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꼭 뭘 모르면서 설친다니까(1)
현재증권 회장실.
거의 영혼이 탈탈 털린 표정의 임병달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재준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얼굴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응?
얼굴이 상했다고?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아유, 많이 안 좋으십니다.”
“그래, 어떤 놈이 국가를 재소했는데 얼굴이 멀쩡하면 이상하지. 오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볼 생각이다.”
“변호사요?”
“그래, 혹시 정말 우리나라 법에 호적에서 손자를 지울 수 없냐고.”
“또, 또, 그러신다. 이게 다 현재증권을 위한 일인데.”
“그게 왜 현재증권을 위한 일이냐?”
“우리도 거대 투자은행의 타깃이 될 수 있습니다.”
“네가 있잖아. 어떤 놈이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투마로우를 상대로 총을 겨눌 수 있단 말이냐?”
“정부와 손잡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이런 건 미리미리 차단해 놔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기 나라를 고발하는 놈이 어딨냐.
임병달은 이해는 하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
띠리리링.
엥? 081? 일본? 왜?
“네. 임재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임 상. 신와대부 이부키입니다.”
“아, 신와대부?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습니까?”
“저, 그게. 그러니까. 여기 일본 대부업체 대표들이 다 모여서 이야기를 해 봤는데. 그게, 꼭 우리가, 그러니까.”
“괜찮아요. 편하게 천천히 말해 보세요.”
“네, 네. 한국 대부업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해야 합니까?”
“뭘?”
“거, 임 상이 기자들에게 했던 말들 말입니다.”
“아, 그거.”
“저, 사실 일본은 한국과 달라 지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요. 그걸 일본이 왜 지켜요.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꺾기 대출, 연체 시 복리 적용. 부실 채권 2차 대부업체에 팔아서 강제추심도 하고 돈 필요한 사람 있으면 아무나 다 빌려줘요. 아, 광고. 광고도 팍팍 때리고.”
“정말입니까?”
“그럼, 그럼. 아, 아주 후크가 제대로 걸리는 광고 CM송이 생각났는데. 거 있지요. 아카펠라, 그거 이용해서 경쾌하게 뚜룹뚜두 신와 신와 신와머니 신와 신와 믿음이가 신와 신와 걱정 마세요. 대출은 1234-4567, 어때요?”
“좋은데요?”
“그렇죠? 그리고 귀여운 캐릭터 만들어서 등장시키고, 아, 아주 중요한 거. 신뢰도 있게 보이려면 그, 연기 잘하는 중견 배우들, 그래, 그 배우들도 광고에 등장시키면 일본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팍팍 줄 수 있지 않겠어요?”
“오, 아이디어가 넘치십니다. 역시 거대 은행을 이끄시는 분은 다르군요.”
“하하하. 뭘 또 그렇게까지. 암튼 열심히 쫙쫙. 파이팅.”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단다.
왕창왕창 대출해 주고 있어.
나중에 다 필요하니까.
싱글벙글하는 재준을 본 임병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모르겠다. 네놈의 심보를.”
“할아버지, 이게 다 미래를 위한 겁니다. 나중에 일본이 한국을 건드리면 쥐고 흔들 수 있는 걸 만드는 중이라고요.”
“누가 뭐래?”
이때,
똑똑.
“투마로우 팀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근데 들어오는 윌켄 이하 팀원의 얼굴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윌켄, 무슨 일 있나요? 일단 앉아요.”
윌켄이 임병달에게 한국식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자리에 앉았다.
“보스, 우리가 한국에 있는 동안 ‘윌스트리트 개혁 및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공식 발효되었습니다.”
“아, 도드프랭크법이요?”
“알고 있었습니까?”
“그럼요. 금융위기를 이용해 당선된 대통령이 가만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금융위기를 겪으며 다음 해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타도 윌스트리트’를 외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고.
3년에 걸쳐 2,300페이지의 자이언트법이라 불리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상원 크리스토퍼 도드와 하원 바니 프랭크가 이 법안을 발의했다고 해서 도드프랭크법이라 부른다.
월가의 투자은행을 자기들 손안에 넣고 주무르려고 온갖 장치로 도배가 되었다.
근데, 월가와 싸운다면서 뉴욕연방은행 출신 윌리엄을 왜 선봉장에 세운 거야?
싸움이 되려나.
어쨌든 지금 그 침착하던 월켄은 입에서 불을 뿜었다,
“프롭 트레이딩을 제한하는 볼커룰(Volcker Rule)이 도입되었습니다. 하, 자기자산 3%라니 이 금액으로는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습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프롭 트레이딩은 투자은행의 자기자본을 자기 맘대로 투자하는 거라 규제에 적용되지 않아 정부가 아주 싫어한다.
이에 폴 볼커 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이 프롭 트레이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볼커룰이라 불렀다.
원래는 전면 금지이지만 누군가 수작을 부려 자기자산의 3%로 수정되었다.
어쨌든,
3%라면 이게 얼마나 될까?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때는 자산의 35배까지 레버리지를 만들 수 있었다.
자산의 100%도 아니고 35배면 3,500%다.
근데 겨우 3%?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단 말이죠.”
“게다가 금융안정감시위원회, 금융조사국, 금융소비자보호국이 신설되어 투자은행들을 감독하게 했습니다. 거기에 월가 개혁을 시도하는 비영리 단체 ‘미국인을 위한 금융개혁’이 투마로우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페렐라는 앞으로 자신들을 감시할 감독기구가 더 걱정되는 듯 인상을 구겼다.
풋.
모두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재준은 빙글 웃었다.
“별걱정을 다 하네.”
“보스는 걱정도 안 되세요?”
“자, 다들 인상 펴고 내 말을 들어봐. 투마로우를 노린다면 우리도 대응은 해 줘야지. 우리가 알다시피 도드프랭크법은 너무 복잡하고 방대해. 아마 이걸 만든 도드와 프랭크도 모를걸?”
“그래서요?”
“입법되기 전에 하나하나 무력화시켜야지.”
공식 실효가 되었다고 해도 마지막 절차인 입법절차가 남았다.
정치인들 사이에선 이를 ‘입법게임’이라 부른다.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는.
재준은 윌켄을 쳐다보았다.
“읠켄, 볼커룰을 무력화시켜요.”
“어떻게요?”
“재무회계기준위원회 협상을 이용하면 될 거야.”
재준은 윌켄에게 자세한 사항을 지시했다.
“페렐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이용해 도드프랭크법 안에 있는 소액주주 사외이사 추천권을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에 소송 걸어.”
“소송이요?”
“그래.”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은 미국 내 200대 대기업 협의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로비 단체다.
재준은 소송 내용과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워서스틴, 너도 포지션리미트 조항을 소송해.”
“아니 언제 법안을 다 파악했어요? 자그마치 2,300페이지나 되는 건데요.”
“틈날 때마다 봤지.”
“2,300페이지를요?”
“그래.”
“무슨 틈이 그래요?”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정말 그럴까?
워서스틴에게도 소송 내용을 알려주었다.
“퀴니코, 넌 공화당 폴 라이레놀을 만나.”
“그들은 예산삭감론자의 대표 아닙니까?”
“그렇지. 그 사람 이제 하원 의장이 될 거야.”
“네? 정말입니까?”
하원 의장은 상원 의원들을 한참 뛰어넘는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의회를 넘어 행정부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법안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고, 각 위원회의 의장과 의원들을 임명할 권한까지 있다.
아, 물론 상원 의장보다는 못해도 상원보다는 세다.
재준은 퀴니코에게 자세한 지시사항을 알려주었다.
“나는 유럽을 들렀다 미국으로 갈게.”
지금까지 싸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방위적인 공격을 시행해야 한다.
본래에도 도드프랭크법은 월가 은행들의 로비로 무기력해지긴 했다.
그런데 이걸 어째.
지금 월가를 손안에 쥐고 있는 건 난데.
그리고 월가가 아니라 투마로우를 공격하네.
그러니 투마로우 혼자 할 수밖에.
일단 사라크방크와 산타떼, ABC암로 합병도 슬슬 불을 지펴야 하고.
아, 먼저 윌리엄부터 만나고.
와, 이거 너무 바쁘잖아.
재준은 할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한 뒤 바로 전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다.
***
월가의 재준의 아지트.
“미키, 오랜만이야.”
재준은 바에 들어서며 미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세요. 보스.”
미키는 익숙한 동작으로 재준에게 클랜파클라스를 따라 주었다.
“한국에서 일은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세계은행에 ISDS를 신청하셨던데. 이길 자신은 있으신 겁니까? 그래도 나라인데.”
“응, 져도 돼. 있었던 일만 시장에 쏟아내면 되니까. 근데 미키도 공부 좀 했나 보네. ISDS도 알고.”
“하하하, 보스 나오는 뉴스만 읽어도 저절로 공부가 됩니다.”
“그래? 그럼, 미키 공부되라고 다양하게 사고 좀 쳐야겠는데.”
하하하.
“뭐가 그리 재밌습니까?”
재준이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윌리엄, 어서 오세요.”
“역시 한국에서도 대형 사고를 치셨던데. 그 일로 펠리컨매니지먼트 폴 시그널이 월가에서 텍사스로 사무실을 이전한다고 합니다.”
“이야, 그놈. 도망을 치는구나. 근데 역시 멍청하네. 투마로우가 출발한 게 텍사슨데. 하필 왜 그리 간대요? 마이클 한 마디면 거기 기업들 일도 안 맡길 텐데.”
“그래요?”
“네, 내가 처음 인수한 은행이 투마로우입니다. 이름이 좋아서 계속 사용하는 거예요.”
“그렇군요.”
윌리엄이 클랜파클라스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바라보았다.
“좋군요.”
“술 생각이 나면 이리 오세요. 여기, 미키에게 얘기해 놓을 테니 여기 있는 술 다 마셔도 됩니다.”
“하하하.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역시 미스터 임과 있으면 막혔던 속이 좀 편안해지네요.”
“아유, 그러게 재무장관은 왜 허락하신 겁니까?”
“그러게요. 윌가를 개혁한다고 해서 허락했는데. 그게 투마로우를 겨냥한 걸 알고 두통이 배는 늘었습니다.”
“그래도 프롭 트레이딩 3%는 고맙습니다.”
“알고 있었습니까?”
“그럼요.”
도드프랭크법에는 프롭 트레이딩이 전면 금지였지만 자기자본의 3%로 수정한 것은 월리엄이었다.
약간의 여지를 남겨 월가에 숨통을 트이게 해 주었다.
그래서 월가 은행들은 3%까지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었는데
전에도 말했지만, 자기자본의 3%는 너무 적은 숫자이긴 하다.
하지만 월가 뱅커가 어떤 놈들인가.
틈이 생기면 비집고 들어가서 결국은 뻥 뚫어버리는 놈들이다.
슬슬 자기자본이란 의미에 대출에 스왑에 빚까지 줄줄이 추가해서 점점 금액을 증가시켰다.
월리엄은 전면 금지라면 모를까 아주 작은 여지만 있어도 월가의 투자은행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몰라 줄까 봐 내심 걱정했습니다.”
“하하하, 그럴 리가요. 근데 이번 정부는 윌가를 어떻게 하려고 프롭 트레이딩을 전면 중지하려 했던 겁니까?”
“또다시 금융위기가 닥치면 스왑포지션이 청산이 안 된 채로 은행이 파산하니까요. 그러면 투자은행의 투기를 공적자금으로 메꾸어 준다는 게 그들의 얘기지만 그 이면이 있습니다. 정부가 투마로우를 무너뜨리기를 바라는 월가 뱅커들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 하나 무너뜨리겠다고 이 난리를 친다고요?”
“월가 대부분이 투마로우에 채무가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투마로우가 무너지면 그 빚을 다 정부가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월가 은행들이 그걸 원한다고요?”
“정부는 빚 독촉을 하지 않으니까요.”
헉!
이것들이 정말.
공매도를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아니지, 유럽 합병만 되면 저절로 기어들어 와 열심히 일할 거야.
암, 아니면 일을 시키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