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65화 (165/477)

제165화 꼭 뭘 모르면서 설친다니까(6)

네덜란드 ABC암로 은행.

“어서 오십시오.”

“마르티네즈 잘 지냈어요?”

후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죽지 못해 사는 겁니다.”

전 행장인 흐닝크를 몰아내고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금융위기에 바로 그리스 사태가 터진 네덜란드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무지와 같았다.

거기에 산타떼와 주주들로부터 소송전이 발생했으니 황무지에 피어난 게 하필 가시덤불이었다.

아예 황무지라도 개간할 맘조차 들지 않게 만든 지경.

거기에 내수 경기 폭락.

영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게 오면서 재무제표를 봤는데 순이익으로 버티는 게 보였습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주가가 폭락할 겁니다.”

기업은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있다.

더 복잡한 과정이 있지만 우린 그딴 건 알 필요 없고.

영업이익은 기업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순이익은 능력 외 컨디션(?)이 포함된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한 축구선수가 있고, 한 경기당 평균 1.5골을 넣는다고 하자.

어느 날은 공이 발에 착착 감기면서 5골을 넣었는데, 어느 날은 한쪽 발 감각이 좀 무뎌서 한 골도 못 넣은 경기를 펼쳤다.

여기서 1.5골은 영업이익이고 5골이나 빵골은 순이익이 되는 것이다.

은행이나 증권사는 보유 중인 주식이나 채권이 있는데 이것들은 아직 이익이 실현되지 않은 채 장부에 남아 있다.

여기서 주식을 냅다 팔아 버리면 이익이 생기고 이 이익은 영업이익이 아니라 순이익에 잡힌다.

노력(영업) 없이 이익이 생겼다.

마르티네즈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감이 오나?

바로 영업이익이 적으니 보유 중인 주식과 채권을 팔아 순이익을 높이고 아직은 건재한 척하고 있다는 말이다.

순이익을 기업이 맘대로 조작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EPS(주당순이익)이나 EPS를 주가로 나눈 PER을 지표로 주식에 투자하면 돼? 안 돼?

안 됩니다.

“하긴 은행은 주가에 민감하지요.”

“진짜 여기서 더 떨어지면 큰일 납니다.”

어유, 떨어져도 괜찮아.

폭락하면 워서스틴이 더 사들일 거야.

그나저나 유럽은 여기저기 곡소리가 장난이 아니네.

“마르티네즈, 이렇게 버티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그럼 죽이든 밥이든 만들어 주려고요?

마르티네즈의 눈이 반짝였다.

재준의 말 뒤에 올 단어가 번뜩 떠올랐다.

“혹시 합병을 제안하러 오셨습니까?”

“귀신이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덥석.

마르티네즈가 재준의 손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이게 그렇게 좋아할 일입니까?”

“제발, 저부터 살고 봐야겠습니다.”

아니, 이 사람, 이걸 말이라고.

그럼 나만 고생하라는 거잖아.

아니구나, 에밀리아노가 고생하는구나.

네덜란드에는 그리스 사태에 더해 부동산 가격 폭락이 덮쳐 왔다.

“이상하네. 경상수지는 좋던데.”

“경상수지는 좋지요. 하지만 지금 네덜란드 부동산 버블이 붕괴 되어서 소비와 투자 침체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경상수지는 국가 간 수출과 수입 차액을 나타내는 용어다.

그러니까 국외로부터 돈은 잘 벌어들이고 있는데 국내 부동산이 고꾸라지면서 전부 우울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하긴 수출이 잘 된다고 당장 국민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지.

우리도 자주 느끼지 않나?

반도체 생산하는 삼 뭐시기는 사상 최대 실적을 이루었는데 정작 나한테는 아무 영향이 없는 거.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부동산은 국민 생활에 절절히 다가오지.

그래도,

“그럼,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는 은행에 많다는 소리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투자할 곳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게 진작에 투자은행을 키우……. 미안.”

말을 하려니 미안해졌다.

ABC암로 투자은행 리살을 홀라당 먹은 게 투마로우니까.

그게 꼭 내 잘못은 아니지.

리살은행이 미국에 있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때문에 부도나게 생겼는데 어떡해.

이렇게 생각하니 잘못한 게 아니라 잘한 거네.

마르티네즈도 재준을 이해하는 듯 말했다.

“전혀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 언제 합병 논의를 시작할 겁니까? 빠를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꽤 서두르시네요.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도이츠방크가 수상합니다. 이 기회에 합병을 추진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네? 그 범죄자 집단이랑요?”

“범죄자 집단이라뇨?”

“아, 하하하.”

너무 성급했나? 아직 2011년이구나.

2013년 도이체방크는 2005~2007년 주택저당증권(MBS) 판매 시 공시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14억 유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14억 유로면 대충 1조 8,000억 원이네.

2015년에는 2012년 리보금리 조작사건으로 25억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5억 달러면 대충 2조 7,000억 원.

2017년엔 MBS 불완전 판매 혐의에 대해서는 미국 법무부가 140억 달러를 요구했고 72억 달러로 합의했다.

72억 달러면 약 8조 7,000억 원.

2017년 러시아 부호의 자금세탁을 방조한 혐의로 미국과 영국 금융당국으로부터 6억 3,0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6억 3,000달러면 대충 7,400억 원.

아니 무슨 벌금이…….

이거 일부러 벌금 내려고 사업하는 거 아냐?

또 2015년 사상 최대 자금세탁 스캔들이라 불리는 덴마크 단스케 은행 스캔들에 연루됐다.

러시아 검은돈을 세탁해 준 사건인데 그 금액이 2,200억 달러에 달한다.

2,200억 달러면 대충 254조 원.

가만 이건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

저게 2015년에 터지지만 2007년부터 시작된 거거든.

이제 막 불이 붙어서 돈 주고 금 받고 할 시기란 말이지.

그리고 러시아 놈들은 혼 좀 나야 해.

아직도 80억 달러 부채를 갚질 않아.

뭐 이자는 석유로 잘 받고 있긴 하지만.

단스케 스캔들은 러시아가 달러 주고 은행이 금 준 건데.

내가 금이 어디서 오는지 잘 알거든.

중간에 금을 가로채면?

충분하네. 충분해.

어쨌든 도이츠방크는 아니지.

“독일이니까. 좀 의뭉스러운 부분이 있어서요. 암튼 도이츠방크는 아닌 거로 합시다.”

“정말입니까? 도이츠방크를 합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데요.”

“내칠 정도는 아닌데 품기에도 여간 찜찜해요. 어쨌든 도이츠방크를 이용해서 돈을 벌 용의는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도이츠방크를 이용해서 돈을 번다?

이거 괜히 궁금해지는데.

재준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게 설치고 있잖아요. 지금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지만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일단 털 게 있으면 털게 놔둬야지요.”

“혹시 도이츠방크에 대해 뭐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그게 뭐 꼭 안다기보다는 누구나 신문은 보잖아요.”

“신문이요?”

최근 도이츠방크에 대한 기사가 뭐가 나왔더라.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만 하네.

아니야, 한 번 당해 봤으면 알아야지.

임재준은 거대한 정보조직을 가진 게 분명해.

그렇다면 도이츠방크에 문제가 있다는 소린데…….

일단 관계를 정리해야겠어.

“마르티네즈, 지금 투마로우 실사팀이 스페인, 프랑스를 거쳐 네덜란드로 올 겁니다. 잘 협조하고 다음에 협상 테이블에서 봅시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준비를 하겠습니다.”

재준은 악수를 하는 도중에 마르티네즈에게 속삭였다.

“언론에 미리 흘리세요.”

“저희 합병이요?”

“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주가가 올라요.”

“아.”

그럼.

재준은 손을 흔들며 마르티네즈에게 빙글 웃었다.

네덜란드에서 들려오는 뉴스에 공화당 놈들 바싹 긴장하겠지.

***

금융소비자보호청.

쾅.

소렌 상원 의원은 있는 힘을 다해 서류를 탁자에 집어 던졌다.

“내가 말했지요. 투마로우 잘 감시하라고. 이게 뭡니까?”

청장의 시선이 상원 의원에서 신문으로 향했다.

[투마로우 유럽 4대 은행 합병 추진. 4대 은행장 모두 긍정적. 유럽에 초거대 은행 등장 초읽기]

“임재준이 유럽으로 날아가서 일을 벌였어요. 이제 분명 투마로우 자금이 유럽으로 흘러갈 거란 말입니다.”

창장의 시선이 다시 상원 의원에게 향했다.

그걸 왜 나한테 따지는 겁니까?

미국 내에서 투자만 막을 수 있는 걸 뭐 어쩌라고.

막말로 자기 돈 자기가 쓰겠다는데 뭔 수로.

“유럽은 저희가 관여할 수 없는 곳입니다.”

“뭐요?”

이 쓸모없는 인간.

이런 물러터진 인간이 어떻게 월가를 잡는 칼이 된다고.

소렌 상원 의원은 청장을 노려본 후 휙 등을 돌려 나왔다.

금융소비자보호청을 완전히 벗어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대자 비서가 붙었다.

“진정하시죠.”

“허, 용인지 뱀인지 알아보려고 자리에 앉혀 놨더니 하는 짓이 지렁이네. 다시 더럽고 축축한 흙바닥을 기어봐야 정신을 차릴 놈이야.”

“임재준이 뛰어난 거지 청장이 실력이 모자란 건 아닙니다.”

“그럼, 선수를 체인지 해야지. 불안정한 시장을 안심시킬 카드로 만들어진 금융소비자보호청이 더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잖아.”

“생각해 두신 인사가 있으십니까? 임재준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늑대는 많지 않습니다.”

“있기는 한데, 자신이 하겠다고 하기도 했고. 근데 믿음이 안 가. 임재준하고 엮인 사건도 몇 있고.”

“재무장관, 윌리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근데 또 그만한 인물은 없고.”

상원 의원이 재무장관을 논하고 있다.

한국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미국의 정치는 한국과 다른 점 중 하나가 정부 인사다.

미국 대통령은 초선이나 많아야 3선 상원 의원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대통령이 되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상원 의원은 별로 없다.

되도록 상원 의원 자리에 오래 남아서 7선 8선까지 권력을 누리는 걸 더 선호한다.

앞서 말했듯이 예산도 대통령의 의견은 전혀 반영이 안 된다.

거의 모든 정치 활동은 무조건 의회에서 승인이 나야 가능하다.

상원의 동의하에 외국과 조약을 체결.

상원의 동의하에 내각의 장관, 부장관, 차관의 임명.

상원의 동의하에 연방의 주요직, 대사, 연방 대법원 · 고등 법원 · 지방 법원 판사를 임명.

상원, 하원을 통과한 법률을 승인하거나 거부.

아, 한국의 대통령령과 비슷한 행정명령이 있긴 하다.

그런데 행정명령의 유효기간은 4년이라 재선에 실패하면 연장할 수 없다.

4년이 꼭 지나지 않더라도 의회가 여소야대 구도가 되면 행정명령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할 수도 있다.

후임 대통령은 임기 첫날에도 전임자의 행정명령을 싹 다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있다.

그게 미국 대통령들이 8년 집권에 목매는 이유다.

지금 재준이 하려는 게 이 무력화 작업이다.

“윌리엄을 단둘이 만나야겠어요. 자리 좀 만들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임재준의 다른 팀원들은 뭘 하고 있나요?”

“공화당과 접촉하는 이도 있고 변호사를 만나는 이도 있습니다.”

“변호사?”

“그 부분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투자은행이야 늘 끼고 사는 게 소송이니까요.”

음.

별다른 투자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데 변호사라…….

임재준은 지금 유럽 은행 통합으로 바쁜데.

“아니에요. 어떤 소송인지 알아보세요.”

“네.”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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