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26화 (126/477)

제126화 스스로 노력 좀 하지. 아니면 뒈지든가(1)

페렐라의 말에 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준 회장이 열 받은 거야. 국채로 그만 벌어먹으라는 거지. 이렇게 된 이상 은행들은 다른 먹거리를 찾아야 해.”

“자금이 넉넉한 대형 은행들은 국채 아니면 이득 볼 게 별로 없을 텐데요.”

“왜 없어? 대출, 대출해주고 이자 받으면 되잖아.”

“지금 은행들은 기업 추가 대출을 꺼리는 분위긴데요?”

“기업 말고 개인. 주택담보대출. 기업 대출보다 이자는 높고 위험은 적고. 좋잖아.”

“대출 규모가 너무 작지 않을까요?”

“전 국민을 상대로 하면 되지.”

“그럼 또 묶이는 돈이 너무 많을 것 같은데…….”

“ABS(자산유동화증권) 있잖아.”

“아, 부동산을 증권화해서 유동성을 만들기 위해 주로 쓰는 방법. 그러면 돈이 계속 돌긴 하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면 안 돼.”

“더 나아가요? 뭘 더 나아가요?”

말해 줘야겠지.

그래야 어디가 함정인지 알 테니까.

“사실 내가 만들려는 상품이 있어. 고민 중이야.”

“상품이라뇨?”

“주택담보대출이 개인 신용에 따라 우량과 비우량으로 나뉘는 건 알 거고. 우량은 ABS를 만들어도 사주는 사람이 많단 말이지. 하지만 비우량, 서브프라임은 ABS를 만들어도 아무도 안 살 거야. 그래서 은행도 대출을 꺼리지.”

“당연하죠. 서브프라임이니까.”

“그런데, 서브프라임에게 대출을 해주고 이를 다 묶어서 CDO(부채담보부증권)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네?

순간 페렐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며 입을 턱 벌렸다.

천재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서브프라임이 하나면 위험하지만 이를 다 모아서 하나처럼 취급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즉, 서브프라임이 100개를 묶으면 100명의 개인이 일시에 무너져야 위험이 발생하는 구조다.

그럼, 우량 대출도 돈이 돌고 비우량 대출도 돈이 돈다.

돈이 계속 돌아 대출을 무한정 발생시킬 수 있다.

가만히 샴페인을 음미하며 이야기를 듣던 윌켄이 핸드폰으로 손이 이동했다.

이건 무조건 된다.

재준이 빙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윌켄, 안 돼요. 내가 말했잖아요. 더 나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보스, 이건 미친 상품입니다. 이걸 우리가 독식하면 1조 달러도 벌 수 있다고요.”

“윌켄, 알아요. 하지만 전 그 끝도 알고 있어요.”

“끝이라면?”

“대규모 돈이 움직이는 그 끝에는 재앙이 찾아옵니다.”

“말도 안 돼요. 서브프라임을 묶은 CDO가 재앙이 되려면 미국 주택이 한날한시에 폭락해야 합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재준은 윌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만약 가능하다면?”

윌켄은 재준의 눈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탐욕을 보았다.

헉.

한날한시에 폭락시킨다?

윌켄이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보스, 설마, 재앙을 만들려는 겁니까?”

그렇지.

이번에 미국을 손안에 넣는다.

“재앙 뒤. 우리가 나섭니다. 그때까지 우린 철저히 준비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럼 이 CDO 상품은 우리가 파는 게 아니라 퍼뜨리기만 합니까?”

“맞아요. 적당한 은행을 물색해서 정보를 흘리세요. 삽시간에 전 세계 은행으로 퍼질 겁니다. 단, 투마로우만 빼고.”

윌켄은 등줄기에서 서늘함이 흘러내렸다.

이 사람, 전 세계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한다.

막아야 하나?

아니, 왜?

만약 보스의 말이 실현된다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말해 뭐해, 원하는 은행이든 기업이든 다 먹을 수 있는 거지.

진짜 금융의 전설이 되는 거다.

“그리고 우린 한 명 인재가 필요합니다. 이름은 펠그리니. 이탈리아 출신인데 지금쯤 아마 맨해튼 북부 위성도시 기차역 부근 방 두 개짜리 소형 아파트에 살고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워샤웃(Washout, 월가에서 실패한 금융인) 아닙니까?”

“그게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발음이 구려서.”

“네? 그게 이유라고요?”

“맞아요, 근데 천재예요. 수학 천재. 이 사람을 투마로우에 데려오세요. 아마 CDO의 몰락 시기를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요?”

펠그리니.

내 기억에 선명한 천재 중 하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몰락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다만 정말 영어 실력은 토플 만점인데, 이탈리아 발음과 섞인 영어 발음 때문에 가는 곳마다 왕따를 당해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그러다 그의 선배 폴이 그를 구제해서 월가의 전설로 남는다.

폴에겐 미안하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 낚아챈다.

“아, 그리고 그와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말고요. 차라리 이탈리아 통역인을 하나 붙이세요. 괜히 알아듣는 척하다가 열불나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자! 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여유롭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준비해 볼까.

알겠지만, 재준에게 여유로움이란 허락될 리가 없지.

이때, 재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리링.

뭔가 불길하다.

“네, 마이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어쩜 미국 재무부에서 뭐라 그럴 수도 있고.

아르헨티나와 관계가 엉망진창이 됐을 테니까.

-임 대표님. 지금 저희 투마로우 지주회사 상장 준비 중입니다. 아시죠?

“네. 알고 있죠. 제가 직접 지시를 내린 건데 모를 리가 없죠.”

-근데 아직 상장도 안 했는데 매도 리포트가 돌고 있습니다.

“네? 매도 리포트요?”

상장 전 매도 리포트면 악감정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건데.

“출처가 어딘지는 아세요?”

-CDB(중국개발은행)입니다.

이런 떼놈들.

왜 가만있는 나를 건드리는 거야?

“이유가 뭔가요?”

-표면상으론 성장성 둔화를 말하고 있지만, 월가에선 아르헨티나에 대한 보복성 리포트로 보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교역 면에서 4위에 해당하고 채권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가 이번 대표님의 공격으로 손해를 많이 봤습니다.

아, 마지막에 사들인 채권이 중국이 가지고 있던 거였구나.

거의 줍다시피 샀는데, 어쩐지 많더라.

나중에 제값 받으면 속 좀 쓰리겠는데.

-그리고 중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선봉에 서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번엔 아르헨티나는 손도 못 쓰고 당했으니 가만히 지나갈 수 없는 노릇일 겁니다.

웃기고 있네.

자기들도 채권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끝까지 쥐고 있던 거 아닌가?

예상외로 공격이 거세니까 손해가 더 커지기 전엔 채권도 팔았으면서.

가만, 이러면 중국개발은행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건너가죠.”

재준이 핸드폰을 끊자 일제히 달려들었다.

“보스, 이건 뭔 소립니까? 매도 리포트라뇨?”

매도란 말에 퀴니코가 질문하자 윌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애널리스트가 매도 리포트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이건 한번 해보자는 건데. 누굽니까? 보스.”

“CDB, 중국이라는데.”

“CDB면 중국 기업의 뉴욕 증시 상장을 전면에서 지원하는 은행 아닙니까? 덩치는 좀 큰 놈인데.”

재준은 입안이 떨떠름했다.

“이거 잡아먹지도 못하는 은행이니 어떻게 한다?”

“중국 국채를 사들일까요?”

“그거 사서 뭐 하게. 이자 받아먹는 거 외에 도리가 없잖아. 공매도를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전에 퀴니코가 말한 대로 약점이 폭발할 때 시도하는 것이 공매도인데 중국개발은행이 약점이 있어도 터지질 않으니 쓸모가 없었다.

가만,

“중국 기업 상장을 지원하는 은행이라고 했죠?”

“네, 1994년부터.”

딱.

재준이 뭔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일단 미국으로 가서 사람 하나 수소문해야겠습니다.”

“또요?”

“펠그리니는 수학자이고 이번엔 리서쳐이면서 헤지펀드 매니저입니다. 중국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이름이 뭔데요?”

“잭슨 블록.”

“네? 누구? 잭슨 블록?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인데요.”

“당연하죠. 작년에 중국에서 돌아와 이제 막 개인 헤지펀드를 세웠으니까요.”

“아니,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아는 겁니까?”

그야, 기억에 저장되어 있으니까.

“항상 신문을 보고 필요한 사람을 체크하는 버릇이 있어서. 하하.”

“아, 네. 그러시겠죠.”

어디 월가 사람들 조사하는 사설탐정이라도 고용한 거 아냐?

그럴 수 있어. 어떻게 뭔 일이 터지면 적시 적소에 딱 맞는 인재들을 데려올 수 있는 거지?

그것도 잘나가는 인간도 아니고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거기에 능력도 정확히 파악하고.

혹시…….

보스는 인간이 아닌 거 아냐?

“자, 마무리하고 내일은 미국으로 떠납시다.”

“바로요? 파리에 왔는데 일만 하고 간다고요?”

“뭐, 더 볼 거 있나요? 제일 비싼 호텔에서 제일 비싼 샴페인 마셨으면 다 된 거 아냐?”

“관광은 안 해요?”

“관광? 그건 돈 없어도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거잖아. 난 꼭 돈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것만 즐기는데.”

아, 그렇구나.

모두 이해했다.

재벌만이 할 수 있는 걸 즐긴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 아예 안 한다?

일리 있네. 일리 있어.

근데 이 서운함은 무얼까.

***

마이어펀드.

우뚝 솟은 빌딩 숲에 가려진 허름한 5층짜리 건물 그것도 5층.

재준은 5층까지 올라와서 손만 대면 열릴 것 같은 문에 적힌 간판을 보았다.

MIRE FUND

mire, 진흙탕이란 뜻이다.

“거 참, 장래에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 시작은 너무 미약한데.”

똑똑.

끼이익.

역시 노크를 하자 문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들어오세요.”

한 박자 늦게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재준이 들어서자 한자로 된 서류에 얼굴을 파묻은 사내를 발견했다.

마치 뭐랄까, 꼭 소림사에 떨어진 외국인 노숙자?

아닌가? 오래도록 수염을 안 깎아서 그런 건가?

“안녕하세요. 잭슨 블록을 만나러 왔는데. 혹시…….”

그제야 노숙자가 고개를 들었다.

어! 동양인이네.

“아, 제가 잭슨 블록입니다. 누구신지, 아니,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일단 이리 나와서 앉읍시다. 할 말이 많은데.”

할 말?

손가락으로 콧등을 긁은 블록이 귀찮다는 듯이 터덜터덜 나왔다.

“일이라도 의뢰하시려는 겁니까? 저는 미국 회사 리서치는 되도록 자제하고 있는데요.”

“투마로우에서 왔습니다.”

“네? 투마로우요?”

블록의 눈이 덩치에 맞지 않게 계속 깜빡였다.

투마로우라니.

투마로우가 왜 여기에?

무슨 중국 관련 기업 조사라도 맡기려는 건가?

“블록, 임재준입니다.”

재준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임재준이요?”

투마로우 오너 임재준?

오늘 이 사람 약을 한 것도 아닌데 여긴 왜?

두 손으로 재준의 손을 두어 번 흔들고 놓은 블록이 말했다.

“혹시 의뢰입니까? 아니지, 무슨 일을 오너가 직접 와서 의뢰를 해. 정말 무슨 일이시죠?”

재준은 두 손을 앞으로 살짝 내밀고 말했다.

“당신의 열정을 살까 하는데. 투마로우에서 평생.”

“네? 그, 그러니까, 지금 저를 임재준 당신이 직접 와서 헌팅 하겠다는 겁니까?”

“헌팅, 맞아요. 스카우트 제안합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왜?

“다소 의외지요? 하지만 지금 투마로우는 당신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혹시 중국 기업 사냥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렇다면 잘못 짚으신 것 같은데요.”

“아니, 아니. 중국 기업은 사냥하는 건 맞는데. 그쪽이 생각하는 사냥은 아닙니다. 인수가 아니라 죽이는 쪽으로.”

“그럼, 공매도?”

“맞아요. 당신 파트너는 퀴니코입니다. 아시죠?”

“네? 공매도의 미친개 퀴니코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중국 모든 분식회계 기업들. 지금 당신이 파고들고 있는 기업들. 어때요? 투마로우로 들어와서 마음껏 활동해 보는 게.”

재준이 블록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중국 내 당신 요원이 100여 명 있다는 거 압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만이 가득한 것도. 다 돈 때문 아닌가요? 언제까지 그들을 기다리게 할 겁니까?”

블록이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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