했을 거고 언젠간 투마로우 임재준이란 걸 들켰을지도 모른다.

블랙워터의 테론은 흔적을 지우는 방법으로 다소 과장된 방법을 제시했다.

히어로 한번 돼 보시죠.

***

AAG 빌딩 65층.

탕!

소리와 함께 재준이 쓰러지는 장면을 본 팀원들은 일제히 벌떡 일어섰다.

보스.

이게 뭐야?

누가 쏜 거야?

이런 제길. 이럴 줄 알았다니까.

보스, 보스.

윌켄.

모두의 시선이 윌켄으로 향했다.

여기서 가장 연장자이며 재준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

하지만 윌켄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이런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 나는…….”

윌켄은 무너지듯 소파에 앉았다.

단지 멍하게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TV에선 재준을 실은 헬기가 멀어지고 있었다.

“저 헬기 뭡니까?”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병원 헬기겠지. 저 옆에 십자가 보이잖아.”

“그럼 보스는 어디로 실려 간 겁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윌켄, 어디라도 전화 걸어서 보스의 행방을 알아보세요.”

어? 어.

당황한 윌켄이 핸드폰을 들었다.

평소라면 어디로 연락을 할지 척척 떠올랐지만, 지금은 허둥댈 뿐 막상 적당한 연락처가 생각나지 않았다.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자조적인 음성에 설움이 묻어났다.

아.

다들 그 이상 윌켄을 몰아세울 수 없었다.

자신들도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페렐라와 워서스틴은 창가로 가 먼 뉴욕항을 바라보았다.

보스가 자주 보던 그 자리에서.

팽.

퀴니코는 벌써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을 휴지로 배출하고 있었다.

펠그리니는 핸드폰을 들어 블록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링.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제길, 뭐 하느라고 전화를 안 받는 거야.”

괜히 핸드폰에 화풀이를 해댔다.

벌떡.

윌켄이 일어섰다.

“뉴욕 경찰(NYPD)로 가보자. 지금 그들도 찾고 있을 거야. 어떤 단서라도 나올 거야.”

“아, 그래요. 아직 보스가 죽은 걸 확인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

모두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벌컥.

문이 열리고.

“어라, 다들 어디가?”

재준이 천 실장과 테론, 카빌이 함께 들어섰다.

보스?

이거 뭐야?

“다들 대기하라 했잖아. 어디 가는 거야?”

그게, 우리는…….

“보스, 죽은 거 아니었어요?”

“내가 왜?”

이때, 헐레벌떡 서형길이 들어섰다.

재준이 서형길을 바라봤다.

“얘기 안 전해 줬어요? 우리 계획.”

서형길이 재준을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대기하란 말을 영어로 할 줄 몰라서…….”

아, 이해됐다.

그럼…….

아, 박민수와 강호석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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