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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71화 (171/477)

제171화 꼭 뭘 모르면서 설친다니까(12)

미들베리 칼리지.

미국 안에서도 가장 입학하기 힘든 학교 중 하나로 버몬트 주의 자랑이자 인재의 산실.

오늘 이 학교 학생과 교수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버니 핸더슨이 왔다.

버니 핸더슨은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기 전에 버몬트 주 빌링턴 시의 시장을 4선을 했던 경력이 있어 오늘 대학을 방문하고 학생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가졌다.

천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있는 광장.

단상에 올라서자 존경심 가득한 박수 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조용하면서 정갈하게.

짝짝짝짝짝.

아, 아.

마이크를 살짝 테스트한 버니 핸더슨은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해서 본격적인 자신의 정치 공약을 말하기 시작했다.

핸더슨의 공약은 사회주의 기본인 평등.

중산층을 위한 정치.

“예산 지원 및 주와 지역의 협조를 통해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교사양성 프로그램의 기준을 높여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와, 와.

버니, 버니, 버니.

핸더슨이 한마디 했는데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살짝 놀랐다.

음, 역시 대학이라 그런가?

혈기가 남다르군.

다른 곳이었으면 따분한 이야기라 대충 박수만 쳤을 텐데.

기분 나쁘진 않은데.

“교사들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고 대안학교 성격의 공립학교 차터스쿨과 영재학교 성격의 공립학교 마그넷스쿨을 지어…….”

와, 와, 와.

버니, 버니, 버니, 버니.

차터, 마그넷, 차터, 마그넷.

더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한 반응에 좀 더 놀랐다.

이건 예상외인데.

모여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맨 뒤에서 들려오는 반응에 돌아보며 인상을 썼다.

마치 선거 유세장을 방불할 정도의 선전 문구를 든 1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난리 난리 난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허, 거 사람들.

내 생전 이런 반응은 처음이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연방정부의 무상장학금 확대와 대학생이 있는 가정에 대한 세금 공제와 연방대출금 상환을 소득 10%까지 제한하는…….”

와, 와, 와. 와.

버니, 버니, 버니, 버니, 버니.

무. 상. 장. 학. 금. 무. 상. 장. 학. 금.

방금까지 인상을 쓰던 다른 학생들도 돈 얘기가 나오니 이제는 같이 들떠서 같은 구호를 외쳐댔다.

핸더슨은 좀 이상하단 인상을 받았다.

아니, 이건 전에도 내가 공약으로 냈던 이야기인데.

마치 생전 처음 들은 사람들처럼 왜 이래?

세월이 흐르니까 이제야 내 공약이 먹히는 건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그때,

웬 청년 하나가 메가폰을 집어 들더니 무리 앞으로 나왔다.

한 손을 번쩍 치켜들더니,

“버니를 대통령으로.”

라고 외치자,

군중들이 일제히.

버니를 대통령으로.

버니를 대통령으로.

그렇게 외치는 게 아닌가.

엥? 갑자기 나를 대통령으로?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 청년은 세 번 구호를 외치더니,

“우리 버닝소셜은 버니가 대통령이 되는 그날까지 버니를 지지합니다.”

버니, 버니, 버니.

버닝소셜?

불타는 사회?

나를 지지하는 단체가 생긴 건가?

버닝소셜.

이거 봐라, 내가 추구하는 국가를 정확하게 표현했는데.

거기에 내 이름과 발음도 비슷하고.

기분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네.

버니 핸더슨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행했다.

하하하하하하하.

이날 이후로 버니 핸더슨이 연설을 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버닝소셜은 슬금슬금 언론에 노출되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와 더불어 버니 핸더슨의 평등이 회자되었고 중산층을 중심으로 그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압도적 지지를 가져왔다.

버니를 대통령으로.

버니를 대통령으로.

***

민주당.

“오늘도 참석을 안 하셨다고요?”

소렌 상원 의원은 요듬 들어 버니 핸더슨의 바쁜 일정에 다소 의아해했다.

“나이도 70이 넘은 노인이 무슨 스케줄이 이렇게 바쁩니까?”

“요즘 핸더슨 의원님. 여기저기서 모시려고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랍니다. 지금까지 하원 때, 상원 때, 심지어 시장 시절에 했던 이야기들이 회자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합니다.”

소렌 상원 의원은 신기하기도 하고 의뭉스럽기도 했다.

갑자기?

하지만 대화 중이던 상원 의원이 그 해답을 내놓았다.

“버니 핸더슨 하면 평등을 이야기하며 중산층을 대변해 왔으니까. 금융위기로 옥죄어 오던 사람들의 감정이 폭발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중산층…….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저희도 월가와 국외에만 신경을 썼지 국민들에게 소홀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 여파가 지금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어휴.

그래도 그렇지 도드프랭크법 입법까지는 힘을 집중해야 하는데.

소렌 상원 의원은 안타까웠다.

기회가 찾아왔는데.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언론에서 투마로우를 거론하질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투마로우 이름이 언론에서 떠나질 않았다.

유럽 4개국에 투마로우 이름을 뿌리더니, 그리스 구제금융 거절에도 깊숙이 관계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로 연일 신문을 다루었다.

사람들은 투마로우에 음모론을 덧씌워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정부가 투마로우를 해체하려 한다.

그래서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투마로우가 소액주주들의 사외이사 추천권과 포지션리미트 조항 소송을 진행하는 게 아니냐고 떠들어댔다.

이런저런 여론이 들끓어서 민주당과 정부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고 입법에만 매진했다.

하지만 소송 중인 법안은 입법도 쉽지 않았다.

지금 여론이 잠잠할 때 도드프랭크법을 몰아붙여야 하는데.

하필 이런 시기에 버니 핸더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니.

이럴 때 조언을 구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문득 소렌 상원 의원은 금융 분야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을 윌리엄이 떠올랐다.

윌리엄.

경험이 많은 윌리엄이라면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가봐야겠다.

가서 의견을 들어봐야겠어.

먼저 미팅을 잡기 위해 문자를 보냈다.

[윌리엄, 상의할 일이 있는데 언제 시간이 괜찮습니까?]

[지금 오십시오]

다행히 윌리엄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전 잠시 미팅이 있어서 나갔다 오겠습니다.”

몇몇 상원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지 한숨 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소렌은 민주당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비서가 습관처럼 테이크아웃 커피를 소렌 상원 의원에게 내밀었다.

“음. 그래. 요즘 몰리는 느낌이랄까? 뭐 하나 이룬 게 없는데 시간은 거의 다 간 것 같고 그러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의원님 지역구는 아직 탄탄합니다.”

“하긴 상원 자리 유지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대통령이 문젠가? 좀 무르다는 생각이 들어. 재임은 가능하지?”

“쉽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케어 정책과 월가 정책 미흡이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

하.

소렌의 한숨이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연준으로 가. 금융소비자보호부에 가봐야겠어.”

“네.”

차는 미끄러지듯 출발했고 소렌은 미끄러지듯 답답한 동굴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버니 핸더슨은 하필 이럴 때.

누군가에게서 핑곗거리를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연준을 가면 뭔가 뻥 뚫리는 해결책이 기다릴 것 같았다.

한참을 달리고.

“도착했습니다.”

“응, 가 보자. 가서 뭐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보자.”

“네.”

소렌 상원 의원은 비서와 함께 연준 건물로 이전한 금융소비자보호부로 향했다.

‘청’에서 ‘부’로 마지막 글자가 바뀌며 금융소비자보호부는 연준 산하 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철옹성 한가운데서 맘껏 월가를 공략할 수 있는 위치.

소렌 상원 의원의 마지막 보루.

아니, 민주당과 정부는 지금까지 여기 한 곳을 보고 모든 역량을 투입했다.

그깟 법 조항 몇 개 줘도 된다.

소액주주 사외이사 추천권? 없어도 된다.

민주당에 유리한 사외이사 선임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포지션리미트? 안 해도 된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상품을 독점한다고.

불커룰? 그깟 프롭 트레이딩 하라 그래.

그거 막는다고 월가가 돈 굴리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놈들인데.

그래 금융소비자보호부만 있으면 언제든 월가를 옥죌 수 있다.

거기에 투마로우는 가장 먼저 제물이 될 것이고.

똑똑.

소렌 상원 의원은 금융소비자보호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를 맞이하는 놈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임재준?

네가 여기 왜 있어?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임재준. 당신이 어떻게.”

소렌 상원 의원의 고개가 절로 윌리엄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윌리엄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잠시 놀러 왔을 뿐입니다.”

놀러 왔다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겁니까?”

에헤이.

재준이 소렌 상원 의원에게 다가서며 추임새를 넣었다.

“아니, 뭐 우리가 서로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사이도 아닌데. 뭘 그리 놀라십니까? 원래 사람이란 싸우고 술 한잔 마시고 그러며 친해지는 거지. 소렌, 당신 정치인 아닌가?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 놀라기는. 저번에 부자 과세에는 공화당과 잘만 놀던데.”

“임재준.”

아니, 윌리엄.

“윌리엄, 이게 무슨 상황이죠? 임재준과 왜 같이 있는 겁니까?”

윌리엄이 피식 웃으며 소렌 상원 의원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제가 그전에 말을 드렸을 텐데요. 우린 대치 중이라고. 지금 얘기 중입니다.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풀어나갈지.”

“지금 도드프랭크법을 두고 둘이 얘기 중이라고요?”

“네. 뭐가 잘못됐습니까?”

하.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거, 아줌마. 너무 사고가 경직되어 있네요.”

“아줌마?”

“상원 의원이란 배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럼 의원님이라 불러주고요. 근데, 먼저 공격한 건 그쪽이 아닌가? 우린 정말 열심히 살려고 했잖아요. 금융위기 우리가 해결했어요. 민주당이 한 게 뭐가 있는데요? 내가 알기로는 공적자금도 그 전 대통령이 처리한 거로 아는데. 현재 민주당이 한 게 뭐지? 난 모르겠는데. 혹시 말해 줄 수 있어요?”

“그건…….”

사실 한 게 없다.

아니, 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다.

공화당이 잘못한 일을 민주당이 왜 나서겠는가?

“한 게 없네. 근데 어쩌지. 투마로우가 월가를 살려냈는데. 거의 90%는 담당한 거 알죠? 우리 없었으면 월가 진짜 폭삭 망했어요. CDS라고 알죠? 그 표정 뭐예요? 설마 모르는 거예요?”

“압니다.”

“그럼 다행이고. 우리가 CDS를 부채 처리해서 월가가 무너지지 않은 건 알죠.”

“…….”

재준은 소렌 상원 의원의 구겨진 표정을 보았다.

“모르나 보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아니, CDS가 뭔지도 모르고 그게 월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면서 그 반쪽짜리 도드프랭크법을 만든 겁니까? 도대체 투마로우를 어떻게 본 거죠? 그게 정말 궁금한데. 혹시 만만하게 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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