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06화 (106/477)

제106화 2조 달러인데 날름 먹어야지?(2)

미셸의 돌발 행동에 재준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프랑스는 아직도 피부색을 따지는 겁니까? 하긴, 그러니까 아직 이 지경이겠지만.”

“이 지경이라니?”

“썩은 내. 당신 프랑스인들에게서 썩은 시체 냄새가 난다고. 그래서 다들 몸에 향수를 덕지덕지 뿌리고 다니는 거잖아. 안 그래요?”

“그걸 말이라고…….”

“모욕은 당신이 먼저 꺼냈어.”

“동양인을 동양인이라 부른 게 무슨 잘못이지?”

“그럼, 썩은 냄새가 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하하하.

워서스틴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페렐라가 워서스틴이 왜 웃는지 아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워서스틴이 미셸을 보며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재준에게 말했다.

“보스, 갑시다. 이런 식이면 도울 수가 없잖아요.”

“그렇겠지?”

재준이 몸을 일으키자 워서스틴과 페렐라도 일어섰다.

재준이 마지막으로 미셸을 보며 빙글 웃었다.

“미셸, 행운을 빌어요. 지옥에 온 걸 환영합니다.”

바로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 재준.

워서스틴은 자꾸 나오는 웃음을 참았고 페렐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재준의 뒤를 따랐다.

미셸은 도무지 저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동양인에게 기댈 수는 없지.

처음 볼 때부터 맘에 들지 않았어.

근데 페렐라 같은 천재가 왜 저 노랭이 밑으로 들어간 걸까?

***

프랑스 화이트호텔 임페리알 스위트 룸.

스톡체인 인수 과정에서 알게 된 제이 프리츠크 회장은 재준이 프랑스로 간다고 하자 바로 자신의 호텔에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최상위 스위트 룸을 내주었다.

이 230㎡의 거대한 스위트 룸은 돈이 많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화이트호텔의 귀빈 기준에 적합해야 허락이 떨어지는 곳이다.

재준과 페렐라, 워서스틴은 일단 샤워를 하고 룸서비스로 시킨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앞으로의 계획을 짰다.

“보스, 아까 ‘웰컴 투 헬’은 왜 한 겁니까? 설마 프랑스 정부와 한판 붙으려는 건 아니죠?”

재준은 갈증이 나는지 와인 한 잔을 한 번에 마시고 페렐라를 향해 웃었다.

“왜? 붙으면 안 되나?”

“설마…….”

“뭐?”

“일부러 미셸한테 그런 건 아니죠?”

“봤잖아. 내가 먼저 시작한 게 아니야.”

“글쎄요. 먼저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냄새가 나는데요. 인종 차별 문제가 아니었어도 무언가 계속 도발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워서스틴?”

하하하하.

“맞아. 보스라면 계속 시비를 걸었을 것 같아. 근데 왜 그런 겁니까?”

“이 사람들이 나를 그쪽으로 몰아가네. 아니라니까.”

뭐 솔직히 금감원 생각이 나서 기분이 더럽긴 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렇게 판을 엎었으니 그냥 돌아갈 겁니까? 아니죠? 그럴 생각이 아예 없죠?”

“페렐라, 프랑스 은행을 다 합치면 자산이 얼마나 될까?”

“아마 4조 달러 정도 할 겁니다.”

4조 달러.

재준은 다시금 잔을 채운 뒤 이번엔 향을 음미하며 한 모금 마셨다.

“있잖아. 와인도 입 안 가득 마시는 것보다 이렇게 절반만 넣고 굴릴 때 향이 제일 좋더라고. 이번에는 절반만 먹을까 해.”

“절반이요?”

“그래, 절반이면 2조 달러인데 날름 먹어야지?”

프랑스는 대형 은행 두 개로 쪼개진다.

그중 하나는 내가 차지해야지.

그래야 정부도 견제하고 시장도 원활하게 돌고.

혼자 다 먹으면 어유, 관리가 너무 힘들어.

하하하하.

워서스틴은 하루 종일 재준을 보고 웃기만 했다.

웃는 거 말고는 딱히 할 말도 없었고.

재준은 워서스틴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워서스틴, 아까 미셸이 말한 다섯 개 은행 중에 아는 사람이 있겠지?”

“음. 소시에테은행 기업금융담당과 친합니다.”

“페렐라는?”

“저는 프랑스 출신이니 어디든 친한 사람이 있습니다.”

재준이 먼저 워서스틴을 향해 잔을 빙글 돌렸다.

“자, 그럼. 내일 워서스틴은 3위 소시에테은행에 가서 담당자를 만나 미국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투마로우가 4위 방쿠바은행을 인수할 거라고 슬쩍 정보를 흘려.”

“마치 미국 은행들이 프랑스를 노리는 듯한 인식을 심어주라는 겁니까?”

“그렇지, 그렇지.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는 거야. 시총이 500억 달러 이하면 미국 은행의 먹잇감이라고. 그 예로 스톡체인 싸움을 제시하고. 덩치를 키우기에는 3위와 4위가 합쳐지는 게 그럴듯한 그림이 될 거라고 하면서.”

“이거 마치 첩보 영화를 보는 기분인데요.”

“이래야 프랑스 재무부가 긴장할 거야.”

“재무부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

“3위와 4위를 합치는 건 재무부가 먼저 생각한 그림이니까.”

“네?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뻔하잖아. 미국과 영국의 투자은행과 비슷한 은행은 4위 방쿠바와 5위 엥도은행뿐인데. 4위와 5위가 합쳐지면 멋들어진 투자은행이 나오겠지만 그럼 나머지는 덩치만 컸지 글로벌 마켓에선 쓸모없는 은행이 되잖아. 먼저 3위 상업은행과 4위 투자은행을 합병하고, 그다음으로 2위나 5위를 합병하고, 마지막으로 1위를 먹어치우는 게 정부의 그림 아니겠어?”

“정말 그게 재무부의 그림입니까?”

“맞다니까.”

“그럼, 우리는 재무부가 하려는 걸 못하게 막는다?”

“그렇지. 재무부의 생각은 모두 합치는 거지만 우리 목표는 절반. 알겠지?”

큭큭큭.

워서스틴은 또 웃기 시작했다.

이렇다니까.

미셸만 불쌍하게 생겼어.

“자, 그럼 제일 먼저 시장에 나와 있는 5대 은행 주식 분포를 파악해야겠지.”

“그건 뻔합니다. 정부가 은행 민영화를 하면서 정부 보유 주식 절반을 AXXA에 넘겼습니다.”

“프랑스 최대의 보험회사 AXXA?”

“네, 맞습니다.”

“오호, 이거 그럼 먼저 AXXA를 찾아가야겠는걸.”

“주식을 삽니까?”

재준은 와인 잔을 돌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 파생 상품을 팔아야지.”

“어떤 파생 상품을?”

“음. 내가 생각한 건 AXXA로부터 100억 달러를 받고 10년 안에 프랑스 1위부터 5위까지 은행이 파산하면 우리가 오늘 주가로 변상해 준다. 대신에 1위부터 5위까지 주식의 의결권을 10년간 빌린다. 어때?”

페렐라는 재준의 말을 들으며 와인 잔 위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렸다. 짧은 순간 깊은 생각에 빠졌던 페렐라가 금세 계산을 끝냈다.

“좋은데요?”

“그치.”

“완전 천재적이에요. AXXA 입장에선 억지로 떠안은 그 많은 주식을 보증할 수 있어 좋고, 우리는 이자 없는 100억 달러도 굴리고 주식 의결권도 사용할 수 있고.”

파생 상품이라 하면 코스피200 지수를 매매하는 콜옵션 풋옵션 정도로 생각할지 모른다.

이건 파생 상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일반인들도 접근할 수 있게 아주 간편하게 만든 것이니까.

금융에선 진정한 파생 상품이란 보험과 같다.

혹시나 하는 위험이 있을 때마다 그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파생 상품을 만들어 거래한다.

거래마다 하나의 상품이 존재하니 그 가짓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개인은 거의 해당이 없는 이야기지만 은행이나 증권사 등에선 활발하게 거래가 된다.

예로, 어떤 은행이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서 보니 2조를 들여 SS전자 주식을 사서 10년간 존버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막상 사려니 혹시 주가가 떨어져서 손해가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럴 때 1조 5천억어치 SS전자 주식을 사고 5천억을 보험회사에 가서 파생 상품 계약을 한다.

10년 후에 SS전자 주식이 떨어지면 떨어진 만큼의 손실을 보전받기로.

자, 이러면 SS전자 주가는 올라가면 좋지만 떨어져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

물론 몰빵 하는 것보다는 이익은 덜하지만 안전하게 돈을 굴릴 수 있으니 훨씬 좋은 선택이다.

당연히 10년 후에 SS전자 주가가 올랐다면 은행은 원금을 돌려받는다.

대신 보험회사는 10년 동안 5천억을 이자 없이 굴렸다.

5천억을 이자 없이 굴렸으면 5천억은 벌었겠네.

서로서로 윈윈인 거래이다.

그런데 실제로 파생 상품이 이렇게 간단할까? 천만에.

방금 파생 상품을 판 보험회사는 또 다른 보험회사에 두 가지 조건을 내걸고 파생 상품을 산다.

SS전자가 떨어진 만큼 자사 보험회사의 손실을 보존하는 조건이다.

그럼 이 보험회사는 또 다른 보험회사에 위 두 가지에 더해 자사의 손실을 보존해 달라며 총 세 가지 조건을 걸고 파생 상품을 산다.

이렇게 대부분 파생 상품은 수십 가지 조건이 얽히고설켜서 수없이 많은 금융기관과 연결되어 존재한다.

파생 상품을 파악하는 전문회사가 있을 지경이다.

암튼, 일반인인 우리는 볼일이 없는 상품이니까 잊어버리고.

재준은 페렐라에게 와인 잔을 부딪쳤다.

“페렐라. 내일 좀 바쁘겠어. 먼저 AXXA에 가서 파생 상품 계약해 주시고. 2위 나쇼날파리 행장 파트리스와의 면담도 주선해 주고.”

“알겠습니다.”

페렐라는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파생 상품 계약이야 투자은행으로선 이골이 난 일상 중 하나니까.

그리고,

“보스, 파트리스에게는 뭘 던져 줄까요?”

“3위와 4위 모두를 먹는 방법?”

페렐라는 잠시 재준의 말을 곱씹었다.

뭐야, 이거.

3위한테 가서 4위를 인수하라 하고.

2위에게는 또 3위와 4위를 먹는 방법을 알려 준다고?

큭큭큭.

워서스틴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이거 봐. 이미 다 끝났다니까.”

“워서스틴, 긴장을 풀면 안 돼.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협상을 자연스럽게 추진하려면 옆에서 보조를 잘 맞춰줘야 해.”

“어쨌든 정부가 시작한 작업에 은근한 방해 공작을 펴는 거 아닙니까.”

“뭐, 굳이 이걸 방해 공작씩이나 불러야 하나.”

큭큭큭.

***

며칠 후.

나쇼날파리은행.

재준은 페렐라와 함께 나쇼날파리은행장 파트리스를 만나러 왔다.

파트리스 은행장.

이 사람이야말로 한참 뒤떨어진 프랑스 금융을 세계 수준으로 도약시킨 위대한 인물이다.

이 사람이 어떤 위대한 일을 했냐고?

전 역사는 모르겠고 이번엔 재준을 만나서 큰 업적을 남겼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 업적은 다음으로 미루고.

재준은 파트리스를 도와 프랑스 금융의 절반을 먹게 도와주고 나머지 반은 투마로우가 꿀꺽할 계획이었다.

마침 워서스틴이 일을 너무 잘해서 3위 소시에테가 방쿠바를 179억 달러의 주식 교환 방식으로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

방쿠바 주식 5주에 소시에테 주식 8주로.

주주들에게 약 10%의 프리미엄이 발생하는 조건이었다.

두 은행이 합병되면 6개의 포트폴리오로 리테일, 기업금융, 투자은행, 자산운용, 신용카드, 주택모기지까지 갖추며 유럽 2위의 초대형 은행이 탄생한다.

신문에서는 미셸이 이 합병을 글로벌 메가뱅크라고 반기며, 방쿠바 은행장이 통합 은행장을 3년 한 뒤 소시에테 은행장이 다음을 승계하는 게 어떠냐고 은근히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해댔다.

흠, 흠.

TV를 통해 소시에타 CEO 보토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이 나오자 헛기침 소리가 났다.

파트리스는 못마땅한 눈으로 보토에를 보았다.

“저 늙은이가 미쳤지. 정치 쪽에만 있더니 세상 물정 몰라도 한참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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