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33화 (133/477)

제133화 수익률이 얼마라고요? 1,000%요?(3)

띠리리링.

“투마로우입니다.”

-ABX지수 하락에 대한 CDS를 사실 겁니까?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워낙 거래가 뜸하니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었다.

특히 하락을 강조하면서.

“비우량 1% CDS 1억 달러 주문합니다.”

잠시 건너편에서 침묵이 어렸다.

마치 ‘저 미친놈이 모기지 하락에 1억 달러를 거는 거야? 돈 날리고 싶어 환장한 놈이네.’라는 듯

그리고 곧.

-체결!

전화를 끊은 윌켄은 양손과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쉬운데.”

“이번엔 내가.”

워서스틴이 핸드폰을 들었다.

“투마로우입니다.”

-ABX지수 하락에 대한 CDS를 사실 겁니까?

“비우량 1% CDS 1억 달러 주문합니다.”

미친놈 또 있네.

-체결!

재준은 워서스틴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자, 지금부터 무차별로 CDS를 매입합니다. 1,000억 달러는 거뜬히 달려보자고.”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 주문을 시작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대형 투자은행이 보유한 CDS는 최소 4,000억 달러.

이외에도 상업은행, 증권사, 보험사, 거기에 중소 금융사가 보유한 CDS는 얼마인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발행하고 팔고 발행하고 팔기만 반복했을 뿐.

재준은 다음 목표의 준비를 위해 윌켄에게 다가갔다.

“윌켄, 영국으로 날아가서 클레이스와 이야기 좀 나누세요.”

“영국 최대 은행 클레이스는 왜요?”

“그게.”

속닥속닥.

“네? 정말요? 이건 초대형 사건이 되겠는데요?”

***

재준의 아지트.

그는 혼자서 여유롭게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자, 이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번 돈으로 살 은행의 심기를 긁어 볼까?

이번엔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을 가져보자.

“보스.”

“어, 앤드류. 어서 와.”

앤드류는 바 안을 죽 둘러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전하네요. 사람 내쫓은 건.”

“내쫓은 거 아니야. 그냥 오픈을 좀 늦춘 거지.”

“그게 그거잖아요. 술 생각 날 때마다 가게를 안 열면 저기 미키는 뭐 먹고 살아요?”

후후.

클랜파클라스를 따라주면서 미키가 작은 소리를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보스가 오는 날은 매상이 가장 많은 날이니까요.”

아유.

앤드류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보스. 무슨 일입니까? 투자은행 일로 항상 바쁘던데.”

“이번에 돈이 많이 들어와서 은행 하나 인수하려고.”

“어디요? 설마 세계에서 가장 큰 ABC암로는 아니죠?”

진짜 월가는 귀신이라니까.

“맞는데. 거기에 하나 더 헨리스미스브라더스까지.”

뭐라고요?

“보스, 설마 요즘 피곤하신가요?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판단력이 흐려지신 것은 아니죠?”

“왜? 그렇게 보여? 난 정신이 말똥말똥한데.”

“근데 ABC암로를 인수하겠다는 겁니까?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ABC암로은행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글로벌 은행이다.

미국에도 중견 은행 네 곳을 합병하여 제법 큰 투자은행을 두었고.

지난번 재준이 프랑스를 합병하는 동안에 휘청이던 이탈리아 은행을 인수하고 아르헨티나 사건 때 휘청이던 브라질 대형 시중은행을 인수했다.

그러고 보니 재준 덕을 많이 봤네.

결과적으로 크고 작은 여러 나라 은행을 인수하여 63개국에 4,600여 개 지점을 두었으며, 11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초대형 은행이다.

M&A에 환장한 은행이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될 건 또 뭐야.”

“투마로우와 한국, 프랑스 사라크방크를 합쳐도 ABC암로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크기가 다가 아니야. 내가 언제 나보다 작은 상대랑 싸운 적 있나? 그리고 이번엔 약점이 있어. ABC암로는 투자은행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네덜란드 본사에서는 투자은행 개념이 아직 잡혀있지 않아. 네덜란드 본사를 건드리면 승산이 있어.”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 허우적댈 거고.

“근데 왜 이번엔 먼저 공격하려는 겁니까? 지금까지 선제공격은 안 했잖아요.”

“기회가 이번뿐이거든.”

재준은 글렌파클라스를 한 잔 쭉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독한 알코올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래, 이번엔 내가 먼저 공격할 때지.

원래는 ABC암로는 세 갈래로 찢어져 해체되지만.

63개국에 지점을 둔 글로벌 은행이 한 방에 찢어지는 꼴을 내가 두고 볼 수는 없잖아.

근데 적수가 너무 많긴 해.

“앤드류, ABC암로은행 주식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어?”

“1% 정도입니다, 왜요?”

“이번 주주총회에 참석해야 하니까.”

“주주총회는 또 왜 갑니까?”

“날 팍하고 각인시켜야지.”

으휴.

앤드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준과 같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 외에 또 제가 할 일이 있습니까?”

“ABC암로에 대한 자료 조사 좀 해 주고.”

“알겠습니다.”

“음. 한국에선 여론몰이를 잘하는 실장님이 계신데 그분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미국에 있을까요?”

“어느 선을 말씀하는 겁니까?”

“주주총회 전에 신문사에 자료 좀 주고 TV 대담도 슬쩍 언급하고 뭐 이 정도죠.”

“알겠습니다.”

“근데 이게 그 타이밍이 기가 막혀야 하는데.”

“걱정 마십시오. 그런 건 미국이 더 잘합니다.”

“아, 그런가.”

“그렇죠. 역사가 있는데.”

“음. 내가 공항에서 기자 회견하고 바로 시작하는 거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뭡니까?”

“스페인으로 가서 산타떼은행에 좀 다녀와야 하는데.”

“유럽 최대 은행은 또 왜요?”

속닥속닥.

“네?”

후.

앤드류가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충분히 각인되겠어.

아니, 아주 많이 각인되겠어.

네덜란드에도 적군이 몇 생기겠네.

재준은 앤드류의 말을 들었지만 약간 모자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 서형길 실장에게 전화했다.

일주일 후.

재준은 네덜란드로 날아갔다.

투자은행 사상 최고액의 인수 전쟁에 뛰어들기 위해.

이 전쟁은 엮인 나라만 8개국으로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광란의 질주를 보여줄 것이다.

재준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시간.

한국에서 대서특필 기사가 터졌다.

[현재증권은 대주주의 자격으로 말한다. ABC암로는 방만한 경영을 중단하고 회사를 분할하라]

***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공항은 어느 때보다 취재 열기가 불을 뿜었다.

네덜란드 기자뿐 아니라 유럽 각지의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임재준이 오는 거 맞지?

-맞아. 투마로우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 줬어. 이번 ABC암로 주주총회에 참석하기로 했대.

-설마 ABC암로를 인수하려는 건 아니지?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어. 그리고 임재준은 월가의 행동주의자와는 달라.

-다르지. 행동주의가 아니라 협박주의자 아냐? 내 생각엔 이번 주주총회에 큰 사달이 벌어질 것 같아.

-어, 묘하게 동의하고 싶네.

-한국에서도 현재증권이 ABC암로 회사 분할 하라고 기사 떴던데. 이게 뭔 소리야? 웬 회사 분할? ABC암로는 한창 잘나가고 있는데. 그리고 한국은 임재준 입김이 닿는 곳 아냐?

-그렇지. 임재준 이번에 주주총회에서 그 문제를 들고나오려나? 네덜란드까지 와서?

-이 친구. 걱정은. 어, 저기 나온다.

팟팟팟팟.

플래시가 터지고 재준이 걸어 나오자 마이크가 쇄도했다.

-네덜란드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 말씀만 해주시죠.

-프랑스 사라크방크와 네덜란드 은행 합병이 있는 겁니까?

-중국과 관계는 회복 되신 겁니까?

-아르헨티나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는데 투마로우와 관계가 있는 겁니까?

-현재증권이 ABC암로 회사분할을 요구했는데 알고 계십니까?

-한국에는 언제쯤 들어가실 계획이십니까?

휙.

재준은 기자 중 한 명의 마이크를 낚아챘다.

“전 오늘 네덜란드를 방문해서 기분이 매우 나쁩니다.”

팟팟팟팟.

플래시가 터졌지만, 재준의 표정에 기자들이 질문은 일시 정지했다.

“2000년 취임한 ABC암로은행의 CEO 흐닝크는 분명히 2005년까지 글로벌금융그룹 중 5위 이내의 ROE를 달성하겠다고 큰소릴 뻥뻥 쳤는데. 그래서 투마로우도 믿고 투자했습니다. 근데 최하위라뇨. 이게 말이 됩니까? 다른 은행 주가는 고공행진을 하다못해 성층권도 뚫을 기세인데 ABC암로 주식은 꿈쩍도 하지 않아요. 이거 어떡할 겁니까? 이게 다 여기 기자들 책임 아닙니까? 온통 사탕발림 기사만 쓰니 흐닝크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겁니다.”

갑자기 왜 기자를 나무라는 거야?

기자들은 재준의 말에 수군거렸다.

-ABC암로가 그렇게 잘못했나?

-글쎄 어떤 근거가 있겠지. 좀 더 들어 보자.

재준은 서류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공중에 휘둘렀다.

“효율성 지수가 무려 70%입니다. 70%. 이건 직원들이 일을 시켜도 핑계 대고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경지입니다. 근데 네덜란드 국민이 이렇게 일을 안 할 리가 없잖아요. 그럼 누구 잘못이겠습니까? 이게 다 저 위에 앉아서 지휘를 제대로 못 하는 그 누구 때문 아닙니까?”

효율성 지수는 총경상비용을 총매출액으로 나눈 비율이다.

당연히 적은 수를 큰 수로 나누는 것이니 수치가 낮을수록 효율적이다.

“이건 ABC암로가 다른 경쟁은행에 비해 방만하고 비효율적이란 소립니다. 전 이 못돼먹은 버릇을 고쳐주려고 왔습니다. 내 돈이 줄어들고 있어요. 내 돈이.”

갑자기 오자마자 ABC암로의 잘못된 경영을 성토하는 재준을 본 기자들은 잠시 멈칫하더니 마이크를 들이밀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말이죠? ABC암로의 비효율적인 경영이라뇨?

-그 자료는 정확한 겁니까?

-ABC암로를 합병하겠다는 말입니까?

-투마로우의 의견과 본인의 의견이 일치하는 겁니까?

재준은 달려들어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전 ABC암로의 매각이나 회사 분할을 경영진에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더 이상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봐줄 수가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재준이 기자들을 사이를 걸어가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설쳐 놓았으니 알아서들 싸우시고.

나는 주주총회까지 구경이나 좀 할까.

***

재준이 귀국하는 시간부터 신문과 TV는 ABC암로에 대한 기사로 채워졌고 전문가 TV 대담 프로도 만들어져서 방영되었다.

걱정했지만 서형길 실장만큼 실력 있는 사람이 붙은 게 분명했다.

근데 뜬금없이 네덜란드 옐로우 매거진에서 한결같이 합병 반대 기사들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이건 딱 봐도 편을 가르려는 현재증권 서뭐시기 실장의 작품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ABC암로 임재준이 비판한 대로 비효율적인 경영 문제]

[63개국을 관리하는데 중앙집권적인 형태는 비민주적. 오히려 지방분권적인 ABC암로의 경영이 훨씬 효율적]

[ABC암로 주주들 회사분할과 매각 찬성]

[ABC암로 주주들 회사분할과 매각 반대]

[경제 전문가 A, ABC암로의 선택은 정해진 것으로 본다]

[경제 전문가 B, ABC암로의 선택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여기저기 나라 전체가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주요 언론사에서 ABC암로의 회사 분할을 강하게 밀어붙이니 ABC암로로서도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했다.

자, 이제 어쩔 거니?

***

ABC암로.

흐닝크 회장은 출근과 동시에 경영진을 불러 모았다.

“다들 요즘 우리 얘기로 전국이 시끄러운 건 알죠?”

회장의 한마디에 경영진들이 서로 한마디씩 했다.

“네, 연일 신문에 기사가 실리고 있습니다.”

“아니 갑자기 투마로우는 왜 우리를 물고 늘어지는 겁니까?”

“합병하려는 건 아닐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투마로우와 저희는 격이 다릅니다. 격이.”

“맞아요. 투마로우가 왜 우리랑 합병합니까?”

어휴.

흐닝크 회장은 시끄러운 분위기에 두통이 일었다.

도움이 안 되는 인간들.

이때,

띠리리리링.

“회장님, 밥 다이돈 사장 전화입니다.”

뭐? 영국 최대 은행 클레이스의 2인자가 왜?

“바꾸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