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66화 (166/477)

제166화 꼭 뭘 모르면서 설친다니까(7)

영국 클레이스은행.

“어서 오세요.”

“다이돈,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래, 그리스 영향은 괜찮습니까?”

“시끄럽지만, 영국은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1991년에 헤지펀드한테 털려서 영국은 유로화 출범 이전의 환율공동체에서 탈퇴했다.

“오히려 유럽중앙은행에 가입 안 한 게 이럴 때는 좋네요.”

“영국 자체가 금융 허브인데 굳이 유로화를 진행할 일은 없으니까요.”

“인정.”

그러니까 영국에 DSBC 같은 금융 제국이 있는 거다.

다이돈이 신문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이번 은행 통합은 프랑스가 중심이라 들었습니다. 왜 영국을 중심으로 하지 않으신 겁니까?”

“딱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할 생각은 아니고 각국에 투자은행을 심으려는 거예요. 곧 도이츠방크가 무너질 것 같아서.”

“도이츠방크가요?”

“네, 도이츠방크가 투자은행의 규모를 줄일 겁니다. 그러면 유럽연합에 공백이 숭숭 뚫릴 텐데. 영국 혼자 해 먹게 놓아둘 수는 없잖아요.”

하하하.

“그런데 투자은행 재원은 어디서 충당하시려고요. 설마 클레이스를 쪼개실 건 아니죠?”

“안 돼요. 클레이스는 투자은행은 DSBC랑 같은 규모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보다 영국에 브랜트앤리처드 있잖아요. 이제 브랜트와 리처드가 각자 분리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브랜트에겐 북유럽을, 리처드에겐 남유럽을 맡길 생각입니다.”

“나쁘진 않네요. 브랜트앤리처드도 갑자기 불어난 인력으로 고민 중이던데. 그런데 왜 갑자기 은행을 통합하려 하는 겁니까?”

풋.

재준은 다이돈의 질문에 작게 웃었다.

“그리스 문제도 해결하고 좀 시끄러울 필요가 있어서요. 아주 시끌시끌하게요.”

“왜요?”

“도드프랭크법 때문에 언론이 메가폰 역할을 해야 해요.”

음.

다이돈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럼 이름을 아주 다 바꿔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이름을?”

“네, 전부 투마로우로 바꾸는 건 어떻습니까. 스페인은 투마로우산타떼, 네덜란드는 투마로우암로, 프랑스는 투마로우사라크. 이런 식이면 언론에 매일 매일 투마로우라는 이름이 들먹여질 겁니다. 그래서 은행들도 합병을 하면 두 개의 이름을 같이 쓰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잉?

그러네.

산타떼사라크암로보다는 훨씬 심플하네.

자기 은행 이름도 남고.

역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이라 경험이 풍부한데.

그래, 이게 좋겠어.

“괜찮은데, 아주 좋아.”

후후.

다이돈은 전에도 느꼈지만, 가끔 재준이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도드프랭크법을 무력화시키려는 겁니까?”

“전부는 아니고. 워낙 방대한 법이니까 투자은행에 꼭 필요한 항목만 손을 좀 보려는 거예요. 이대로는 상업은행이랑 별반 다를 게 없거든. 거, 금융위기 좀 겪었다고 하도 호들갑을 떨어서.”

“미국에서 일어났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을 겁니다.”

“웃기는 거죠. 미국이라고 별반 다르다고 생각하다니. 경제위기는 시장 시스템의 고유한 특성인데.”

“고유한 특성이요?”

“항상 그렇잖아요. 어차피 시장은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 물을 부으면 언젠가는 넘쳐요. 그러면 다 쏟아버리고 새로운 물을 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무식한 거지.”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리고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위기는 오게 되어 있어요. 위기가 닥치면 미국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그러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월가도 만들어진 거 아닌가. 그런데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다니. 경제를 모르는 건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지. 어쨌든 둘 다 못마땅해요.”

“음. 단점 같은데 장점이군요.”

“그리고 누군가의 노력으로 만들어 놓은 걸 자리에 앉았다고 날로 먹으려 하는 생각 자체가 어딘가 병자인 거죠. 이번엔 단단히 각인시켜줘야 해요.”

하하하.

다이돈은 예전 재준에게 당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민주당인가요? 그 사람들 월가 출신 한 명이라도 조언을 들었으면 그런 무모한 법을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금쯤 월가에서 뱅커 몇 명 주워 담았을 겁니다. 자신들도 실제로 겪어 보니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근데 그거 알아요? 월가 뱅커는 월가를 벗어나면 향수병에 걸린 이병일 뿐이라는 거.”

다이돈은 재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월가는 치열한 곳이다.

사람이 과연 저렇게까지 살아야 싶을 정도로 욕심도 과하다.

항상 전력으로 질주하는 국가대표 단거리 선수 같다.

근데 막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국대를 데려다 노인 단거리 양성 프로젝트랍시고 코치를 맡기면 어떻게 될까?

하필 종목도 단거리에 선수는 노인이라니.

국대에게 기초 중의 기초를 가르쳐야 하는 초짜를 데려다 놓으면 심정이 어떨까?

자신은 이제 막 올림픽 금메달이 눈에 보이는데.

맥이 탁 풀리는 심정일 것이다.

딱!

재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니면 내가 심어 놓은 스파이.”

“네?”

다이돈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스파이라뇨?”

“멋있잖아요. 마지막 순간에 등 뒤에서 ‘탕’ 하고 최후의 일발을 날리는 그.”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경쟁 은행도 아니고 정부 안에 자신의 사람을 심어 놓은 게.”

“음. 근데 그게 제가 한 게 아니에요.”

“네?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민주당이 내 사람인 줄 모르고 데려갔더라고요. 이것만 봐도 얼마나 월가에 무지한 줄 알겠죠.”

허.

다이돈은 자기가 들은 것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근데 뒤가 너무 궁금하긴 해.

***

워싱턴의 어느 한적한 카페.

솔솔 바람이 불어오는 테라스.

소렌 상원 의원이 홀로 재무장관 윌리엄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항상 붙어 다니던 비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소렌은 윌리엄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분위기를 조성했다.

대통령이 금융소비자보호청의 실적이 저조하단 보고를 받았을 때 윌리엄이 스스로 그 자리로 가겠다고 나섰다.

대통령을 포함해서 모두 놀란 건 당연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지를 받아 든 대통령이었다.

분명 재무장관 자리보다는 금융소비자보호청이 낮은 직위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정부는 월가를 억누르려고 만든 금융소비자보호청을 꼭 주요기관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명 때문에 금융 지식에 해박하고 오래도록 요직에서 사람들을 지휘했던 인물이 필요했다.

요직에 있었던 사람이야 많았지만, 문제는 월가를 아느냐였다.

그 말은 즉, 재무장관에 앉힐 사람은 많지만 금융소비자보호청에 앉힐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대통령이 허락한다고 임명이 되는 건 아니다.

상원에서 동의가 떨어져야 임명이 가능하다.

정부에서 얼마 전부터 소렌 상원 의원에게 귀띔을 해주었고 소렌 상원 의원이 더 적극적으로 윌리엄과 미팅을 잡았다.

“제가 늦은 겁니까?”

소렌 상원 의원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도중에 윌리엄이 도착했다.

“아닙니다. 제가 좀 일찍 왔어요. 바깥 공기를 맞고 싶었어요.”

윌리엄이 소렌 상원 의원의 말에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 보았다.

“가끔 밖으로 나오는 것도 괜찮은데요.”

“그렇죠.”

호호호.

“정치도 이렇게 시원했으면 좋겠는데.”

“곧 그렇게 될 건데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윌리엄은 소렌 상원 의원에게 넌지시 안도라는 바람을 불어 넣었다.

금융과는 달리 정치는 자리를 보존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8년밖에 없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 조급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휴, 역시 연준 출신답군요.”

“저희 임기가 좀 길긴 하죠.”

연준이 보는 시간은 금리의 시간.

일 년에 한 번 올리거나 내리는 것도 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최소한 천천히 시장을 상승과 하락을 다루어야 하니 연방준비제도이사회 7명 이사의 임기는 14년.

모두 한 번에 임명되고 한 번에 퇴임하는 게 아니라 2년에 1명씩 교체가 된다.

“그런데 연준은 왜 그만두고 재무장관에 취임하신 겁니까?”

후후.

“금융위기 때문이죠. 윌가를 좀 더 튼튼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심이 생긴 거죠. 연준 의장이 가지면 안 되는 걸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의장 앨런에게 부탁했습니다. 대통령을 만나게 해 달라고.”

“지금은 그 사심 계속 가지고 있는 겁니까?”

“사심에 사심이 더 생겼습니다.”

“그건 무얼 뜻하는 거죠?”

“재무장관으로서는 월가를 바꾸기 힘들었습니다. 월가에만 신경 쓰기가 어렵더군요. 일도 연준하고 비교하면 그렇게 크게 바뀐 것 같지 않고. 하하하.”

“호호호. 그렇긴 하죠. 돈 관리하는 거야 재무부나 연준이나 비슷할 테니. 저도 개인적으로는 윌리엄이 금융소비자보호청을 맡았으면 합니다만.”

소렌 상원 의원이 말을 멈추고 잠시 입술을 모았다가 결심한 듯 뗐다.

“사실 윌리엄은 임재준과 인연이 있지 않나요? 친분이 두터운 거로 아는데.”

“알고 계시네요.”

공화당 의원들은 모르던데.

소렌은 알고 있단 말이지.

뒷조사를 했다?

“저도 솔직히 말할게요. 금융소비자보호청은 윌가를 감시하기 위한 기구이지만 제일 목적은 투마로우를 감시하는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윌리엄은 너무 당연한 걸 왜 말합니까 하고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임재준과 대치할 텐데. 괜찮단 말입니까?”

“하하하. 잘 모르시는군요. 연준은 임재준과 항상 대치 관계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살벌한 상황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눈 적도 많습니다.”

“그건 의외인데요.”

“그럴지도 모르죠. 다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준은 공개시장운영을 하는 곳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시장이 쏠리는 걸 방지합니다. 그전에 유대 자본에 윌가가 지배당할 때는 연준은 유대 자본과 싸웠습니다. 지금은 투마로우 쪽으로 기울고 있어서 투마로우와 대치하는 상황입니다. 아마 제가 임재준과 친분이 있다는 생각은 임재준이 유대 자본을 몰아낼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윌리엄은 오직 시장만 생각한단 말입니까? 임재준이 아니고요?”

“당연합니다. 임재준이 시장을 망치려 한다면 저는 또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투마로우와 싸울 것입니다.”

“또 다른 세력이라면?”

“그건 아직 모릅니다. 분명 투마로우의 독주를 막으려는 세력이 존재할 겁니다.”

소렌 상원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매만졌다.

참, 이걸 몰랐네.

역시 연준 의장 출신이라 다르긴 다르네.

우리는 무작정 우리 힘으로 투마로우와 싸울 생각이었는데.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윌리엄의 의중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 하나 남았는데.

‘윌리엄, 금융소비자보호청을 연준 산하로 집어넣으세요.’

재준이 윌리엄에게 부탁한 카드였다.

“상원 의원님, 그리고 투마로우와 싸우려면 연준을 이용하십시오. 임재준이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곳입니다.”

“연준이요?”

“네, 투마로우가 가장 잘하는 인수나 합병, 심지어 공매도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연준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맞아. 그래요.”

“네.”

임재준, 내가 할 일은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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