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80화 (180/477)

제180화 돈이 많으면 무조건 나쁜 놈인가(8)

전에 말했지만, NDF 거래는 환율 차익을 달러로 주고받는 것이다.

원금은 그저 거래를 위한 허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거래가 종료되기 전까지 입 다물고 있으면 이게 현물환 거래인지 선물환 거래인지는 당사자 외에는 알 수가 없다.

NDF 거래가 많아지면 겉으로 보기엔 위안화를 누군가 대량으로 매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위안화가 대량으로 빠져나가는 줄 알고 위안화를 절하한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중국이 진짜 위기의식을 가지고 덤벼들까?

중국 달러 보유액이 3조 달러에 달한다.

한화로 3,000조 원이다. 위안화로 20조 위안.

투마로우가 기껏해야 1억 달러 차익 거래를 한다고 눈이나 깜빡이긴 할까?

이건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일 뿐이다.

미국이 계속 위안화 절상하라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데 중국은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위안화 거래가 확 늘어났으니 이거 보라고 가슴을 들이밀 건수가 생긴 거다.

이건 차익 거래이니까 실제 거래액은 이보다 대략 90배는 많게 보일 뿐.

“블록.”

“네.”

“중국 내 사람들 다 동원해서 위안화가 절하할 거라고 소문을 내. 다른 나라 은행에서도 같이 덤벼들게.”

“알겠습니다. 역시 미국 자극하는 데는 시위보다는 중국 끗발이 최고죠.”

“그렇지. 그리고 지방은행과 접촉해서 NDF 거래 트고.”

“네.”

그래, 이래야 미국 중국 둘 다 빅엿을 한 입씩 물려 주지.

***

주코피 공원.

시위대는 민주당의 저 어이없는 행동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그래도 낑낑거리며 텐트를 치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우리와 같이 시위에 합류한다는데?”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행동이냐. 아니 정부랑 싸우고 있는데. 정부 편에 서 있는 민주당이 같이 싸우겠다고? 차라리 공화당이 왔다면 그러려니 하겠다.”

“내 말이. 저런다고 우리가 끼워 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망신만 당할 텐데.”

저벅저벅.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민주당을 보며 얘기 중이던 사람들에게 지책이 걸어왔다.

무리 중 하나가 지책의 말에 토를 달았다.

“어째서요?”

후후.

지책은 자잘한 미소를 입에 걸고 비웃듯이 말했다.

“저들의 활동은 기록되고 편집되어 방송에 나갈 테니까요. 망신이 아니라 칭송을 받을 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여기 생방송 카메라가 있는데요.”

자신에 찬 시위대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모든 건 방송을 보는 국민이 판단해 줄 거라 믿었는데.

지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철수했습니다. 이제 생방송은 나가지 않아요. 개인 방송 카메라 몇 대는 남아 있지만, 케이블은 전부 철수했습니다. 저들이 오면서 손을 썼겠지요.”

“설마 그런다고 모를까요?”

모르는 게 아니라 잘못 전달이 되겠지.

모르는 건 아닌데 아쉬움이 더해졌다.

“이미 통제가 시작된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수의 의견으로 치부될 것이고 주류 의견은 저들이 낼 겁니다. 그게 애초에 우리가 낸 의견이라도 말이죠.”

자조 섞인 지책의 말이었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인가.

지책은 이번에도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는 게 안타까웠다.

이번만은 끝까지 싸워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빌어먹을 정치인이 끼어들자 ‘과연 저 정치인들과 싸워서 승산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입안이 썼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지책의 옆으로 재준이 다가왔다.

“그냥, 이번에도 진 싸움 같아서.”

“하하하. 그럼 이길 거라 생각했어요?”

“네? 그럼, 당신은 이길 마음이 없었나요?”

“없지는 않은데. 이겨봐야 쓸모없거든요.”

“쓸모가 없다고?”

“네, 또 다른 싸움이 기다릴 거니까요. 두 번째 싸움은 더 고약하죠. 승리한 전리품을 누가 가져가는가. 당연히 이긴 자의 것인데 이걸 놓고 또 옥신각신하겠죠. 이건 목숨을 건 경기 후에 상으로 쓰레기 더미를 받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근데 아시죠? 그 쓰레기 더미를 받고도 또 이기고 싶은 감정이 든다는 거.”

“하하하, 그럼 이번 싸움은 이만 접는 겁니까?”

이대로 물러난다고 생각한 지책은 허탈하게 웃었다.

근데,

“그러고 싶은데 또 그렇게 하기 싫네요.”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최소한 꼬장은 부려 볼까 생각 중입니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건가요?”

“저기, 꼬장으로 쓸 재료 중 하나가 오네요.”

지책이 재준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또 다른 일련의 양복들이 시위 현장에 나타났다.

시위대보다 민주당에 더 신경을 쓰는 걸 보니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지책은 많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공화당?

아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공화당이라면 분명 이 시위와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이들인데.

설마, 민주당의 독주를 막겠다고 이렇게 몰려왔다고?

지책은 시위가 변질되어 정치 싸움으로 변하는 걸 직감하며 재준을 바라봤다.

페니, 당신이 의도한 겁니까?

분명 공화당이 올 걸 알고 있는 듯했는데.

당신, 누굽니까?

재준이 지책 어깨를 두드리고 라이레놀 의장에게 걸어갔다.

자, 놀아 봅시다.

“말귀는 알아들었나 보네요. 꽤나 위험한 선택이었을 텐데.”

“위험한 만큼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민주당과 거하게 한판 뜨실 겁니까?”

“문제를 크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민주당을 견제하는 역할만 할 겁니다.”

“그러시든지. 전 쌈 구경만 할게요.”

흥.

라이레놀은 되도록 재준과 말을 섞지 않을 생각으로 바로 돌아섰다.

근데,

뭐지, 이 익숙한 기시감은.

대화를 할수록 어디선가 만났던 것 같아.

살짝 뒤돌아 재준을 봤다.

분장에 가려져 눈은 보이지 않지만, 저 입꼬리를 올리고 비웃는 듯한 미소는 아주 익숙했다.

그래 분명해.

어디선가 봤어.

누구냐…….

라이레놀은 복잡한 심경으로 민주당 쪽으로 걸어갔다.

버니 핸더슨이 아까부터 라이레놀과 재준의 만남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의장님, 맘이 급하신가 보군요.”

“맘이 급한 건 민주당이겠지요. 저희는 노숙까지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기야 임기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귀찮은 일은 할 필요가 없겠죠.”

“그렇게 항상 틀린 생각을 하는 것도 재주이긴 합니다. 민주당이 늘 딴 길로 새는 건 제가 인정하죠.”

“여전하시네요. 그 말투.”

“민주당처럼 남 보여주기식 허세는 안 떠니까요. 아, 안에 구렁이 한 마리씩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하하, 아무나 물어뜯는 하이에나보다 구렁이가 국민에게 피해는 덜 입히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지만 한 번 터지는 사건이 워낙 커야 말이죠.”

하하하.

서로 웃는, 아니 비웃는 낯으로 절대 화를 내지 않고 비난하는 신기로운 재주를 보여주었다.

역시 정치인, 인정.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근데 정작 가장 불편한 건 시위대였다.

보이지 않는 데서 욕하는 것과 빤히 보이는데 욕하는 건 심적 부담이 엄연히 차이가 나니까.

거기다 민주당이 더 열성적으로 정부를 타도하자고 하니 시위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거기에 공화당은 꼭 카메라 앞에서 알짱거리고 시위에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급기야는 시위는 세 무리로 나뉘어 행진하게 되었다.

개판 난 거지.

***

중국인민은행.

은행장 다이룽은 부은행장의 방문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밑에 있는 직원이 몇인데 부행장이 직접 찾아왔다?

뭔가 대형 사고가 터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부행장이 직접 다 오고.”

“행장님, 위안화 매입이 심상치 않습니다.”

“또 어디 유럽이나 미국 투기성 자금이 들어온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미국과 유럽입니다.”

“늘 있는 일이잖아요.”

“이번은 심각합니다. 여기.”

달랑 서류 한 장이 은행장 손으로 넘겨졌다.

음.

2,000개가 넘는 국내 은행의 위안화 거래 실적이 하나하나 나열된 서류에는 군데군데 표시가 되어있었다.

행장은 죽 훑어본 다음 마지막 달린 코멘트까지 확인하고선 의아한 표정으로 부행장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국내 은행 소유의 위안화 매입이 폭증했다? 부은행장이 보고할 만큼.”

“네, 한 은행에서만 7억 위안이 넘습니다만 NDF 거래라 현물환은 아니고 선물환으로 차익을 보려는 것 같습니다.”

7억 위안이면 대충 1억 달러.

“현물환이 아니라면 실제 오고 가는 돈은 아니란 의민데……. 이딴 짓을 왜 하는 겁니까?”

“위안화가 절하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전 세계가 위안화 절상하라고 난리인데 어떤 미친놈이 위안화 절하를 내다보고 이런 차익 거래를 한단 말입니까? 그것도 금액이 작은 것도 아니고.”

“투마로우 산하 은행들입니다.”

“투마로우?”

다이룽은 투마로우란 소리에 갑자기 어깨가 뻐근해졌다.

몇 년 전 중국개발은행(CDB) 곽보곤 행장에게 커다란 시련을 안겨준 그 은행이 투마로우였다.

그 일로 미국과 유럽에서 상장 폐기된 기업만 20여 곳이 넘었다.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은 건 물론이고 중국의 민낯이 드러나 한동안 굉장한 곤욕을 치렀다.

근데 그놈이 또 중국을 건드려?

이번엔 아주 박살을 내야 정신을 차리지.

“부행장 생각은 어때요? 정말 위안화를 절하할 시기입니까?”

위안화를 절하하면 달러의 가치가 올라간다.

투마로우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절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출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꺾일 겁니다. 그래서 미루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도 고민하는 건데…….”

무슨 생각으로 절하를 예상하는 것일까?

“미국 상황은 어떻습니까?”

“부채 상환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지금은 월가 시위로 어수선합니다.”

어수선하다. 어수선.

“부행장. 위안화 절하하면 우리가 얻는 이득은 얼마나 됩니까?”

“0.1%마다 대략 100억 위안 정도 됩니다.”

100억 위안.

“괜찮네요. 우리도 투마로우에 발을 맞춥시다. 1억 달러마다 0.1%씩 내리는 걸로. 일단 절하하고 다음 달까지 지켜봅시다.”

“절하를 하면 투마로우가 엄청난 이득을 챙기게 됩니다.”

“우리는 100억 위안을 번다면서요. 7억 위안 NDF라고 해봐야 투마로우에게 100만 달러 주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남는 장사인데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건 한 군데가 100만 달러고 지금 알려진 은행만 수십 군데입니다. 저희 통제를 벗어난 지방 은행들까지 합치면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가 난리를 칠 거고요.”

뭐야? 이 한심한 머리는.

“그게 뭔 문제가 됩니까? 난리를 치든 말든. 그리고 여기 이렇게 증거가 있잖아요. 위안화가 이렇게나 많이 해외로 빠져나가는데 우리도 환율 방어를 위해 위안화를 절하한다고 하면 됩니다.”

“그래도…….”

“나가 봐요.”

“네”

후.

부은행장의 한숨을 쉬며 행장실을 나갔다.

은행장은 일어서 창가로 갔다.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이고 힘차게 빨았다.

후.

투마로우라면 임재준 그놈이겠지.

왜 칼춤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원한다면 한번 춰 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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