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79화 (179/477)

제179화 돈이 많으면 무조건 나쁜 놈인가(7)

뉴욕 재준의 아지트.

허겁지겁.

오늘도 재준은 아지트에 와서 미키가 해준 요리를 먹고 있었다.

미키는 재준을 보며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

예전의 그 젠틀한 이미지는 어디다 팔아먹고 조커 짝뚱 같은 분장을 하고 있는 재준을 보니 자신이 다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분장에 대해 불만을 터뜨릴 수는 없고.

“보스,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이러다 들통이라도 나면 어쩌려고요. 지금이라도 당장 시위대에서 빠져나오세요.”

신분이 밝혀지면 위험하다고 슬쩍 건드려 보았다.

“맞아요. 도련님. 너무 위험합니다. 전 심장이 오그라들어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습니다.”

미키와 어느새 같은 마음이 되어 있는 서형길도 재준을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잠깐!

재준이 손을 들어 올리자 둘이 말을 멈추고 재준에 집중했다.

저기.

재준이 음식을 오물거리며 TV에서 방송되는 화면을 가리켰다.

기자 하나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한 방향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NNN 기자 핸리입니다. 투마로우는 시위대에 음식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월가의 상징인 이번 시위에 월가의 대표 은행인 투마로우가 왜 도움을 주는지 모두 이목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투마로우가 시위대를 위로하는 차원이 아니냐는 예측이 지배적이며 월가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아! 저기 음식 트럭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총 열 대의 푸드 트럭이 주코티 공원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트럭마다 다른 종류의 요리를 선보이며 요리사 또한 일류 요리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대형 트럭과 쓰레기 수거를 위한 사람들도 대기 중입니다. 과연 투마로우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서형길과 미키가 TV를 보면서 ‘와! 저렇게까지?’라는 표정을 보였다.

“잘했네. 역시 윌켄이야. 뭐 비닐봉지에 음식 몇 개 주느니 해줄 때는 확실하게 해야지. 그래야 사람들 뇌리에 투마로우가 팍팍 박히잖아.”

서형길은 흐뭇해하는 재준을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헛돈 쓰는 것 같은데.

저런다고 누가 고마워할까?

그런데 TV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길게 늘어선 줄과 음식을 받아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고마워하고 있었다.

서형길은 저 모습을 보니 당장 가서 싸다구라도 날리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가뜩이나 도련님이 긴장 타고 있는데 저놈들은 희희낙락이네.

나중에 도련님의 정체가 밝혀져도 저런 얼굴을 할까?

천만에, 저놈들은 절대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죽일 듯이 달려들겠지.

미키도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때,

“대단하지 않습니까?”

짝, 짝, 짝.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와서는 손뼉을 치며 다가왔다.

“블러드 페니. 오늘도 여기에 들렀군요.”

폴 라이레놀 하원 의장?

“우리 이야기는 전에 끝난 거로 알고 있는데 또 뭐 할 말이 남았어요?”

후후후.

라이레놀이 비릿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폼이 ‘다 알고 있지만 입 밖에 꺼내면 재미가 반감될 테니 참겠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여기 온 걸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까? 나 같으면 매우 놀랄 것 같은데.”

“별로.”

“후후, 그런가요? 어쨌든 대단한 작품입니다. 시위대에 식사를 제공한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인데. 임재준과는 어떤 딜이 오고 간 겁니까?”

“임재준과?”

내가 임재준인데 내가 나와 딜을 해?

아직 내가 임재준인 걸 모르고 있구나.

하긴 꼬리를 붙였는데 내 모습을 아직 못 봤다면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재준의 얼굴에 그려진 동전이 찌그러졌다.

“의장님 일 처리 방식이 내 상식하고는 같지가 않나 보네요. 시위대가 왜 투마로우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투마로우가 우리에게 잘 좀 봐 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우린 아직 오고 간 게 없어요.”

“아직, 아직이라……. 그럼, 연은 닿아있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의장님 맘이고. 난 위로금 정도로 생각하는데. 의장님은 이것저것 더하고 붙이는 걸 좋아하나 봐요.”

허허허.

라이레놀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까놓고 블러드 페니가 누구랑 손을 잡았는지 세상에 알리면 나한텐 아주 편합니다. 어쩌면 그게 나에겐 정의 구현이 될 수도 있고.”

“아, 공화당 입장은 그거군요. 이상하네. 시위대가 공화당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오히려 정부 밑창을 들추고 있는 우리를 응원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닌가? 그럼 우리도 공화당 엉덩이에 무얼 깔고 있나 시위 항목에 추가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하나?”

“우리 엉덩이에 무얼 깔고 있다는 겁니까?”

“그럼 없어요?”

“당연히 우린 깨끗합니다.”

“에이, 깨끗한 정치인이 어딨어요? 그럼 이건 어때요. 도드프랭크법안 중 소액주주들 사외이사 추천권은 원래는 SEC가 각 금융기업에 바로 지시를 내렸어야 했죠. 그런데 갑자기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그 누구였더라. 아, 앤서니 진스버그. 맞다. 그 사람이 SEC와 만나고 그 추천권이 6개월인가 8개월인가 딜레이가 됐잖아요. 알죠? 그리고 소송이 진행되고. 추천권은 날아가고.”

라이레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건 합법적인 로비에 의한 겁니다.”

“알아요. 당연히 합법적이죠. 그리고 포지션리미트도 로비에 의해 스왑옵션 한도가 80억으로 상향되고 SEC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이것도 맞죠.”

“그것도.”

“알아요. 로비는 합법적이죠. 하지만 공론화시킬 수는 있어요. 이게 과연 합당한 일이냐. 아니냐. 공화당 이름을 거론하면서. 어때요?”

허허허.

“역시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습니까. 이게 바로 투마로우와 뭔가 주고받았다는 증거 아닙니까? 그건 전부 투마로우와 함께 했던 일들인데.”

“뭐, 그건 알아서 추측하시고.”

“좋습니다. 그럼 저희가 입을 다물면 그쪽도 입을 다문다. 이렇게 알아들으면 되겠습니까?”

뭐라는 거야?

아니, 이걸 까면 내가 죽어 이 사람아.

아무리 합법이라도 로비는 로빈데.

언론이 들쑤시면 투마로우가 뭐가 돼.

그건 내가 언론에 제보하고 내가 곤란해지는 꼴이잖아.

“그것도 알아서 하세요. 뭘 그렇게 일일이 다 체크를 하시려고 할까.”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대로 물러갈 수는 없고……. 우리도 같이 일 하나 하는 건 어떠십니까? 어차피 투마로우도 저희 쪽입니다.”

“어허, 의장님도. 우린 투마로우와 관계가 없다니까요.”

“아, 하하하. 그렇지요. 실수했습니다.”

“큰일 낼 사람이네. 암튼, 같이 할 일이 뭡니까?”

음.

라이레놀이 약간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시위 조항에 민주당 약점도 하나 집어넣어 주는 건 어떻습니까?”

“네?”

“원하는 걸 말하면 들어 드리겠습니다. 세금 입법이나 예산안 같은 거면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음.

재준이 멍하니 저 먼 곳을 바라봤다가 라이레놀로 돌아왔다.

“어려울 것 같은데요.”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닌 거로 아는데요. 블러드 페니라면 가능한 거 아닙니까. 시위대를…….”

아니, 아니.

재준이 손사래를 쳤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저기.”

재준이 손가락으로 TV를 가리켰다.

“저들이 몰려 왔는데 어떻게 민주당 약점을 집어넣습니까?”

TV가 라이레놀 등 뒤에 있기에 그가 몸을 휙 돌렸다.

[저희 민주당은 오늘부터 월가 시위에 동참하며 이들과 함께 정부에게 금융개혁에 대해 강력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뭐야, 저거.

풋.

라이레놀이 재준의 웃음소리에 다시 돌아봤다.

“알고 있었습니까?”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신도 아니고.”

다시 TV로 고개를 돌린 라이레놀.

“저놈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뻔한 거 아닌가요?”

“뭐요?”

다시 재준을 향했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도 있지만, 하원 선거도 있어요.”

“하원 선거.”

“대통령 재임은 그런대로 계산이 끝났을 거고, 상원 선거는 해 봐야 보궐 선거. 다 줘도 아직은 민주당이 앞서니까 하원에 몰빵 하자. 뭐 이런 생각? 그런데 민주당이 시위에서 저희랑 같이 노숙을 하면 공화당을 찍겠어요?”

“이런 제길.”

부들부들 떨고 있는 라이레놀을 향해 재준이 다가가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해요?”

응?

“뛰어. 시간이 곧 공화당이 먹을 수 있는 투표수야. 죽지 않으려면. 뛰어.”

깜짝 놀란 라이레놀이 뒷걸음치며 물러나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거, 가만히 있지 좀.

들쑤시고 다니니까 혼나는 거 아냐.

어깨를 으쓱한 재준은 다시 자리에 앉아 위스키 한 잔을 따라 마시며 TV로 눈을 돌렸다.

이를 본 서형길은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미키는 자신이 뭔가 잘못 보았다는 듯 계속 눈을 깜빡였다.

하원 의장을 저렇게 다루는 게 속이 후련하기는 한데, 뭔가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게 있었다.

내 얼굴도 봤을까?

그래도 하원 의장인데.

***

한 시간 후.

재준 팀은 아지트로 모였다.

심각한 얼굴을 한 재준이 탁자를 탁탁 두드릴 뿐 말이 없자 모두 분위기를 잡았다.

역시 답답한 걸 참지 못하는 퀴니코가 말을 꺼냈다.

“보스, 또 무슨 왕폭탄을 터뜨리려고 분위기를 잡는 거죠?”

응? 응.

“정치인이 노숙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 봤어?”

“노숙이요? 정치인이? 말도 안 돼요.”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 시위대에 벌어지려고 하고 있잖아.”

“민주당이요? 시위만 참가하는 거 아니에요?”

“그 정도면 시위에 참가하는 의미가 없어. 아마 시위대에 직접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려면 같이 뒹구는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런데…….”

잠시 말을 멈추자 각자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진짜 뒹굴면 어쩌지?”

“설마, 미국 정치 역사에 그런 일이……. 있네.”

거기서 뭐 하는 거니?

모두의 시선이 TV의 주코티 공원에 머물렀다.

기자가 뭐라고 떠드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화면에 민주당 의원들이 정말로 텐트를 치고 있었다.

“보스, 쟤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진짜로 시위대와 먹고 잘려고? 국정 운영은 안 하고 저기서?”

“가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텐트까지 치는 거 보면 각오는 단단히 하고 나온 것 같은데. 저러면 버피세 통과는 당연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민주당을 다시 의회로 돌아가게 만드는 방법은…….

“작년 G20 정상 회담에서 중국 주석 후진오가 위안화 절상에 대해 했던 말 기억하지?”

“점진적으로 고려해 보겠다. 뭐 그 정도로 발을 뺐잖아요.”

“그치, 그럼 위안화를 절하하겠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 정부 난리 나겠죠.”

“그렇지?”

윌켄의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위안화를 조작하려는 건 아니죠?”

“조작? 중국이 우리가 조작한다고 당해 주는 놈들인가? 그냥 당황하게만 만들면 되지.”

“어떻게요?”

“전에 얘기한 NDF 거래 위안화에 집중시켜요.”

“네?”

“그럼 미국과 중국이 대차게 붙을 수 있어요. 지금도 괜히 으르렁거리지 말고 한판 붙으라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보스, 진짜 미치겠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