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수익률이 얼마라고요? 1,000%요?(7)
서형길 실장의 옛 추억을 듣고 있던 재준의 핸드폰 문자 알람이 울렸다.
띠링.
-뒤에 있습니다.
아서 마르티네즈.
ABC암로은행의 이사회 임원 중 한 명.
이 사람이 흐닝크를 몰아내고 ABC암로의 새로운 회장이 될 사람.
그렇게 고집만 부리니 내부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누가 흐닝크의 반대 세력인지 알고 있는 재준은 오늘 공원에서 산책을 청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마르티네즈입니다.”
둘은 악수를 하고 재준이 캔맥주 하나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얼마나 오래된 겁니까?”
“글쎄요. 캔맥주 마신 지가 30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 좀 더 좋은 장소, 좀 더 좋은 음식, 좀 더 좋은 것들에 미쳐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까요.”
푸슉.
벌컥, 벌컥.
카!
마르티네즈가 맥주를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탄성을 질렀다.
“이렇게 시원할 걸 잊을 뻔했습니다.”
“욕심을 부리세요. 그래야 진짜 중요한 걸 얻을 수 있습니다.”
“욕심을 버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글쎄요. 저희 할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욕심은 한 가지에 부리는 게 아니라고요. 모두 경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돈도 욕심을 부려야 하지만 돈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요.”
“그렇군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마르티네즈도 알고 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더 값지다는 것을.
그래서 돈을 버는 게 아닐까.
“오직 하나에 매달린 욕심은 과욕을 부릅니다. 특히 남이 만들어 준 건 더더욱.”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지요.”
“맞습니다.”
지금 흐닝크 회장은 통합 은행장이라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게 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통합 은행장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몰아치고 있다.
언론도 주주들도 반대하는 곳으로 자신만 달려가고 있다.
“이미 이사회는 장악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하셨군요.”
“크게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클레이스와 통합된다면 저희는 전부 회사를 떠나야 하는데 그걸 찬성할 사람은 없습니다.”
은행이 인수되거나 통합이 되면 으레 있는 것이 구조조정이다.
두 세력이 하나로 뭉치면 서로 반반씩 양보해야 하는데 회장과 이사회가 그것이다.
회장을 얻으면 이사회는 다른 쪽이 쥐어야 하고 이사회를 얻으면 회장을 내줘야 한다.
왜 그럴까?
미국이나 유럽은 기업이 대물림되지 않는다.
이들은 오직 실력 있는 CEO를 만들고 물려주고 떠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당시 은행 합병에는 원칙이 있다.
기업을 더 잘 이끌 CEO 회사를 합병하고 그에게 통합 회장의 자리를 물려준다.
그리고 그를 위해 잔가지들은 다 잘려 나간다.
그래야 새로운 회장이 자기 뜻을 맘대로 펼칠 테니까.
“흐닝크 회장이 뭐에 홀렸는지 안타깝습니다.”
“아마, 통합 은행장이 되면 자신이 은행을 장악하려 할 것입니다. 모두가 원치 않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은행을 산타떼가 분할 인수하면 리테일 분야는 남겨질 겁니다.”
마르티네즈는 의아한 눈으로 재준을 봤다.
“마치 투마로우가 산타떼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씀 같은데 맞습니까?”
후후.
재준이 웃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클레이스도 산타떼도 전부 내가 움직인 겁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건 앞으로 있을 임시주총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드리는 겁니다.”
“클레이스와 산타떼 둘 다라면?”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서로 모르겠지만 클레이스 뒤에도 산타떼 뒤에도 내 사람이 전략을 맡고 있습니다. 싸움을 붙인 겁니다.”
“목적이 ABC암로이었습니까?”
“아뇨, 내가 ABC암로를 가져서 뭐하겠습니까? 내가 공항에서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난 내 돈을 지키려고 한 것뿐입니다. 흐닝크 회장은 정말 ABC암로를 운영할 재목이 못 됩니다. 아니, ABC암로가 더 커진다면 스스로 자멸했을 겁니다. 지금 같은 시대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니까요.”
“그 말은 현재 ABC암로 내에는 강력한 인물이 없다는 겁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만약 투마로우가 적대적 인수를 추진하면 견딜 자신을 있으십니까?”
“그건…….”
자신 없다.
듣고 보니 ABC암로 인물들은 전부 물러터졌다.
수많은 합병을 이루어냈지만 전부 돈으로 사들인 것이지, 치열하게 싸워서 이뤄낸 것은 하나도 없다.
투마로우는 언제나 강한 상대와 싸우고 이겨왔다.
만약 싸움을 걸어 온다면?
후후, 싸움이 될까. 지금도 이 지경으로 몰렸는데.
***
한 달 후.
ABC암로은행.
“회장님. 대법원이 우리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가처분 신청 풀렸습니다.”
경영진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래요? 이제 클레이스와 본격적인 합병을 논의해도 되겠군요.”
후,
힘들다. 힘들어.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왜 이리 힘들게 가는지. 원.
띠리리링.
에밀리아노?
산타떼 회장이 무슨 일로?
“네. 흐닝크입니다.”
-하하하. 회장님도 고집이 대단하십니다.
“다 주주들을 위한 일이니까요. ABC암로는 온전한 형태로 보존이 되어야 합니다.”
-통합 은행장이 하고 싶으신 건 아니고요?
“물론, 욕심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ABC암로가 더 중요합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물러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게임은 지금부터 같은데.
“끈질기시군요.”
-제가 아니라 투마로우가 끈질긴 겁니다. 오늘 임시주총을 소집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대주주 자격으로 참여할 겁니다. 이 말을 전하려고 전화 드린 겁니다.
툭.
전화가 끊어지고 행장실은 침묵이 지배했다.
흐닝크 회장은 모두를 바라봤다.
“왜들 그렇게 멍하니 있습니까? 투마로우가 임시주총을 연다고 합니다. 또 합병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려는 것 같은데. 준비합시다. 대법원도 우리 손을 들어 줬으니 이제 두려운 건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흐닝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왜 굳이 산타떼는 전화를 걸어서 투마로우 행보를 나에게 알려줬을까.
자신감의 표현인가?
혹시 클레이스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흐닝크는 클레이스케피탈의 다이돈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접니다.”
-회장님. 나중에 통화합시다.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 미국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요?”
-뉴스를 보세요. 뉴스.
툭.
전화를 끊고 경영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미국에 난리가 났다던데. 무슨 일입니까?”
마르티네즈가 나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추세가 꺾였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미국 투자은행들이 모기지 채권을 처리하려고 난리 난 상황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그럼, 우리 리살은행은 어떤데요.”
“거기라고 안전할 리 없을 겁니다.”
뭐?
“그걸 왜 이제야 알리는 겁니까?”
“저기.”
마르티네즈는 흐닝크 회장의 자리에 쌓여있는 결재 서류를 가리켰다.
“이미 여러 차례 보고 드린 겁니다. 회장님은 보지도 않고 서명을 하셨지만요.”
“내가요?”
“네.”
오직 합병 은행장 자리만 눈에 들어왔지 다른 게 보일 리 없었을 거다.
“리살은행이 어느 정도입니까?”
“이미 주가는 30% 떨어졌고 부채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회복 가능성은요?”
“모기지 채권에 투자된 자금이 4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얼마나 건질 수 있습니까?”
“모릅니다.”
“우리가 자금 지원을 하면요.”
“그럼, 저희도 위험해집니다.”
“왜요?”
“저희도 모기지 채권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게 왜 갑자기 터진 거지?
투마로우.
“리살은행 투마로우에 매각합시다.”
“클레이스와 합병은 어쩌시려고요?”
아. 합병.
후.
흐닝크 회장은 한숨을 길게 쉬고 자리에 앉았다.
리살은행을 버려도 합병이 가능할까?
클레이스에게 먼저 타진을 해 봐야겠는데.
저쪽도 만만치 않은 상태 같고.
산타떼?
아니야. 산타떼는 ABC암로를 갈갈이 찢어발겨서 해체할 거야.
안 되지. 안 돼.
어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르티네즈가 다시 입을 열었다.
“회장님. 산타떼에게 은행을 넘기시죠.”
“뭐요? 절대 안 됩니다. 절대.”
“후일을 기약해야 합니다. 어쩌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합병을 논의할 때가 아닙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겁니다.
이제 그만 욕심을 버리세요.
“안 됩니다. 합병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시군요.”
“합병해서 클레이스 쪽 사람들을 구조조정하면 우린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살길이에요. 그것만이.”
“알겠습니다.”
마프티네즈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
클레이스은행.
“얼마나 떨어졌습니까?”
“40%가 넘게 떨어졌습니다.”
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클레이즈은행 회장 클레이즈는 클레이스캐피털 사장 밥 다이돈에게 연일 떨어지는 주가에 관한 보고를 받고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손실은 어느 정도입니까?”
“산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모기지 채권이 부실화되고 있습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어떻게 수천 개의 채권이 동시에 부실 채권이 된단 말입니까? 이게 정말, 허, 이걸 어떻게 우리가 막을 수도 없고.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당하다니.”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채권 손실이 문제가 아니었다.
모기지 채권에 걸어 두었던 신용보험 CDS가 더 큰 문제였다.
CDS를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그래야 모기지 채권이 무너지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럴 리 없다고 다 팔아 버렸다.
“CDS를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벌컥.
“그런 방법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모두 자기 살겠다고 난린데. 안 그래요?”
클레이스 회장과 다이돈 사장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재준을 바라보았다.
“누군데 무례하게.”
다이돈 사장이 하던 말을 멈췄다.
“임재준?”
“맞아요. 접니다. 네덜란드에 가만히 있으려니 당신들 하는 짓이 하도 답답해서 왔습니다. 뭐, 여기 비서는 내가 잘 타일렀습니다. 회사 살릴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막을 이유도 없고.”
“무슨 말입니까? 회사를 살릴 방법이라니요?”
재준이 떨떠름한 입맛을 다시며 다가왔다.
“투마로우에 인수당하는 거지 뭐겠습니까?”
“뭐요? 이런 무례한.”
“클레이스 회장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저한테 무례하다 말하는 겁니까? 뭐 아시는 거 있어요?”
“뭘 말입니까?”
“이번 합병에 대해서, 알아요?”
클레이스 회장은 다이돈 사장을 쳐다봤다.
이번 합병에 대해 전권을 다이돈 사장에게 일임했다.
차기 클레이스 그룹을 이끌 차기 CEO였으니까.
“다이돈,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에헤이.
재준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거, 사람, 모른다고 시치미 떼기는 조금 있으면 내가 클레이스 주식의 20%를 가지게 될 건데. 그래도 몰라요?”
“뭐라고요?”
“이거 봐, 어디가 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네. 주가가 쭉쭉 떨어지니까 내가 헤지펀드 몇 개 만들어서 4%씩 주식을 사들였거든.”
다이돈이 재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윌켄과 짠 건가?”
“이 사람 봐, 와 정말 나쁜 놈이네.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을 사기꾼으로 만들고. 당신 그러면 못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