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53화 (153/477)

제153화 겁 좀 내면서 일하죠. 그래야 될 것 같은데(5)

로운스타.

스티븐은 신성필과 전화로 필요한 자금에 관해 이야기 중이었다.

“네, 네. 그 정도는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5,000억이요? 그렇게 많이 들어갑니까?

“다섯이면 한 군데에서 1,000억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놀라긴, 현재증권 10%를 사려면 5,000억은 들어가지.

-알겠습니다. 마련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스티븐은 한심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1,000억 가지고 엄살은.

영 믿음이 가질 않아.

다시 핸드폰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리암, 나야.”

-한국에서 긍정적인 소식이 들리던데.

“그냥, 일 좀 했어.”

-하여튼 시니컬하기는. 왜 전화했어? 돈 갚을 때는 한참 멀었는데.

“채권 좀 발행 줘야겠는데.”

-새로운 부채를 늘리겠단 거야?

“응, 새로운 사업 하나 하려고.”

-이야, 너 한국 너무 벗겨 먹는 거 아냐? 그래도 네 나라인데.

“나 국적 미국이야. 한국말도 못 하는데 무슨 내 나라야.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알았다. 알았어. 이번엔 얼마나 발행할 건데.

“10억 달러.”

-좀 많네.

“엄살은. 로운스타 자산이 얼만데 10억 달러 가지고.”

-기간은?

“1년 단기로 해줘.”

-그럼 언더라이팅은?

“스프레드 안 생기게 Best efforts deal로.”

스프레드는 투자은행이 발행 채권을 살 때와 팔 때 생기는 차익을 말한다.

Best efforts deal은 채권을 시장에 팔아서 자금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영어에서 보듯이 최대한 팔리도록 노력하겠단 의미다.

여기선 수수료 이외에 스프레드가 발생하지 않는다.

Bought deal은 전에도 설명했듯 기업의 요청으로 투자은행이 채권을 발행하고 이미 발행한 채권은 사주는 것이다.

만기가 되면 기업이 채권을 회수해 가야 하니 스프레드가 발생한다.

-Bought deal로 안 하고?

“스프레드 생기잖아. 로운스탄데 설마 누가 인수 안 하겠어?”

-뭐, 그러든가. 일단 승인은 넣어 볼게. 아마 일주일이면 발행될 거야.

“오케이. 수고.”

-잠깐, 스티븐. 요즘 투마로우가 회사채를 물어보던데. 투마로우에 살 건지 물어봐 줄까?

“투마로우에?”

이거 봐라, 투마로우 자금으로 임재준에게 한 방 먹인다?

성공만 하면 월가에서 임재준보다 더 큰 명성을 얻겠는데.

-해줘 말어?

“누구든 상관없어. 자금만 마련하면 되니까.”

-그래, 알았어.

스티븐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은데.

1년 만기가 돌아오면 리파이낸싱(Refinancing) 해버리면 되고.

리파이낸싱은 채권 만기에 다른 투자은행에서 채권을 발행해 돌려막는 것.

돌려막기라니까 안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기업활동이다.

그 어떤 기업도 채권 만기에 전액을 현금으로 상환하지 않는다.

전부 리파이낸싱으로 이자만 주고 돌려막을 뿐.

이렇게 계속 상환은 안 되고 채권은 계속 발행되니 부채자본시장은 100조 달러가 넘는다.

한화로 12경.

채권 이자가 2~3% 사인데 2%라고 쳐서 12경의 이자만 해도 2,400조다.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니 세계 기업 순위 상위를 투자은행들이 차지하고 있지.

똑똑.

“네, 들어오세요.”

벌컥.

문을 열고 웃음이 흘러넘칠 것 같은 표정을 한 최광수 대표가 들어왔다.

“스티븐, 얼굴을 보니 일이 잘 풀리는가 보네.”

“네, 잘하면 투마로우가 저희에게 10억 달러를 빌려주게 될 것 같습니다.”

뭐? 허허허.

“그럼, 손 안 대고 코 푸는 거 아닌가? 임재준이 이번엔 단단히 걸려들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그렇지. 외화은행 지분은 벨기에 법인으로 처리했잖은가.”

“그건 한국에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아끼려는 차원이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알고 있는데. 국세청에서 소송이 들어왔어. 아무래도 로펌에게 맡겨야 할 것 같아.”

“김앤강으로 하겠습니다. 수익료가 높아도 가장 확실하잖아요.”

“그렇지.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 두세.”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펠리컨매니지먼트는 언제 움직이는 건가?”

“주식 매집 후 임재준과 미팅을 가질 겁니다.”

과연 임재준한테 폴 시그널의 협박이 통할까?

***

신와대부.

신성필 사장은 더케이트러스트 박주호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벨 소리는 울리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급해 죽겠는데 왜 이리 전화를 안 받는 거야?

5,000억이 누구 개 이름도 아니고.

대뜸 5,000억을 만들라고 하면 뚝딱 하고 만들어지나?

-여보세요.

드디어 박주호 사장 목소리가 들렸다.

“접니다.”

-네, 방금 오리슨 오정국 사장과 통화 중이었습니다. 1,000억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얘기를 들었다면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뭐 별수 있습니까? 만들어야지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게, 신 사장님이 부탁할 일입니까. 우리 모두 뜻을 모은 일인데. 사장님도 걸리지 않게 잘하십시오.

“네, 조만간 뵙겠습니다.”

뚝.

걸리지 않게.

대부업체가 1,000억을 공식적으로 대출해 주거나 투자를 한다면 바로 금감원에서 조사가 나올 사안이다.

그러니 분식회계로 숫자를 조절할 수밖에.

그래, 해 보는 거지 뭐.

***

현재증권 회의실.

펠리컨매니지먼트에서 현재증권 주식 5%를 매수했다는 공시가 떴다.

그리고 바로 폴 시그널이 재준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전달되었다.

모두의 만류에도 재준은 폴 시그널과 약속을 잡았다.

이건 정말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야.

진짜 지옥에서 왔는지 꼭 보고 싶어서.

그날이 오늘이다.

그리고 둘이 마주 앉아서 서로에게 유쾌하게 미소를 지었다.

진화가 덜 됐나.

재준이 본 폴 시그널의 첫인상은 온몸이 털로 뒤덮인 유인원 같았다.

그래서 무식하게 몰아치는 건가?

어쨌든 자, 카드를 꺼내 봐.

재준이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빨리 진도 뺍시다.”

폴 시그널이 피식 웃으며 탁자 위에 오래된 신문 기사 하나를 올려놓았다.

[망나니 재벌 손자, 광란의 질주 후 사고로 의식 불명]

재준이 재미없다는 듯 기사를 보고 폴 시그널을 봤다.

“이게 뭐?”

“기사를 보니까 실명이 안 밝혀졌던데.”

“그래서?”

폴 시그널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재준을 바라봤다.

“투마로우는 정말 훌륭한 은행입니다. 임재준 씨는 저도 개인적으론 굉장히 존경합니다.”

“그래, 시작은 칭찬으로 하고 다음 이야기는?”

“요즘 현재증권 주가 상승세가 누구나 투자하고 싶게 보입니다.”

“질질 끌지 말고 본론을 이야기하라니까?”

“하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들 사기도 그렇고 새로운 투자에도 주주들이 찬성할지 그게 의문입니다.”

재준이 피식 웃으며 신문 기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 기사의 실제 인물이 나라는 걸 밝히면 주주들이 들고일어날 거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최선이긴 합니다만.”

“폴 시그널, 소문으로는 꽤 날카롭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좀 멍청하네. 생긴 것도 꼭 찐빵을 눌러 놓은 것 같고.”

“뭐요?”

폴 시그널이 버럭 화를 내다가 ‘아차’ 싶어 몸을 뒤로 뺐다.

협상에서 제1 법칙인 ‘흥분하지 마라’를 되새겼다.

“허허허, 역시 임재준. 단수가 높긴 하네요.”

“뭐, 그런 말은 자주 듣지.”

“그럼, 이 기사는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너무 식상해. 한국에선 재벌 후손들의 전횡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아. 그리고 난 원래 망나니라, 다들 그러려니 해. 한번 언론에 뿌려봐. 이 사건의 주인공은 임재준이었다고. 아마 반응보고 깜짝 놀랄걸. 너무 밍밍해서.”

“허세를 부리는군요.”

“그래, 어쨌든 맘대로 해도 돼. 그런 일로 변하는 건 없으니까. 그나저나 이까짓 일로 날 만나자고 한 거야? 겨우 내 과거 기사 하나를 가지고?”

“설마, 하나이겠습니까?”

폴 시그널은 이번엔 사진 한 장을 탁자에 올렸다.

재준이 술집 앞에서 싫다고 반항하는 여자와 억지로 키스를 하는 장면이었다.

긁적, 긁적.

재준이 사진을 보며 머리를 긁었다.

누구야?

뭐 기억이 나야 이야기를 하지.

야, 난 경험도 못 한 걸 이 자식이.

이거 너무 억울한데.

차강진으로 살면서는 여자 손목도 못 잡아 봤는데.

임재준은 저런 시절이 있었단 말야?

묘하게 달짝지근한 느낌이 입술에 전달되었다.

근데 왜 꼭 경험한 것 같지?

손으로 입술을 쓸고 나서 사진을 보았다.

이거 내가 먼저 손을 써야겠는데?

폴 시그널은 재준의 표정에서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이건 통하겠구나.

그렇지 여자 문제는 항상 복잡하지.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습니까?”

“폴 시그널, 이 여자 어딨어? 내가 좀 만나고 싶은데.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있어?”

“이건…….”

“아, 그래. 이 사진을 당장 신문에 제보하자. 그리고 내가 만나고 싶다고 해. 야, 이거 폴 시그널을 욕하는 사람이 많던데. 의외로 좋은 정보도 제공하는구나.”

“뭐요?”

이거 임재준 보통이 아니구나.

근데 정말 이 사진을 언론에 뿌려도 괜찮은 건가?

아니면 허세를 부리는 건가?

허세치고는 표정이 너무 밝은데.

위협을 전혀 느끼고 있지 않아.

이때,

따르르릉, 삐, 하는 소리와 함께 팩스 한 장이 인쇄되었다.

“아, 왔나 보네.”

재준이 팩스로 가서 종이를 쭉 찢어서 읽어 보고는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폴 시그널을 쳐다보더니,

“뭐, 더 할 말 없으면 이만 가 봐. 내가 좀 바쁘거든.”

뭐? 이대로 가라고?

“정말 이대로 괜찮단 말입니까? 내가 쓸 다음 카드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재준은 정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봐, 폴 시그널. 네가 여기 왜 왔는지 알아.”

“내가 협박이나 하려고 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설마 그럴 리가. 천하의 폴 시그널이 목적도 없이 협박이나 할 위인은 아니지.”

“잘 아는군요.”

“잘 알지. 지금 매집해 놓은 주식 5% 하고 일본 대부업체랑 바꾸자고 할거잖아? 네 딴에는 내가 굉장히 수지맞는 장사라고 생각하고 있고. 투마로우 같은 투자은행이 아이들 손에 들린 과자 뺏어 먹을 것 같은 대부업은 너무 안 어울린다. 뭐 이런 거지? 그리고 내 과거 행적이 계속 언론에 노출이 되는 게 여간 신경 쓰이지 않겠느냐. 이런 협박 아닌 협박도 통할 것 같고.”

폴 시그널은 숨겨 놓은 과자를 눈앞에서 빼앗긴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군요. 5%로면 교환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턱도 없는 소리 하고 있네.”

“뭐요?”

“아니, 저게 숫자로 다섯이지 자회사가 몇 개인데. 자그마치 열 개야. 열 개. 어디서 날로 먹으려 그래. 딜을 하려면 적당히 크기가 맞아야 하잖아. 근데 겨우 현재증권 5%? 현재증권 시총이 5조니까 5%면 달랑 2,500억이잖아. 이게 딜이 되겠어?”

“난 5%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 이 사진과 함께면…….”

어허. 사람하고는.

내가 아무리 일본에서 10억 달러짜리를 후려쳐서 5000만 불에 사 왔다지만, 제값 이상은 받아야지.

폴 시그널이 당황한 듯 재준이 백발로 염색하고 가죽 재킷을 입은 채 광란의 질주를 하는 사진을 꺼냈다.

“여기 이 사진과 함께면······.”

“이봐, 그런 사진은 이미 안 된다니까. 그리고 이거.”

탁.

재준이 품속에서 팩스 종이를 꺼내 탁자에 내리쳤다.

[이상환 전 외화은행장 고의적 BIS 비율 조작으로 로운스타 도왔다는 새로운 단서 포착]

“어때, 재밌는 기사는 내가 먼저 터뜨릴 것 같은데.”

“이건 이미 재판이 끝난 사건입니다. 더는 로운스타의 발목을 잡을 수 없습니다.”

“어! 누가 뭐래? 근데 왜 흥분하고 그래? 설마 펠리컨과 로운이 같은 편이었어? 이건 몰랐는데.”

이런, 또 말리다니.

재준이 폴 시그널의 어깨에 손을 얹고 속삭이듯 말했다.

“가서 더 가져와. 이번에 로운스타 채권 10억 달러를 발행했다던데. 이미 월가에 소문이 파다해. 그런데 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2,500억이 뭐야, 2,500억이.”

“10억 달러?”

“몰랐어? 둘이 한편이라면서 정보도 공유 안 하는 거야?”

“…….”

“에이, 재미없다. 담에 봅시다.”

재준이 손을 문 쪽으로 향했다.

이제 그만 나가라는 메시지.

1차전은 내가 졌다.

폴 시그널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서 고개를 까딱이고는 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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