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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39화 (139/477)

제139화 수익률이 얼마라고요? 1,000%요?(9)

들이대긴 했는데 걱정했잖아.

너희들이 무조건 ABC암로를 인수해야지.

그리고 다 같이 무덤 파고들어 누워야 내가 쉽지.

산타떼 회장 에밀리아노는 콧방귀를 끼며 재준을 노려봤다.

“이제 됐습니까?”

“누가 뭐래요? 전 걱정이 돼서 한마디 한 것뿐인데. 마르티네즈, 진행하시죠. 미국 리살은행도 산타떼가 인수한다고 하니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마르티네즈의 눈빛이 재준에게 향했다.

네덜란드 리테일은 남겨준다고 했지 않습니까?

재준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계속하세요.

당신을 위해 남겨 놓을 테니까.

이 모든 상황을 눈에 담고 있는 흐닝크는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안 돼.”

갑작스러운 고함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이 매국노 같은 놈들. 어디서 감히 내 은행을 팔아먹겠다는 거지? 절대 안 돼.”

재준이 살짝 다른 사람들에게 가만있으라는 손짓을 하고 흐닝크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어디 아프세요? 그만 집에 가셔야 할 것 같은데.”

“임재준. 너. 내가.”

“내가 뭐?”

재준이 주주들을 향해 돌아섰다.

“여러분,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 보세요. 자기 은행이래요. 자기 은행. 여러분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겁니다. 이런 걸 보고 우린 쓰레기라고 부르죠. 인간쓰레기.”

주주들의 얼굴이 좋지 않게 변했다.

흐닝크가 잘못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동양인이 자국 제일의 은행장을 단죄하는 모습은 그리 좋게 볼 수가 없었다.

-당신이 뭔데. 나서는 거야?

-인수 건에 할 일 없으면 그만 나가.

-지금 시간 낭비하는 게 바로 너라고.

재준은 주주들의 말을 듣고 두 손을 들었다.

“잠깐, 내가 다 알아들었어. 이거 정말 고마워서 어쩌나. 내가 당신들에게 조금은 미안해할 건더기가 있었는데. 아예 싹 사라지게 만들어 주고. 오케이. 이후로 네덜란드가 어떤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난 내 할 일만 할게요. 다시 말하는 데 정말 고마워요.”

사실, 좋은 의도라고 하더라도 한 국가의 은행을 무너뜨리는 건 기분 좋은 건 아니다.

특히 리테일, 소매은행이라면 국민들이 돈을 맡기는 곳인데.

그 돈으로 다른 나라 이익에 쓰인다는 걸 알면 기겁하겠지.

어쨌든 산타떼 컨소시엄은 ABC암로를 인수해서 각자 필요한 부분을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

가져.

딱 한 달만.

그 이후엔 오장육부에 있는 것까지 토해 내야 할 거니까.

***

돈을 만들어 내야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는데 더 이상 돈을 만들어 주는 MBS(모기지유동화채권)을 만들지 못하자 CDO(부채담보부증권)도 발행이 중단되었다.

그럼 어떻게 됐을까?

부동산 가격이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이자보다 높아야 유지가 가능한데 부동산이 추락하니 너도나도 부동산을 처분하려고 매물을 내놓았다.

부동산 처분이면 양호한 거고, 은행에 이자를 못 내니까 ‘차라지 집 가져가’ 신공이 시전 되었다.

그럼, 집을 가져온 은행은 어떡해?

빌려준 금액보다 가치가 낮은 집을 가져왔으니 은행 자산이 쪼그라들겠지.

이런 현상이 미국 전역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원래 CDO가 유행한 건 미국 전역에서 불이행이 동시에 발행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가정에서 비롯되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진 투기꾼들과 돈을 빌려준 은행, 혼돈에 발을 담가 통화량 증가에 일조한 투자자들은 차례차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근데 지금에야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해가 가지만 이 당시 은행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이 가진 데이터는 우량 모기지 데이터지, 비우량 모기지 데이터가 아니었으니까.

그야말로 우왕좌왕하기만 할 뿐 뚜렷한 대책이 없었다.

***

산타떼은행.

“에밀리아노. 정말 어렵습니다. 160억 달러 증자했어도 그 돈을 쓸 수가 없다고요.”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와서 이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산타떼 그룹 회장 에밀리아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로얄뱅크 행장 굿맨과 포르티은행 회장 바르트가 ABC암로 인수 대금을 지금 당장 지급할 수 없다고 버티었다.

자그마치 960억 달러란 돈을 만들어야 한다.

산타떼는 ABC암로의 브라질과 이탈리아 은행만 가져가기로 했기에 부담해야 할 돈은 200억 달러가 채 안 되었다.

네덜란드 리테일과 신용카드, 프라이빗 분야를 책임져야 할 포르티가 가장 많은 500억 달러, 투자은행 부분과 미국 리살은행을 인수할 로얄뱅크가 260억 달러였다.

에밀리아노는 난감했다.

컨소시엄을 책임지는 건 산타떼.

허, 이걸 어쩐다.

지금 와서 인수를 포기하면 천문학적인 소송이 들어올 것이다.

차라리 무리해서 인수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데.

이때,

띠리리리링.

불안하게 울리는 에밀리아노의 핸드폰 벨.

“무슨 일인가?”

-회장님, 투마로우가 로얄뱅크와 포르티은행을 동시에 인수하겠다고 영국과 벨기에 정부와 협의 중이랍니다.

“뭐요?”

-여기서 빠져나오셔야 합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평소에 욕이란 단어가 있는 줄도 모를 정도였던 에밀리아노 회장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앤드류 갑자기 이러면 어쩌라는 거지?

에밀리아노는 핸드폰을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앤드류, 접니다.”

-아, 네 회장님.

“로얄뱅크와 포르티은행을 인수한다니요.”

-아, 그거요. 우리 보스가 두 은행이 어려움에 처해서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뭐 문제 될 게 있습니까?

“그럼 ABC암로 인수 자금 문제는 해결이 되는 겁니까?”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보스 임재준을 만나도록 주선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지금 보스는 벨기에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중일 겁니다.

“그럼 제가 미국으로 가겠습니다.”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상황을 좀 지켜보시죠. 너무 흥분하신 것 같은데.

“아, 알겠습니다.”

로얄뱅크 굿맨과 프로티은행 바르트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실이라는 표정으로 에밀리아노를 쳐다봤다.

“굿맨, 바르트, 이게 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정부가 나서서 은행을 투마로우에 팔아 버리다니요. 두 분이 모르게 일이 처리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긴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처리되는 것은.”

가능하다.

미국이나 유럽은 회장이든 행장이든 월급쟁이니까.

이사회에서 승인을 내려버리면 그날로 짐 싸서 나가야 한다.

굿맨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 봐야겠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확인해야겠습니다.”

“그럼 ABC암로 인수 건은 어쩌자는 겁니까?”

“은행으로 복귀해서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습니다만 어쩌면 제 자리가 보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죄송합니다.”

굿맨이 일어서자 바르트도 같이 자리를 떴다.

혼자 남겨진 에밀리아노.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걸까?

아니지,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터진 게 잘못이지.

기회였는데.

설마 저 두 은행이 이대로 주저앉진 않겠지.

만약 주저앉으면 산타떼 혼자 인수를 추진해야 하나?

960억 달러는 너무 큰데.

아, 머리야.

에밀리아노는 극도의 피로가 몰려왔다.

그리고 번뜩 앤드류가 떠올랐다.

그리고 투마로우도.

가만 이런 상황에 투마로우가 은행을 인수한다고?

그것도 대형은행을?

돈이 넘쳐난단 말인가?

문뜩,

“대신 합병 후 산타떼가 보유하는 로얄뱅크와 포르티은행 주식을 넘겨주십시오. 프리미엄을 얹어 드리겠습니다”

앤드류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물어보면 되겠지.

뭐라고 물어보지?

직접적으로 묻기보단 간접적으로 물어보면 되지.

에밀리아노는 핸드폰을 들었다.

“앤드류, 접니다.”

-네, 회장님.

“물어볼 게 있는데 통화 괜찮습니까?”

-네, 말씀하시지요.

“투마로우는 이번 미국 채권 사태에서 피해를 적게 봤습니까?”

-전혀 피해가 없습니다.

“네? 어떻게요?”

-보스는 이번 모기지 채권과 CDO에 투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저흰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그래서 돈이 넘쳐나는 거야.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로얄과 포르티가 이번 인수를 포기하면 투마로우가 나서 줄 수 있습니까?”

-저희가요?

“전에 말한 로얄과 포르티 주식을 드리겠습니다.”

-아, 그게 있으면 확실히 협상에는 유리하겠네요.

“도와줄 수 있습니까?”

-그러지요.

“정말입니까?”

-그럼요. 단 저희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사라크방크를 앞세우겠습니다.

“사라크방크.”

그래, 사라크방크도 있었구나.

투마로우. 생각보다 덩치가 큰데.

***

AAG 빌딩 66층.

오랜만에 전부 모였다.

재준은 벨기에에서 윌켄은 영국에서 앤드류는 스페인에서 돌아왔다.

다른 팀원들도 모두 모여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윌켄, 영국 정부는 공적 자금을 얼마나 투여한답니까?”

“280억 파운드를 투입하여 급한 불은 끄겠다는 겁니다. 그 후에 저희가 51%의 지분을 사들이기로 했습니다.”

“괜찮군요. 벨기에도 같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168억 유로로 알단 국유화하겠답니다.”

당연하다.

급한 불은 정부가 꺼야지 우리가 나설 수는 없지.

언론도 움직이고 다른 은행들 움직이는 것도 편하고.

투마로우가 한 달 후 당시 주가로 51%의 지분을 사들이는 조건이었다.

매수자가 있으니 정부로서도 적극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조건은 내걸었죠?”

“네, ABC암로 인수에서 손 털겠다고 했습니다.”

“앤드류, 산타떼는 사라크방크가 도와주겠다고 흘렸지요?”

“그렇긴 한데. 정말 사라크방크를 통해 730억 달러나 투입하게요?”

“미쳤어요?”

그럼 그렇지.

보스가 선뜻 도와줄 리가.

“그럼요?”

“사라크방크에서 손절해야죠.”

“네?”

“산타떼는 혼자 뒤집어쓸 겁니다.”

“그다음은요?”

“서로 속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죠.”

“언제요?”

“CDS 대금이 들어오면. 펠그리니, 언제쯤 마무리될까?”

“바로 시작해도 됩니다. 전부 피투성이니까요.”

“그럼, 헨스미스브라더스부터 문 닫게 합시다.”

“네, 바로 CDS 발동하겠습니다.”

“그다음은 그랜드월.”

지겨운 악연을 여기서 끊자.

그동안 잘 컸다.

여기까지 따라온 서형길 실장은 그저 멀뚱멀뚱 재준팀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호석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어, 강…….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냥 예전처럼 강호석이라 하세요. 실장님에게 분석팀 팀장이면서 L.S.Company 이사라는 직함을 부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뭐? 이사? 난 아직 실장인데.”

“뭐, 그렇게 됐네요.”

“비결이 뭐야. 비결이.”

“영어?”

흠. 흠.

실장으로 만족해야지.

이 나이에 영어 공부를 할 수는 없지.

일도 바쁜데.

“그나저나 지금 어떻게 된 거야? 뭐 자기들끼리 쏼라쏼라 하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겠어.”

“간단하게 요약하면 투마로우는 영국 투자은행인 로얄뱅크와 벨기에 제일의 상업은행인 포르티은행은 인수해서 클레이스은행에 합병시키고, CDS를 발동시켜 헨리스미스브라더스와 그랜드월을 파산시킨 뒤 인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마 스페인 제일의 은행인 산타떼를 부도 직전까지 몰고 가서 결국은 ABC암로와 함께 사라크방크에 합병한다는 계획입니다.”

멍.

서형길 실장이 강호석을 썩은 동태눈으로 바라봤다.

“그거 지금 다 헛소리지?”

“사실인데요.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임 대표가 지금까지 시작한 일은 하나도 남김없이 저와 박민수에게 넘어왔으니까요. 실패하질 않아. 실패를. 아,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네.”

“실패라니. 도련님이 하는 일은 무조건 성공해야지.”

“그럼 실장님도 여기서 일해 보실래요? 보통 은행 하나 인수하는 데 꼬박 두 달은 밤을 새워야 합니다. 그것도 200명이요. 그뿐인 줄 알아요? 하나 처리하기도 전에 또 일거리를 만듭니다. 그 누군가가. 여기서 일 년만 일하면 임 대표를 좋아할 수가 없어요. 어째 여기서 일 좀 해 보실래요? 내가 추천은 할 수 있는데. 아니지 실장님이 여기서 일한다면 임 대표가 아주 좋아할 겁니다. 어때요?”

씩씩대는 강호석에게 서형길이 한마디 했다.

“영어.”

영어?

“아, 못하는구나.”

“응, 난 못해.”

영어를 못하는 게 이렇게 좋을 때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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