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스스로 노력 좀 하지. 아니면 뒈지든가(3)
중국개발은행(CDB).
은행장 곽보곤(쿼바오쿤)은 오늘 자 신문을 들여다보며 가만히 생각 중이었다.
이놈 봐라. 대국에 칼을 겨누겠단 심산이라…….
감히 월가의 은행 나부랭이가 대국의 국책은행을 상대로 싸우겠다고 덤빈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기업은 대략 200여 개 시총으로 따지면 2조 달러.
그중 지금까지 세 곳이 털렸다.
전체로 따지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세 곳을 무너뜨린 곳은 다름 아닌 투마로우 자회사 스톡체인 산하 채노스마이어펀드다.
저딴 건 다 치워버리고 실제 움직이는 놈은 임재준.
그리고 이놈이 진짜 이빨을 드러냈다.
곽보곤은 신문을 다시 들여다봤다.
[스톡체인은 다시 중국기업 차이나포레스트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내고 공매도를 실행한다고 발표]
내가 쓰던 매도 리포트 방법을 똑같이 되갚아 주고 있다.
그래도 나는 겁만 주려고 칼 좀 보여줬더니 갑자기 훅하고 들어와 세 군데나 찔렀다.
다행히 급소는 피했는데.
이번에 들어오는 차이나포레스트는 급소지.
만약 무너지면 많이 아플 거다.
지금까지 무너진 세 곳의 매출을 다 합쳐도 차이나포레스트의 매출의 삼 분의 일도 안 된다.
그래서 곽보곤 은행장은 차이나포레스트의 회계 장부를 꼼꼼히 살폈다.
허점은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이딴 회계장부야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어.
지금껏 무너진 놈들을 보면 장부 문제가 아냐.
뭔가 꼬투리 잡힐 일이 있을 거야.
스톡체인 매도 리스트에는 분식회계라고만 나와 있고 자세한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지난 매도 리포트엔 분식회계 정황이 상세히 나와 있었는데 이번엔 다르다.
그저 분식회계라고만 나오고 아무 설명이 없었다.
이제 추가 부연 설명을 발표하겠다고 한 시각이 10분 남았다.
도대체 뭘 쥐고 있는 거냐.
이때,
똑똑.
“차이나포레스트 사장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차이나포레스트 사장이 들어오며 투덜거렸다.
“나 원 참. 지금이 얼마나 바쁜 시기인지 아시면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부르십니까?”
네가 CDB은행장이면 은행장이지 날 오라 가라 할 정도냐.
노골적인 불만.
그 정도로 차이나포레스트의 위치는 꽤 높았다.
회사 이름만 봐도 단순 목재회사인데 이렇게 고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그건 벌목 양에 있었다.
중국 원낭성 한 곳에서만 벌목한 양이 7억 달러.
거기에 중국의 다른 성과 해외 벌목을 합치면 최소 일 년 매출이 900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 건설회사에 납품하는 양만 따져도 세계 1위 목재회사는 거뜬히 달성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정부를 뒷배로 두고 있다.
정부 요직에 있는 인물들이 주식을 다량 보유하고 있었고.
곽보곤 은행장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감히 CDB은행장에게 툴툴거릴 수는 없는 일.
“중요한지 아닌지는 내가 정합니다.”
“그러니까 뭐가 중요한데요?”
“투마로우가 왜 매도 리스트를 발행했는지 아시는 걸 말하세요.”
“그걸 내가 어찌 압니까?”
“정말 모릅니까?”
“모릅니다.”
두 눈을 부릅뜬 차이나포레스트 사장은 입술을 굵게 다물었다.
“모른다……. 지금 주가가 20% 이상 빠졌는데 모른다. 지금 은행이 투자한 돈이 20억 달러가 공중으로 날아갔는데 모른다. 당신 죽고 싶은 거지?”
“뭐요?”
“이 새끼야. 네가 공산당 간부를 등에 업고 있는 건 아는데. 그 간부 뒤에 누가 있는지는 알고 지랄하는 거야? 전화 한 통이면 한지로 쫓겨나 곡괭이질이나 할 놈을 사장으로 앉혀놨더니 뭐? 몰라?”
“당신 말이면 다하는 줄 알아?”
“그래? 마침 시간이 다 됐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 CDB은행장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차이나포레스트 전방위적으로 매출 부풀리기. 원난성 허용 벌목은 7억 달러인데 회계장부에 9억 달러 기재……]
줄줄이 나열되는 실제 벌목 양과 장부에 기재된 벌목 양.
작게는 1억 달러에서 많게는 10억 달러까지 총 100억 달러 이상 매출을 부풀렸다는 발표가 흘러나왔다.
이제 주가는 순식간에 바닥을 향해 추락할 것이다.
CDB은행장은 차이나포레스트 사장을 노려봤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차이나포레스트 주식을 누가 가졌는지는 알 거고. 그분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이 정신 나간 새끼야.”
차이나 포레스트 사장의 얼굴이 노랗게 변하며 손을 잘게 떨었다.
“해결할 수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 그리고 저거 사실이야? 매출을 허위로 잡은 게 사실이냐고. 빨리 말해.”
“그걸 왜 나한테 묻는데. 다 그렇게 하잖아. 안 그런 회사가 어딨어. 당연한 걸 왜 나한테 묻는데. 왜?”
곽보곤 은행장은 어이가 없었다.
미국에 상장하면 투명한 회계는 필수라고 했더니 회계장부만 투명했다.
실제 매출과 이익은 전부 허위로 작성했다.
“야, 너 나가. 네 맘대로 하고 살아. 그리고 명심해. 회사 정상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알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거. 잘 알겠지. 네가 그 자리에 그렇게 올라갔으니까.”
나가.
차이나포레스트 사장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휙 뒤돌아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갔다.
츄쓰(나가 뒈져라).
곽보곤 은행장은 열린 문으로 보이는 비서에게 손짓했다.
“페이지에 과장 들어오라고 해.”
“네.”
잠시 후 검은 양복을 잘 차려입은 눈매가 날카로운 사내가 들어와서 고개를 숙였다.
페이지에 과장.
직급과 상관없이 곽보곤 은행장 직속 부하.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이 닫히고 곽보곤 은행장이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오늘 차이나포레스트 사장이 교통사고가 난다고 들었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가야겠다.”
“알겠습니다.”
“잘해야 해. 이쪽 이름이 절대 새어 나오면 안 돼.”
“알겠습니다.”
후
곽보곤 은행장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임재준.
넌 살아 있으면 안 돼.
***
AAG빌딩 6층.
재준이 팀원을 모아 놓고 골똘히 생각 중이었다.
“그러니까 차이나포레스트가 탈세를 위해서 세운 중개회사가 5개 밖에 없다는 거지?”
“네, 5개입니다.”
재준이 기억을 잘 더듬고는,
“6갠데.”
“네? 왜 꼭 6개여야 합니까? 따로 조사하고 있는 게 있습니까?”
“아, 아니야.”
“뭐가 아닌데요?”
하여튼 머리 좋은 놈들은 꼭 파고들어.
그냥 대충 그렇구나 하면 안 되나.
변명거리 찾기도 힘들어 죽겠구먼.
“중국은 6이란 숫자를 좋아하니까. 분명 6개를 만들었을 거야.”
중국어로 6은 리우라 발음하는데 ‘순조롭다’란 뜻이 있어 중국인들이 9와 함께 좋아하는 숫자이다.
아, 네.
모두 매서운 눈초리로 재준을 째려봤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십니까?
뭘 더 알고 있는지 얼른 털어놓으시죠.
“중국은 음흉한 구석이 있으니까 돈의 흐름을 철저히 들여다봐. 아마 한 곳이 더 있을 거야.”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뭔데?”
“차이나포레스트 계열사 중 우슈(武術) 체인 기업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돈이 꽤 들어갑니다. 근데 우슈에 어떤 인테리어와 장비를 사용하는지 감이 안 와서 보류해 놓긴 했습니다.”
“우슈?”
“네.”
“거기네. 마지막 중개회사. 혹시 인테리어 항목에 자금이 많이 흘러 들어가는 거 맞아?”
“어, 어떻게 아셨어요? 체인점이 개설될 때마다 최소 1,000만 달러씩 들어갔습니다.”
“그 체인점 샅샅이 뒤져.”
머리 나쁜 놈들.
아니 무슨 도장 인테리어에 120억 원씩 들어가.
도장 인테리어면 나무 바닥이랑 벽에 유리밖에 더 있어?
뭐 샌드백을 금으로 도금한다면 모를까.
“일겠습니다. 거기까지 파고들겠습니다.”
아직은 재준에 대해 덜 알고 있는 블록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거기까지가 어딘데?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게 있지.
저 ‘우슈’라는 단어가 무척 맘에 걸려.
마치 용병 양성소 같은 느낌이야.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야겠지.
“그리고 음. 경호업체 좀 알아봐야겠는데.”
“경호업체라뇨?”
“중국을 상대하려면 조심하는 게 좋아. 이번에 차이나포레스트 사장이 바뀌었잖아. 그 전 사장에 대해 알려진 소식 있어?”
“없습니다. 그냥 사라졌습니다. 설마, 이번 일로 죽이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그건 모를 일이지. 중국이잖아.”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재준은 태연하게 창가로 가서 핸드폰을 들었다.
“네, 천 실장님. 미국으로 좀 오세요.”
***
백악관.
911테러를 경험한 2년 차 대통령은 CIA 국장의 보고를 받으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차이나포레스트 기업을 건드리는 투마로우를 테러하겠단 말이죠.”
“확실한 것 같습니다.”
테러라면 학을 떼는 대통령의 얼굴에 긴장이 역력했다.
“투마로우 누구를?”
“임재준과 주변 인물들입니다.”
“그들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미국이 글로벌 금융 체인이 약간 흔들리긴 할 것 같습니다.”
“뭐요? 겨우 은행 하나 때문에 글로벌 전체가 흔들린다고요?”
“이번 아르헨티나를 보셨으면 짐작하셨을 겁니다. 이제 은행이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힘을 가졌습니다. 특히 임재준은 월가에서 유대 자본과 싸움에서 승리하고 월가의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어쩌면 이번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연방준비은행 행장 윌리엄의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유대 자본이 당분간 잠잠할 거라고.
잘하면 연준을 정부 손안에 넣을 수도 있다고.
“무슨 기회를 말하는 겁니까?”
“임재준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방금 그가 죽으면 글로벌 금융 체인이 흔들린다면서요. 그럼 우리가 나서서 보호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한국인이라도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인물인데.”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뒤에서 아무 말 없는 FBI 국장에게 시선을 옮겼다.
“루이스 국장. 당신 생각은 어때요?”
FBI 국장이 CIA 국장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위험한 인물은 맞습니다. 이번 중국기업 공매도로 돈을 벌어들이는 게 영 수상하고요. 국가를 상대로 자꾸 도발을 하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911테러로 안보에 민감한 시기인데요.”
대통령은 두 국장의 말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중요한 인물이면 미국 시민권을 줘서라도 설득하려는 생각은 안 하고 죽게 내버려 둔다거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나 하고 있다니.
중국 경제가 요즘 치고 올라오는 꼴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인데 지금 중국의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나선 투마로우를 버린다?
말도 안 돼.
투마로우는 미국에 없어서는 안 될 은행이고.
아니, 투마로우가 아니라 임재준이란 인물이 필요해.
“아닙니다. 일단 보호합시다.”
“이번 일은 국내 사안이니 FBI가 맡겠습니다.”
CIA 국장이 어이없다는 듯 나섰다.
“단순히 국내에서 일어난 일이니 FBI가 나서는 것은 위험합니다. 지금까지 진행 사항은 CIA가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자료를 넘겨 주시면 될 일 아닙니까?”
“지금까지 CIA 자료가 FBI로 넘어간 예는 없는 거로 아는데요.”
대통령은 이건 또 무슨 어이없는 말들인가 생각했다.
방금까지 죽게 내버려 두자느니 영향력을 줄이자고 해놓고 보호하라니까 서로 나서고 있다.
이거 뭐가 있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