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61화 (161/477)

제161화 꼭 뭘 모르면서 설친다니까(2)

워싱턴 DC.

윌켄은 볼커룰을 무력화시키려고 공화당의 앨런 심슨을 만나러 의원 사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현 대통령은 민주당이고 도드프랭크법도 민주당 주도로 만들어졌다.

금융위기 직후라 공화당도 민주당의 법안 발의를 대놓고 저지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언제든 작은 불씨만 붙여 주면 공화당 주도로 도드프랭크법을 무산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불씨가 문제지.

그 불씨를 투마로우가 지핀다면 공화당도 은근슬쩍 다리를 걸칠 것이고 어느새 기회가 되면 온몸으로 돌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윌켄은 미국으로 건너와 하루 100통 이상 전화를 붙잡고 S&P 500대 기업들과 통화를 했다.

우선은 기업들과 투마로우가 공조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은행을 건드리면 당연히 기업도 흔들리니까.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하늘이 어슴푸레 어두워질 무렵 심슨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심슨, 오랜만이야? 왜 이렇게 늦게 돌아다니는 거야? 보고 싶을 뻔했잖아.”

누구?

윌켄이 핸드폰을 흔들며 다가오자 심슨의 표정이 급격하게 찌그러졌다.

“윌켄, 골방에서 기어 나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반갑단 인사치고는 좀 험하네.”

“친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앨런 심슨. 미국 상원 의원.

15년 전 자신의 사업체를 윌켄에게 LBO 당하고 절치부심 정치에 뛰어들어 성공한 인물이었다.

“옛날 일은 자네에게 더 잘된 거잖아. 친구는 사업가 체질이 아니었다니까. 봐, 정치인으로 성공한 자네를.”

“결과를 가지고 합리화하지 마. 분명 넌 돈에 눈이 먼 하이에나에 불과했어.”

“예전에는 내가 그렇게 보였나? 뭐, 어쨌거나, 이번엔 진짜 친구를 도와줄 생각인데.”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꺼져.”

윌켄이 과거 일에 아직 분이 안 풀린 심슨을 향해 핸드폰을 흔들었다.

“이번에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에 힘을 실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상태로 가능하겠어?”

“뭐?”

“내가 알기론 상원에 기업들의 로비가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아직 표결에 자신이 있나 보네. 점점 기업 쪽으로 기우는 상황일 텐데. 이러다 스톡옵션 비용 처리하는 건 물 건너가는 거 아냐?”

기업 회계에서 CEO가 받는 스톡옵션이 시장가격으로 발행되면 회계 장부에 비용으로 처리가 안 되었다.

하지만 재무회계기준위원회는 이걸 일종의 보상이라고 보고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스톡옵션은 CEO한테 주는 주식으로 보통은 신주를 시장가로 발행해서 준다.

신주 발행은 기업의 자본이 투입된 게 아니므로 비용처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근데 좀 못된 생각 아닌가?

CEO가 신주를 발행받아서 시장에 냅다 팔아버린다면 기업이 지급해야 할 돈을 시장 투자자가 지급하는 꼴이잖아.

당연히 기업 회계 장부에 CEO에게 발행하는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CEO 실적을 하락시킬 수 있다.

심슨도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맞다고 여겼고.

근데 느닷없이 상원 표결을 붙여야 한다는 게 아닌가?

심슨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당황했다.

“어떻게 안 거지?”

“심슨, 투마로우는 은행이야. S&P 500대 기업 대부분을 상대하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냐?”

“설마 투마로우가 기업 편에 서서 나를 설득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투마로우가 왜?”

“투마로우도 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걸 꺼리는 거 아닌가?”

“그건 CEO에게 옵션을 줄 때 벌어지는 거고 우린 그럴 필요가 없어. 정확히 우린 전문 CEO 운영체제가 아니잖아.”

“그럼 더더욱 의문이 드는군. 투마로우가 왜 이번 일에 관심을 가지는 거지?”

“민주당이 설치는데 공화당이 지켜만 보는 것은 그림이 안 좋아 보이지 않나?”

“민주당?”

허.

심슨이 단말마의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은 도드프랭크법 때문이군. 그 일이라면 난 도와줄 수 없어. 월가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정치인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흥.

심슨이 윌켄을 스쳐 지나가는데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잘 생각해. 재무회계기준위원회 일 잘못 처리하면 예산 관련 법안 아예 하원으로 넘어갈지 몰라.”

멈칫.

이놈이.

심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산 관련 법안.

상원과 하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

아니,

그 전에 상원과 하원의 문제일 것이다.

미국 의회는 한국의 국회와 다르게 상원과 하원인 양원제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은 국회의원만 있는 일원제.

임기 6년인 상원은 인구와 상관없이 주당 2명씩 딱 100명이 선출된다.

임기 2년인 하원은 인구에 비례해서 만들어진 지역구에서 한 명씩 총 435명이 선출된다.

혹시 게리멘더링(Gerrymandering)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

쉽게 말하면 지역구 나누는 걸 나타내는 말인데 이게 참 웃긴다.

한국의 강남구를 예로 들면 압구정, 신사동, 논현동, 도곡동 등등 있고 압구정과 논현동은 민주당이, 신사동과 도곡동은 공화당이 강세라 치자.

그럼 강남구의회에서 압구정, 논현동을 하나로 묶어 지역구를 만들고 신사동, 도곡동을 묶어 또 하나의 지역구를 만든다.

지역구를 자신의 당에 유리하게끔 뒤죽박죽 섞인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감이 팍!

그렇다, 강세지역을 구청에서 만들어 준다.

미국이니까 주의회에서 만들어 주겠지만.

그리고 선거를 치른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선거는 왜 치르는 거야.

미국은 하원 선거 시작 전에 민주당 아니면 공화당으로 이미 당락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미국 하원 수를 보면 거의 근사하게 절반씩 나누어 가지고 있다.

222석 대 213석. 뭐 요 정도 차이.

이런 유치한 조작으로 하원이 되니 상원에서 하원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뭔가 느껴지지 않는가?

상원은 임기도 길고 수도 적은 희소성으로 인해 귀족주의가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긴 설명을 한 이유는 바로,

상원과 하원의 예산 관련 법안 대립 때문이다.

세입과 관련된 법안은 하원에서 발의한다.

예산과 관련된 법안은 상원에서 발의한다.

근데 어느 날 하원이 세입과 예산은 관련이 깊다면서 예산 법안도 자신들이 할 거라고 대들었다.

이때부터 상원과 하원은 예산 법안을 발의하는 문제만 나오면 으르렁거리고 싸운다.

“누구 맘대로 예산 법안을 하원에게 넘기느니 마느니 하는 거지?”

“글쎄. 어쨌든 투마로우는 아니네. 하지만 소문이 이렇게 날 걸세. 회계 기준 하나 똑바로 세우지 못하는 무리에게 예산을 넘길 수 없다. 어때,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나?”

“그건…….”

“맞아. 내가 알기론 기업의 로비스트들에게 이미 상원의 절반 이상은 넘어갔어. 심슨, 혼자 열심히 뛰어 봐야 이길 수 없어. 슬픈 일이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투마로우의 도움 따윈 필요치 않아.”

“어쩔 수 없다는 건가. 그럼, 마음대로 하게. 난 충분히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어.”

윌켄은 핸드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나야. 지금 당장 S&P 500대 기업에게 이메일 보내. 나머지 로비스트들도 활동을 시작하라고.”

“잠깐.”

뭐? 나머지 로비스트?

“윌켄, 이게 무슨 소리지? 애초에…….”

윌켄이 핸드폰에 ‘대기해’라고 말한 뒤,

“그래서 내가 도와준다고 한 거 아닌가? 왜 사람을 못 믿고 그러는 거지? 심슨, 자네가 하려는 일은 좋은 일이네. 당연히 CEO에게 발행되는 스톡옵션은 비용처리를 하는 게 맞아. 하지만 나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어.”

“좋아. 말해 봐. 월가를 위해 뭘 도와주면 되지?”

“볼커룰, 그 조항만 들어내면 될 것 같은데.”

“볼커룰?”

볼커룰과 회계 법안을 바꾼다.

그리고 예산 법안에서 하원을 떨구어 낸다.

확실히 불리한 것만은 아닌데…….

왜 불안한 걸까?

“심슨, 볼커룰이라는 게 투자은행이 프롭 트레이딩을 못하게 하려는 거 아닌가? 채권 스왑 같은 금융위기가 터지면 또 모두가 무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그렇지. 꼭 필요한 법안이네.”

“자, 자, 나도 알아. 근데 감독기관 권한도 강화하고 위원회도 신설하고 파생 상품 거래 투명하게 하고 규제도 강화, 금융 상품 공통기준 마련, 연준 권한 확대, 회계기준 높이고 신용평가기관 강화된 규제 신설, 거기다 국제적 협업?”

“이게 왜?”

“웃기지 않은가? 월가는 세계 금융을 선도하는 곳이야. 그런데 지금 나온 규제들이 필요한 곳은 그리스 아닌가? 월가에 저런 규제들은 독이 될 뿐이야. 지극히 정치적이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규제들은 나올 수가 없어.”

“하지만 금융위기로 다시 쓰러지면…….”

“거짓말.”

“뭐라고?”

“대통령과 민주당은 거짓말을 하는 거야. 금융위기가 아니라 투마로우를 겨냥한 거 아닌가?”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네.”

“잘 들어, 심슨. 투마로우가 쓰러지는 게 아니라 투마로우가 민주당을 선택할 수도 있어.”

“뭐?”

이건 생각 못 했다.

민주당과 싸우느니 아예 손을 잡는다고?

그럼?

“공화당은 선거 때마다 앞으로 꽤 고전하게 될 거야. 그리고 뉴욕에선 앞으로 공화당 의원을 볼 일도 없을 테고.”

“윌켄. 협박처럼 들리는데.”

하하하.

“협박 맞아. 내가 누구한테 좀 배웠거든. 하지만 장점이 많더라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특히. 상황을 역전해 보고 싶지 않아?”

윌켄이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잡고 월가를 살려보자는 듯.

그러면 월가가 공화당 뒷배가 되어 주겠다는 듯.

최소한 다른 것보다 투마로우가 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은 막아야 한다.

지금도 월가를 장악하고 유럽의 절반을 소유하고 아시아를 흔들고 있는 투마로우다.

“좋아.”

하하하.

윌켄이 심슨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선물을 하나 주지.”

윌켄이 핸드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나야. 지금 활동하는 로비스트에게 올해 예산안 공화당 쪽으로 집중하라고 전해.”

툭.

“자, 어떤가. 이제 예산안 통과과정은 자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질 거야. 민주당이 원하는 안을 몇 개 던져 주고 볼커룰을 도려내 주게.”

흠.

“그렇게 하지. 나쁜 친구.”

“이제야 친구 소리를 하는군. 내가 다시 말하는데 자넨 그때 사업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대신에 자네에게 평생 만지지도 못할 돈을 만지게 해 줬잖아.”

“그 소린 못들은 걸로 하지.”

하하하하.

윌켄이 호탕하게 웃자 심슨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말로만 듣던 투마로우와 손을 잡았다.

민주당이 쥐려던 도구를 공화당이 먼저 낚아챘다.

스톡옵션 표결에서 민주당 놈들의 콧대를 눌러주고 예산안 협상에서 몇 가지 쓸모없는 안건을 건네주고 볼커룰을 지우면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차기 대통령 선거에 투마로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심슨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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