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스스로 노력 좀 하지. 아니면 뒈지든가(2)
잭슨 블록.
블록은 변호사였지만 중국어에도 능통했다.
중국의 엄청난 물류를 본 후 변호사 개업을 때려치우고 중국으로 달려가 물류창고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의 이해할 수 없는 문화 때문에 쫄딱 말아먹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놈의 중국 놈들 내가 그 더러운 문화를 낱낱이 파헤쳐 주마.
그 이후로 중국에 아는 지인들을 동원해 자료를 수집하고 중국 기업에 대해 분석한 후 매도 리포트를 써 증권사에 팔아먹으며 겨우 연명하는 신세였다.
자본만 더 있다면.
중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맡길 일이 많지만, 항상 돈이 부족해 말도 못 하는 처지.
하지만 투마로우가 뒷배가 되어 준다면 매도 리포트 후 공매도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당연히 해야죠.”
“그럼, 자세한 것은 변호사와 이야기하고 한 가지는 약속하죠. 제반 비용은 저희가 전부 댑니다. 공매도 수익의 2%는 당신 몫입니다. 공매도 규모는 중국 기업의 최소 10%. 확실하다 싶으면 그냥 100%를 때릴 수도 있고.”
최소 10%?
이 사람 소문보다 더 무지막지한 사람이다.
중국 기업 10%면 수익은 최소 10억 달러.
거기에 2%면 2000만 달러.
이건 무조건 해야지. 무조건.
***
일주일 후.
허베이성 오리지널페이퍼 공장.
“어서 오십시오.”
오리지널페이퍼 공장장은 외국인 노숙자 같은 사람과 중국 공산당 배지를 단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제 미국 지사 유통 팀장이란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 미국 본페이터유통 사람이 우리 공장 실사를 갈 거니까. 보고 싶은 거 다 보여주고 설명 잘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본페이퍼유통?
들어보지 못한 회사지만 미국은 워낙 많은 회사가 존재하니까.
“안녕하십니까. 본페이퍼유통 로버트입니다.”
공산당 배지를 단 사람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대충 고개를 까딱이는 게 전부였다.
공장장은 되도록 로버트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루 생산량이 얼마나 됩니까?”
“네, 저희 공장 하루 생산량은…….”
공장장이 장부를 뒤지며 손가락으로 어지러이 뭔가를 찾았다.
“여기 있네. 8만 톤입니다.”
“8만 톤. 괜찮네요. 근데 그거 여기 생산 장부입니까?”
“아, 네.”
로버트는 그렇군요를 말 대신 몸으로 보여줬다.
8만 톤?
정말 대충 대충이구나.
종이전문잡지 PPI에 따르면 중국 한 해 종이 소비량이 3,200만 톤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8만 톤을 생산하면 너희들이 중국을 다 커버한단 말이야?
이런 거짓말쟁이들.
“그것 좀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보세요. 근데 이거 전부 한자라서 알아볼 수는 있을까 모르겠네요.”
로버트는 장부를 보는 순간 오만 가지 인상을 썼다.
이런, 이런 전부 허위로 기재되어 있네.
“하하, 정말 뭐라고 쓴 건지 모르겠네요.”
“그렇죠. 가끔은 우리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하하.”
“하하하, 농담도. 공장장이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하하.”
“정말입니다. 위에서 작성되어 내려오는 문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다니까요. 하하하.”
“아, 네. 하하하. 그럼 공장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럼요. 이리로.”
로버트는 공장장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공상당 배지를 단 사람이 로버트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
[스톡체인, 나스닥 상장 중국 기업 오리지널페이퍼 매도 의견과 함께 공매도 실행]
[오리지널페이퍼 주가 폭락. 하루 만에 40% 빠져]
[오리지널페이퍼 스톡체인 리포트 내용 모두 부인]
[오리지널페이퍼 반박 증거 내놓지 못하자 주가 90%까지 폭락. 스톡체인 공매도 이익 사상 최고치 경신 50억 달러 추정]
***
CDB은행 행장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CDB은행장은 오리지널페이퍼 사장을 향해 신문을 내밀었다.
“그게 저희들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는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아니, 내 말은 왜 허위로 기재했냐고 묻는 겁니다.”
“그건 매출이 늘어나지 않으면 주가가 떨어지니까요.”
지금까지 고개를 숙이던 오리지널페이퍼 사장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CDB은행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잘못은 정보 누출이지 허위 회계 장부 조작이 아니라는 듯.
“내가 나스닥에 상장시키면서 누차 강조했지요. 잘하라고. 약점 잡히지 말라고.”
“네. 장부상 허점은 없습니다.”
“그게 문제잖아요. 장부만 멀쩡하면 뭐합니까? 숫자가 현실성이 없는데. 어떻게 당신 회사가 중국 일 년 소비량을 다 생산합니까?”
“그거야 수년에 걸쳐 매출을 조금씩 올리다 보니…….”
“그걸 말이라고.”
아이고 머리야.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쓰레기가 됐습니다. 이 손해를 어떻게 할 겁니까?”
“저희 잘못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국제 회계 기준에 맞춰서 장부도 잘 정리했고.”
“장부만 잘 만들면 뭐해요? 실제 매출이 안 올랐는데. 매출을 올려야 할 거 아닙니까?”
“이미 중국 시장이 포화 상태라 매출은 힘듭니다.”
“수출 안 해요? 수출.”
“수출용으로 만들면 이익이 줄어듭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꼬박꼬박 말대답은 잘도 하면서.
똑똑.
“들어와요.”
비서가 쪼르르 달려와 신문을 건네줬다.
“뭐야, 이거.”
[스톡체인 중국 기업 다렌인터내셔널 또 매도 리포트와 함께 공매도 실행. 배기가스 탈황 키트 생산업체인 다렌인터내셔널은 중국 대부분의 대형 제철회사에 자사 제품을 공급한다고 공시했지만, 이는 모두 거짓이라고 매도 의견을 밝혔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 진짜, 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
오리지널페이퍼 사장은 CDB은행장을 피해 슬금슬금 물러났다.
***
스톡체인 산하 채노스마이어펀드.
스톡체인 건물로 이전한 채노스마이어펀드는 두 건의 공매도 성공으로 회계 자료 분석 인원만 100여 명에 달했다.
이 펀드를 이끄는 수장은 퀴니코와 블록.
“차이나텔레비젼익스프레스 리포트 언제 나오지?”
퀴니코가 블록에게 공매도가 마렵다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마지막 글자 수정만 남았으니 곧 나올 거야.”
“사랑스러운 보스. 상승장에서 먹잇감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 주니 아주 기분 좋아 미치겠어.”
“난 이제 보스를 신으로 보기로 했다. 어떻게 찍어주는 중국 기업마다 대박을 터뜨리냐.”
“오리지널페이퍼와 다렌인터내셔널은 언제 상장 폐지되지?”
“상장 폐지 통지서를 받았지만, 아직 액면 병합이 남았으니 당분간 숨은 붙어 있을 거야.”
나스닥은 주가가 1달러 밑으로 일정 기간을 지속하면 상장 폐지된다.
하지만 기업은 상장 폐지를 면하기 위해 액면 병합이라는 방법을 쓴다.
뭐, 별로 어려운 건 아니고 예를 들면 1달러 주식 10주를 한 주로 합쳐서 10달러짜리 주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면 주가가 1달러를 넘으니 상장 폐지를 면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기업은 어차피 페니스탁을 면하지 못해 언젠간 사라진다.
페니스탁은 5달러 미만의 주식으로 동전주라고 부른다.
“다들 준비는 끝났어?”
블록과 퀴니코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재준과 그 뒤로 페렐라와 워서스틴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네, 보스. 이제 거의 다 되었습니다.”
“이번엔 그 뭐야? 이름이. 하여튼 중국놈들은 이름도 복잡해.”
“차이나텔레비젼익스프레스입니다.”
“아, 맞아. 그게 고속버스 안에 디지털TV 설치하고 광고하는 기업이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거기 대주주에 전직 AAG CEO도 있던데. 이름이 마크 그린스틴. 이 사람이 사외이사 두 명을 임명했더라고. 이런 사람이 왜 저런 쓰레기 같은 회사를 믿는 걸까?”
“그뿐이 아닙니다. 미국 회계법인 빅4 중 하나인 달로이트도 감사법인으로 되어있습니다.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던 상장 사기 카르텔입니다. 상장 후 떨어지는 이익에 눈이 먼 자들이죠.”
“어쨌든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실체가 드러나겠지.”
재준의 시선이 페렐라와 워서스틴을 향했다.
“그리고 페렐라와 워서스틴은 블록과 퀴니코가 조사하다 제외시키는 건실한 중국 기업 미국 지사(계열사)를 M&A 시도하고.”
“모두 다 인수합니까?”
“아니, 잘 골라야지. 음, 기본 경제성이 튼튼하고, 진행 방향이 올바르고,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기업으로.”
페렐라와 워서스틴은 벙찐 표정을 했다.
“그게 뭡니까?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은데요. 인수 전에 충분한 실사를 거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실사? 서류 검토하는 거? 그런 걸 왜 해?”
“왜라뇨? 당연히 해야 하는 거죠.”
“아니야, 대충 봐서 좋은 기업 있잖아. 일단 매출액이 한 1억 달러 이상이면 됐고. 수익은 지속적이어야 하고, 부채 적고, ROE는 높고, 경영진 자질 좋고, 매각 가격 협상이 편한. 대충 이것만 보면 되지.”
“네? 재무제표나 기업 실무 실사 같은 걸 생략한다고요?”
“이봐, 페렐라. 너 연애 안 해 봤지?”
“아니요? 많이 해 봤는데요.”
재준이 모두를 죽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연애는 해봤어?”
당연한 걸 왜?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연애에 대한 자신감을 얼굴에 드러냈다.
“그래? 근데 연애할 때 상대 출생증명서 실사해 본 사람. 손.”
황당.
“거봐, 기업도 연애처럼 사랑스러워 보이는 걸 택하면 돼.”
하!
다들 말문이 막혔다.
이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듯했다.
기업을 서류로 들여다본들 그걸 증명할 방법은 없다.
매출이 1억이라고 적혀 있고 2,000만 불이 순이익이라면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이걸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직접 가서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고.
차라리 재준의 말대로 기본적인 정보에 느낌이 좋은 기업을 인수하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다.
재준의 말에 모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중요한 건 나쁜 놈은 매도 리포트와 공매도로. 쓸만한 놈은 LBO를 동원해서라도 인수해서 팔아먹는다. 이러면 CDB가 열 좀 받을 거야. 거기다 우린 상장한 회사가 하나도 없으니 우릴 적대적 인수도 못 하고. 할 수 있는 건 기자회견이나 열어서 욕밖에 더하겠어?”
***
[스톡체인 또 중국 기업 공격. 이번엔 차이나텔레비젼익스프레스 매도 리포트와 공매도 실행]
이쯤 되면 지금까지 지켜보던 월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급한 차이나텔레비젼익스프레스는 중국 기업답게 거짓 공시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차이나텔레비젼익스프레스 어플, 코크, 차이나모빌, 매이저콩 광고로 10대 고객 유치 500% 증가 공시]
[어플, 코크 차이나텔레비젼익스프레스과 광고 계약 맺은 적 없고 자사 브랜드 무단 사용으로 소송]
[차이나텔레비젼익스프레스 주가 70% 하락. 이번에도 스톡체인 중국 기업 성공. 공매도 이익 상당할 듯]
이제 월가는 스톡체인의 중국 기업 공격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기다리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다음 매도 리포트가 나오면 투마로우 행보에 한 발이 아니라 양발을 담글 기세였다.
-투마로우는 지난번 아르헨티나 이후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구나.
-그러게. 다음 대상 어딘지 아는 사람 없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업을 무너뜨릴 거라는데.
-어디?
-차이나포레스트.
-뭐? 설마? 거긴 지금까지 무너뜨린 기업을 다 합친 것보다 큰 기업이야. 중국 입장에서 무너지게 놔두지 않을걸.
-그게, 이 싸움의 시작은 CDB라는 거야.
-그럼, CDB를 무너뜨리게? 이건 더 말이 안 되는데?
-CDB가 어떻게 무너져. 국책은행인데. 그건 중국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거야.
-그러네. 그보다 앞으로 CDB가 투마로우를 보면 가던 길도 돌아가게 하겠다는 건가? 아르헨티나처럼. 지금도 남미 나라들은 투마로우라면 학을 떼잖아.
-이야, 정말 차이나포레스트 무너지면 볼 만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