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저거 세워서 압류해. 저거(5)
프랑스행 비행기 안.
재준은 보안상 문제로 퍼스트 클래스 전체를 전세 내서 이동했다.
침묵을 강요당한 비행기 안.
모두 재준의 생각을 묻고 싶었지만, 눈을 감고 생각 중인 재준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결국, 퀴니코가 갑자기 궁금해서 미치겠단 표정으로 물었다.
“보스, 눈 좀 떠봐요. 아르헨티나 공매도하라면서요. 근데 프랑스는 왜 가는 겁니까?”
재준이 천천히 눈을 뜨며 퀴니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퀴니코, 넌 공매도 치기 전에 무얼 하지?”
“당연히 약점을 찾아야지요. 그리고 그 약점이 잠잠한가 아니면 언젠간 폭발할 것인가를 계산합니다. 약점이 조만간 ‘펑’ 하고 터질 것 같다면 모든 걸 걸고 공매도를 시도합니다.”
“잘 아네. 약점. 지금 그 약점 만들러 가는 거잖아.”
만들러?
찾는 게 아니라 만든다?
퀴니코는 역시 이럴 줄 알았다고 비실비실 웃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이 인간은 약점을 찾는 게 아니라 만든다니까.
근데 약점이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건가?
“프랑스에 가서 어떤 약점을 만들 건데요.”
이 점은 페렐라도 워서스틴도 궁금해서 몸까지 재준을 향해 돌렸다.
“나도 그게 궁금해.”
재준이 그들을 죽 둘러보고는 승무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얘기하기 전에 목부터 축이고.”
위스키가 병째 나오고 잔에 술을 따른 재준은 한 모금 마셨다.
카!
“자, 정확히는 약점이 아니라 적의 우군을 죽이는 거야. 우리가 아르헨티나를 공매도 친다면 누가 제일 먼저 달려들까?”
“그야 월가 놈들이겠죠.”
“그렇지. 월가는 저들의 우군이 될 수 없고, 그다음은?”
그다음?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월가 말고 누가 오나?
아, 사람들이 월가라면 꼭 월스트리트에 있는 금융회사라고 생각하는데 돈에 환장한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다국적 거대 기업 재무부서를 통틀어 월가라고 부른다.
물론 이들이 딱 월스트리트에 있는 건 아니지만 주변에 널리 퍼져 있기는 하다.
재준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브라질이야. 그다음은 아르헨티아와 최대 수출 수입을 거래하는 브라질.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아르헨티나로 달려오지. 그래서 브라질은 만나 경고부터 하려고 프랑스로 가는 거야.”
“브라질을 만나러 가는데 왜 프랑스로 갑니까?”
“프랑스 재무부 차관에게 파리클럽을 개최를 요청하려고.”
“아, 파리클럽!”
그제야 모든 이들이 왜 프랑스로 가는지 이해했다.
문제아 아르헨티나가 1956년 디폴트 상황을 정리하다가, 개별 협의를 지속하기 어려웠던 아르헨티나 정부의 요청으로 채권국들이 파리의 한 클럽에 모인 것이 파리클럽이다.
아주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는 나라다.
하나하나 상대하기 귀찮으니까 너희들이 모여서 알아서 지지고 볶은 후에 뭔가 결정되면 알려달라는 거지.
그 이후로 파리클럽은 전 세계 국가 채무, 채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수시로 모이는 회의로 발전하였다.
파리클럽 의장은 프랑스 재무부 차관이다.
머리 꽤나 아프겠어.
그러니까 재무부 장관이 아니라 차관이겠지.
이번에 아르헨티나가 또 디폴트를 선언하게 되었으니 누군지 몰라도 차관보가 대머리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아르헨티나.
빌린 돈을 밥 먹듯 떼어먹는 나라.
총 9번의 디폴트. 1827년, 1890년, 1951년, 1956년, 1982년, 1989년, 2001년, 2014년, 2020년.
이 정도면 거의 습관인데.
근데 빌린 돈은 다 어디로 간 거야?
남미 경제 순위 2위에 명목 GDP가 세계 경제 27위인데, 1인당 GDP가 세계 68위.
왜 27위가 68위?
이게 말이나 되나?
차이가 너무 나는 거 아냐?
브라질처럼 인구가 2억이 넘는다면 인구가 많아서 1인당 GDP가 낮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겠는데 한국보다도 적은 4천만 명의 1인당 GDP가 왜 68위인데?
이건 돈이 국민에게 내려가지 않는다는 증거다.
위에서 뭘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기에 국민에게 돌아갈 돈이 없을까?
열심히 한 건 맞다.
윗분들은 정말 열심히 장부 조작을 했다.
오죽하면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상승률 같은 공식 자료도 구라가 심해 전 세계 경제인들은 대충 50%라고 계산한단다.
분식회계를 하지 않으면 미친놈 취급당하는 외눈박이 나라이다.
그건 그거고.
이번엔 나한테 딱 걸렸어.
내 돈을 떼어먹어?
남의 돈을 습관적으로 떼어먹는 놈들은 혼 좀 나야 해.
그래도 정신 못 차리면?
알 게 뭐야.
내가 아르헨티나 국민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닌데.
난 빚을 받을 만큼만 혼내면 되지.
퀴니코가 다시 물었다.
“파리클럽을 개최하면요? 거긴 우리가 들어가지도 못하잖아요.”
“끝난 후 기다렸다가 아르헨티나 사태에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해야지.”
“네? 갑자기?”
“그럼 경고를 갑자기 하지 천천히 하나? 만약 끼어들면 사라크방크 채무 상환 독촉할거라고. 혹시 이거 안 먹히려나? 그럼 두 번째로 아르헨티나 일에 끼어들면 내가 프랑스에 귀화해서 직접 기아나 총독 임명받고 브라질을 인정사정없이 괴롭힐 거라고 경고하는 건 어때?”
네? 기아나 총독?
푸하하하.
결국 워서스틴의 웃음보가 터졌다.
“보스, 정말 생각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기아나라니. 기아나라니요. 근데 정말 기아나에 총독으로 가면 재밌겠는데요?”
진짜 총독으로 가 볼까?
기아나는 브라질 북쪽과 수리남과 국경을 접하는 프랑스령 지역이다.
아니, 왜 남미에 프랑스령이 있냐고?
이 지역 사람들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결사반대하고 있으니까.
무려 70%가 반대한다.
당연히 프랑스 대통령이 기아나 대통령이고 지역을 다스리는 건 프랑스 대통령이 임명한 총독의 역할이다.
기아나에 프랑스 크루 우주센터가 있기 때문에 브라질이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연히 브라질 채권도 프랑스가 다량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공매도의 세부 사항을 이야기하는 동안 비행기는 프랑스에 도착했다.
***
프랑스에 도착한 후.
먼저 재준이 세운 사라크방크 행장인 전 엥도은행장과 점심을 먹으며 돈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사라크방크 행장은 환영을 표했다.
재준과 함께라면 자다가도 돈벼락이 떨어지니까.
다음 나쇼날파리 행장인 파트리스와 저녁을 먹으며 술 한잔을 곁들였다.
남미 주변국들 정리하는 데 도움을 청했다.
당연히 파트리스는 적극 도움을 주기로 했다.
재준과 함께라면 길을 가다 자빠져도 코앞에 10,000유로가 떨어져 있을 거니까.
며칠 후 재무부 차관 주재로 파리클럽이 열리고 재준의 부탁을 받은 차관은 아르헨티나 디폴트를 투마로우에 맡기기로 요청했다.
당연히 모두가 꼴도 보기 싫은 아르헨티나를 혼내는 투마로우의 공매도에 적극 방관하기로 찬성표를 던졌다.
브라질만 유일하게 투마로우의 행동에 대해 잘못된 행동이라고 성토했다.
“어떻게 일개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큰소리를 친단 말입니까? 전 반대합니다.”
파리클럽이 끝난 후 재준은 브라질을 찾아가 진심 어린 협박을 했다.
“내가 돈 받는 데 끼어들기만 해봐. 아주 7년 전 기억을 이번에도 몸소 체험하게 해줄 테니까.”
“그 끔찍한 국가 부도 사건을…….”
“못 할 것 같지. 미국, 프랑스, 한국까지 동원하여 압박해 줄게. 아니, 진짜 성질나면 내가 기아나 총독으로 가는 수가 있어. 잘 생각해.”
“기아나…….”
브라질 재무장관은 기아나란 말에 입을 다물었다고 전해진다.
[파리클럽 아르헨티나 디폴트 우려 발표. 조속히 투마로우에 자구책 마련 촉구]
파리클럽 뒤에 투마로우가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투마로우가 아르헨티나 채권 원금을 받기 위해 움직인다.
이 소식은 어느새 월가를 뒤흔들었다.
투마로우가 움직인다면 우리도 뛰어들어야지.
9년 전 영국 파운드화를 공략했던 사건을 기억하는 헤지펀드들이 슬슬 자금을 마련했고, 대형 글로벌 은행의 트레이너들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다국적 거대 기업의 재무부서까지 투마로우의 행보를 주시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막대한 피해를 보는 주변국들도 이 싸움에 개입하려고 재무부가 동원되었다.
***
호텔 마르티네 펜트하우스 스위트 룸
재준과 일행은 나무로 된 테라스에서 칸느 해변의 환상적인 지중해 풍경을 보며 와인 잔을 기울였다.
하루 숙박비 37,500불.
밖은 서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뛰어다니는데 재준과 일행은 그저 한가롭기만 했다.
“보스, 우리가 선제공격하면 여기저기서 총공세를 할 것 같은데요.”
“문제는 남미 국가들인데. 이들이 끼어들면 다칠 거란 말이야.”
“아직도 국가라는 울타리가 신성한 줄 안다니까요.”
“요즘 분위기를 모르고 덤빈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잖아. 우리가 공격하지 않아도 아르헨티나 싸움에 끼어들면 윌가의 공매도가 쏟아질 텐데. 견딜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참교육을 당해야 자신들의 처지를 알게 되겠지.”
1990년대 IT 버블로 인해 거대한 자금이 시장에 쏟아졌다.
기업이 쓰기에는 너무 버거운 돈이 투자은행으로 몰리면서 은행 인수와 합병이 진행되고, 덩치가 커지면서 이제는 국가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 재준의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신호만 기다렸다.
재준이 퀴니코를 향해 와인 잔을 부딪혔다.
“가보자. 아르헨티나 공매도 시작해.”
“오케이.”
퀴니코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4억 페소 시장에 던져.”
이 당시 1달러가 4페소 정도에 거래되었다.
퀴니코의 선수들이 아르헨티나 시장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재무장관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페렐라가 노트북을 식탁 중앙에 놓았다.
꼬꾸라지는 그래프.
어디선가 나타난 매수세.
아르헨티나 정부일 것이다.
하지만 또 쏟아지는 페소.
윌가의 하이에나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저항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역시 월가는 먹이를 놓치는 법이 없지.”
하루 만에 아르헨티나 페소가 20% 하락 마감했다.
***
다음 날.
우루과이가 아르헨티나의 우군을 자처하며 시장에 개입한다고 발표했다.
재준의 예상대로 투마로우가 개입하지도 않았는데 우루과이 페소는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15%나 폭락하며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시장 개입을 선언하지 않은 파라과이 과라니가 5% 무너졌다.
윌가의 경고.
알아서 빠져 있어라.
[우린 이번 사태를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파라과이 대통령이 나서며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월가의 하이에나들은 사정없이 공격했다.
결국 파라과이가 하루짜리 초단기 콜금리를 75%까지 인상하자 윌가의 공격이 멈추었다.
이에 칠레와 브라질은 동시에 성명을 냈다.
[아르헨티나는 조속히 이 사태를 책임지고 해결하라]
하지만 브라질 헤알화는 다음날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공포.
남미 전역에 공포가 만연해졌다.
결국 브라질은 현금이 부족해지고 프랑스에게 지원 요청을 하였다.
프랑스의 나쇼날파리는 무려 200억 달러를 들여 바닥을 기고 있는 브라질 화폐 헤알을 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