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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67화 (167/477)

제167화 꼭 뭘 모르면서 설친다니까(8)

민주당 버니 핸더슨 상원 의원 집무실.

소렌 상원 의원을 비롯한 도드프랭크법안 통과를 위해 몇몇 상원 의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상석에 앉은 버니 핸더슨은 그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좌중을 슥 둘러보았다.

“다들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있는 겁니까?”

알면서 물어보고 있다.

공화당의 공세에 예산안 통과가 순조롭지 않았다.

무언가를 주고 무언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마땅히 줄 게 없었다.

민주당에서 내세우는 예산안 중 꼭 필요한 것은.

대학 등록금을 낮추기 위해 대학교에 지불할 지원금.

기간설비 재정비로 1,300만 명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건설비용.

사유건강보험을 없애고 정부보험으로 지출하게 될 보험금.

그리고 가장 중요한,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기 위한 기업 대상 정부 지원금이었다.

모두가 국민 생활에 밀접한 관계로 1년 후 대통령 재임 선거에 꼭 필요한 예산이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월가를 혼내주는 것.

바로 도드프랭크법의 입법이었다.

도드프랭크법을 실행하기 위한 기구 금융소비자보호청의 규모를 빠르게 키워야 했다.

“금융소비자보호청의 예산을 공화당이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예산을 더 늘려야 하는데 실적을 문제 삼아서 꽤 고전할 것 같습니다.”

당연하다.

실적은 없는데 덩치만 키우겠다면 민주당 의원들도 반대할 것이다.

초선 멀든 상원 의원의 말에 핸더슨이 어이가 없어서 여유롭게 물어봤다.

“어허, 그래요? 그럼 우리가 가진 건 뭡니까?”

핸더슨 상원 의원은 목소리는 참으로 부드럽지만 제대로 된 정책 하나 없이 징징거리는 모습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힘이 담겨있었다.

버니 핸더슨.

버몬트 주 연방 상원 의원.

자그마치 하원만 8선에 상원은 3선인 의원이다.

이 정도면 핸더슨이 대단한 게 아니라 버몬트 주 사람들이 대단한 거 아닌가.

그의 인기 비결은 간단했다.

한 번도 변하지 않는 뚝심.

올해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세하여 부자 감세 법안 통과를 비판하며 8시간 30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보여주었다.

이거 하루 8시간 노동인 노동법에 저촉되는 거 아냐?

그의 일관된 행동은 상대 진영인 공화당 내에서도 함부로 폄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과거 이력으로는 자그마치 마틴 루터킹의 연설 당시 그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는 것과 시카고 대학교의 흑백차별법 시위에서 체포당하는 모습이 신문에 실린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살아 있는 전설이다.

또한, 품성도 타의 모범이었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공격하지 않고 정책 대결로 몰아가고 빈자의 편에서 부자들을 공격하는 것도 그를 존경하는 이유이다.

이런 이유로 나이가 70이 넘었지만 젊은 층의 지지율이 70%를 넘어섰다.

근데 이런 대외적 모습과 다른 모습이 여기 펼쳐졌다.

“왜 말을 못 하는 겁니까?”

모두 침묵.

허허, 쯧쯧.

“금융소비자보호청 예산을 넘겨받고 지금 공화당이 주장하는 최저임금 7.25달러를 주고 오세요.”

네?

모두 놀란 눈으로 핸더슨 의원을 쳐다봤다.

“의원님. 최저임금 15달러는 저희 공화당의 최대 공약 중 하나입니다. 국민들의 공분을 살 겁니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이 미칩니다.”

쯧쯧.

“이봐요. 멀든 의원. 공화당은 금융소비자보호청이 우리의 최대 공적임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깟 최저임금은 어차피 해가 지나면 오르게 되어있습니다. 국민의 분노도 잠시라고요. 하지만 금융소비자보호청은 이대로 쪼그라든 채 1년을 보내야 합니다. 4년 중 3년이 지났는데. 대통령이 재임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야 재임은 당연한…….”

“정말 자신할 수 있습니까? 아무 공적도 없이?”

“나름대로는…….”

쯧쯧.

핸더슨 상원 의원은 다른 의원들로 시선을 돌렸다.

“여러분, 지난 대선에서 우리가 왜 이겼는지 아십니까? 지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국민의 지지도가 최고조에 달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긴 겁니까? 정말 우리가 자력으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 빌어먹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우릴 살린 거란 말입니다. 그럼, 거기에 대한 답을 국민에게 줘야 국민들이 기억을 되살릴 것 아닙니까? 당장에 월가를 움켜쥐는 모습을 보여야 한단 말입니다.”

모두 표정이 어두워졌다.

맞는 말이라 반박이 불가능했다.

솔직히 정책 대결로 이긴 게 아닌 운빨이 좋아서 이긴 거다.

‘타도 월스트리트’를 부르짖은 덕에 성난 국민들이 지지해줘서 지금 백악관을 장악할 수 있었다.

“무조건 금융소비자보호청 예산은 받아 와야 합니다.”

모두 핸더슨의 의견에 침통하지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핸더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렌 의원. 윌리엄을 만나 봤습니까?”

“네. 우리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그가 임재준과 친분이 있는 게 아니라, 연준을 위해 임재준을 이용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소렌의 윌리엄에 대한 인상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난 대통령과 재준의 밀담으로 윌리엄이 연준 의장을 했다는 걸 당연히 모를 테니까.

유대 자본과의 싸움에서 연준의 입장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요? 그런데 난 왜 그가 썩 내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속고 있는 기분이 든단 말입니다.”

“의원님. 윌리엄은 도드프랭크법을 만들 때 적극적으로 찬성한 사람입니다. 월가 개혁을 부르짖는 데 앞장섰고요.”

“알아요. 알아. 하지만 월가 놈들은 믿을 수가 없어요.”

“엄밀하게 말하면 윌리엄은 월가 뱅커는 아닙니다. 단지 뉴욕연방은행장을 지낸 이력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월가와 친하기도 하고 속속들이 속사정을 잘 아는 인물입니다. 월가의 하이에나 같은 놈들을 상대하려면 그들을 상대했던 그가 가장 적격입니다.”

음.

소렌의 말을 인정하는 듯 핸더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돌진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적진으로 뛰어들 수는 없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싸워서 100번 이길 수 있다고 했듯이 적을 아는 자가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월가 뱅커들의 능력은 이미 전 세계를 쥐고 있는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솔직히 공화당 상원이나 하원 의원 정도로는 상대하기 어려웠다.

법을 다루는 의원과 돈을 다루는 뱅커의 싸움이다.

법은 다음이 있지만, 돈은 다음이 없다.

생존의 문제다.

특히 투마로우는 정말 힘든 상대였다.

“윌리엄과 투마로우가 밀착하게 되면 어쩔 겁니까?”

핸더슨은 가장 최악의 수를 꺼냈다.

“그래서 윌리엄이 금융소비자보호청을 연준 산하로 두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연준 산하요?”

공개시장을 감독하는 연준 산하에 둔다?

일단 투자은행들의 로비는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연준의 금리란 무기도 은행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 수 있다.

투자은행이 돈 지랄을 한다면 금리를 올려버리면 그만이다.

시장의 상황을 살펴야겠지만.

어차피 시장에 돈이 넘치니까 투자은행이 나서는 거니까.

금융소비자보호청이 월가를 감시하면서 위험을 감지하면 연준이 한발 앞서서 금리 카드를 꺼내 미리 진화에 나설 수도 있다.

괜찮은 수다.

윌리엄. 월가의 대항마가 될 만해.

소렌은 헨더슨의 표정을 살피고 말을 꺼냈다.

“네, 연준 산하에 둔다면 월가와 밀착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좋아요. 윌리엄을 청장에 앉힙시다.”

민주당은 어떻게 해서든 금융소비자보호청을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

스페인 앞바다.

박민수와 강호석이 200명의 실사팀을 이끌고 장장 5개월의 대장정을 마치고 다섯 개의 은행 실사를 마무리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이번 행보는 금융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사표 수리하라고. 임재준, 더 이상 못해 먹겠다.”

“난 그냥 잠수 탄다. 날 찾지 마라.”

그날 이후 박민수와 강호석, 그리고 실사팀 200명에게 호화요트 수 척이 지급되었고 장장 3개월이라는 휴가가 내려졌다.

‘당분간 도드프랭크법 때문에 자중해야 하니까.’

재준의 말이었다.

휴가 첫날 음식이며 옷 등의 기초적인 준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참지 못하고 하루라도 지옥 같은 육지를 벗어나려고 요트를 끌고 바다로 나갔다.

긴장이 갑자기 풀어지면 피곤한 법.

첫날은 모두 일찍 바다의 출렁임에 흔들려 맥주를 폭풍 흡입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쨍.

아! 눈부셔.

으아아아아아아.

아침 일찍 일어난 박민수는 갑판에 나와 한껏 기지개를 켜며 무지갯빛으로 분사되는 햇빛을 피부로 느꼈다.

“이거지, 바로 이게 진정한 휴가다.”

“맞아. 휴가가 있어야 진정한 뱅커 아니겠어?”

“어! 일어났어요?”

자신과 같이 한껏 몸을 늘리는 강호석이었다.

“아침은 어떻게 해결하지? 벌써 배가 고픈데.”

“요리사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있는 거로 간단하게 때워야지요.”

“뭐 있는데?”

“어제 보니 샌드위치가 있던데요.”

“샌드위치? 이런 호화로운 요트에서?”

“우리가 어제 급하게 바다로 가자고 졸라서 준비한 게 별로 없어요. 그래도 맥주는 차갑게 세팅되어 있던데요?”

“그래? 그거면 됐지. 저녁까지 선탠이나 즐기다 저녁에 광란의 밤을 보내야지.”

“전 오늘 아주 죽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나도.”

하하하하.

요트 여행으로 한 달을 잡고, 최고급 호텔에서 늘어지게 보내는 걸로 또 한 달 잡고, 다시 요트를 타고 유럽의 바다를 돌 예정으로 마지막 한 달을 잡았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의 휴가인가.

그것도 3개월이라니.

역시 임재준답게 억 소리 나는 초호화 요트에 최고 호텔을 예약해 주었다.

음식을 먹으러 돌아다니는 대신 아예 최고 요리사를 석 달 동안 임대했다.

그것도 요트마다 열 명씩이나.

술은 한 병에 만 달러나 하는 위스키를 원 없이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파라다이스지.

이때,

띠링.

한 통의 문자가 두 명에게 동시에 날아왔다.

[금융소비자보호청 로버트 청장 사임. 후임 인사로 재무장관 윌리엄 본인 스스로 자청. 상원 만장일치로 동의]

박민수는 문자를 확인하고 강호석을 바라봤다.

“드디어 윌리엄이 칼을 빼 들었는데요.”

“그러게, 이제 금융소비자보호청이 금융소비자보호부로 바뀌면서 연준 산하 기관으로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네요.”

“그렇지. 그리고 인원 감축하고 윌리엄이 빠지면 유명무실한 부서로 바뀌는 거지.”

“연준 산하라 정부가 접근도 못 하고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되겠네요.”

민주당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르다.

“임 대표가 윌리엄을 적절히 써먹네.”

“전에 윌리엄이 연준 의장이 되도록 임 대표가 손을 썼잖아요. 그때부터 은혜를 갚는다더니. 이제 제대로 사고 쳤어요.”

“그러게.”

하하하하.

둘은 이 기쁜 소식을 접하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이 둘을 얼어붙게 만드는 문자가 도착했다.

[박민수 팀장 지금 바로 미국으로 복귀 바람]

뭐야?

박민수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강호석을 바라봤다.

“강 이사님. 이게 뭔가요?”

하지만 강호석도 마찬가지.

“나도 복귀하래.”

“왜요?”

“잠깐만.”

강호석이 통화를 시도하자 재준이 받았다.

“임 대표, 이게 무슨 일이야?”

-급해요. 자세한 것은 오면 알려드릴 테니. 빨리 서두르세요. 비행기는 5시간 후로 잡아놨어요. 급하니까 빨리 복귀하세요.

“임…….”

툭.

What the Fuck!

급격하게 어두워져 사는 두 사람의 얼굴.

“샌드위치 먹을래?”

“맥주도 먹을래요.”

“그래. 근데 왜 이리 슬픈 거지?”

“그냥 바다에 빠져 죽을까요?”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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