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70화 (170/477)

제170화 꼭 뭘 모르면서 설친다니까(11)

CFTC가 관리하는 분야는 농업, 에너지 및 환경 시장, 글로벌 시장, 시장 위험 및 기술로 딱 보기에도 그 범위가 너무너무 광범위하다.

에너지만 보더라도 화석연료인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에 자연연료인 풍력, 조력, 지력, 수력, 수소, 태양에너지까지 앞으로 뭐가 더 나올지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

농업은 어떻고.

말하면 입만 아프다.

이 모든 상품들이 선물로 거래되고 청산되는 과정을 모두 모니터링하고 마무리까지 관여하는 업무를 한다.

상품 선물이 미국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를 들여다봐야 하니 24시간도 모자랄 지경이다.

직원들에게 이 정도 돈을 안겨주지 않으면 전부 나가버리는데 어쩌란 말인가.

탁.

말을 못 하고 쩔쩔매는 니콜라스를 눈치챈 재준이 탁자를 쳤다.

“자, 제가 모두 만족스러운 제안을 하나 할게요.”

둘 다 만족시키는 제안이 가능하다고?

“의회는 예산을 삭감하고요.”

“안 됩니다, 절대. 그럼 CFTC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이 거참. 성격도 급하네.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 네.”

재준이 니콜라스를 보고 빙글 웃었다.

“예산을 삭감하고 CFTC는 파생 상품 청산 작업(DCO)의 수수료(매도세)를 조금 올리는 건 어때요?”

DCO 수수료를 올린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수수료를 올리면 중소금융기관 반발이 거세어질 겁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럼 대형금융기관에만 수수료를 올리면 되죠. 굳이 다 받으려고 하니까 문제지. 안 그래요?”

“네?”

“자, 잘 들어요. 지금 1억 달러를 기준으로 규제를 강화하려 생각 중이죠. 근데 CFTC도 이게 영 불만족스러울 거예요. 일이 많으니까.”

“그렇습니다.”

니콜라스는 재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무척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문제는 바로 1억 달러. 기준이 1억 달러라는 건 너무 낮아요. 기준을 높이죠.”

“네?”

“기준을 높이고 그 안에 포함되는 기업들에게만 수수료를 올리는 겁니다. 근거도 있잖아요. 도드프랭크법 때문에 규제 비용이 들어간다. 뭐, 벌지 브래킷에게만 받아도 예산 확보가 충분할 것 같은데. 안 그래요?”

“그건…….”

“알아요. 알아. 정부가 1억 달러 이상인 기업들 규제하라고 했다는 거. 근데 알겠지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그럼 대부분의 금융 기업이 포함되는데 그걸 정말 다 규제하려고요? 그러니까 예산 타령을 하지. 그리고 그 많은 금융 기업을 조사한다고 쳐. 그럼 모자란 인원은 어쩔 건데요. 직원 더 뽑아야 하잖아, 안 그래요?”

“그래서 예산이…….”

“안 됩니다.”

하원 의장의 으름장이 회장실에 울려 퍼졌다.

“거봐요. 안 된다잖아. 그러니까 기준만 좀 올리면 되는데. 왜 안 하려 할까? 정부가 그렇게 걱정되세요?”

“…….”

재준이 혀로 입술을 적시고 말했다.

“그냥 확 올려 버려요.”

“네?”

“한 200억 달러로 올리면 어떨까요?”

“네? 지금 상원에서 1억 달러를 규제 하한선으로 제한했는데. 200억 달러면 상원이 들고 일어난 겁니다.”

“상원이 왜 들고 일어나요? 규제 하한선을 정하는 건 CFTC 고유 권한인데. 상원은 상원일 하고 하원은 하원일 하고 CFTC는 CFTC일 하는 걸 누가 뭐라 그래요?”

“괜히 올렸다가 국민의 분노를 사면 우리는 어쩌라고…….”

에이.

거기서 국민이 왜 나와?

“의지 없으시다는 걸 별 시답지도 않게 꼬아 말씀하시네요. 정 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하세요. 라이레놀 의장님, 예산을 과감하게 한 50% 삭감하시죠.”

이런 미친.

니콜라스는 미치고 팔짝 뛰고 싶었다.

재준의 말처럼 당장이라도 200억 달러의 수수료라 불리는 매도세를 0.00221%에서 0.003%로 올린다면 대략 300만 달러가 들어온다.

상위 10위 권 안에 드는 투자은행으로 대상을 잡으면 3,000만 달러.

이 정도면 예산이 삭감되어도 충분하긴 하다.

하지만 1억 달러를 규제 대상으로 하라는 정부의 압력이 있었으니 모른 척할 수는 없다.

200억 달러면 월가의 은행 중 정말 10대 은행만 남고 전부 규제 대상에서 제외가 된다.

정부가 CFTC의 발표를 들으면 기가 차서 당장에 자신의 목을 날릴 것이다.

내가 자리에서 떨어져 나가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냐고.

니콜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저히 가능하지 않습니다.”

“고민이 뭔지는 알겠는데. 잘 생각해 봐요. CFTC는 독립기관이라니까요.”

“압니다. 하지만, 독립이면 뭐합니까? 정작 돈은 정부가 쥐고 있는데.”

“그러니까 그 예산에서 독립할 만큼 수수료를 거두면 되잖아요? 내가 생각해도 200억 달러는 심하고 한 80억 달러로 규제를 낮추면 월가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수수료를 내게 됩니다. 그럼, 정부에서도 뭐라 할 말이 없을걸요.”

슬쩍 80억 달러로 내리면?

어때, 200억 달러보다는 할만하게 보이지.

“80억 달러요? 80억 달러면 정말 월가 대부분이 규제가 된다는 말입니까?”

“에헤이, 거,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당장 담당자에게 전화 걸어서 확인해 보세요. 월가 스왑거래 금액이 얼마인지.”

니콜라스는 재준을 보았다.

투마로우가 다 조사를 하고 말한 거겠지.

그래도 확인은 해 보고.

전화기를 잡고 당담자에게 스왑거래에 대해 지시했다.

잠시 후 재준의 말과 일치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자, 됐죠?”

“좋습니다. 일단 SEC(연방증권거래위원회)에 의견을 물어보겠습니다.”

음, 거긴 뭐 이미 진스버그가 약을 잘 쳐 놓았으니 통과지.

“자, 의장님은 예산 삭감해서 좋고 CFTC는 예산 확보해서 좋고. 어때요? 다 해결되었죠.”

재준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월가는 스왑거래에서 해방이 됐다.

미친 듯이 거래를 하겠지.

도드프랭크법이 서서히 허물어져 가는 게 보이네.

***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

SEC는 미국 증시를 감시 감독하는 미국 대통령 직속의 독립 관청으로서 준사법적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주가 조작이나 내부자 거래 같은 불법을 보면 다 때려잡는다.

여긴 다른 금융기관과 다르게 정말 무서운 곳이다.

근데 엉뚱한 일로 곤란을 겪고 있다.

“지금 소송이 왜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겁니까? 포지션리미트에 대해서 우리가 증거를 대야 한다고? 왜?”

SEC의 위원장 제이크는 담당자에게 보고를 듣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회장 진스버그와 저녁 식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앞으로 시끄러워진다고 하더니 이걸 말하는 거였어?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결정하라더니.

민주당이구나.

도드프랭크법에서 시작된 포지션리미트, 즉 상품 거래에서 25% 이상 선점하지 못하는 항목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더니 대뜸 상대 진영 변호사가 증거를 대라는 것이다.

웃기고들 있네.

뭐라고? 나쁜 놈들 때려잡는 우리 보고 필요성을 대라고?

“판사가 타당하다고 저희에게 패를 넘겼습니다.”

“아니, 이건 민주당에서 정한 건데 우리가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올 수도 없고, 정말 나도 궁금해. 이걸 왜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데?”

“그럼, 무시할까요?”

무시?

음.

“사실 우린 포지션리미트가 25%든 100%든 상관없지 않나?”

“상품 시장을 관리하는 것도 저희 일인데. 독점은 막아야 하는 게 맞습니다.”

“아니, 어떤 무식한 놈이 상품을 독점하냐고. 지금이 18세기야? 그때는 독점 기술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느 나라도 맘만 먹으면 생산할 수 있는데 독점해서 뭐 하냐고? 독점해서 이득이 되는 상품이 뭐가 있는데? 석유? 천연가스? 쌀? 밀? 뭐? 가능한 거 있으면 말해봐.”

“희토류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지랄. 알아는 보고 말하는 거야? 희토류가 희귀해서 희토류야? 밖에 나가서 아무 흙이나 퍼서 정제해 봐. 희토류가 안 나오나. 다 나와. 그게 정제하기 귀찮아서 그런 거지. 지금 당장 희토류 독점하면 이때다 싶어서 정제하는 나라들 막 튀어나올걸.”

맞는 말이다.

지금 세상에 독점이 가능한 상품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하죠?”

“무시한다며. 그냥 무시해.”

“민주당에서 난리 칠 겁니다.”

“그렇다고 없는 증거를 만들 수 있어? 포지션리미트가 왜 필요한지 나도 모르겠는데.”

“그럼, 시간을 끌어 보겠습니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지. 참나.”

SEC 회장은 법안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뭔데?”

“리살은행을 비롯한 지방 은행들이 CDO(부채부담보증권)이 볼커롤에 적용이 되는 거냐고 문의를 해왔습니다.”

“뭐, CDO?”

“네.”

프롭 트레이딩으로 CDO를 거래해도 되냐는 질문이다.

CDO, CDO.

“해야 하는 거 아냐?”

“네, 그렇지만 프롭 트레이딩 조항에 자산 3%만 거래하게 되어있습니다.”

“3%면 충분하지 않나?”

“대형은행들은 가능한데 지방 중소은행들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럼, 안 하면 되잖아.”

“CDO를 안 하면 BIS 8%에 걸려 대부분 은행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음. 그렇긴 하지.

뭐 다 알겠지만, 은행은 1억을 대출해 주면 8%인 800만 원을 비축해 놔야 한다.

대출해 준 기업이 부도가 나면 대출 채권을 사간 투자자에게 채권 가액을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CDO는 부도난 대출을 대신 메꾸어 주겠다는 투자자가 사간 증권이다.

이 증권이 발행되면 은행은 8%를 비축 안 해도 된다.

은행은 더 많은 대출을 발생시켜 더 많은 이자를 벌어들이게 되고.

근데, 이게 거미줄처럼 여기저기 엮여 있는데 하루아침에 하지 말라고 하면 은행은 줄줄이 BIS에 걸려 건전성이 무너지고 등급이 하락하고 채권 발행이 안 되고 망하게 된다.

“한심한 작자들.”

제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정치인들을 싸잡아 욕했다.

“이건 프롭 트레이딩 해당 상황 아니야. 항목에서 빼 버려.”

“민주당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만 안 있으면 어쩌라고. 은행들 다 문 닫게 생겼는데.”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항이 또 있나 도드프랭크법 다시 살펴봐. 법을 만들려면 최소한 우리한테는 좀 조언을 구해야 하는 거 아냐? 자기들끼리 만들어 놓고 뒤치다꺼리는 우리가 하고, 에이.”

“저 그리고…….”

“또 뭐?”

제이크는 우물쭈물하는 담당자에게 짜증을 냈다.

담당자가 무슨 잘못을 한 게 아니라 정치인들이 하는 행태가 맘에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CFTC가 스왑거래 규제 기준을 80억 달러로 한다고 보고해 왔습니다.”

“뭐? 80억 달러? 이것들이 미친 거 아냐? 누구 맘대로 기준을 정하래.”

“CFTC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 타당한 기준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이 기준에 맞추어서 불법 거래를 조사하라고…….”

“가만, 니콜라스 회장이 대충 정했을 리는 없고. 크리스 네 생각은 어때?”

“사실 1억 달러는 너무 낮은 기준이었습니다. 조사 대상이 너무 많았습니다. 80억 달러면 전체 은행의 삼분의 일이 조사 대상이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일으킨 대부분의 대형은행도 포함됩니다.”

“그럼, 됐네. 다시 한 번 80억 달러 살펴보고 큰 문제 없으면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담당자가 나가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뭐 내가 눈치 볼 일도 없네.

잘리면 진스버그나 찾아가야지.

아니, 차라리 잘리는 게 낫겠다.

CFTC나 SEC나 투마로우가 일으킨 흔들림에 서서히 불만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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