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글로벌은 아무나 하는 줄 아나 보네(8)
일본에서 터진 투마로우 재준의 소식에 반응이 가장 빠른 곳은 역시 월가였다.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말만 하지 말고 던지란 말야. 일본 주식 채권 닥치는 대로 던져.
-던지면서 말하고 있거든.
-세상에 미래를 본단다. 미래를.
-설마 너 그걸 믿는 건 아니지?
-미래를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투마로우가 공매도 치면 주가가 떨어지는 건 확실해. 지금까지도 그랬고.
두 번째 반응은 프랑스.
[일본은 그리스 사태의 사실 여부를 확실히 밝혀야 할 겁니다]
프랑스 대통령이 일본에 대놓고 칼을 들이댔다.
[사라크방크 일본 기업 주식, 채권 전량 매도]
사라크방크를 시작으로 유럽 전 금융기관이 매도에 합류했다.
세 번째는 영국.
[일본과 그리스의 밀착이 사실이라면 유럽 전역을 위험에 빠트린 범죄 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할 것입니다]
[클레이스 일본 금융과 거래 중단 심각하게 고려 중]
꼭 투마로우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국가만이 아니었다.
재준에게 호되게 당한 스페인과 네덜란드 금융기관이 투마로우 행보에 합세했다.
한국은 당연히 선두에서 채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일본 내각관방장관실.
내각관방은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 정도.
으으으으으윽. 빠가야로.
쾅.
마코토 장관은 보고된 서류를 보고 책상을 내리찍었다.
“지금 유럽 경제 위기에 동일본 대지진으로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이런 일까지 터지면 어쩌라는 거야?”
“저희도 기자회견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카토가 아끼는 사무차관 히로키가 다급한 목소리를 내었다.
“히로키, 정말 정부는 시바타증권과 아무 연관이 없는 거 맞지? 우리 말고 어디 다른 방에서 일을 꾸민 거 아냐? 확실해?”
“확실합니다. 이건 투마로우 임재준이 꾸민 짓입니다.”
“데쿠노보(등신 새끼), 이게 다 노무라 그 마누케(얼간이) 때문이야. 아니 왜 자기가 그리스에 가서 그 지랄을 떤 거지?”
“노무라를 불렀으니 오면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이때,
똑똑.
“노무라 부사장 도착했습니다.”
“당장 들어오라 그래.”
노무라가 며칠을 잠을 설쳤는지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찾으셨습니까? 장관님.”
“일단 앉아 봐요.”
노무라가 앉자마자 마코토 장관의 심문이 시작됐다.
“왜 그리스에 간 겁니까?”
“그게, 들어서 아시겠지만, 일본 국익을 위해서였습니다.”
허.
마코토 장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일개 증권회사 부사장이 대일본 제국을 걱정해서 그리스까지 날아가 좌파정당 대표와 거래를 했다는 말입니까?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진짜 국익을 위해…….”
“쇼보이(허접하다), 당신 속이 너무 뻔하게 들여다보인다고.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 하지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 지금 전 세계가 일본을 매도하고 있단 말이야.”
“진짭니다. 전 국익을 위해 그랬습니다.”
무조건 우겨야 한다.
단 한마디라도 진실이 드러나면 그 길로 진짜 끝장이다.
“야로(이 새끼), 너 죽고 싶어 환장했나. 진짜 검찰이 탈탈 털어서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말을 할 거냐고. 이번 사건 아니라도 너 하나 죄 뒤집어씌우는 건 일도 아니야. 알아?”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차라리 그쪽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진짜.”
“그만, 좋아, 그런데 말에 의하면 누군가와 같이 갔다고 했는데. 그것도 미국인이랑. 누구지?”
“네?”
브라운.
이 새끼 아직도 그리스에 있지.
절대 일본으로 들어오면 안 돼.
“말하라고 누구랑 같이 갔는지.”
“지금 일본에 없습니다.”
“이름을 말하라고. 너, 지금 그놈을 보호하고 있는 건가? 현재도 일본의 자산이 팍팍 줄어들고 있는데 너랑 그놈 살겠다고 입을 다물려고? 그거 좋은 생각 아냐.”
히로키.
히로키가 마코토 장관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자, 봐. 우리가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이미 자료 사진은 다 확보했어. 지금도 그리스로 날아가서 수소문하고 있고. 찾으면 너는 살아 있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들다는 걸 알게 해 주겠어. 뭐, 국익?”
노무라는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그래도 시바타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을 가시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고 어떻게 말을 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이때,
똑똑.
“투마로우 임재준 상 전화입니다.”
“그래? 뭐라는데?”
“지금 방문해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만나야지. 가능하다고 전해.”
“그리고 노무라 보내지 말고 같이 보자고 합니다.”
“어?”
이놈 봐라.
노무라를 따라 왔구나.
그게 문제가 아니지.
미행했으면 어때, 지금은 놈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렇게 한다고 해.”
뭐?
“장관님.”
노무라가 마코토의 소매를 잡았다.
“저리 치워. 어디, 임재준의 말을 들어 보면 알겠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어. 그게 네가 살 길이라고 믿고 있다면 믿음을 가지라고.”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노무라는 억울함을 물리지 않았다.
갈 데까지 가는 거다.
임재준이 내 생각을 알고 있을 리 없잖아.
차르라스에게 보낸 1억 달러 흔적도 철저하게 지웠다.
마코토가 히로키와 무언가를 속삭이고 노무라는 그 둘을 곁눈질하며 답 없는 머리를 굴렸다.
이때,
똑똑.
“임재준 상 도착했습니다.”
“들어 오라 그래.”
삐걱.
문이 열리고 재준과 팀원이 들어왔다.
마코토와 히로키가 마중을 나가는데 재준의 뒤에서 미국인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어?
히로키가 반응했다.
저런 빠가.
노무라가 벌떡 일어나 미국인을 노려봤다.
브라운, 이 친피라(양아치).
마코토 장관은 히로키와 노무라의 반응을 보고 그제야 미국인의 얼굴을 알아봤다.
“노무라와 같이 있던?”
“네, 맞습니다. 어제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노무라가 청부업자를 시켜서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이 정도 구라는 쳐야 앞뒤 안 가리고 설치겠지.
“뭐요? 정말이야, 노무라?”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브라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히로키, 이놈을 당장 경찰에 넘겨.”
잠깐만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재준이 마코토의 흥분을 제지했다.
“노무라의 말을 들어봐야지요. 장관님, 이렇게, 이렇게 숨을 좀 쉬세요. 너무 화가 나셨어요. 그렇죠, 그렇게 숨을 길게 내뱉고 들이쉬고. 좋아요. 좋아.”
후아. 후아.
도리어 재준이 이 방의 주인인 듯 자리를 권했다.
“자,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해 볼게요.”
“고맙습니다.”
이 방 주인은 당신이야.
“자, 먼저 노무라는 그리스에서 일본의 국익을 위해 차르라스를 선동한 거 맞습니다.”
“정말입니까? 정말 국익을 위해서?”
“그럼요. 시바타 자산도 일본 자산이니까. 그렇죠, 노무라. 당신 시바타 자산을 안전하게 빼돌리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한 거잖아요. 시바타 자산도 일본 자산이니까, 국익 맞죠. 안 그래요 장관님?”
마코토가 노무라를 노려봤다.
“이 말이 사실인가?”
“아닙니다. 저는 오직 일본 국익을 위해…….”
“끝까지 솔직하지 못하군. 알았어. 계속 똑같은 말만……. 그만 떠들어. 차라리 임재준 상의 말을 더 듣는 게 낫겠어.”
“잘 생각하셨어요.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하는 건 지겹죠.”
“사건의 전말은 알겠고. 지금 전 세계가 일본을 매도하는 사태를 진정시킬 방법이 있을까요?”
“그걸 왜 제게 물어보십니까?”
후.
마코토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지, 지금의 사태를 진정시키려면 임재준이 말을 번복해야 한다.
그걸 해 줄 수는 없겠지.
“그런데…….”
재준이 말을 잇자 시선이 집중됐다.
“시바타증권 하나 없애버리면 해결은 되잖아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히로키가 마코토에게 다가와 무언가 속삭였다.
음. 그렇게.
“똑똑한 부하를 두셨네. 대충 짐작을 하셨으니 까놓고 말할게요. 모든 죄를 시바타증권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뒤집어씌우고 와다나베와 노무라만 끌어내리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음, 음.
마코토는 헛기침을 하고 히로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걸 일본 정부가 하면 얼마나 싸구려가 되겠어요. 또한 아무도 믿지 않을 거고요. 전부 조작이라고 다시 여론이 들끓겠죠. 안 그래요?”
음, 음.
이번에도 마코토는 헛기침을 하고 히로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저랑 물물교환을 하나 하죠.”
“물물교환이라면 주고받자는 겁니까?”
“뭐, 지금 저희가 공매도를 쳐서 벌어들인 건 번외로 치고.”
“실력이니 인정합니다.”
“저희가 자체 조사를 했더니 시바타 단독 범행이다. 어때요?”
“실수를 인정하겠다는 겁니까?”
“맞아요. 대신에 물물교환이니 받아갈 게 있습니다.”
“뭐죠?”
“오리스, 유프로서비스, 케이트러스트, SBY, 신와대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이건…….”
“맞아요. 일본에서 활동하는 대부업체들입니다.”
“히로키.”
히로키가 재준을 보며 무언가 머리를 굴렸다.
대부업체로 일본을 일부라도 쥐고 있겠다.
가뜩이나 귀찮은 놈들 넘겨주는 것도 상관없지.
하지만 뭐가 께름칙하단 말이야.
대부업체를 쥐고 흔든다면 일본 바닥 경제가 흔들린다.
대부업이 사회적으로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서민의 탈출구니까.
불법적인 이자나 불법 추심이 문제지.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만. 대부업체 이자는 이미 24%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 이상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죠. 24% 이자가 어딘데요. 제가 거두면 연체에 대한 복리 이자도 철폐할 겁니다.”
“그건 일본 정부도 못한 일입니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거죠. 내가 깔끔하게 처리할 테니 구경만 하세요.”
“그렇다면…….”
“그럼, 공매도는 이쯤 해서 청산하겠습니다.”
히로키는 마코토 장관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서로 이익이 되는 물물교환입니다.”
안 돼.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무라가 벌떡 일어섰다.
“지금 시바타를 버리시는 겁니까, 장관님.”
마코토는 노무라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이 작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히로키. 당장 경찰을 불러. 연행부터 하자고.”
“하이.”
히로키가 전화를 들어 비서실 직원들을 호출했다.
안 돼.
“정말 시바타를 버리시는 겁니까? 시바타가 쓰러지면 일본 금융계가 흔들립니다. 제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주십시오.”
“노무라 네 말대로 대일본 국익을 생각한다면 네가 희생해도 되는 거 아닌가?”
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국익을 위해선 비참한 감방 생활도 나름 의미가 있지.
“장관님,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시바타를 버리시면 안 됩니다.”
보다 못한 재준이 나섰다.
“거 참, 말귀를 못 알아 처먹네. 노무라 당신만 죽으면 된다니까. 시바타는 죽지 않아. 너, 너만 죽으라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냐?”
“임재준, 이거 다 네 계획인 거 안다. 처음부터 다 네놈이 만든 거잖아.”
재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노무라를 쳐다봤다.
“정말? 내가 유럽 금융위기를 만들고 동일본 대지진을 일으켰다고? 그럼, 이런 대단한 능력을 가진 내가 겨우 너 하나 잡겠다고 일을 벌였다? 이게 말이 되나?”
뭐?
노무라는 뭐라 더 할 말이 없어서 입만 벌리고 있었다.
끝난 건가.
벌컥.
덩치 좋은 비서실 직원 여럿이 들어와 노무라 옆에서 팔짱을 끼었다.
“데리고 나가!”
장관님.
질질질 끌려가는 노무라는 마지막까지 발악했지만,
어유, 무슨 비서가 헬스만 한 거야?
저 덩치 어쩔.
장관님.
장관님.
노무라의 목소리가 에코를 머금고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