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겁 좀 내면서 일하죠. 그래야 될 것 같은데(2)
현재증권 회장실.
“할아버지.”
“아이고 우리 손자.”
어! 웬일로 나를 반기시지?
설마 나이 때문에?
“왜 이러세요? 괜히 걱정되게. 평상시대로 저를 노려보셔야죠. 너, ‘이놈 한국은 왜 왔어?’ 하고요.”
하하하하하.
“반가울 때도 있는 거다. 일본 정부에 한 방 먹였다며?”
“아, 그거요. 그것 때문에 기분이 좋으신 거군요? 난 또.”
참, 할아버지도 한국 사람이지.
“잘했다. 잘했어. 거, 매번 일본이 동북아의 중심이네 뭐네 하며 위세를 떨더니 이번에 아주 크게 혼나고 있더라.”
“아마, 그리스 사태가 커질수록 욕을 듬뿍 먹을 거예요.”
“근데 시바타증권 단독 행동이라는 발표는 왜 한 거야?”
“그래도 버틸 수 있게 발표 정도는 해 줘야 해요.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 줘야 숨죽이고 있거든요. 그거라도 없으면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빌 텐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핑곗거리 하나 만들어 준 거죠. 지금 저러고 있는 게 더 비참할 거예요. 차라리 싸우는 게 속 편하지.”
음.
의심스럽다는 듯 임병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또 왜요?”
“그냥은 안 해 줬을 거고 뭘 또 협박해서 강탈해 온 거냐?”
“할아버지도 참, 그냥 작은 거 몇 개 받아왔어요. 작은 거.”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오리슨, 유프로서비스, 더케이트러스트, SBY, 신와대부를 샀어요.”
“뭐? 그건…….”
이놈이 이제 하다 하다 대부업을 다하려고.
“일본 대부업체들인데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죠?”
“아주 난리를 치고 있다.”
“국회는 당연히 싸우느라 이자 제한법을 통과시키지 못했고.”
“이제 곧 통과될 거다.”
“기대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이자 제한법의 시행령 개정령안 시행되는 게 지금부터 7년 후인 2018년이에요.
2002년에 대부업법이 제정되고 전에 말했듯이 법정이자를 66%로 정했다.
2007년 49%, 2010년 44%, 2011년 39%.
줄어들긴 해도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
가뜩이나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건 가난한 서민인데 법으로 저 이자를 합법화시켜줬다는 건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들이 아니지.
거기다,
2016년 2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대부업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2016년 3월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고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통과했다.
봤지? 법 한번 통과시키는데 1년 반을 잡아먹고 있다.
뭐 하느라고? 싸우느라고.
지들이 조폭이야? 야쿠자야? 왜 맨날 쌈질이야?
“근데, 너 일본 대부업체는 야쿠자와 연관되어있는 건 알지?”
“알죠.”
“그놈들 수틀리면…….”
“할아버지. 야쿠자가 왜 대부업을 하는 줄 아세요? 그놈들 돈이 필요해서 하는 거예요. 돈 앞에서는 바로 꼬리를 말아 버리는 놈들이라니까요. 걱정 마세요. 저를 지키는 부대도 있는데. 만약에 저를 건드리면 일본 정부가 야쿠자 씨를 말릴 거예요.”
“일본 정부?”
너 또 거기다 무슨 협박을 하고 온 거냐?
이때,
띠리리링.
재준이 처음 보는 전화번호라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누가 나한테 전화를 해?
잘못 걸려 온 것 같은데.
“네, 임재준입니다.”
통화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준의 인상이 구겨졌다.
“알겠습니다. 가죠.”
통화가 끝나자 임병달이 물었다.
“어딜 가?”
“국회요. 금감원 국정감사 참고인으로요.”
“국회?”
거긴 아닌데.
거기서 깽판 치면 정말 답 없는데.
***
출근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신문을 들고 놀란 표정으로 무언가 열심히 읽고 있었다.
[임재준, 금감원 국정감사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 예정]
-어라, 임재준이 한국에 언제 왔어?
-전용기 타고 와서 아무도 몰랐나 봐.
-전용기를 샀어?
-보잉 747-8 VIP. 신문에 났잖아.
-와, 언제 그런 기사가 났대. 내 눈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때 유럽을 아주 들쑤셔 놓은 기사만 들어왔는데.
-그것보다 일본과 그리스 사건이 더 충격이야. 유럽에서 일본 죽이겠다고 난리야. 이제 일본 큰일 났다니까. 영국 헤지펀드들이 일본 채권 공매도하겠다고 결집하는 것 같던데.
-공매도를 떠들면서 하냐? 그냥 겁주는 거지.
-하긴. 그래도 일본이 반박도 안 하고 조용하잖아.
-지금 그리스 막 나가는데. 일본이 한마디라도 하면 정말 집중 공격받는다.
-근데 임재준은 왜 금감원 국정감사 참관인으로 가는 거야?
-뻔하지. 임재준이 있는 것만으로 금감원이 숨도 제대로 못 쉴 텐데. 그걸 노린 거지.
-정말?
-그동안 당한 게 얼만데. 거기다 임재준 너무 컸어.
-하긴 은행 말고도 투마로우 M&A팀이 인수한 자회사만 100개가 넘는다고 들었는데.
-거의 버피 해서웨이 수준이야.
-그보다 더 클지 몰라.
-국정감사 오늘 몇 시에 하는 거야?
-오전은 그냥저냥 지나갈 거고 점심 먹고 2시쯤 돼야 카메라에 보이지 않을까?
-어디서 이걸 보나?
-퇴근하고 집에 가면 국회 방송에서 재방송하겠지.
-그럼 맥주나 좀 사서 들어가야겠는데.
-나도.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니 국회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태세였다.
***
금감원장 국정감사.
국회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피감기관장 자리에 금감원장이 앉아 있고 마주 보고 있는 양쪽 진영에서 번갈아 죽이네 살리네를 반복하며 옥신각신 떠들어댔다.
일명 부산저축은행 사태.
임원들이 주도하여 120여 개나 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4조 5천억 원이 넘는 대출을 해줬다.
특수목적법인의 사장에는 임원들의 친인척을 바지사장으로 앉혔고 임원들과 임원 친인척들은 120여 개의 페이퍼컴퍼니에서 대량으로 월급을 타 먹었다.
솔직히 알면서도 안 막은 거지.
당연히 이 정도 해 먹으려면 어마어마한 로비가 있어야 가능하니까.
재준은 참관인석에 앉아 이 한심한 장면을 보면서 나오는 하품을 꾹 참았다.
카메라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또 자그마치 16개나 되는 저축은행을 영업정지 시키려는데 영업정지 명단이 사전에 유출되어 마지막까지 돈 잔치를 했단다.
하여튼 돈이라면 감방을 가는 한이 있어도 저지르고 본단 말이야.
어, 그런데 외화은행이 일본 금융청으로부터 3개월간 신규 외국환 송금업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외화은행이 한알은행에 인수되고 로운스타와 아직 법정 소송 중이구나.
재준은 이 문제는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증권과 직접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로운스타가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를 실행하더라도 한국이 이길 가능성이 컸다.
지루한 국정감사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임재준 대표님, 금감원에 바라시는 점 있으시면 한 말씀 해 주시죠.”
뜬금없이 바라는 점을 말하라고?
참관인이면 전문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디선가 마이크 하나가 재준에게 전해졌다.
톡, 톡, 아, 아.
테스트 후 재준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나를 왜 참관인으로 부르신 겁니까? 설마 금감원에게 조언이나 해주라고 부른 것 같지는 않은데.”
말투가 왜 저래?
국회의원들의 따가운 시선이 재준을 향했다.
그런데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그 뒤끝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재준을 건드릴 의원은 없었다.
재준은 정말 궁금한 표정을 짓자 중앙에 앉아 있는 위원장이 웃으며 재준에게 말했다.
“흠. 흠. 선진금융의 선두에 서 계신 분 아닙니까. 대한민국 안팎으로 경제위기가 심각해서 저희에게 조언해 주실 분이라 생각합니다.”
“선진금융이라……. 그럼 여기 계신 분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는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입니까?”
흠. 흠.
“대출 아세요?”
그 정도야 뭐.
“그럼 대출을 담보로 하는 채권은 아세요?”
어허, 이것 참.
“대출 담보로 하는 채권을 증권으로 만드는 건요?”
허, 허.
“부채를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도 모르실 거고.”
재준은 살짝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모든 말들이 방송을 타고 전국에 퍼졌다.
무식한 국회의원은 이 정도 알렸으면 됐고.
“금감원에게 바랍니다. 이번에 법정 금리를 44%에서 39%로 정하신 것 같은데 20%로 더 낮추는 건 어떨까요?”
드디어 아는 게 나왔다는 듯 의원 한 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 됩니다. 이미 39%로 확정 지었습니다. 이번 조치로 국민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아요.”
재준이 의원의 말을 잘라먹었다.
“사채를 누가 씁니까? 자금 상황이 안 좋은 자영업자나 국민건강보험 혜택이 모자라 거액의 치료비가 드는 환자 같은 사람들인데. 딱한 사정을 이용해 등에 빨대를 꽂고 피를 쭉쭉 빨아 먹는 대부업체에 39% 이자는 쇠 빨대를 선물하는 꼴 아닙니까?”
험, 험.
거, 표현이 너무.
“혹시 이 중에 2002년엔 66%였는데 10년간 국회의 노력으로 39%까지 줄였다고 자화자찬 같은 거 하실 분은 없죠?”
내가 알기론 임재준은 상대를 더 빨아 먹었다고 들었는데.
이거야 원, 말하기도 뭐하고 참 내.
국회의원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갈 때,
“지금 금감원 국정감사 시간입니다. 지금 대부업을 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어허, 위원장님. 참 모르시는 말씀하시네. 금감원에 조언을 해 주라면서요. 대부업 관리를 금감원이 하지 설마 재경부가 합니까? 아니면 대부업체들이 자진해서 편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를 바라시는 건 아니죠? 금감원장님, 한번 말씀해 보시죠. 금감원이 관리하는 거 맞죠?”
갑자기 질문이 들어오자 금감원장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맞습니다. 서민금융부서에서 맡고 있습니다.”
“맞다네요. 자, 의원님들. 내가 생각해도 39% 금리 너무 높아요. 도대체 39%의 기준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지난번 외환위기 때처럼 ‘부채율이 대충 200%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이런 근거 없는 숫자는 아니죠? 어, 거기 의원님 말씀 한번 해보세요. 어떻게 나온 겁니까?”
지목 당한 의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거 국정감사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왜 의원감사로 변한 거야?
“그건 저의 소관이 아닙니다. 이자 제한법을 발의한 의원들은 따로 있습니다. 어, 저기 김 의원이 이자 제한법을 발의한 의원입니다.”
지목된 의원이 눈알을 부라렸다.
저놈이, 왜 나를 끌어들여?
험, 험.
바톤을 넘겨받은 김 의원이 헛기침을 했다.
재준이 김 의원을 향해 손바닥을 내보이며 물었다.
“아이고, 여기 의원님이 이자 제한법을 발의하신 분이군요. 그래, 39%의 근거가 뭡니까?”
험, 험.
“그건 물가상승률과 은행 BIS를 따져서 대부업체 생존에 필요한 영업 이익을 고려하여 책정한 겁니다.”
뭐라는 거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다 가져다 붙이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의원님. 이거 생중계되는 거 아시죠? 방송 보고 있는 금융계 종사자들이 키보드 두드릴 준비할 것 같은 발언을 하시는데. 뭔 말인지 알고 하시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자, 그럼 다시 한번 괜히 전문용어 섞지 말고 일반인도 알아듣게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까. 물가가 상승하면 대출도 늘어나고 은행의 대출 조건도 까다로워져 대부업체로 몰릴 텐데. 그러면 대부업체 부실 채권 비율이 올라갈 거니까, 부실 채권 비율을 대비해서 계산한 겁니다.”
톡, 톡, 톡.
재준이 마이크로 손바닥을 두드렸다.
마치 한 대 치고 싶다는 듯한 표정으로.
“잘 들었습니다. 전 그럼 이만.”
뭐?
이대로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