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수익률이 얼마라고요? 1,000%요?(2)
도이츠방크.
구조화 채권 분야의 쟁쟁한 트레이더 다섯이 모였다.
“그러니까, 임재준이 이걸 제시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확실히 천재는 천재야.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 신기해.”
“내가 들은 말이 있는데 서브프라임 ABS 묶어서 CDO로 만들어 팔자고 한 것도 투마로우에서 흘러나왔단 루머가 있어.”
“맞아. 나도 들어 본 적 있다. 분명 그런 말을 들은 적 있어.”
“근데 좀 이상하지. 왜 투마로우는 CDO를 안 팔까? 이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 것 같던데.”
“그러게, 이상하긴 해. 며칠 전에 길 가다 우연히 페렐라를 만났는데, 나도 그 질문을 했거든. 근데 그냥 웃기만 했어. 꼭 비웃는 것 같더라고.”
“비웃어? 하긴 그렇겠지. 우량은 1%, 비우량은 많아야 10% 이자 따먹긴데. 투마로우가 성에 차겠어? 비웃을 만하지.”
“65층 녀석들. 이미 1억 달러 이상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벌고도 남았을걸. 정말 부러워. 말이 1억 달러지, 그걸 성공보수로 벌었으니. 기가 막혀. 임재준 역시 보통은 아니야. 야, 이거 임재준 아이디어라면 이번에 우리도 제대로 한번 먹어 보자.”
“그렇지. 그럼 구체화 시켜볼까.”
채프먼이 A4지 한 뭉치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우선 MBS(모기지담보부채권)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담보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알지?”
“그거야 당연한 거잖아.”
그랜드월의 라지브 콤이 대답했다.
예전의 악감정은 잊고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는 그랜드월은 이번 채프먼의 콜에 응했다.
돈이면 뭐든지 용서가 되지.
“임재준은 단지 떨어진 부동산 가치를 보전해 주는 상품은 아무도 사지 않으니까 부도가 났을 때 손실을 보전해 주는 상품인 CDS를 지수화하는 거라고 했어. 이름도 지어 놨다지. ABX지수라고.”
“ABX? 뭔 뜻이야?”
“그건 나도 몰라.”
“자, 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냐. 대충 아이디어는 완성됐으니까 지금부터 이걸 어떻게 현실화시키냐가 문제지.”
“현실화시키려면 구조화 상품 변호사가 필요하겠지. 법적으로 하자가 있으면 안 되니까.”
“그렇지. 법적으로 하자만 없으면 바로 런칭 가능할 거야.”
“이야, 진짜 우리 손에 본격적인 모기지지수가 탄생하는 건가? 괜히 임재준 아이디어를 도둑질한 기분인데.”
“아냐, 아냐. 분명히 임재준이 부탁을 한 거라고. 자신은 다른 할 일이 있다고.”
“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번에도 어떤 나라 공략할지 고민이겠지.”
“하하, 참나. 이거 우리 일이 하찮게 보이네. 암튼 이렇게 되면 모기지 채권에 공매도가 훨씬 쉬워지겠지?”
공매도가 쉬워진다?
이들이 모의 중인 ABX가 나오기 전에도 모기지 채권을 공매도할 수는 있었다.
아주 번거로운 과정을 통해서.
모기지유동화채권을 빌려서 공매도를 치려고 해도 채권은 주식만큼 유동성이 활발하지 않아 대차 거래를 해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았다.
누군가 빌려줘야 공매도를 치든 말든 하지.
그리고 채권에는 무차입 공매도도 없고.
또 CDS를 살 때는 아무 투자은행이나 찾아가면 되지만 이걸 팔 때는 투자은행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의중을 물어봐야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ABX지수가 런칭되면 CDS를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된 거니까. 투자은행들은 전부 여길 찾을 수밖에 없을 거야. 수수료도 꽤 짭짤할 것 같은데.”
“여기저기 다 떼어주면 얼마 못 벌어.”
“그래도 지금보단 많아.”
“그렇긴 하지.”
“정말 씹어 먹을 놈이지만 머리 좋은 건 인정해야 해.”
“루시먼, 이제 그만 머리에서 지워.”
스톡체인 합병 사건 때 재준에게 150억 달러를 빼앗기고 간신히 살아남은 헨리브라더스와 찰스에드먼드는 합병해서 헨리스미스브라더스을 탄생시켰고 가혹한 구조조정을 통해 겨우 숨통을 붙이고 있었다.
헨리스미스브라더스의 구조화 채권 팀장 토드 루시먼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몰라. 이번엔 투마로우 동태도 확실하게 살펴. 혹시 모를 뒤통수가 있을지 누가 알아.”
“나도 그건 동감이야.”
여기 임재준에게 한 번씩 지옥을 경험한 그랜드월과 헨리스미스브라더스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채프먼은 궁금한 점이 있어 모두에게 물었다.
“근데 너희들은 모기지 채권 하락에 공매도 칠 거야?”
“응?”
여기서 말하는 공매도는 CDS를 사는 것을 말한다.
CDS를 산다는 건 채권이 부도난다고 믿는 것이니까.
지금까지 실컷 모기지 채권 하락에 공매도를 치는 게 쉬워졌네! 좋아졌네! 라고 말은 해놓고 정작 자신들은 한발 물러섰다.
당연하지.
지금 모기지 시장은 영원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훨훨 타오르고 있는데 이 시장이 꺼진다?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받기 딱 좋다.
라지브 콤이 먼저 뒤로 물러섰다.
“글쎄. 임원들과 상의는 해 봐야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을까? 한 10년은 더 갈 것 같은데. 그 후 서서히 식겠지. 공매도는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지 않아?”
“그렇겠지.”
채프먼도 다른 트레이너와 같은 생각이었다.
언젠가 모기지 채권이 폭락하긴 할 건데 지금은 아니다.
“그럼, 누가 공매도를 치면 살 거야?”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무조건 아닌가?”
왜 갑자기 급발진들이야?
전부 공매도를 받아 주는 것, 즉 CDS를 파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
AAG 빌딩 66층.
“보스, 보오오오오스.”
들어가시면 안 돼요.
저리 비켜!
쾅!
헐레벌떡 달려온 펠그리니가 비서고 뭐고 다 뿌리치며 앞차기로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윌켄과 이야기 중이던 재준은 놀란 표정으로 펠그리니를 봤다.
“왜 그러는데요?”
“이거, 이거. 이걸 봐.”
너 말 편해졌다?
그럼 나도.
“뭔데?”
“자, 여기.”
펠그리니가 탁자에 펼친 커다란 종이엔 수십 개의 그래프가 겹쳐져 있었다.
수학을 좋아하고 계산하기를 즐기는 페렐라조차도 인상을 찡그렸다.
“펠그리니, 이게 다 뭐야? 이걸 어떻게 보라는 거야?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 후. 후. 그게…… 후. 후. 말이…… 야.”
“숨 좀 쉬어. 내가 다 답답해.”
“그…… 래.”
후하, 후아.
“일단 여기. 이 선을 봐.”
숨을 고른 펠그리니가 손가락으로 하나의 선 그래프를 따라 죽 흩어갔다.
“이게 1975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50개 주의 주택가격 변동을 역사적 추세선으로 나타낸 거야. 상승폭이 보이지?”
“응, 아주 쥐꼬리만 하게 올라가긴 했네. 근데 2000년부턴 급격하게 올라갔고. 이미 다 아는 이야기 아냐. 이건 지금 모기지론 때문이잖아.”
“그렇지. 그런데 지금 시장 낙관론자들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이유가 뭐라 그랬지?”
어, 그건.
“2001년 911사태 이후 미국 연준이 진행한 금리 인하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라고 했지.”
“금리를 인하해서 시장에 돈이 풀려 부동산이 올랐다. 맞지?”
“그런데?”
“그럼 이 그래프는 왜 1975년부터 2000년까지 한결같이 1.4%의 부동산 가치가 오른 거지? 그때는 금리가 인상되고 인하된 적이 없는 건가?”
“어, 그러네. 얘기가 그렇게 되네. 그럼 금리와는 전혀 상관없다?”
“당연하지.”
근데 펠그리니 이 녀석, 급하니까 말 엄청 잘하네.
“그리고 여기, 실업률, 이자율, 경기지표를 나타내는 어떤 지표들 봐봐. 부동산과 관계가 있어 보여? 보이지 이 선들. 관계가 있어 보여?”
잠깐.
재준이 그래프를 보며 빙글 웃으며 말했다.
“펠그리니. 그러니까 네 말은, 부동산은 매년 어떤 인플레이션을 반영해도 1.4%가 넘지 않는다 그 말이지?”
“그렇죠. 보스.”
“그럼 여기.”
재준은 2000년 이후 5년간 그래프를 쭉 따라가다 아래로 확 내려그었다.
“매년 7% 성장한 이 그래프는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거고.”
“맞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겁니다.”
그렇지. 잘 찾아냈네.
이제 다들 뭘 생각하는지 뻔하지.
뭐?
퀴니코가 뛰어들며 그래프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럼 지금 부동산 거품이 50%라는 거야?”
“아직 거품은 꺼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
“더 올라간다고?”
“여기.”
펠그리니가 빨간색 선을 가리켰다.
“지금 모기지론은 기존 주택을 담보로 다른 주택을 사고 있는 추세잖아. 이게 리파이낸싱(대환대출)을 나타내는 선이야.”
“어, 추세가 점점 줄어들고 있네.”
“그래 아직은 줄어드는 정도지만 이게 꺾이면 대란이 일어나는 거야.”
대환대출, 우리도 알고 있는 용어다.
바로 카드 돌려막을 때 썼던 단어.
현금 서비스로 카드를 돌려 막다가 결국 모든 현금 서비스 한도가 풀로 다 차면? 상상에 맡기자.
“그게 언제인데.”
“여기, 이 선과 만나는 3년 뒤.”
재준은 펠그리니의 말에 빙글 웃었다.
역시 천재인데.
정확한 연도를 산출해 내다니.
펠그리니는 아직 표정을 풀지 않았다.
“문제는 더 있어.”
“또 뭐?”
페렐라가 다급하게 펠그리니를 다그쳤다.
비단 페렐라뿐 아니라 모두의 시선이 펠그리니의 입술에 집중되었다.
“주택 가격이 상승을 멈추면 모기지 채권은 부동산 상승폭인 7%가 추락할 거야.”
“7%나? CDO 이자를 날리는 거잖아.”
“그리고 주택가격이 5% 내리면 모기지 채권은 세 배가 넘는 17% 하락.”
“17%?”
“이건 프라임, 우량 채권의 경우고. 최하위 등급 BBB 채권은 열 배.”
“그럼 50% 하락?”
“그게 50%면 다행이지. 만약 부도가 나면 그 손해액은 내가 계산하고도 믿을 수가 없어.”
“얼만데?”
“999%.”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단지 속으로 999를 되새길 뿐.
이때, 가장 먼저 정신 차린 블록이 소리쳤다.
“수익률이 얼마라고요? 1,000%요?”
짝!
재준이 모두 정신 차리라고 손바닥을 쳤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뭘까?”
저돌적인 위서스틴이 흥분해서 소리 질렀다.
“당장 살 수 있는 CDS를 삽시다.”
하지만 퀴니코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CDS가 널린 것도 아니고 은행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팔지도 의문이고요.”
“아니야.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내가 뿌린 떡밥을 덥석 문 친구들이 이미 ABX라는 시장을 만들었어. 워낙 거래가 없으니 파리만 날리고 있을 거야. 여기 CDS를 팔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우린 주문만 넣으면 돼.”
CDS를 따로 살 수 있나?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말하기 쉽게 CDS는 보험이라고 부르고 MBS는 증권이라 부르자.
보험은 부도가 나면 그 손실 보전해 주는 상품이다.
보통은 위험 헤지용으로 사용한다.
은행이 채권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데 혹시나 하는 맘에 보험을 발행해서 투자은행에 팔았다.
채권이 부도가 나면 보험을 산 투자은행이 손실을 보전해 준다.
이걸 해지용이라 한다.
위험에 대비하는 용도.
그런데 이 보험을 보유하던 투자은행이 다른 투자은행에게 보험을 팔았다.
당연하지, 상품이니까.
그럼 이 보험을 산 다른 투자은행에게 보험은 더 이상 헤지용이 아닌 투기용으로 바뀐다.
부도가 났을 때 100억을 보전해 주는 보험의 가격은 우량일 경우 8%인 8억 달러이고, 비우량은 1억 달러다.
1억 달러를 주고 비우량 보험을 사면 부도가 났을 때 100억 달러를 받을 수 있다.
부도가 났을 때.
“자! 누가 먼저 주문을 넣어 볼까?”
“내가 먼저 해 볼게요.”
“역시 윌켄은 이런 거에 능통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