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47화 (147/477)

제147화 글로벌은 아무나 하는 줄 아나 보네(7)

일주일 후.

나고야 국제공항.

블랙워터가 제안해서 1억 3천만 달러를 주고 구매한 재준의 전용기 보잉 747-8 VIP 한 대가 착륙했다.

게이트에 수백 명의 기자가 재준이 나오기를 긴장하고 있었다.

-임재준이 무슨 일로 일본에 오는 거야?

-최소한 저 미친놈이 지진 후원금 주려고 온 건 아니라는 거지.

-대지진 전에 일본 기업들 대규모 공매도를 쳤다는데.

-일본 기업 몇은 날아가게 생겼어.

-중요한 건 일본 채권도 공매도를 쳐서 채권 가격이 더 떨어졌어. 죽어라 죽어라 하는 거지.

-그럼, 공매도로 하락한 주식을 쓸어 담으려고 오는 거 아냐?

-그건 미국에서도 할 수 있는 거야. 굳이 일본까지 왜 와서 주식을 사냐? 뭔가 이상해. 위험한 냄새가 난단 말이지.

-무슨 냄새?

-대지진이 일어나는 시간에 시바타증권이 개박살 났어.

-그건 또 무슨 얘기야?

-시바타 투자은행 인력 7,000명 일주일 만에 빠져나갔대.

-뭐? 근데 이렇게 중요한 사실이 왜 뉴스에 안 나온 거야?

-시바타에서 언론을 틀어막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실인 건 확실한 거 같아.

-그럼 시바타 투자은행은 망한 거야?

-그렇다고 봐야지. 철수할 수밖에 없어. 그나마 일본 내에서 운영하는 M&A팀 정도만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임재준 저러다 일본에서 테러 당하는 거 아냐?

-야, 일본인 중에 그런 강심장이 있기는 하고?

-하긴 귀찮은 일에 엮이는 건 나도 싫으니까.

-어, 나온다.

팟팟팟팟팟팟.

플래시가 터지고 재준이 기자들 앞에 섰다.

기자들의 마이크 수십 개가 앞으로 나오며 질문이 쏟아졌다.

-일본 지진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리스 사태 때문에 유럽이 시끄러운데 이번에도 투마로우는 피해가 없나요?

-영국에 세운 브랜트앤리처드가 일본 채권을 공매도했다는데 정부와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갈 예정인가요?

-일본 방문 후 한국으로 가시는 건가요? 역시 선진국인 일본을 먼저 들러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가만, 거기 마지막 질문.

재준이 방금 질문한 기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기자님, 선진국인 일본에 들른 이유는 일본 금융이 투자은행 분야에서 하도 지랄 맞게 못 해서 좀 도와줄까 하고 들른 겁니다. 아니, 맞지도 않는 옷을 걸쳐 입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는 폼이 얼마나 꼴사납겠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일본 사람이 킬트를 입고 행진하는 모습을요. 웃기죠?”

킬트, 영국 남자가 주름진 스커트 치마를 입고 악기를 연주하며 행진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거다.

그 주름진 치마가 킬트다.

큭.

기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상상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중에도 차가운 머리를 가진 기자는 존재하는 법.

“방금 일본 금융을 모독하신 것 같은데. 취소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재준이 그 기자를 향해 빙글 웃었다.

“내가 방금 말했잖아요. 투자은행 분야라고. 그럼 기자님이 말씀해 보세요. 투자은행이 뭔지 아세요?”

“그건.”

“모르잖아. 경제부 기자도 모르는 데 일본 금융인들은 알겠어요? 내가 시간이 좀 남았으니 알려줄게요. 투자은행 직원은 당신들이 좋아하는 도장, 그 도장을 한 손에 결재 서류를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말단이라도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며 또한 성공 시에는 자신이 보상을 받는 거죠. 이해하셨죠. 근데 일본 금융인 중에 자신이 책임지고 딜을 할 수 있는 말단이 있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고 기자가 대답했다.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난이시죠? 그런 말장난은 다른 곳에 가서 하세요.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웃기는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네요. 그런 자세야말로 일본은 투자은행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거예요? 알겠어요?”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전 기자로서…….”

“그만 떠들어요. 당신은 나랑 말을 섞을 급이 안돼. 앞으로 일본에 있는 동안 투자은행이 뭔지 보여줄게요. 나중에 기사나 잘 써 주세요.”

재준은 기자들 사이를 가르며 지나갔다.

***

시바타홀딩스.

“오늘까지 인수 은행 재무제표 요약해서 정리해 놓고, 그리고 하지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어. 엑셀 사용하지 말라고.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야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거 아니야. 어렵다 어려워. 야, 야. 가즈끼, 넌 왜 사토루한테 일을 미루는 거야? 네가 해 보란 말이야. 스스로.”

로건은 M&A 팀원들에게 일일이 하나하나 지시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얼추 지시가 마무리되자,

“나 머리 좀 식히고 올 테니 모두 한 시간 안으로 끝냅시다. 좀.”

옥상에서 바람이라도 쐴까 하다 아예 건물 밖으로 나가기로 맘을 먹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다.

일본어로 수군대는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일본인들과 일하면서 알아듣게 된 몇 개의 단어가 자꾸 들렸다.

양키(양아치).

빠가(멍청이).

칙쇼(짐승).

우세로(꺼져).

키모이(기분 나빠).

그래, 이해한다.

성공보수라고 너희들 받는 십 년 치 봉급을 한 번에 턱턱 받고 있으니 시기할 만도 하지.

이 짓도 못 해 먹겠네.

그럼 일이라도 똑 부러지게 잘하든가.

시키지 않으면 멍하니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팀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에이, 나가서 커피라도 마시자.

로건은 건물 밖으로 나와 한적한 거리를 거닐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산책하는 이들이 거의 사라졌다.

후쿠시마 방사능이 여기까지 오진 않을 텐데.

일본 사람들 참 겁도 많아.

동일본 대지진 후 원자력 발전소에 쓰나미가 덮쳤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지만, 정부가 발 빠르게 잘 처리했다고 들었다.

잘 처리하긴 개뿔.

내가 전 세계를 다 돌아봤는데 가장 믿을 게 못 되는 게 일본 정치인들이야.

로건이 겪은 일본인은 겉으로 웃으며 뒤에선 잘못된 일을 숨기기 바쁜 나라였다.

중국은 대놓고 저지르고 일본은 안 한 척 오리발을 내밀었다.

10분을 걷다 보니 익숙한 브랜드 커피 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찰리, 나야. 영국은 어때? 그리스 때문에 어렵지는 않아?”

-난리지. 유로존 탈퇴한다고 무슨 국민투표를 한다나 어쨌다나. 국민들은 폭도 수준이고. 영국으로 오길 정말 잘했지. 거기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근데 왜 전화 걸었어? 설마, 벌써 영국으로 오려는 건 아니지?

“왜 아니겠어.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이야.”

-올 거면 빨리 와. 조금 있으면 스페인에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는 것 같던데.

“스페인? 그건 또 무슨 이야기야?”

-투마로우가 ABC암로 주식을 매집했잖아.

“그래? 처음 듣는 소린데.”

-아, 너는 모르겠구나. 아무튼 그래. 그런데 ABC암로 주주들이 산타떼를 고소하고 산타떼도 ABC암로를 고소하고 소송에 소송으로 이어졌거든.

“그래서?”

-큭큭큭, 투마로우가 둘 다 거저먹는 계획을 꾸미고 있어.

“이런 걸 나한테 이야기해도 돼?”

-임재준이 그러더라. 될 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이 알도록 이야기를 퍼뜨리라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 그런 일은 되도록 소문나지 않게 처리하는 게 원칙 아닌가?”

-그러니까 임재준이지. 괜히 투마로우라는 제국을 건설했겠냐? 암튼 이제 대놓고 산타떼를 공격할 거야. 그러니까 정리하려면 빨리하고 와. 재밌는 일 다 끝나고 구경만 하지 말고. 끊는다.

끊어진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본 로건.

아, 씨. 이 녀석들 신났는데.

투자은행이면 저 정도 사건은 만들어야지.

이거 돈도 안 되는 중소은행 인수나 매달리고 있고.

거기에 눈칫밥은 덤이고.

나도 가야 하는데.

한 건을 하고 잘리더라도 IB 뱅커는 IB 뱅커답게 살아야 하는데.

커피가 나오고 한 모금 마시려는데 TV에 임재준이 공항에서 기자들을 향해 참교육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야, 진짜 저 인간, 대단해.

일본 다음 스페인이란 말이지.

일본은 어떻게 처리하려는지 궁금하네.

근데 브라운은 그리스에 가더니 안 들어오는 거야?

아니면, 이 녀석도 영국으로 가버린 거 아냐?

아, 정말 답답하네.

***

일본 힐튼 호텔 그랜드 홀.

투마로우는 기자회견을 연다고 각 언론사에서 몰려들었다.

기자들은 필기도구와 카메라를 점검하며 숨죽이고 재준을 기다렸다.

뚜벅, 뚜벅, 뚜벅.

재준이 단상에 들어서고,

톡 톡.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험, 험.

안주머니에서 4등분으로 접힌 A4 용지를 꺼냈다.

“오늘 투마로우는 일본 정부의 훼방으로 그리스에서 1,000억 달러를 벌어들일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이에 ISDS(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를 진행하겠습니다. ICSID(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에 중재를 요청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뭐?

일개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팟팟팟팟팟.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의 손이 빠르게 올라갔다.

여기, 여기, 여기.

재준이 기자 하나를 찍었다.

거기.

“아사히신문의 쇼타 기자입니다. 일본 정부가 어떤 훼방을 했는지 상세히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좋은 질문이에요. 아주 상세히 알려드릴게.”

재준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녹음기?

“어디서 얻었는지는 묻지 말고. 나에게 정보 제공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딸깍.

-시바타증권이라. 반갑기는 한데 왜 저희 당을 찾아오신 겁니까?

-투자할까 해서요.

.

.

.

-일본 국익에 해당하는 일이니까요.

.

.

.

-차후에 유럽연합에서 구제금융을 조건으로 채무를 삭감할 것입니다.

-일본을 거기서 제외해 달라. 그겁니까?

-사실 저희 유럽과 관계없는 나라니까요.

-일리는 있는 말입니다만, 유럽연합에서 그걸 용인하겠습니까?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시간을 끌다 보면 해결책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

.

딸깍.

재준이 녹음기를 끄고 쓰게 입맛을 다셨다.

“여러분도 들어서 알겠지만 시바타증권이 그리스 시리자당에 가서 폭동을 유도하고 있잖아요? 이게 말이 되나? 일본 국익을 위한다. 이 말로 미루어 보아 나는 시바타증권이 절대 혼자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다들. 이건 일본 정부가 분명히 뒤에서 사주한 거 아닌가? 아무리 봐도 그런데. 잘 해결될 수 있는 그리스 사태를 시리자당에게 자금을 투입해서 다시 알 수 없는 정국으로 만들었잖아. 이거 어떡할까요? 투마로우 피해액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사실 투마로우는 그리스에 하나도 투자하지 않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중재 비용이야 지불하겠지만.

아니면 그만이지.

말 그대로 중재인데.

여기, 여기, 여기.

기자들의 손이 또다시 올라갔다.

거기.

“투마로우의 대대적인 공매도도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행동이십니까?”

“저 기자 양반, 머리가 안 좋은 겁니까. 시력이 안 좋은 겁니까? 날짜를 보세요. 날짜를. 우리가 공매도한 시점은 한참 전이에요. 그 전에 이미 공매도를 시작한 거잖아요.”

“아니면 미래를 읽는 능력이 있으신 건가요? 지금까지 투마로우의 투자는 모두 임재준 상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 모든 행동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일본 증권사와 기업 심지어 일본 국채에도 공매도를 쳤습니다. 진짜 미래를 읽는 능력이 있으신 건가요?”

재준이 기자를 빤히 보며 말했다.

“네.”

네?

찍어.

팟팟팟팟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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