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11화 (111/477)

제111화 2조 달러인데 날름 먹어야지?(7)

사라크 대통령이 갑자기 등장하자 모두 이목이 쏠렸다.

심지어 방송 카메라까지 동원되었다.

행장실 문이 열리고 안에 있던 세 명과 사라크 대통령의 눈이 마주쳤다.

사라크 대통령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임재준 말대로군.

딱 걸렸어. 미셸.

“미셸 재무부 장관님.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기자들은 이 뜻밖의 상황에서 침묵을 유지하며 재무부 장관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까 집중했다.

지금 좌파와 우파의 싸움을 모르는 기자는 없다.

그중에도 크레디은행을 놓고 민영화는 합의했지만 어떤 방법으로 진행할지는 합의를 보지 못한 상황.

내각은 프랑스 제일의 거대 은행을 탄생시키는 쪽이었고 대통령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양대 진형을 유지하자고 주장했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거짓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허, 그렇군요. 저도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이 구라쟁이들.

뻔하지만 아무도 태클을 걸 수 없는 상황.

“저희 이만 가 볼까 합니다.”

미셸이 발을 빼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파트리스가 판을 깼다.

“어쨌든 지금은 크레디은행과 합병할 마음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고려해 보십시오.”

나쇼날파리와 크레디의 합병?

득달같이 달려들어야 할 기자들이 대통령의 존재 때문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라, 상황을 지켜봐야 할 때다.

미셸의 눈빛이 날카롭게 파트리스의 눈을 파고들었다.

“하하하, 무슨 말씀이신지.”

미셸의 변명이 사라크 대통령이 나섰다.

“재무부 장관님. 나쇼날파리에 크레디를 합병하려고 했습니까?”

“아직 논의 중입니다.”

“그렇죠? 난 또 저와 상의 없이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하하.”

사라크 대통령과 미셸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재준이 천천히 걸어왔다.

핵폭탄이 떨어질 시간이 됐는데…….

이때, 사방에서 기자들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와서 귓속말로 무언가를 알렸다.

“뭐라고? 정확한 건가?”

“네, 확실합니다.”

트리쉐의 비서와 미셸의 비서도 기자들을 뚫고 뛰어 들어와서 무언가를 속삭였다.

얼굴이 가장 많이 일그러진 건 트리쉐 중앙은행 총재.

빌어먹을 930억 달러 부도 선언?

드디어 프랑스의 금융계에 핵폭탄급 사건이 터졌다.

트리쉐는 대통령에게 간단히 고개를 숙이고는 재빨리 나가려 했다.

그때,

“어딜 가세요?”

재준이 앞에 불쑥 나타나서 트리쉐를 막아섰다.

“아니, 미스터 임. 왜 당신이 여기에?”

“930억 달러 아르헨티나 국가 부도 선언 때문에 가시려는 거죠? 뭐, 대책이라도 마련하시려고. 근데, 좀 기다려 보세요.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뭐라고요?”

해결을 한다고?

팟팟팟팟팟.

대통령 때문에 참고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재준에게 카메라 플래시가 터트렸다.

재준은 사라크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프랑스가 안고 있는 아르헨티나 부채는 총 400억 달러입니다. 그것도 국영기업인 크레디은행이 모두 떠안고 있습니다.”

재준은 미셸을 쳐다봤다.

“재무부 장관님. 이 부채 나쇼날파리가 떠안으면 바로 부도납니다. 아시죠?”

“알고 있소.”

“그럼, 이제 어디다 크레디은행을 파시려나?”

“…….”

“재무부 장관님. 할 말이 없으세요?”

“아르헨티나와 협의하여…….”

풋.

재준이 비웃자 미셸이 이빨을 으득 갈았다.

“말장난이 심하시네. 생각해 보자고요. 지금 장관님이 길을 가다가 노숙자를 만난 거예요. 근데 이 노숙자가 알고 보니 예전에 내가 돈을 꿔준 사람이지 뭡니까? 그럼, 이 노숙자와 협의해서 돈을 받아내실 겁니까?”

“아르헨티나는 나라입니다.”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나라. 노숙자는 감옥이라도 보낼 수 있어요. 근데 자그마치 나라. 뭘 하실 수 있습니까? 협의요?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을걸요? 나라가 부도를 선언하려면 얼마나 큰 결심을 해야 하는지 모르시는 건 아니죠? 몇 해 전에 러시아가 디폴트 선언했을 때 뭐 하실 일이 있던가요? 아, 그때 뭐라도 하셨어요?”

“…….”

미셸은 할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기다렸으니까.

재준의 말에 사라크 대통령이 무능한 놈이라는 표정으로 미셸을 노려봤다.

재준이 미셸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냥 저에게 정부 보유 주식을 넘겨주시죠.”

“그럼, 정적한 가격을 말해 봐요.”

“네?”

재준은 뒤로 물러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금 투마로우가 400억 달러의 채무를 떠안겠다는데 돈을 더 달라고요?”

재준은 이번엔 기자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쯧쯧쯧쯧.

여기저기 기자들이 미셸을 향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한 나라의 재무부 장관이 이렇게 무식해서야.

쯧쯧.

여기에 사라크 대통령까지 합세했다.

보다 못한 중앙은행 총재 트리쉐가 나섰다.

“미스터 임. 정말 크레디은행 살릴 수 있습니까? 혹시 다른 나라에 팔아서 프랑스에 불이익이 돌아오는 거 아닙니까?”

“누가 저 애물단지를 산대요?”

“그럼 어떻게 400억 달러나 되는 채무를 보전하려 합니까? 아르헨티나와 협의를 보면 20~30% 채무는 받아낼 수 있어요.”

“네? 한 10년 걸려서 겨우 20~30%를 받아낸다고요? 그럼 크레디은행은 망해요. 400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는 날아가는 거잖아요.”

“그럼 당신은 방법이 있습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고요. 암튼 약속은 드릴 수 있습니다. 크레디은행은 절대 팔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금을 투입해서 일단 안정시키겠습니다.”

크레디은행이 얼마나 귀한 몸인데 잘 모셔야지 왜 팔어.

사라크 대통령이 재준에게 다가왔다.

“좋아요. 크레디은행을 넘기겠습니다. 더 필요한 게 있다면 정부는 지원을 약속합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방해만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말을 마친 재준은 미셸을 슬쩍 쳐다봤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대통령이 모를 리 없었다.

사라크 대통령은 미셸을 무시하고 트리쉐 총재에게 말했다.

“트리쉐 총재님. 투마로우와 협의하에 크레디은행과 엥도은행 합병을 진행하세요. 그리고 재무부 장관은 빠지세요. 아니, 이따 좀 봅시다. 일을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듭니까? 애초에…… 어휴.”

사라크 대통령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

뭐가 이리 풀리는 일이 없을까.

애초에 50% 얹어서 산다고 할 때 팔았으면 100억 유로를 벌었을 텐데.

저놈. 미셸.

저런 놈이 재무부 장관이라고. 참 내.

사라크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눈치를 줬다.

비서실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자, 여러분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사라크 대통령은 뒤처리를 비서실장에게 맡기고 자리를 떴다.

비서실장이 기자들을 데리고 어디 조용한 곳에서 차라도 한잔하자면서 끌고 나갔다.

당분간 기사를 자제해 달라는 것이겠지.

미셸과 트리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하여튼 이럴 때는 빨라.

지금까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박민수, 윌켄, 페렐라, 워서스틴은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박민수가 재준에게 득달같이 달려왔다.

“400억 달러를 왜 짊어져요?”

“맞아요. 보스. 금액이 너무 큽니다.”

페렐라도 걱정스러운지 말을 보탰다.

하지만 재준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요. 다 받아낼 자신 있으니까.”

“부도를 선언한 나라에서 전액 다 받아낸다고요?”

박민수는 자신 없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엔 진짜 불가능하다.

그동안은 기업이어서 어찌어찌 협박도 통했지만, 이번엔 정말 정말 불가능하다.

못 받아낸다는 데 내 손모가지를 건다.

“자, 자. 모이세요. 페렐라. 앤드류에게 연락해서 분석팀 프랑스로 오라고 하고 그 팀을 이끌고 크레디은행 샅샅이 뒤지세요. 아르헨티나 채권 말고 만에 하나 관치에 의한 부정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전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워서스틴, 아르헨티나가 진 빚 100% 변상하라고 아르헨티나 법원에 고발하세요.”

“저한테 맡기세요. 화끈하게 질러버리겠습니다.”

“윌켄, 아르헨티나 채권 긁어모으세요. 아마 10% 미만으로 사들일 수 있을 겁니다.”

“이거 옛날 생각이 나네. 싹 다 긁어모을게요.”

재준은 모두를 보고 다짐하듯 말했다.

“난 싸움을 즐기는 사람도 싸움을 거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시장이 존재하려면 법의 지배를 확실하게 심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갚을 의사도 없이 채권을 남발하고 디폴트를 일으킨 그 어떤 기업이든 나라든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놈들은 아주 도덕적 근본이 잘못돼 있어요. 남의 돈을 빌려 쓸 때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아주 버릇을 고쳐 주겠어요.”

평소의 재준답지 않은 자세와 목소리에 모두 흠칫 놀랐다.

박민수 한 사람만 빼고.

이제 나라를 협박하네.

차라리 손모가지 자르고 여길 뜰까?

이때,

띠리리리링.

재준이 번호를 확인하자 강호석이었다.

웬일이래.

“네, 강 이사님.”

-임 대표. 아무래도 시장이 이상과열이야. 연방기준금리를 6.5%까지 올린다는 소문이 돌아.

“다 왔네요. 전에 말한 대로 올해까지 모든 펀드 마감해 주세요.”

-그리고 한국 상황이 심상치 않아.

“왜요?”

-정부 주도로 부양책을 쓰는 것 같아. 투뱅코에게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압박하는 것 같아.

“네?”

정말 이놈의 정치는 학습효과가 없구나.

그렇게 당하고도 또 부양책을 쓰다니.

“박 실장님 한국에 한번 갑시다.”

“전 안 가면 안 됩니까?”

그나마 이곳이 낫지.

한국은 설치기 딱 좋은 곳이잖아요.

***

김포국제공항.

재준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은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일반 시민보다 많이 몰려들었다.

당연하겠지.

현재 월가에서 상위권에 위치해 있는 투마로우만 해도 한국의 1년 치 예산보다 많은 돈을 움직이는데 이번엔 프랑스 제1의 상업은행을 세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뿐인가.

한국에서 현재증권과 투뱅코의 위상은 엄청났다.

재우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모던자동차에 1억 달러를 투자하여 대주주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금 모으기 운동 때 정부로부터 사들인 한국종합기술금융을 통해 알짜 IT 기업도 상당수의 지분을 확보했다.

나온다!

달려!

재준이 공항에 모습을 보이자 수많은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미는 모습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임 대표님. 이번 프랑스에서 세우신 상업은행은 크기가 얼마나 되는 겁니까? 유럽 1위 상업은행이라는데 맞습니까?

-미국 투마로우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겁니까?

-농산물 사업에 손을 대신다는데 사실입니까?

-뭐라고 좋으니 한 말씀만 해주시죠.

-이번 아르헨티나 부도와 투마로우는 상관이 없는 겁니까?

-JP스탠리를 인수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잠깐만.

재준이 손을 들자 일순 기자들이 조용해졌다.

“아니, 지금 저를 취재하려고 이렇게 많은 기자님들이 오신 거예요? 이러니까, 한국 신문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지금 미국이 1999년 6월부터 금리를 6번이나 올리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미국 금리가 6.5%입니다. 6.5%. 이게 말이 됩니까? 국제 유가는 또 어때요. 1년 사이 거의 10달러가 올라서 지금 26.18달러입니다. 한국은 총생산이 내가 알기로 1분기에 12.6%였는데 지금 4.6%. 맞나요? 수출증가율도 29.8%에서 6.6%. 설비투자 마이너스 2.7%. 주가는 1,028포인트 찍고 지금은 504.6포인트. 이게 말이 되나? 근데 왜 내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신문에 이런 기사가 한마디도 안 났을까요? 네?”

기자들은 별안간 공항에서 둔기를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쓰지 말라는데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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