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42화 (142/477)

제142화 글로벌은 아무나 하는 줄 아나 보네(2)

또 일을 벌이자 모두 매서운 눈매로 쳐다봤다.

재준은 이 어색한 상황을 일로 마무리하려 했다.

“윌켄, 영국 진행 상황은 어때요?”

“클레이스 주도로 로얄뱅크와 포르티은행 합병이 마무리 중입니다. 합병이 끝나면 은행명은 로얄클레이스포르티로 진행하…….”

“아니, 아니, 아니요. 무슨 합병만 하면 자꾸 이름을 늘리는 건데. 그냥 단순하게 갑시다. 로얄클레이스포르티가 뭡니까? 말할 때마다 저 긴 은행 이름을 말하라고요? 힘들다고요.”

“그런가요?”

“당근.”

“네? 캐롯이요?”

“아, 그냥 넘어갑시다.”

“네, 그럼 로클포로 하면…….”

“아니, 아니, 아니라니까요. 그건 발음이 어렵고, 로클포, 로클포, 봐요. 혀가 꼬여. 로얄이나 포르티는 인수당하는 거니까 그냥 클레이스로하죠. 발음하기도 좋고.”

“알겠습니다.”

하나도 안 꼬이는데.

로얄클레이스포르티, 로얄클레이스포르티. 괜찮은데.

“앤드류, 스페인은요?”

“거긴 좀 암울합니다. ABC암로 주주들과 법정 소송이 불거지면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니, 이거 웬 반가운 소식이야.

“지금 ABC암로 주가 많이 떨어졌죠?”

“많이가 아니라 그냥 바닥을 기어 다닌다고 봐야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ABC암로도 충격이 큽니다. 지금 주가가…….”

“2.1유로요.”

페렐라가 대신 대답했다.

“그래? 우리가 오기 전엔 400유로였는데. 아주 많이 떨어졌구나. 아주 많이.”

워서스틴이 재준의 말에서 음흉함을 느끼자마자 입을 열었다.

“매집할까요?”

“아주 많이 좋은 생각이네. 눈치채지 않게 전부 사들여.”

“눈치채지 않게 어떻게 전부 사들입니까?”

“그런가? 눈치 좀 덜 채게 전부 사들여.”

“알겠습니다.”

인수 가격이 960억 달러였는데, 5억 달러면 충분하겠네.

“그리고 퀴니코, 블록과 함께 리살은행 인수작업 마무리하고.”

“네.”

“혹시 돈 달라고 하면 물어 버려. 꽉.”

“큭큭. 네.”

리살은행도 CDS로 인한 대출이 자산가치를 웃돌았다.

그냥 가져와서 리빌딩 해 주는 것만도 고맙다.

“펠그리니, 우리가 CDS로 얼마를 벌었지?”

“보스가 말한 것보다 좀 더 사들였어요. 1,200억 달러. 대략 998% 수익이 났으니까…….”

“그냥 1,000% 수익이라고 하자. 998%면 계산이 복잡하잖아.”

“뭐가 어려워요. 1,200억 달러에 10곱하고 24억만 빼면 되는데. 1조 천9백7십6억 달러요.”

“어, 그래.”

고집은. 나도 수학 좀 하거든.

“이 돈이 전부 대출로 묶였단 말이지. 이걸 어떻게 풀어야겠는데.”

“ABS 같은 대출 채권으로 만들어서 팔까요?”

“그러면 구속력이 떨어지는데. 그러지 말고 빚쟁이들에게 대출만큼 증자해서 가져오라고 해.”

“목줄을 쥐고 있으려고요?”

“그렇지. 돈 못 버는 놈들은 가차 없이 잘라 버리게. 이만큼 살려 줬는데 개처럼 뛰어다니면서 돈을 벌어야지. 내 피 같은 돈을.”

개처럼 뛰어다니면서라…….

모두 어쩐지 재준의 말에 자신들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이때,

띠링.

“네.”

“시바타홀딩스에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재준은 팀원들에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모두 알았다는 듯이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벌컥.

노무라는 영국 IB 뱅커라는 게 무색하게 쥐새끼처럼 쪼르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노무라 부사장.”

재준의 말에 노무라는 멈칫했다.

내 이름과 직책을 어떻게 알고 있지?

내가 부사장이 된 게 3일 전인데.

“아, 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임재준 씨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엔 순식간에 몇 개의 은행은 인수하셨던데. 대단하십니다.”

뭐야, 이 아부는.

“에이. 거, 뭐 구멍가게 몇 개 인수한 걸 가지고 명성이라니요. 자 앉아요.”

“굉장히 겸손하십니다.”

헨리스미스브라더스를 구멍가게라고 하기엔 좀…….

“자, 술이나 한잔할까요?”

“네? 술이요?”

내가 뭐하러 온 줄 모르는 건가?

설마 그냥 놀러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왜 싫어요? 술 못 마시나? 사나이가 아닌가?”

“아닙니다. 술을 좋아합니다. 다만 지금은…….”

“알아요. 협상하러 온 거. 그러니까 술이나 마시면서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야죠. 술만큼 진솔한 대화 하기에 적당한 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다른 기업들을 다 퇴짜 놓은 건 알죠? 왜 그랬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거 다 내가 술 한잔하자고 하니까 피해서 그런 거예요.”

“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니지, 임재준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 사람을 대하면 안 된다.

일단 보조를 맞추자.

“알겠습니다. 한잔하겠습니다.”

재준이 바에서 위스키 한 병과 잔 두 개를 가져왔다.

이렇게 좋은 날엔 축배를 들어야지.

이거 완전 적과의 동침인데.

병이 탁자에 세워지고 노무라가 라벨을 봤다.

더 맥칼렌 1926 파인 앤 레어?

10만 달러짜리 술을?

“자, 술이 들어가야 긴장도 풀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술술 나오는 겁니다.”

“이거 진짜 마셔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혹시 마시면 협상이 결렬되거나 그러는 거 아닙니까?”

푸훕.

나가는 중에 무심코 노무라의 말을 들은 퀴니코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었다.

쏘리. 퀴니코가 손을 흔들고 나갔다.

재준이 신경 쓰지 말라고 손을 흔들며,

“말을 해도, 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 누구처럼 뒤통수나 치고 수출 규제하고. 그런 짓 안 해요.”

“수출 규제라뇨?”

“하하,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그냥 흘려듣지 뭘 물어봐.

나중에 혼내 주긴 해야지.

아니지, 그럴 필요 있나.

어차피 그전에 일본 금융을 무너뜨릴 텐데.

“자, 건배.”

재준이 술을 한 번에 들이켜자 노무라가 꿀꺽 침을 삼킨 후 재준을 따라서 위스키를 한꺼번에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크.

뜨거운 열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고, 입안에 감도는 10만 달러짜리 여운을 즐겼다.

“어때요. 기분이 나아졌죠.”

“네, 정말 그렇습니다.”

“자, 그럼, 이제 말해 봐요. 아시아를 가져갈 겁니까? 유럽을 가져갈 겁니까?”

아시아와 유럽이라.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요? 둘 다 가져가면 나야 더 좋죠.”

“그럼 둘 다 인수하겠습니다.”

“오, 통이 크네. 역시 시바타구나. 돈이 많아.”

“투마로우에 비하면 아직 미약합니다.”

“자, 한 잔 받으시고.”

재준이 술잔을 채우고 다시 한 번에 들이켰다.

노무라도 지지 않으려고 한 번에 들이켰다.

마시면서도 좀생원처럼 자꾸 위스키 가격이 맘에 걸렸다.

10만 달러짜리를 이렇게 마셔도 되나.

“이봐요. 노무라, 아시아 사업 부분 가격이 얼마인지 알죠?”

“네? 아, 네. 그럼요. 100억 달러에…….”

“됐고.”

“네?”

“아시아 전역에 있는 자산은 그냥 우리가 팔 테니 인재만 데려가세요. 2억 2500만 달러. 어때요?”

“네? 정말입니까?”

건물은 필요 없지.

내가 바라는 건 인력이지 건물이 아니다.

이게 웬 횡재지.

“자, 지금부터 녹음합니다. 나중에 다른 말 하면 안 돼요.”

“전 일본 사람입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킵니다.”

“아, 네. 네.”

일본 사람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지.

자기들끼리만.

“그리고 유럽도 인재만 데려가면.”

재준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노무라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했다.

이것도 2억 달러?

그럼 아주 좋을 텐데.

“2달러.”

“네? 장난하십니까?”

“장난이라뇨. 비싼 술 먹고 왜 장난을 칩니까?”

“근데 2달러라뇨. 부채를 인수하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조건이 있죠. 내가 유럽의 그 뛰어난 인재들을 그냥 선뜻 내주겠어요?”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임재준이 그냥 줄 리가 없지.

“그 조건이란 게 유럽 인재들을 2년 동안 지금까지 받던 봉급과 보너스를 유지해 주는 겁니다.”

“네? 정말입니까? 정말 그게 다입니까?”

“네. 왜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없던 일로 하고.”

“아니요. 그럴 리가요. 무조건 저희가 데려가겠습니다.”

“역시 시바타군요. 그럼 계약합시다.”

자, 폭탄을 듬뿍 안겨 줄게.

***

일본 언론은 난리 났다.

[시바타홀딩스, 헨리스미스브라더스의 아시아 및 유럽 사업체에서 인재 영입 성공. 이로써 아시아 11개국과 유럽 19개국의 7,100명이 시바타증권에 자리를 잡을 예정. 일본에서도 진정한 글로벌투자은행 탄생]

[역대급 인수. 일본 역사상 그 어떤 금융기관도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낸 적이 없는 사건]

[태평양전쟁 패배 후 일본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

[시바타홀딩스, 유럽에 계열사 시바타홀세일디비젼(이하 시바타) 창설]

일본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근데 이 우물 안 개구리가 아직 금융위기가 가시지도 않았는데 축포를 터뜨렸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회사 주가가 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는데.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시바타의 주식도 매일 신저가 행진을 이어가는데.

***

AAG 빌딩 66층.

[시바타는 이제 글로벌투자은행이다]

재준은 신문에서 시바타 기사를 다 읽고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탁자에 던졌다.

윌켄이 재준을 보며 가슴 한편에서 묘한 긴장감이 기어 나왔다.

”시바타가 돈을 벌었는데 왜 좋아합니까?“

”열심히 올라가야 내려올 때도 신나는 법이니까요. 초연하게 되지가 않네요.”

“근데 헨리스미스브라더스 인재들 아깝지 않습니까?”

재준이 할 말을 정리하는 듯 신문을 톡톡 두드렸다.

“전혀.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만 부리는 놈들은 필요 없어요.”

“능력이 없진 않은 것 같은데요. 신문에 났듯이 이번에 큰 건의 딜을 성사시켰잖아요.”

“알아요. 그게 독이 될 겁니다.”

시바타의 첫 빅 딜.

영국 광산회사 엑스트라타의 인수, 합병 건이다.

자그마치 900억 달러의 초대형 사이즈였다.

자문회사 다섯 군데 중 하나에 시바타가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신문에 시바타도 글로벌은행이라고 떠들어댔다.

“독이라니요?”

모든 일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퀴니코가 재준에게 물었다.

“그건 시바타가 한 게 아니라 헨리스미스브라더스가 한 거잖아. 안 그래?”

“음,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들은 이미 시바타 소속이잖아요. 그러니까 시바타가 한 것도 맞는 것 같은데.”

“아니지, 그 정도 빅딜을 일본인들만으로 할 수 있었을까?”

“그건 또 아니죠.”

“바로 그거지. 시바타 안에 두 개의 세력이 생길 거야. 그리고 그 틈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겠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폭탄을 심어 놨잖아.”

“폭탄이요?”

언제? 어떻게?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자극적인 단어가 나오자 워서스틴이 나섰다.

“내가 유럽 인재들을 시바타에 보내면서 2년 동안 봉급과 보너스 유지해 달라고 했잖아?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계약을 했고. 이번 빅딜에 참여한 뱅커들이 성공보수로 얼마를 받을 거라 생각해?”

“당연히 몇백만 달러는 받겠죠.”

“그렇지. 이봐 블록, 아시아에서 성공보수라는 보너스가 있나?”

블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뇨. 그냥 정해져 있는 보통 보너스예요. 월급의 200%나 300%.”

“봐, 그렇다잖아. 성공보수는 미국이나 유럽 뱅커들이 받는 거야. 일본은 그런 돈을 주질 않아. 자, 이제 일본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능력이 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자신들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돈을 만진 이를 시기할까?”

“그럼, 일본에 성공보수라는 폭탄을 심으신 겁니까?”

“맞아. 그건 분명 우리한텐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질투가 될 거야.”

의아한 듯 고개를 까딱이던 페렐라가 물었다.

“그런다고 무너질까요?”

“자, 월가를 봐. 글로벌이란 단어를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났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