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52화 (152/477)

제152화 겁 좀 내면서 일하죠. 그래야 될 것 같은데(4)

여의도 한적한 바.

스티븐 킴은 위스키 한 잔을 시켜놓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가까워지며 스티븐의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스티븐.”

“시그널,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고생은.”

위스키 온더락 한 잔.

자연스럽게 위스키 잔을 받아든 시그널은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전화로 말한 내용이 사실인가?”

“그렇게 됐습니다.”

“이야, 임재준과 한 판 붙어 보겠다고? 스티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 아니지?”

“그런 시그널은 내 말을 듣고 왜 한달음에 달려왔습니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 나뿐이 아닌 것 같은데.”

하하하하.

폴 펠리컨 시그널, 펠리컨 매니지먼트의 창시자이자 현 대표.

월가의 주주행동주의자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

주주행동주의자란 주가를 올릴 수 있다면 그 어떤 행동도 주저하지 않는 헤지펀드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정은 간단하다.

타깃이 된 기업의 주식을 10% 정도 매집한 후 주주총회를 열어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안건을 상정하여 표 대결을 펼쳐 이득을 취한다.

당연히 기업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지만, 주주들은 환영한다.

기술 개발을 위해 현금을 좀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주주행동주의자들은 여지없이 주식을 매집한 후, 주주총회를 열어 보유 중인 현금을 전부 배당으로 지불하라는 안건에 올리고 표 대결에 붙인다.

배당을 많이 주는 안건인데 주주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또한 기업 분할이나 합병에도 끼어들어 강제 분할을 하게 하거나 강제 합병을 해서 주가를 띄운 후 이득을 취한다.

주주의 이익이라면 한 나라의 대통령도 갈아 치울 정도로 수법이 과격하고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주주행동주의자들에게 반항하는 기업은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꼴을 당하는 걸 각오해야 한다.

“그래, 스티브, 짜 놓은 계획은 있고?”

“일단 목표는 투마로우가 가지고 있는 일본 대부업체를 인수하는 겁니다.”

음.

“딱 적당하네. 투마로우 같은 투자은행 중심 기업이 일 많고 수익도 하찮은 대부업을 운영하는 것은 주주들로서는 탐탁지 않은 선택이니까. 그 시간에 기업 인수나 한 건 하는 게 더 낫지. 방법은?”

“주주총회에서 안건으로 상정해서 표 대결을 해야죠.”

“내가 알기론 투마로우 주주들은 임재준에게 충성심이 아주 높은데 이길 수 있겠어?”

“그래서 시그널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 아닙니까?”

하하하하.

“내 장기를 살릴 기회를 주겠다? 좋아, 그럼 보상은?”

“대부업체를 통해 대규모 대출 후 부실 채권으로 국가 파산을 유도할 겁니다. 일본을 가지시죠. 전 한국을 가지겠습니다.”

“제2의 모기지론을 만들어 보자는 건가?”

“비슷하죠.”

오호.

대규모 금융위기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나 신용카드 대란 같이 신용으로 대출을 해주고 대출 채권을 유통시켜서 금융권 전체가 책임을 지게 만든다.

그렇게 부풀리다 보면 언젠가는 ‘펑’ 하고 국가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그 후 헐값에 부실 채권을 매입하고 정부에게 떠넘긴다.

하하하하.

“거참, 이럴 때 공교롭게 임재준이 일본 대부업체를 한곳에 모아 놓았단 말이지. 우리 수고를 덜어줬어.”

“그렇죠. 어쩜 다시없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긴 한데…….”

시그널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과연 임재준 상대로 먹힐까 몰라.”

“시그널,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뭔데?”

“한국에 와서 들은 건데, 임재준의 과거 행적이 아주 지저분하다는 겁니다.”

“그래? 이거 또 흥미가 당기는 이야긴데. 언론을 한번 들쑤셔야겠어.”

폴 시그널이 CEO를 갈아 치울 때 가장 즐겨 쓰는 수법이다.

주주총회 전 언론에 CEO의 추한 모습을 공개하고 주주들이 은연중 CEO에 반감이 들게 만든다.

처음에는 웃어넘기던 주주들도 여러 차례 CEO의 추잡한 모습이 공개되면 점점 생각이 바뀌게 된다.

술주정, 폭행, 외도(꼭 외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여자만 만나면 된다.), 도를 넘는 파티, 과도한 씀씀이. 작은 흠도 크게 부풀려서 주주총회에서 CEO의 자질에 대해 걸고 넘어진다.

이런 인신공격의 주특기가 바로 폴 시그널의 장기.

그래서 그의 별명이 ‘지옥에서 온 행동주의자’이다.

“주주총회 전에 언론에 퍼뜨리면 주주총회 전에 일을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매집한 주식과 일본 대부업체를 교환한다. 이거지?”

“그렇죠.”

“좋은데. 괜찮은 계획이야. 만약을 대비해 주주총회에 몇 가지 안건을 상정하는 것도 괜찮겠어. 우리 쪽 사람을 이사회에 심어 놓는다든가.”

“배당을 터무니없이 높게 달라고 하든가.”

하하하하.

“좋아. 한번 해 보자고. 난 임재준의 과거를 털어 볼게.”

“주요 언론 기자 몇 명만 접촉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오케이.

폴 시그널과 스티븐 킴이 손을 잡았다.

***

남산 화이트호텔 앰버서더 스위트 룸.

“천 실장님. 수고하셨어요.”

전화를 끊은 재준은 핸드폰으로 전송된 사진을 봤다.

“보스, 무슨 일 있습니까?”

서울의 야경을 즐기며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는 윌슨이 ‘누구지?’ 하는 표정의 재준에게 물었다.

“이게 누굽니까?”

재준이 핸드폰을 들어 올리자 모두 시선을 집중했다.

어?

저 미친놈이 왜?

상종 못 할 놈인데.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 걸 보며 윌슨이 말했다.

“폴 시그널입니다. 한국이 발전하니까 뭐 먹을 거 찾으러 들어왔나 보네요.”

폴 시그널?

“지옥에서 온 행동주의자?”

“맞습니다. 뭐, 별명만 들어도 누군지 대충 감이 오죠. 한마디로 개새끼죠.”

“그 정도인가?”

“주가를 올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놈입니다.”

“나랑 비슷하네.”

“보스랑은 격이 달라요. 보스는 미친놈, 시그널은 개. 보스가 한참 격이 높죠.”

이건 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격이 높은데 미친놈이라니.

하긴 개보다는 미친놈이 낫지.

낫긴 뭐가 나아, 정신 차려. 너 욕하는 거잖아.

음.

“이놈이 조만간 나를 공격할 거 같은데.”

네?

편안한 분위기가 삽시간에 와장창 부서져 내렸다.

“시그널이 왜요? 웬만하면 피하시죠. 완전 진흙탕 싸움이 될 텐데. 아니지, 진흙탕에 빠지는 건 보스가 될 겁니다.”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놈이 왜 보스를 건드려요?”

“신와대부 신성필 사장이 로운스타 스티븐을 만났는데 스티븐이 시그널과 만났대. 대충 그림이 그려지지. 신성필이 뭔가 꾸미려고 로운스타와 펠리컨 매니지먼트가 손잡게 만든 거 같지 않아?”

음.

모두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감 잡았다.

“시그널이 보스의 행적을 물고 늘어지겠군요. 요즘은 크게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예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요?”

음.

“많지. 아주 많아.”

장장 10년간 서형길 이사장이 하루가 멀다고 신문 기자들과 같이 술 먹어 주랴, 봉투 챙겨 주랴, 아주 바쁘게 산 게 다 내 흑역사 때문인데.

그런데 어쩌라고.

이미 흘러간 과거인데.

“그럼 큰일인데요. 그게 다 수면 위로 올라올 텐데.”

“올라오라 그러지, 뭐.”

“걱정 안 되세요? 폴 시그널은 대충 과거 일을 언론에 흘리지 않아요. 슬쩍 코멘트를 단다고요. 이런 사람을 믿을 수 있겠냐, 우리가 나서서 좋은 쪽으로 해결해야 한다 등등요.”

그렇겠지.

“자, 그러니 우리는 로운스타를 공격합시다.”

로운스타를?

지금까지 시그널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웬 로운스타.

“로운스타는 사모펀드잖아. 회사를 사냥하는. 하지만 펠리컨 매니지먼트는 주식을 매집하는 헤지펀드고. 그럼, 과연 이들에게 누가 돈을 대는 것일까?”

“신성필이 시작했으니 그쪽이겠죠?”

“맞아. 그럼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대출은 한계가 있으니까 채권을 발행하겠죠.”

“그렇지. 그럼 어디서 채권을 발행할까?”

“글쎄요. 그건 투자은행을 정하기 나름 아닐까요?”

“그래, 투자은행이 신와대부를 보고 언더라이팅을 해줄까?”

“그건 좀…….”

“그럼, 답은 나왔네. 채권은 로운스타가 책임질 거야.”

‘돈이 필요하니 채권을 발행해 주세요.’ 하면 ‘알겠습니다. 발행해 드리죠.’ 하는 투자은행은 없다.

채권은 수익률, 금리, 신용등급으로 가격이 정해지고 거래가 된다.

그리고 발행이 되면 끝이 아니다.

기껏 채권을 발행했는데 아무도 안 사주면 어떡해.

그보다 더 문제는 채권 가격이 마구 하락하면 이건 더 골치 아프다.

안 팔리면 그러려니 하지만 가격이 하락하면 만기에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투자은행은 이런 손실을 만회하려고 언더라이팅이란 기법으로 중개를 한다.

자, 채권을 발행하면 투자은행이 이를 전부 사들인다.

즉, 자기가 발행하고 자기가 사는 것이다.

물론 만기에 채권 발행을 요청한 고객이 스프레드(차익)을 주고 다시 사야 된다.

이러면 투자은행에 약간의 차익을 주지만 채권 하락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OO전자 해외에서 6,000억 채권 발행 성공’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놈이 OO전자 주식을 6,000억이나 샀을까 궁금했는데.

이게 다 언더라이팅으로 채권을 투자은행이 사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투자은행이 언더라이팅을 해주는 기업은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업이어야 한다.

신와대부 같은 기업은 채권 발행 자체가 안되고 펠리컨 매니지먼트는 헤지펀드라 한 번 잘못된 투자로 쫄딱 망할 수 있다.

재준과 싸워서 한 방에 훅 간 JP스탠리나 헨리스미스브라더스, 그랜드월처럼.

“채권 발행을 방해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신경을 쓰게 할 수는 있어. 한알금융지주가 로운스타가 가지고 있는 외화은행 주식 51%를 사들이려고 하잖아. 우린 여길 공격해야지.”

“어떻게요? 주식이 장내에서 거래된다면 중간에 가로챌 수 있지만 분명 장외에서 거래할 텐데.”

“주식은 필요 없고 우리도 시그널처럼 의문을 제기하는 거지. 금감원에.”

“금감원이요?”

“그렇지, 외화은행 주식이 오고 가려면 금융위원회가 승인해야 하거든. 하지만 로운스타가 재판 중이라면 승인은 미뤄지게 될 거야.”

“소송을 건단 말이죠.”

“응, 주가 조작이 있는 것 같다. 외화은행이 로운스타를 도와 BIS를 조작했다. 론스타는 산업자본이다. 탈세한 것 같다. 증거와 함께 끊임없이. 질릴 때까지.”

거의 승인 직전이지만 소송을 걸어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간다.

진흙탕 싸움하면 블록이잖아.

음. 이건 또 재미있어지겠네.

“블록, 미국으로 가. 뭘 해야 하는지 알지?”

“로운스타 본사를 머드 속으로 제대로 끌어들일게요.”

좋아, 아주 의지가 불타오르는군.

“윌켄, 로운스타가 어느 은행에서 채권을 발행하는지 알아봐 주고요. 분명 채권은 미국에서 발행될 테니.”

“오늘 안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발행하는 즉시 연락이 오도록.”

윌켄이 오랜만에 핸드폰을 들어 올려 톡톡 두드렸다.

“페렐라, 워서스틴. 8년 전에 외화은행과 외화카드가 합병을 했거든. 자료를 줄 테니 주가 조작 흔적을 찾아줘.”

“오케이. 없던 것도 만들겠습니다.”

“펠그리니, 외화은행 BIS 좀 살펴보고, 퀴니코는 퍼시픽 골프 그룹 허점 찾아서 공매도 준비하고.”

“네, 보스.”

퍼시픽 골프 그룹은 로운스타가 지배구조를 형성한 기업이다.

여기저기 다 건드려 정신이 하나도 없게 만들어 줄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