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미친놈하고 다신 엮이고 싶지 않아(4)
[월가의 중소 은행 대표 폴리스트리트은행 스톡체인 인수에 100억 달러 제안]
[윌켄 110억 달러 제안]
[투렉셀 150억 달러 제안]
[윌켄 200억 달러 제안]
***
퍼스트필라델피아은행.
퍼스트필라델피아 CEO 짐 매이는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월가에서 공공연하게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투자은행은 유대인과 앵글로색슨인의 비즈니스다.’
유대인은 잘 알 테고.
앵글로색슨?
이놈들은 독일 북서부에 살던 종족이었는데, 영국에서 켈트족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자 용병으로 불려가게 됐다.
그런데 자신을 고용한 켈트족들을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 궁벽한 곳으로 쫓아내더니 나중에는 섬 전체를 먹어버린다.
이후 북미,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건너가 원주민을 학살하며 영역을 무한 확장해 나갔다.
싸움을 못 해서 안달이 난 민족이다.
이들에게 투자은행은 합법적으로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도구로 딱 맞다.
어쨌든.
유대인과 앵글로색슨 공식을 깨뜨린 투자은행이 바로 스위스 국적을 가진 퍼스트필라델피아였다.
M&A 자문과 주식 인수를 통한 기업 인수를 주로 해왔기에 유대 자본과 사사건건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유대인 놈들 우리 먹이에 손만 대 봐, 다 죽여 주마.
짐 매이는 반유대 자본 진영을 구축하고 있는 세력의 리더를 자처했지만, 몇 차례의 기업 인수에서 번번이 유대 자본에 패배를 맛보고 거기에 더해 실적하락으로 위기 상황에 몰렸다.
그런데 다시 한번 유대 자본과 한판 붙을 기회가 왔다.
JP스탠리에서 스톡체인 인수에 나선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미래 가치를 산정할 수 없을 만큼 성장성이 높은 스톡체인.
출혈이 심해도 인수만 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분명했다.
그리고 짐 매이는 이익보다도 JP스탠리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던 중 윌켄이 다녀갔다.
-짐, 참여하는 건 좋은데 이기지는 말게.
부드럽고 정감이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다소 애매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짐 매이는 스톡체인 인수에 끼어들지 말지 결정을 못 하고 망설였다.
이기지는 말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분명히 나를 걱정하는 것 같긴 한데…….
자신이 먹을 테니 방해하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면 피해야 할 폭탄이라도 숨겨져 있는 건가?
한때 윌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짐 매이는 그가 남기고 간 말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때,
M&A 팀장 브라이언 판이 다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왔다.
“짐, 윌켄이 다시 200억 달러로 인수 가격을 올렸습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고민이야.”
“우리도 이 딜에 참여해야 합니다.”
“알고 있다니까. 하지만 인수 금액이 너무 커. 자그마치 200억 달러야.”
판은 짐 매이의 걱정이 더 걱정이었다.
지금까지 200억 달러 이상 기업 인수가 없던 것도 아니고.
자신이라면 300억도 태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사기가 저하된 팀원들이 어떤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 팀도 찰스에드먼드나 살로먼스미스 같은 유대인 놈들에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형 딜을 전부 바라만 보고 있잖아요. 슬슬 팀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팀을 이탈할 수도 있어요.”
“그래, 안다고. 그놈의 수수료 때문인 거 다 알아. 그러니까 좀 기다려 봐.”
“언제까지요?”
월가에서 일반 투자자의 주식 매매 대가로 받는 2% 수수료에 만족하는 이는 없다.
이들이 원하는 건 대형 인수 합병 성공 시 받게 될 순이익의 20%에 해당하는 성공 보수다.
성공 보수라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이들이 1년간 유대인 놈들에게 패하여 놈들이 돈다발을 들고 환호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으니 속이 쓰리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짐 매이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윌켄의 의미심장한 말 이전에, 그들에게는 싸움을 지휘할 이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달려들고 싶어. 워서스틴과 페렐라만 있었으면 당장 나섰을 거야.”
한때, 퍼스트필라델피아에 몸담았던 기업 인수의 두 거물.
저돌적으로 몰아붙이는 워서스틴과 인수 가격 산정의 천재 페렐라가 서로 자기가 잘났다며 충돌하더니 둘 다 회사를 나가버렸다.
그것도 혼자만 나간 게 아니라 그들을 따르는 수십 명의 M&A 전문가를 데리고서.
당연히 팀원들은 동요했고, 사내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현재 퍼스트필라델피아의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이 바로 팀 분위기가 엉망이라는 점이었다.
“내부의 문제를 잡으려면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이 기본입니다.”
짐 매이는 판의 말을 듣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좀 더 고민해 보자고.”
“짐, 지금까지 구조화금융 법안 폐기를 연말까지 미루는 데 들어간 로비 자금이 얼마인지 아세요? 그 돈을 들이고 한 번도 써먹지 못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딜이라고요.”
구조화금융법을 이용한 절세 방법을 개발한 건 판이다.
구조화금융법은 단위가 큰 세금을 최대 10년까지 나누어서 낼 수 있는 법이다.
기업 인수 시에 인수 가격에서 내야 할 세금을 빼면 경쟁자들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렇게 판은 수차례의 기업 인수를 성사시켰다.
물론 워서스틴과 페렐라와 함께였지만.
하지만 미국 의회는 세금을 정확히 내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구조화금융법을 폐지하려 했다.
하지만,
로비로 수십만 달러를 썼다.
아직은 써먹을 시간은 있어.
그래, 구조화금융법이라면 해볼 만해.
이대로 우리가 구경만 한다면 다음은 더 상대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결국 짐 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판. 팀을 꾸려 우리도 뛰어든다. 지금 내가 재무부에 들어가서 한 번 더 점검하지.”
“오케이. 짐.”
유대 자본과 반유대 자본이 한판 거하게 붙게 됐다.
내부 문제도 봉합하고 구조화금융법 폐기 전에 대형 딜을 성사시켜야 하는 퍼스트필라델피아가 네 번째로 가담했다.
***
뉴욕연방준비은행.
윌리엄은 제임스의 보고를 받으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미스터 임이 또 판을 키우는 거 봐. 정말 대단한 놈이라니까.”
“이번엔 퍼스트필라델피아까지 나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윌켄에게 대항한 곳이 네 곳으로 늘어난 건가?”
“네. JP스탠리와 투렉셀, 폴리스트리트, 퍼스트필라델피아입니다.”
“월가 전체를 흔들고 있어. 이거 점점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데.”
윌리엄은 투자은행 명단을 보며 계속 실실 웃었다.
누가 이기든 상당한 출혈 없이 승리하기는 힘들겠어.
이 기회에 JP스탠리가 패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승리해도 한동안은 잠잠하겠지.
반대로 JP스탠리가 이겼을 때에는 침몰시킬 구실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고.
미국 역사에서 무리한 인수를 추진하다 유동성이 무너져 부도난 기업이 어디 한둘인가.
윌켄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판을 키우는 데에는 아주 적절한 역할을 해 주었다.
설마 윌켄과 미스터 임이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
윌리엄의 생각을 아는지 제임스는 손가락으로 윌켄의 이름을 가리켰다.
“윌켄의 투자풀이 가동됐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어떤 은행과 기업이 윌켄을 지원하는지 알아봐.”
“그게 어렵습니다. 윌켄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윌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지.”
“일단 사람은 붙였습니다.”
“잘했네.”
JP스탠리가 퍼스트필라델피아를 끌어들였다.
여기에 윌켄의 등장이 투렉셀을 움직였고, 이를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월가의 중소투자은행들이 뭉쳐서 그 대표로 폴리스트리트가 뛰어들었다.
띠리리리링.
잠시의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리자 제임스가 전화를 받으러 움직였다.
“잠깐만.”
윌리엄은 제임스를 저지하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로 무엇을 들었는지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뭐라고?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손을 잡고 스톡체인 인수에 뛰어들었다고?”
퍼스트필라델피아에서 나간 M&A의 두 거물이 손을 잡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제임스가 물었다.
“그 둘이 어떻게 손을 잡았습니까? 서로 앙숙 아닙니까?”
“앙숙?”
하하하.
윌리엄의 웃음에 비웃음이 묻어났다.
“돈 앞에서 앙숙도 동업자가 되는 곳이 월가 아닌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월리엄은 궁금하긴 했다.
퍼스트필라델피아를 나가서 첫 먹잇감으로 스톡체인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인가?
“워서스틴이 끼어들면 대단한 난타전이 되겠는데요.”
“그 무식한 놈이 뛰어들다니 이거 정말 볼 만하겠어. 이로써 월가의 거의 모든 투자은행이 이 진흙탕에 뛰어든 건가?”
“여기서 승리하는 자가 진정한 윌가의 승자입니다. 과연 미스터 임이 승자가 될까요?”
그때 윌리엄의 뇌리에 무언가 강하게 부딪쳤다.
“아니야. 뭔가 부족해…….”
윌리엄이 뭔가 생각나는 듯 고민에 빠졌다.
진정한 월가의 승자라…….
윌켄이 떠나고 지금까지 인수 금융 시장의 90%는 유대 자본이 잠식했다.
JP스탠리 지미 브라운은 신디케이트 융자기법으로 윌켄이 떠난 왕좌에 올라섰다.
신디케이트 융자기법이란 이름만 거창하지 별거 아니다.
기업 인수할 때 투자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을 여러 은행이 연합해서 처리하는 것이다.
예전에 윌켄은 혼자 하던 일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유대인이 진정한 월가의 승자였다.
이 승자에게 지금 윌켄, 투렉셀, 폴리스트리트, 퍼스트필라델피아, 워서스틴까지 칼을 뽑아 들었다.
JP스탠리만 아니면 아무나 이겨도 상관은 없는데…….
그런데 이놈, 워서스틴.
퍼스트필라델피아 출신이니 짐 매이에겐 악재인데.
그렇다면 퍼스트필라델피아에 히든카드가 있어야 하고…….
음, 그래, 짐 매이에게 잘 드는 검 하나는 쥐여줘야 싸움이 되지.
잘하면 이번에 연준을 정부에 귀속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뭔가 생각난 듯 윌리엄은 급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제이, 나일세.”
제임스는 윌리엄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믿을 수 없었다.
설마, 제이 프리츠크?
제이란 이름에 제임스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다.
미친!
제임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이 프리츠크.
시카고 최대 부호이며 화이트호텔 그룹의 오너인 거대 개인 투자자.
이어지는 윌리엄의 대화는 더욱 놀라웠다.
“자네 퍼스트필라델피아를 좀 도와주겠는가?”
판을 더 키운다?
“……그래. 그럼 믿겠네.”
제임스는 윌리엄이 전화를 끊자 잡아먹을 듯이 다가왔다.
“어쩌시려는 겁니까? 제이 프리츠크라면 미스터 임이 상대하기 버겁습니다.”
윌리엄은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띄웠다.
“이 정도도 극복 못 하면 우리에게 필요 없는 인물이야. 연준을 정부의 손에 넣겠다는 우리의 계획을 잊으면 안 돼. 미스터 임의 잠재력을 모조리 끌어내야지.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유대 자본이 스톡체인을 소유하지 못하게 해야 해.”
제임스는 윌리엄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스톡체인 CEO 임재준, 다수의 인수 기업을 위해 입찰 방식 제의]
[스톡체인 인수 투자은행 모두 환영 시사,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