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19화 (119/477)

제119화 다 망하는 꼴 최선을 다해 지켜보겠습니다(8)

다음 날 오후 3시 25분.

KK텔레콤 사장실.

이틀 연속 하한가로 13억 8천만 원이 사라졌다.

텔레콤 사장은 네 개의 그래프를 띄워놓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 5분 전이라고 했어.

확인만 해 보는 거야. 확인만.

정말인지 아닌지.

5분 전인데.

“뭐야? 왜 안 나타나는 거야? 이 사람들. 내 이럴 줄 알았어. 무슨 잔량이…… 어!”

하한가 잔량 100만 주.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하여 매도 창을 띄우는 순간.

어! 사라졌다.

뭐야? 왜 1분도 안 돼서 사라지는 거지?

난 팔아야 한다고!

에이, X발.

***

다음 날 오후 3시 25분.

KK글로벌 사장실.

100억이었던 주식이 50억으로 반 토막 나더니 삼일 하한가로 19억이 날아갔다.

“이대로 오늘도 하한가면 24억. 26억이라도 건져야 하는데.”

꿀꺽.

글로벌 사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초침 소리만 울리는 조용한 순간.

똑똑똑.

뭐야?

화들짝 놀란 글로벌 사장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비서를 노려보았다.

“사장님, 회의 시간이 다 되…….”

“문 닫아. 나가.”

놀란 비서가 황급히 문을 닫고 나갔다.

“에이. 진짜. 신경 쓰이게.”

어! 그새 장이 끝났잖아.

이런 개 같은!

아!

글로벌 사장이 의자 등받이 깊숙이 몸을 기댔다.

24억이 날아갔다.

이제 어쩐다.

주식을 팔고 사표를 내려던 계획이 점점 어려워졌다.

띠리리링.

정 회장의 전화.

하필 이 시간에 전화를 하고 지랄이야!

“네. 회장님.”

-거 SS에너지 인수 자금 어떻게 됐어?

“준비 중입니다.”

-거, 좀 빨리하지. 주가 떨어지는 거 안 보여?

“알겠습니다.”

-에이, 정말 느려 터져 가지고. 거, 숫자 몇 개 바꾸는 게 그렇게 어렵나?

“죄송합니다.”

뚝.

“에이 X발 새끼 정말.”

핸드폰을 들어 벽으로 던지려다 부르르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뭐? 숫자 몇 개 바꾸는 거?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놈이 회장이랍시고 앉아서 지랄이나 떨고 있으면서…….

이 이상은 안 돼.

더는 분식회계를 할 수 없어.

임재준을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야?

분명 그룹은 망가질 테고 임재준이 점령하면 제일 먼저 회계부터 들출 텐데.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뻔해.

회계가 밝혀지면 언론은 나를 인정사정없이 물어뜯을 거고.

언론이 몰아가면 검찰도 어쩔 수 없잖아.

거기다 회장 저 새끼는 연륜이 짧아 정치에 손도 댈 수 없을 테고. 나만 죽을 거야. 나만.

글로벌 사장은 서랍을 열어 장부 하나를 꺼냈다.

내가 먼저 친다.

***

다음 날.

KK 그룹 회장실.

출근한 정 회장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KK에너지 사장과 마주쳤다.

“어, 왔어. 많이 기다렸어?”

“아닙니다. 방금 왔습니다.”

“들어갑시다.”

여기 차 두 잔.

둘은 비서에게 차를 주문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정 회장은 에너지 사장의 표정을 살폈다.

“얼굴이 밝아 보이네, 그래, 어떻게 SS에너지 인수 작업은 잘하고 있는 거지?”

“그럼요.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뭔데?”

“SS에너지 인수한다고 큰소리 뻥뻥 치던 임재준이 인수 포기했답니다. 그놈, 아무래도 자금이 바닥 난 거 같습니다.”

“그래? 하긴 여기저기 돈을 뿌려대니 바닥이 안 나? 미친놈. 그나저나 우리도 서두르자고. 주가가 계속 하한가야. 이러다 채권단이 움직일 수도 있어.”

“걱정 마십시오. 인수 발표와 함께 연속 상한가로 금방 회복할 겁니다. 아직 기관이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주가는 더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좋아. 그렇게만 된다면 다행이고.”

“그래서 지금…….”

벌컥!

비서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야? 왜? 노크도 없이 막 들어오는 거야?”

“회장님, 지금 KK글로벌이 뉴스에 나옵니다. 분식회계 고발한다고.”

뭐? 이게 뭔 소리야?

에너지 사장이 급하게 뛰어 TV를 켰다.

[……이에 저는 더는 KK 그룹의 범죄를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처벌도 각오합니다. 죄송합니다.]

정 회장은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쟤 지금 뭐라는 거야? 뭐가 어째?”

에너지 사장이 급하게 TV를 껐다.

“회장님,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검찰이 들이닥칠 겁니다.”

“뭐? 검찰?”

“급합니다. 어서요!”

“어, 그렇지.”

정 회장은 급하게 회장실을 나가 비서와 함께 사라졌다.

휴,

“나 참. 글로벌이 일을 저질렀네. 언젠가 터질 줄 알았어도 지금일 줄은 몰랐는데. 얼마나 다행이야. 일찍 주식을 처분한 게.”

에너지 사장은 핸드폰을 꺼내서 창가로 갔다.

저 멀리 푸른 하늘에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래 나도 간다.

“응, 여보 나야. 나 오늘 비행기 타. 애들은 잘 있지? 에너지 주식 처분한 돈 당신 이름으로 된 회사로 보낼 거야. 알았어.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응, 끊어.”

가자.

에너지 사장이 돌아서는 순간.

“회장님!”

정 회장은 에너지 사장을 노려보며 천천히 걸어왔다.

“응, 중요한 장부 하나 가져간다는 걸 잊어서. 근데 그건 무슨 이야기지? 에너지 주식을 처분한 돈이라니? 설마 너 나 물 먹인 거야? 앞에선 충성을 다하는 척하더니. 그게 아니었던 거야?”

비켜!

에너지 사장은 정 회장을 밀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 회장은 그저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잠시 후.

“검찰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커다란 파란색 박스를 든 검찰이 회장실로 쳐들어왔다.

***

현재증권 회장실.

TV로 흘러나오는 KK 그룹의 검찰 조사 이야기를 들으며 재준은 혀를 찼다.

쯧쯧쯧.

“그러게 좀 회장답게 살지. 돈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아 가지고.”

아이고 머리야.

임병달은 재준이를 보며 왼쪽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눌렀다.

“이번엔 회사에 가만히 있길래 아무 일 없는 줄 알았는데. 저거 네 작품이지?”

“아니, 그게. 전 그냥 문자 몇 번 한 게 다인데 저렇게 됐습니다. 사장이란 사람들이 물러 터졌어요.”

“문자? 뭐라고 했는데.”

“너희들 분식회계 하냐? 너희 회장이 횡령했다. 뭐, 이 정도 했습니다.”

“근데 자발적으로 검찰에 자수까지 했다고?”

“네. 이번엔 저 사람들 한 번도 만난 적 없습니다.”

나 대신 천 실장이 돌아다니며 수고 좀 했죠.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볼 땐, 네가 한 명씩 찾아가 협박을 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이번엔 절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임병달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재준을 째려보았다.

분명히 뭔가 수작을 부렸는데.

이때,

띠리리링.

“응, 워서스틴.”

-법정에 소송을 걸었더니 아르헨티나가 배 째라는데요.

“그래?”

-어떻게 할까요?

“뭐, 그렇게 사정하시면 째 드려야지. 그렇다고 우리가 아르헨티나까지 갈 순 없으니 미국으로 데려와야겠네.”

-그럼, 미국 법정에 소송을 준비하겠습니다.

“알았어, 여기 한국 일 좀 마무리하고 갈게.”

갑자기 머리 아픈 게 씻은 듯이 나은 임병달은 재준에게 이 기쁜 소식을 다시 확인했다.

“정말이냐? 다시 미국으로 간다는 게 사실이야?”

얼굴에 피어난 기쁨을 전혀 감출 생각이 없는 임병달을 보고 재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번 공매도만 마무리하고요.”

“뭘 마무리해? 이미 KK 그룹 주가는 바닥이 아니라 지하를 파고 들어갔는데. 너 아니라도 아무나 맡아도 잘 해낼 거다. 서둘러 미국으로 가거라. 급한 일 같은데.”

임병달의 말에 재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저를 내쫓고 싶으십니까?”

“아니, 슬프다. 손자가 타지에서 고생하는데 좋아할 할아비가 어디 있다고.”

“여기, 제 앞에 계시잖아요.”

“아니래도. 거참.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구나.”

“제가 미국으로 안 갈…….”

똑똑.

코너에 몰린 임병달을 구해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박민수 실장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 해.”

헉!

박민수의 초췌한 몰골을 본 임병달은 저절로 헉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박 실장. 앉아.”

“네. 회장님.”

박민수가 앉자 임병달이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거, 보약은 먹고 있는 거지? 재준이가 전에 보약을 지어 줬다고 들었는데.”

“아뇨. 안 먹고 있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임병달이 놀랬다.

“왜? 아주 비싸게 샀다고 들었는데. 나도 먹어 보니 약발이 좋던데.”

“그래서 안 먹고 있습니다. 보약 먹고 기운이 솟아나니 여기 임 대표가 뒤를 믿고 일을 마구 저지르고 있습니다. 차라리 제가 과로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야 멈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약을 안 먹습니다.”

음.

임병달은 박민수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이렇게 내 생각을 몸으로 보여주는 인재가 있다니.

“그래, 맞아. 나도 김 집사한테 보약을 줘야겠어. 누구 하나 쓰러져야 사고를 안 칠 거야. 음, 일리 있는 말이야. 일리가 있어.”

“뭐가 일리가 있어요?”

“임 대표님, 일리 있습니다.”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KK 그룹 뒤처리 어쩌실 겁니까? 대충 무너뜨리고 미국 가신다면서요? 저는 이거 제가 처리해야 하는 거 맞죠?”

“그게, 그렇죠.”

“좋습니다. 공매도 처리하고, 이사회 열어 정 회장 퇴임시키고, SS에너지에 KK에너지 합병 처리하고, KK 그룹 계열사 사장들 다 만나서 구조조정 끝내고, 현재리츠에 부동산 넘겨서 팔아 버리고, 현재SPC와 협력하여 채권 처리하고, 전 한국에 남겠습니다.”

마지막 슬쩍 끼워 넣은 말 뭐야?

“앞으로 할 일을 다 잘 알고 계시군요. 근데 마지막 말은 뭡니까? 강 이사님 지금 실장님이 돌아오길 얼마나 기다리시는데.”

“아, 강 이사님.”

“그래요. 이사님이 기다린다고요. 일 처리하고 빨리 오세요.”

“아니요. 이 기회에 강 이사님도 한국으로 모셔야겠습니다.”

“거, 돈도 많이 벌고 있는데 왜 그러세요?”

“아, 돈.”

“네, 지금 자산이 얼추 한화로 1,000억은 될 텐데.”

박민수는 재준을 노려봤다.

“다 반납하겠습니다. 다, 싹 다. 저는 돈보다 자유를 원합니다. 프리덤, 리베흐테.”

“야, 실장님 나날이 느는군요. 와, 이제는 자유를 찾는다고 하네. 알았습니다. 이번 아르헨티나 건 해결하면 투자은행에서 팀 하나 꾸리십시오.”

박민수는 재준을 노려보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임병달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어리둥절한 임병달이 재준을 쳐다봤다.

“뭐야?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었으면 팀장으로 만족하는 거야?”

“그러게요.”

“근데 원하는 팀이 뭔데?”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죠.”

당연히 임재준 뒤치다꺼리 팀이지.

***

KK에너지 사장이 비행기를 타기 전 검찰에 붙잡혔다.

KK 그룹 정 회장은 처음 검찰 조사를 받으며 큰소리를 땅땅 쳤다.

“있을 수 없는 일로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KK에너지 사장이 자포자기하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또한 KK글로벌 조사에서도 하나둘 분식회계가 사실로 확인되자 말을 바꾸었다.

“이해관계자들이 있어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못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어 KK 그룹 사장들의 증언이 잇따르자.

“당시로선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라고 시인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검찰은 KK그룹의 정 회장이 분식회계를 지시했고 거액의 조세 포탈과 횡령을 행한 협의가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검찰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KK글로벌 사장의 협조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분식회계 액만 1조 5천억 대에 달해서 도덕적 비난을 피할 길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사 노조는 이미 검찰 고발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분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관도 물량을 시장에 쏟아냈다.

재준이 대규모 공매도를 실행한 후 주가는 100분의 1로 추락했다.

길 가다 주운 수준으로 100배의 이득을 취했다.

이거 주식 빌린 증권사에 미안할 지경이네.

하지만 정 회장 내보내고 잘 다듬으면 주가는 회복되니까.

존버 해야지. 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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