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수익률이 얼마라고요? 1,000%요?(1)
투마로우의 중국기업 매도 리포트와 공매도 사건은 전 세계의 증권시장에 새로운 표준을 세웠다.
중국 현지에서 기업 실사를 더욱 꼼꼼하게 실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이후 한국에선 현재증권이 중국기업이 상장해도 매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다른 증권사도 현재증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중국은 한국 증시에 상장을 아예 포기했다.
2011년 1천억 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중국기업 ‘고섬’ 사태는 한국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CDB는 임재준에게 이를 갈며 후일을 기약했다.
***
AAG 빌딩 66층.
재준은 어디서 이탈리아 거지 하나를 데려왔나 싶은 표정으로 펠그리니와 마주 앉았다.
페렐라와 워서스틴은 도리질을 계속하며 인상을 썼고 퀴니코는 자신이 그리스인이라 마치 옆 동네 사람을 만난 양 정겹게 웃었다.
블록과 윌켄은 그러든가 말든가 바에 앉아 위스키를 주고받았다.
펠그리니는 어눌한 영어 발음으로 대화를 진행하는데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 통역사를 대동했는데도 계속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했다.
그때, 그때 통역사가 끼어들어 영어를 통역하는 웃긴 상황이 펼쳐졌다.
“펠그리니, 그러니까 당신을 스카우트한다는 겁니다. 우리 당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지원할 겁니다.”
“다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저를 버리더군요.”
“왜 버림받은 건지 알고 있나요?”
“압니다.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한다고 저와 멀리하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혹시 혼자만의 공간을 원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대화하는 걸 좋아합니다. 혼자 있는 건 질색합니다. 차라리 버림받기 전까지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뭐야? 이 별종은.
대화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합니까? 다들 싫어하는데.”
“그건……. 모두 잘못된 예측을 하는 걸 보면 답답합니다. 말해주고 싶어요. 월가 투자은행이든 펀드든 잘못된 계산을 너무 많이 합니다.”
“잘못된 계산?”
아, 그렇지.
펠그리니가 밀라노 대학을 다니던 시절 아버지 알도는 좌파 테러리스트 집단인 붉은 여단에 납치되어 살해되었다.
펠그리니의 아버지는 대학 수학과 교수로 은행 투자 지표를 수학적으로 풀이해 주고 있었다.
‘정치인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개’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것이다.
이에 이탈리아에 염증을 느낀 펠그리니는 네덜란드에서 2년을 보내고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으로 입학, 졸업 후 월가에 진출했다.
그래서 수학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나?
“아니,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당신은 틀렸어요’ 하니까 왕따를 당하는 거잖아. 물어보는 것만 대답하라고.”
“왜 하대합니까?”
“뭐? 그건……. 나도 이래야 답답하지 않아서 그런다. 왜?”
“흥, 됐습니다.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일 얘기는 없던 거로 하죠.”
뭐?
지금 투마로우에서 스카웃 제의를 하는데 그냥 가겠다고?
놀란 건 재준뿐만 아니었다.
“아, 잠깐, 잠깐. 알았어요. 하대 안 할게……요. 그리고 당신 맘대로 대화하세요. 아무하고나. 내가 말해 놓을게요. 됐죠?”
재준은 모두를 돌아보고 주먹을 들어 보였다.
“지금부터 펠그리니와 대화하면서 피하는 사람은 알지……요?”
와! 지금 저게 무슨 일이야?
지금 보스가 꼼짝 못 한 거야?
아니,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이제 보스 큰일 났네.
모두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고개는 똑같이 끄덕였다.
“그럼 됐습니다. 제가 할 일은 뭡니까?”
“지금 한창 주택담보대출이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MBS(모기지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 비우량(사브프라임)을 한 곳에 묶어 CDO(부채담보부증권)로 만들어 팔면?”
“장사는 잘되겠네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게 언제 무너질까요?”
음. 음. 음.
펠그리니는 머리가 복잡한지 연속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CDO면 전 세계 금융계와 연결이 되겠네요.”
“그렇지요.”
음. 음. 음.
“최소한 50년간 미국 주택담보부채권 부도율과 물가상승률의 상관관계를 데이터로 만들어야 정확한 모기지 데이터가 나올 겁니다.”
뭐라는 거야?
“정말 가능합니까?”
“네, 하지만.”
“말해 보세요.”
“최소한 200만 달러의 비용도 들어갑니다.”
“그 정도야 투자하죠. 벌어들일 돈이 얼만데……요.”
“제가 살 집은.”
“뉴욕 최고급 아파트로 정하죠.”
“저의 아이들이 둘 있는데.”
“보모를 둘 두고 하나씩 전담하도록 하겠습니다.”
후.
“그거면 전 충분합니다.”
“연봉은 1,000만 달러. 데이터 완성 후 성공보수 1%.”
“됐습니다. 성공보수는 안 받아도 됩니다. 전 아이들하고 먹고살 만큼만 있으면 됩니다.”
“정말……요?”
“네.”
나중에 딴말하지 마라.
1%면 최소 100억 달러인데.
어디선가 펠그리니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려 했다.
펠그리니, 그러면 안 돼.
윌켄 이하 모두 손을 들어 펠그리니를 말리려 하자.
어디서, 조용히 안 해.
재준이 모두를 보면서 눈을 위아래로 부라렸다.
다시 펠그리니를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면 뭐. 할 수 없죠.”
“사실 연봉 1,000만 달러도 많습니다. 더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야, 이 사람 월가 사람 맞아?
나중에 딴소리만 해 봐. 아주 그냥.
***
은행은 대출한 자금을 MBS(모기지유동화증권)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팔고 다시 들어온 돈으로 또 대출을 해주었다.
은행끼리 경쟁을 하다 보니 이자율이 낮아졌다.
이자가 낮으니 은행에 돈을 맡기기 꺼려지고 시중에 돈이 풀렸다.
시중에 돈이 풀리니 자연히 서로 부동산을 사기 위해 경쟁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은행에서 대출받아 부동산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어! 대출받으려는 사람이 많은데 은행에 돈이 모자라네.
이때, 은밀한 곳에서 비우량 MBS를 묶어서 CDO를 만들면 다시 돈이 들어오지 않겠냐는 달콤한 유혹의 소리가 들렸다.
이 소문 누가 퍼뜨린 건지 딱 봐도 알겠네.
누군지 천재라며 너도나도 비우량 MBS를 지역 단위로 묶어서 CDO를 팔아먹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지역이다. 지역 단위.
전에 말했지만, CDO(부채담보부증권) 발행 주체가 부도가 나면 이 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신 빚을 갚아줘야 한다.
근데 이번 CDO는 묶여있는 MBS가 몽땅 부도가 나야 대신 빚을 갚아주는 상품이다.
대충 1,000개 MBS가 묶이는데 1,000개의 부동산 대출이 동시에 연체가 되고 동시에 경매에 넘어가는 일이 있기나 할까.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너도나도 CDO를 구매했다.
그래도 대출해 줄 돈이 모자랐다.
근데 여기서 또 누군가 아주 고위험, 등급이 최하위인 비우량 MBS를 지역이 아닌 전국으로 묶어서 팔면 어떨까 제시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전국이다.
지역에서 전국으로 넓어졌다.
이것도 누가 퍼트렸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전국적 CDO, 은행들은 이거야말로 수학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낮은 오히려 우량 MBS를 묶은 CDO보다 좋은 상품이라 극찬을 했다.
절대 발행하면 안 되는 상품이 가장 불티나게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왜? 위험성도 낮고 수수료는 높으니까.
그렇게 세계 각국에서 투자자들이 돈을 싸 들고 미국으로 들어왔다.
너도나도 비우량 전국단위 MBS 묶음 CDO를 선호했고, 미국 은행들은 이 CDO를 마구 만들어 전 세계 은행에 팔았다.
이제 우량 고객보다 비우량 고객이 대접을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처음엔 은행은 대출해 줄 때 수입을 증명하고 자산을 증명할 서류를 요구했다.
시간이 지나고 수입은 명시만 하되, 자산을 증명할 서류를 요구했다.
은행 간 경쟁이 과열되자 수입도 명시, 자산도 명시로 바뀌었다.
말도 안 되게 서류 없이 대출 양식에 자기 맘대로 수입도 있고 자산도 있다고 몇 자 적으면 대출이 되었다.
예로 ‘난 수입이 1억이고 5억짜리 아파트가 있음’이라고 적으면 확인도 안 하고 5억을 대출해줬다.
미친 거지.
그러나 아직 은행이 미치려면 한 단계가 더 남았다.
드디어 중국과 신흥 국가들도 돈을 들고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에게 CDO를 팔려니 대출 증권이 모자랐다.
결국 수입과 자산을 묻지 않고 대출 서류 금액란에 액수만 적으면 대출을 해주었다.
이게 정말 선진 금융도 경쟁으로 앞뒤 안 보고 미쳐 달리기만 하면 벌어지는 일이었다.
오하이오에서 죽은 사람 23명이 대출을 받았고 애완견 이름으로 돈을 빌리기도 했다.
***
뉴욕 어느 한적한 바.
재준과 윌켄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보스, 부탁해서 소개해 드리는데 채프먼이 보스 말을 듣고 실행에 옮길까요?”
“당연하죠. 도이츠방크 구조화 채권의 수석트레이너잖아요.”
“그렇긴 한데. 워낙 독특한 인간이라서.”
구조화채권, 전에 구조화금융이란 직책을 가졌던 현재증권의 최효범 부사장을 기억하는가.
그때 구조화금융은 금융의 문제를 지지고 볶아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라 했다.
구조화채권도 비슷하다.
돈이 안 되는 것을 돈이 되도록 이리저리 지지고 볶아 유통시킨 채권이다.
대표적인 게 ABS나 MBS 또는 CDO다.
MBS는 ABS와 같은 상품으로 모기지에 특화됐다.
왜 이렇게 비슷한 상품들을 다른 이름으로 파는지 모르겠어.
“제가 좀 늦었습니다.”
재준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월가에 웬 패션테러리스트는?
월가는 거의 검은색와 회색 양복에 흰색 드레스셔츠가 정석인 곳인데 저 알록달록한 줄무늬 양복에 긴 머리, 심지어 구레나룻은 뭐야?
혹시 로커냐고 물어볼까?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은데.
재준은 맘과는 다르게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았다.
“부담 갖지 마세요. 우린 일부러 일찍 왔습니다. 먼저 한잔하고 싶었거든요.”
재준과 채프먼은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이거 월가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분을 소개받다니 영광입니다.”
“누가요? 제가요? 아, 하긴 AAG 빌딩이 높긴 하죠.”
“하하하. 그렇게 되기도 하는군요. 이미 아르헨티나 사건 이후로 윌가에 떠도는 정설이 있습니다. AAG 빌딩 62층만 가면 제일 성공한 트레이너라고요.”
하하하.
일단은 대화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해서 서로가 맘을 열자 재준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채프먼, MBS(모기지유동화증권)을 기초자산으로 CDS지수를 만들 수 있을까요?”
CDS지수?
“가만, 가만, 가만이요. 그러니까 지수란 말이죠. 주식이나 옵션처럼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지수. 매수, 매도할 수 있는.”
“맞아요.”
일단 CDS(credit default swap)는 부도가 나면 대신 돈을 갚을 의향이 있는 투자자에게 프리미엄(이자)를 주고 파는 파생 상품이다.
이건 또 뭐야? CDO랑 차이가 뭔데?
CDO는 부채를 담보로 하는 상품이라면 CDS는 부도를 담보로 하는 상품이다.
부채랑 부도랑 뭐가 다른데?
부채를 못 갚는 건 부도가 날 때 아닌가?
맞긴 하는데 부채와 부도가 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자.
일단 그냥 똑같다.
어쨌든 재준의 말은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을 숫자로 만들어 거래하자는 것이다. 주식처럼.
채프먼은 재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모기지 하락에 공매도 치려고 그러시는군요.”
헉! 역시 월가에 귀신들 너무 많아.
“아니요. 장부에 쌓여만 가는 모기지채권 관련 리스크를 일부라도 떨쳐 보려는 투자은행의 헤지 수단으로 팔아보려는 겁니다.”
“전 그렇게 순진하지 않습니다. 어떤 지수든 만들어진다면 옵션과 공매도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투마로우가 지수 거래 같은 푼돈이나 만지작거리려고 지수를 만지는 건 아닐 거고.”
“하하하. 못 당하겠네요.”
“시장 규모가 얼마 생각하십니까?”
“24조 달러?”
“네?”
뭘 그렇게 놀래.
지금 시중에 풀린 돈이 얼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