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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16화 (116/477)

제116화 다 망하는 꼴 최선을 다해 지켜보겠습니다(5)

“그러니까, 매수를 넣고 기다렸는데 매수 체결이 안 됐다 이거네. 그럼 이런 일이 벌어질 확률이 얼마나 되는 거지? 우리가 시간 외 거래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그보다 먼저 매수 주문을 넣어야 하는 거 아냐?”

“정보만 알고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KK증권 사장이 담담히 말했다.

“이 사장님. 내가 그걸 몰라서 물은 겁니까?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 거잖아. 상식적으로 누군가 정보를 흘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그럼 답은 뻔하지. 당신들 아니면 이 일에 관련된 직원이네.”

“조사는 감사실에서······.”

“뭐라고, 감사실? 아주 대놓고 떠들려고? 하, 이 사람이 나와 함께 사업을 하는 사장이란 게, 참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이봐요. 당신들이 아니라면 뒤지라고, 뒤져. 직접 주식 팔려고 컴퓨터에 앉았던 놈들 전부 뒤지라고. 뒤에서 뭐 받아먹었는지 사돈의 팔촌까지 싹 다 뒤져서 증거 가져오라고. 알아들어?”

“알겠습니다.”

정 회장은 전부 꼴도 보기 싫다는 표정으로 둘러봤다.

“KK증권 남고 다 나가요. 다 나가.”

나머지 사장들이 정 회장에게 몰래 눈을 흘기며 하나둘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정 회장은 말은 그렇게 했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 외 거래에서 더 빨리 매수를 내는 건 가능해.

그래, 그렇다 쳐. 근데 여섯 개의 계열사가 거래한 날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이건 아니야. 아무래도 뭐에 홀린 것 같은데.

“회장님,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정 회장에게 증권 사장이 다가왔다.

“아, 이 사장, 그거. 현재증권에 들어간 우리 계열사 주식은 어떻게 다시 가져올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우리 계획을 알았는지는 차후에 알아보더라도, 그쪽이 돈을 노리고 산 거라면 약간의 웃돈을 얹어서라도 가져왔으면 하는데.”

“만약 돈을 노린 거라면 이런 식으론 가로채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돈이 아니란 말이야?”

“이건 의도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강화성 펀드 금감원 조사 시작 전에 저희 KK 그룹 루머가 시장에 돌았습니다. 저희 내부 거래를 내부의 누군가가 미리 흘린 것 같지 않습니까?”

합리적인 의심이다.

강화성 펀드와 KK에너지가 관련 있다는 얘기는 언론과 시장 어디에도 없었다.

근데 루머가 돌았다면······.

“이봐, 이 사장 지금 KK에너지 사장을 의심하는 건가?”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아니야. 내부 거래 지시는 내가 내렸어. 루머는 그 전이고. KK에너지 사장은 내 명령을 따른 것뿐이야.”

“회장님의 지시도 미리 계산했다면요?”

“그걸 미리?”

“에너지 기업은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지는 곳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측에 능숙한 사람들이죠.”

“그건 이 사장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증권이 더 치열하게 예측으로 밥 먹고 사는 곳 아닌가?”

“저흰 예측이 틀려도 손실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는 다릅니다. 잘못된 물량은 곧바로 손실로 이어집니다. 에너지 사장을 조사해 보시죠.”

KK 그룹은 서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사장이 왜 KK에너지 사장을 지목했을까?

“좋아. 어쨌든 이유를 차차 알아보자고. 아, 그리고. 이 사장. 그거 말이야. 신용카드. 정부에서 회사 하나 만들라고 압박을 하는데, 어때? 우리도 만들어야 하나?”

“현금 장사라 당연히 해야 하긴 하는데. 투뱅코는 정부의 안을 거절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유를 좀 알아봐야겠습니다.”

“뭐? 임재준이 하는 대로 따라 하잔 말이야?”

“회장님. 임재준이 아무리 미워도 그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미래를 정확히 읽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가 밉다고 해서 무턱대고 반대할 부분은 아닙니다.”

정 회장은 이 사장의 말을 듣고 당장 안된다는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사실 맞는 말이었다.

하긴 한국에서 그놈이 저지른 일을 들은 것만 해도 아예 귀에 인이 박일 지경이지.

솔직히 미국과 프랑스에서 벌인 일은 좀 부럽기도 하고.

말이 2조 달러지, 여신을 그 정도 가지고 있는 은행을 소유하면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대한민국을 통째로 사고도 남지.

근데 아까부터 이 사장이 자꾸 임재준을 감싸고 도네.

루머도 임재준이 퍼뜨린 게 아니라 하더니, 신용카드 회사도 임재준 따라 보류하자 하고.

이거 이 사람. 혹시······.

***

KK글로벌.

글로벌 사장은 며칠 전 문자 하나를 받았다.

[KK글로벌 2001년 당기순손실 1조 5천억 원 줄이기 위해 가공 채권 발행으로 매출 부풀리기 시도]

가공 채권은 말 그대로 있지도 않은 채권을 회계장부에 적어 넣는 것이다.

물론 걸리면 채권이 없으니 누군가 감옥에 가겠지만 안 걸리면 장땡이다.

그리고 회계 감사에서 채권을 일일이 확인하진 않는다.

글로벌 사장은 처음엔 어떤 미친놈이 장난치는 거로 생각하고 지워 버렸다.

그런데 오늘 문자와 같은 내용의 지시사항이 회장 비서실에서 날아왔다.

“가공 채권으로 1조 5천억만 만들어 매출 좀 부풀리라는 지시입니다.”

이건 뭘까?

재빨리 문자를 휴지통에서 꺼낸 글로벌 사장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는 메시지만 들렸다.

“어떤 놈이지, 아니 어떤 분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예언자 같아. 어떻게 금액도 정확히 맞혔을까? 참 희한한 일이야. 아, X발, 근데 정말 가공 채권을 1조 5천억씩이나 만들어야 한다고? 미치겠네. 1,000억이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1조 5천억이면 너무 크잖아. 1조 5천억 원이라.”

이때,

띠링.

한 통의 문자가 배달되었다.

[분식회계 들통나기 전 KK 그룹 계열사 사장 본인들 지분 시장에 털어내고 퇴사]

“뭐야? 퇴사? 퇴사라니 내가 왜? 아, 나라고 말하지 않았네. 나는, 이게 아니네. 퇴사가 중요한 게 아냐. 분식회계 들통나기 전이라면 내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소리잖아.”

글로벌 사장은 눈을 감고 생각을 시작했다.

분식회계 들통이라면 이미 내가 가공 채권 1조 5천억 원을 만들었다는 소린데.

아직 고민 중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전에도 정확히 맞히더니.

잠깐, 이런 멍청이.

글로벌 사장은 재빨리 문자에 찍힌 전화번호를 눌러 통화를 시도했다.

[이 번호는 존재하지 않는 번호입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길 늦었어. 바로 통화를 눌렀어야 했는데.”

글로벌 사장은 문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내 지분을 시장에 던진다······.

글로벌 사장의 지분은 현재 시가로 100억이 조금 넘었다.

이걸로 뭐 할 게 없잖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쪽팔리게 치킨집을 차릴 수도 없고.

아니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 분식회계가 걸리면 난?

사업이나 치킨이 문제가 아니잖아.

병신, 병신, 상병신아. 정신 차려.

방법은 하나다.

장부 정리는 가급적 천천히 하면서 시장에 내 지분을 던지고 동남아로 뜬다.

가만, 가만.

이런 문제라면 이 친구가 빠르지.

글로벌 사장은 꽤 가깝게 지내는 증권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사장, 지금 어디야? 지금 거래처에서 나왔다고? 그럼 지금 당장 이쪽으로 와. 아니,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큰일 났다고. 그래, 우리 모가지가 걸린 일이야. 빨리.”

잠시 후.

증권 사장이 글로벌 사장실로 들어섰다.

“어, 왔어? 이리 와서 앉아봐.”

증권 사장이 앉자마자 글로벌 사장이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거 봐.

[KK글로벌 2001년 당기순손실 1조 5천억 원 줄이기 위해 가공 채권 발행으로 매출 부풀리기 시도]

[분식회계 들통나기 전 KK 그룹 계열사 사장 본인 지분 시장에 털어내고 퇴사]

“이게 뭐야? 우리를 음해하는 글이잖아.”

“날짜를 보란 말이야. 날짜.”

증권 사장은 다시 첫 번째 문자의 날짜를 살폈다.

이건?

누군가 자신의 목덜미를 잡은 것 같은 서늘함에 숨이 턱 막혔다.

“미리 알고 있었다고?”

“그래. 이거 뭔가 으스스하지 않아? 나도 처음엔 무시했는데, 여기. 오늘 두 번째 문자를 받고 소름이 돋더라고. 어때?”

증권 사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봐, 내가 회장님에게 에너지 사장에 대해 경고를 했어.”

“에너지 사장이 왜? 무슨 문제 있어?”

“우리 글로벌 소유의 주식을 현재증권이 낚아채 가기 전, 강화성과 KK 그룹이 관계가 있다는 루머가 돌았잖아. 그게 영 마음에 걸려서. 자넨 어때. 이상하지 않아?”

“뭐가?”

“계획된 행동이라고, 글로벌 소유 주식을 시장에 내놓게끔 루머로 분위기를 조장했단 말이지.”

“주식은 현재증권이 샀잖아.”

“그러니까. 현재증권이 어떻게 알았을까. 내 생각엔 KK에너지가 끼어 있는 거 같거든.”

글로벌 사장은 엄지로 턱을 괴고 한쪽 눈을 치켜세웠다.

“즉, 에너지에서 루머를 퍼뜨리고 주식을 낚아채 가게 도왔다면?”

“왜 그랬을까?”

“뭔가 약점이 잡혔겠지. 가만, 에너지 사장 이번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이거랑 관계가 있는 건가?”

“1조 5천억. 자네한테 넘어온 돈. 그거 에너지 손실 아냐?”

“전 계열사 손실이라고 하던데.”

“에너지 말고 손실 처리할 계열사가 어딨는데. 우리 증권사에서 매월 그룹 전 계열사 회계장부 정리해서 회장님께 보고드리는데. 그렇게 손실 날 회사는 없어. 물론 에너지도 건실하지······. 건실한가?”

증권 사장은 순간 무언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말끝을 높였다.

그리고 이제야 알았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통통 두드렸다.

“이런, 이런 돌대가리.”

“왜?”

“이걸 왜 지금 생각해 낸 거냐?”

“뭔데?”

“미국 에너지 회사 엔터.”

“그게 왜?”

“KK에너지가 엔터랑 장기 계약했거든. 근데 엔터가 지금 파산 직전으로 몰렸어. 이걸 왜? 왜? 왜? 근데 왜 에너지 회계장부가 멀쩡한 거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전에 회장님 만나기 전 모든 계열사 장부를 내가 들여다보고 갔거든. 분명 에너지 장부는 깨끗했어. 깨끗했다는 건 아직 기재하지 않은, 잠깐, 아니지. 이게 언제 일인데 아직 기재를 안 해? 설마 이 미친놈들······.”

“똑바로 좀 얘기해 봐.”

“이거 1조 5천억 원 에너지 거 맞아. 분명해.”

둘의 눈길이 마주치며 당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증권 사장은 무언가 알겠다는 듯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너한테 문자 보낸 사람 임재준이다. 임재준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갑자기 임재준이 왜 나와?”

“잘 들어. 임재준이 일전에 주총에서 강화성을 몰아붙일 때 윌켄과의 통화 내용이 공개된 적이 있어. 그 통화에서 엔터에 공매도 400억 달러를 친다고 했거든.”

“그래. 그건 나도 알지.”

“이건 윌켄이 엔터 주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았다는 말이야. 그것도 엄청난 폭락을 일으키는, 모두가 엔터의 주식을 던질 만한 사건이란 거지. 그렇지 않고서 400억 달러 공매도가 말이 돼? 그 와중에 엔터와 KK에너지의 계약이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까? 윌켄이 엔터의 팬티 속까지 뒤졌을 텐데. 모를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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