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수익률이 얼마라고요? 1,000%요?(8)
다이돈 사장은 재준에게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여기 온 이유가 뭡니까?”
“아까 말했잖아요. 투마로우가 클레이스를 인수할 거라고.”
“클레이스가 그렇게 쉽게 보입니까?”
“쉽지는 않죠. 하지만 상황이 인수할 기회를 준 겁니다.”
“상황이요?”
이놈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머리가 복잡하다는 건 알아요. 사실 윌켄과 옛정이 있어서 당신만은 살려 주려는 겁니다.”
“살려 준다고요?”
“당연하죠. 지금 서브프라인 모기지론이 10%도 부실화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려 주가가 40%나 떨어져 버렸네요. 아직 90% 부실 채권이 남았는데. 버틸 수 있겠어요?”
폭삭 무너져서 기둥도 안 남을 텐데.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앞으로 90%가 더 부실해진다는 걸.”
이 사람 참 현실을 모르네.
“그럼, 바꾸어 말하죠. 지금 모기지 채권의 겨우 10% 정도 부실이 진행됐는데 시장이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시장은 언제나 과하게 반응합니다.”
“아니, 아니. 그건 좋은 호재가 있을 때고. 일반적인 악재에는 시장은 천천히 반응하죠. 왜냐면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다 존재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전부 악재에 표를 던지는 것 같지 않아요? 말로는 회복될 거라면서 뒤로는 가지고 있는 주식을 시장에 다 던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클레이스 주가가 40%나 떨어진 겁니다. 그뿐인가요? 지금 당장 어디든 전화를 걸어서 대출을 물어보세요. 대출이 가능한 곳이 있는지.”
“그건…….”
이미 해봤다.
단 한 군데도 없다.
“좋아요. 더 어려워진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정말 모기지 대출의 90%가 부실해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그렇게 믿었었지.
어떻게 미국 전국의 부동산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겠어.
“간단하게 부동산 가격이 지금의 절반으로 추락하면 어떻게 되죠?”
“그럴 리 없습니다. 부동산은 그렇게 쉽게 오르내리지 않아요.”
“영국은 그런가 보네. 근데 어쩌나? 미국은 그렇게 쉽게 올라 버렸는데. 그건 지금까지 미국 부동산 가격을 보면 아실 거고. 이렇게 급하게 오르면 반드시 내려오게 돼 있죠. 그리고 아시죠? 급하게 오르면 그 정상에서 추락은?”
“절벽.”
“그렇죠. 받쳐주는 게 없을 때의 추락은 바닥이 아니라 지옥까지 뚫고 갑니다.”
재준이 마지막 단어에 힘을 주었다.
지옥.
“좋아요. 그것도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투마로우는 그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어라, 윌켄이 말하지 않았어요?”
“뭘 말입니까?”
“투마로우는 단 한 장의 모기지 채권도 없어요. 우린 아예 거래하지 않았거든요.”
“모기지 채권이 하나도 없다고요?”
아니, 우량 모기지 채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대신 투마로우엔 대략 1,000억 달러의 CDS가 있습니다.”
“1,000억 달러의 CDS?”
이런 미친놈.
남들이 다 미친 듯이 채권을 사 모을 때 하락에 공매도를 때리고 있었다고?
말도 안 돼.
시장에 편승하지 않았다?
그럼 두 가지 인간 중 하나라는 소린데.
하나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천재이거나.
하나는 시장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이거나.
넌 어디에 속하는 인간이냐.
그리고,
1,000억 달러 CDS?
이건 말이 안 돼도 한참 안 된다.
CDS가 발효되면 최소한 100% 수익률 아니, CDS는 보험이니까 채권 손실분이 아닌 회사 손실분을 책임져야 한다.
만약 CDS를 발행한 은행이 부도라도 나면?
부도에 의한 손실분을 모두 받아낼 수 있다.
1,000%의 수익률도 가능하다.
아니, 몰라, 어디까지 수익이 나는지.
“부럽죠.”
재준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다이돈을 쳐다봤다.
하하하.
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은 또 뭐야.
“내가 당신을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정말 운이 억세게 좋군요. 어떻게 재난이 닥쳐도 당신만 멀쩡합니까?”
“투마로우가 살아남는 방법이에요.”
흐흐흐흐흐.
옆에서 듣고 있던 클레이스가 이제야 나섰다.
꽤 나이가 들어서 나직이 웃는 소리에 쇳소리가 들렸다.
“임재준. 클레이스가 뭘 하길 바랍니까?”
“먼저 이번 합병에서 빠지세요.”
“이제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빠지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지금 산타떼와 컨소시엄을 이루고 있는 로얄뱅크와 합병 준비해 주시고요.”
“로얄뱅크요?”
“산타떼 컨소시엄이 ABC암로를 삼키는 순간 어떻게 될까요? 960억 달러를 조달하려면? 그것도 현금으로. 딱 봐도 견적이 나오시죠.”
“대출은 안 되고 주가는 떨어졌고 원래 계획한 증자보다 훨씬 많이 하겠군요.”
“그 증자, 투마로우가 나설 겁니다. 정부와 이야기를 나눈 후 다 내쫓아 버리고 클레이스와 합병을 추진하면 됩니다.”
“그래서 얻는 게 뭐가 있습니까?”
“클레이스와 로얄뱅크, 포르티은행 그리고 ABC암로를 합쳐서 DSBC와 대등한 은행을 영국에 하나 만드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DSBC와 대등한 은행이라…….”
흐흐흐흐흐. 흐흐흐흐흐.
클레이스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DSBC라면 영국 최고 아니, 전 세계에서 금융제국이라 불리는 두 개의 초거대 금융 그룹 중 하나.
전 세계 어디에도 지점이 있으며 모든 금융거래가 가능한 그곳.
“그게 저의 꿈이었는데. 죽기 전에 볼 수 있다면. 다이돈, 준비하세요. 철저하게.”
“네. 회장님.”
클레이스는 재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재준이 손을 잡자 두 손을 포개었다.
간절한 부탁이 묻어났다.
욕심 많은 늙은이 같으니라고.
이번 일만 끝나면 얼반 그룹이나 DSBC와 대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되겠네.
***
[클레이스은행, ABC암로은행 임시주주총회 하루 앞두고 대등합병 공식적으로 철회]
***
ABC암로은행 임시주주총회.
흐닝크는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아니, 임시주총을 하루 앞두고 클레이스가 합병을 철회하다니.
이제 흐닝크의 합병 은행장이 되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어떻게 버텨 왔는데.
실의에 빠져서 임시주총 진행을 해야 할 회장 자리도 마르티네즈에게 양보하고 자리에 앉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눈은 침침해지고 귀에선 엥엥거리는 사이렌 소음이 맴돌았다.
소음 중간중간 ‘회장’이나 ‘흐닝크’라는 단어가 섞여서 들리고.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한편, 그런 흐닝크를 내버려 둔 채 마르티네즈가 임시주총을 진행했다.
“첫 번째 안건은 ABC암로은행장인 흐닝크 회장의 교체 건입니다. 찬반을 진행하겠습니다.”
뭐라는 거지? 잘 안 들려. 내 이름 부른 거 아냐?
어디서 희미하게 ‘찬성이요, 찬성이요’라는데 뭘 찬성하겠다는 거지?
탕탕탕.
“90%의 찬성으로 현 회장 흐닝크는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다음 안건은 산타떼에 분할 인수 건에 대한 찬반을 물어보겠습니다.”
아, 산타떼.
그렇지 클레이스가 합병을 포기했지.
허, 멍청한 놈들.
제3의 제국을 포기하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들.
탕탕탕.
“이번 안도 90% 찬성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이로써 ABC암로은행은 산타떼 컨소시엄에 인수 절차를 밟겠습니다. 다음 안건은 투마로우에 리살은행을…….”
뭐라는 거지?
인수? 리살은행?
흐닝크는 집중하려고 애를 썼지만, 머릿속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뇌를 두드려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잠깐, 잠깐만요.”
마르티네즈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재준이 중앙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투마로우는 리살은행을 인수하지 않습니다.”
저놈, 저놈 저놈이야. 저놈.
희미한 정신을 부여잡고 일어서려는 흐닝크는 누군가 자신을 억누르는 힘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것 좀 놔 봐.
내 저놈을 죽이든지 해야 해.
재준이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흐닝크를 보고 안쓰러운 안색을 나타냈다.
완전 갔구나.
정신 줄을 놓았어.
혼자 뭐 하는 거야?
자신과의 싸움인가?
가던 길을 가던 재준은 마르티네즈를 향해 손을 들었다.
“투마로우가 리살은행을 인수하는 건 이제 좀 늦은 거 같은데. 이미 리살은행은 채무가 너무 많아요. 예전 같은 딜은 성사되기 힘듭니다. 애초에 거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니까.”
후.
마르티네즈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이라는 거. 그래서 부탁드리겠습니다. 리살은행은 인수해 주십시오. 저희는 리살은행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을 하다가 멈춘 마르티네즈는 주주들을 죽 한번 흩어봤다.
“주주 여러분. ABC암로는 63개국에 은행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지금 터진 사태로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됩니다.”
재준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
빨리 좀 등장하지.
앤드류 일 처리가 이렇게 느리진 않은데.
이때,
“960억 달러.”
모두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에밀리아노.
산타떼 그룹 회장.
그가 가격을 제시하며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리살은행까지 포함한 가격입니다. 960억 달러 현금 93% 조건은 아직 유효합니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재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흐닝크는 눈앞에 희미하게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있었다.
에밀리아노? 임재준? 마르티네즈?
너희들끼리 뭐 하는 거야?
이놈들이 작당하고 내 은행을 팔아먹으려고?
힘을 내야 한다.
일어나서 저놈들이 못 하게 막아야 해.
하지만 마음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환상 같은 광경을 눈에 담을 뿐.
재준은 에밀리아노에게 빙글 미소를 지었다.
“산타떼가 부담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크지 않나요?”
“있는 게 현금뿐이라서 괜찮습니다.”
뭐야? 이 근자감은.
“근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로얄과 포르티 없이.”
“무슨 말입니까?”
삼 일 전까지만 해도 960억 달러에 ABC암로은행를 인수하기로 합의까지 마쳤는데.
로얄과 포르티가 없다니?
“아니, 죽자 살자 붙어 다니던 두 사람이 지금 산타떼 옆에 없으니까, 걱정돼서. 혹시 같이할 은행들 상태가 어떤지 아세요?”
“어떤지 아냐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르시는 건가? 포르티는 160억 달러 증자, 로얄뱅크는 186억 달러 증자를 했다는데, 아, 처음 계획은 ABC암로 인수 자금으로 증자를 했어요. 아시죠?”
“알고 있소.”
“근데 지금 사태가 이만저만 급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거든요. 세상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자기들 살기 위해 그 돈이 인수 자금으로 투입되기 어려운 것 같은데. 알아는 보셨어요?”
“뭐라고요? 그럴 리 없소.”
단호하게 말은 했다.
근데 왜 불안한 거지?
혹시 컨소시엄에서 빠지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로얄뱅크와 포르티은행이 뒤늦게 도착했다.
히휴.
재준은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