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미친놈하고 다신 엮이고 싶지 않아(3)
“음, 우리 신용 정도면 레버리지바이아웃으로 진행하는 게 어떤가?”
“Leveraged Buy-Out?”
만 원으로 십만 원짜리 물건을 사는 방법이다.
레버리지바이아웃(Leveraged Buy-Out) 일명 LBO.
Leveraged는 남의 돈이고 Buy-Out은 매입이다.
즉, 남의 돈으로 매입한다는 뜻이다.
아니, 지금까지 은행들이 다 남의 돈으로 장사한 거 아닌가? 라고 따질 수도 있지만, 담보 차이가 엄청나다.
돈을 빌리려면 담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레버리지바이아웃의 담보가 어이없게 아직 인수하지 않은 기업이다.
아니, 아직 인수도 안 된 기업을 어떻게 담보로 삼을 수 있을까?
은행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남의 기업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지는 않는다.
인수가 100% 확정된 상태여야 하고, 기업 가치를 높일 방안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은행이 이런 위험한 거래를 그냥 할 리 없다.
대출금은 모두 회사채로 만들어 팔고 10%의 이자는 돈 빌리는 투자은행에게 받는다.
정리하자면, 돈이 확실히 되는 기업을 사고 싶으면 인수자금의 10%를 주고 90%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 회사채는 부채율이 워낙 높아서 쓰레기 채권으로 취급한다.
이게 정크 본드 중 하나이다.
윌켄이 이 정크 본드 시장을 만든 장본인이고.
레버리지바이아웃 정크 본드를 시장에서 살 수 있다면 대박이다.
일반인 눈에 보일 리가 없겠지만.
정크 본드는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원래 쓰레기 같은 채권.
발행하는 회사가 오늘내일하는 위험한 채권이다.
이런 건 눈에 잘 띄지만 쳐다도 보면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채권 발행 후 회사가 잠시 휘청해서 등급이 추락한, 일명 추락천사라는 채권이다.
이것도 살 수 있으면 사두는 게 좋은데 역시 보일 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레버리지바이아웃과 같은, 기업 인수를 위해 일시적으로 큰 부채율을 안고 나오는 채권이 있다.
“얼반 그룹은 내가 맡지. 이럴 때 윌켄이 있으면 27억 달러 정도는 전화 한 통화로 해결했을 텐데.”
“윌켄을 끌어들이는 건 어떤가?”
“안 돼. 우리가 그를 축출하는 데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잊지 마. 그는 절대 안 돼. 아직도 윌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투자자가 많아.”
“그냥 말해 본 거야.”
“그보다 투마로우의 미스터 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해.”
모두 지난 뱅크오브에이스가 어떻게 재준의 손에 떨어졌는지 상기했다.
“그러게. 인수를 환영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본인은 모습을 드러내질 않으니.”
“또 뒤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번엔 우리도 만만치 않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고.”
“그럼 다행이고.”
모든 게 순조로운 듯했지만, 재준이라는 이름에 다들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
투렉셀 사모펀드 회사.
투렉셀의 창업자이자 리더인 제콜 롬버그는 스톡체인 인수전에 뛰어들겠다는 자신의 두 제자에게 단단히 경고하고 있었다.
“크리스, 로버츠. 절대 스톡체인 인수전에는 뛰어들지 마. 절대 안 돼.”
“왜 안된다는 겁니까?”
“지금까지 우린 경영진과 우호적인 M&A만 성사시켜왔어. 외부에 공시된 경영내용과 제한적인 실사만으로 적대적 인수는 불리할 수밖에 없어.”
경영진과 우호적인 M&A라고 하니까 굉장히 좋게 들리지만 결국 내부의 배신자를 이용하는 인수다.
내부 정보를 빼돌려 경영진의 뒤통수를 치는 것.
“임원 몇을 구워삶으면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늦었어. 경쟁 상대가 너무 많아. 그리고 난 두 번 말하지 않아. 더 이상 회사 규모를 키우지 마.”
빌어먹을.
그걸 그냥 보고만 있으라니.
크리스와 로버츠는 이를 빠득 갈았다.
이때,
똑똑.
비서가 들어오더니,
“투마로우의 임재준이 왔습니다.”
뭐? 왜? 아니, 어떻게?
당황한 롬버그가 아무 말이 없자 크리스가 대신 비서에게 말했다.
“일단 들어오라고 하세요.”
재준이 대표실에 걸어 들어오며 빈정거렸다.
“밖에서 들어보니 여기도 겁쟁이가 있네. 이러니 투렉셀의 명성이 과거형이 돼가는 거지.”
셋의 고개가 재준에게로 향했다.
롬버그는 크리스를 노려봤다.
크리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제가 부른 게 아닙니다.”
“그럼, 미스터 임이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
쯧쯧.
재준이 혀를 파며 롬버그를 향했다.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에요? 지금 스톡체인을 먹겠다고 윌켄이 나타났는데. 윌켄의 약점을 잘 아는 투렉셀에 내가 오는 건 지나가는 개한테 물어도 알겠네.”
“뭐?”
“근데 영 예전의 롬버그가 아니네. 뭐 벌써부터 싸움에 진 개처럼 벌벌 떨고 있으니 이거 원. 부탁하기도 힘들겠어요.”
“그냥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쉽군요. 스트러스트뱅크의 배타적 협상권이면 어떨까 해서 왔는데.”
“필요없…….”
“잠깐만요.”
크리스가 롬버그의 말을 끊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롬버그, 스트러스트뱅크라면 기업 인수 자금을 대는 3대 은행입니다. 그 은행의 배타적 협상권이면 우리로서는 큰 지원군을 얻은 겁니다. 이야기는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배타적 협상권을 걸어두면 스트러스트은행은 투렉셀 이외 어떤 세력과도 손을 잡지 못한다.
그러나 롬버그는 이번 인수가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특히 저 미스터 임이란 인물은 더욱더.
끝까지 믿은 그랜드월이 당한 걸 생각하면 결코 믿음이 가지 않았다.
“더는 말을 섞기 싫으니 돌아가세요.”
롬버그는 대화를 끝내기 위해 돌아서서 대표실을 나갔다.
크리스와 로버츠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재준이 말하기 전까지는.
“자네들 보스가 꽤 소심한 성격인데, 회사 운영하기 힘들겠어요.”
“보스 없이 우리와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요?”
음.
재준은 생각하는 척 후 말했다.
“솔직히 나는 투렉셀이 스톡체인 인수에 나선다면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입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쯧쯧.
“뭐 물어보나 마나죠. 내가 이러는 이유는 한 가지예요. 돈을 더 받기 위해섭니다. 안 그래요? 내가 스톡체인을 상장하면 30억 달러 정도의 자금을 공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윌켄이 인수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투렉셀이 나선다면 윌켄이 더욱 높은 가격을 부를 것 같더라고요. 그럼 최소 60억 달러는 되지 않을까요?”
크리스는 재준의 탐욕에 미간을 찡그렸다.
“우리를 이용하겠다는 겁니까?”
재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안 됩니까? 당신 같으면 더 많은 돈을 벌 기회가 왔는데 그걸 걷어차겠어요? 30억에 인수할 때와 60억에 인수할 때, 수수료를 생각해 보세요. 최소 60억 달러의 2%.”
1억 2천만 달러.
로버츠가 크리스 옆구리를 쿡 찔렀다.
“크리스, 미스터 임의 말이 맞아. 돈은 스트러스트가 대는 거야. 우린 상대를 녹다운 시킬 조건만 찾으면 된다고.”
“알아.”
재준은 흔들리는 두 사람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60억 달러는 최소입니다. 전 100억 달러까지 높일 생각도 있습니다. 그리고 승자는 당신들이 될 겁니다.”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내가 스톡체인의 주인이니까. 당신들은 지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내부 정보를 쥐고 있는 겁니다.”
맞다.
이보다 더 정확한 내부 정보는 없다.
“난 100억 달러를 벌어서 좋고, 당신들은 거액의 수수료를 받아서 좋고. 어때요?”
크리스와 로버츠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롬버그가 허락하질 않을 겁니다. 그는 더는 회사를 키울 생각이 없습니다.”
“에이, 그랜드월이 어떻게 됐는지 알면서 그러시네. 롬버그가 문제가 아니라 이사회가 문제겠지요. 다음 주가 롬버그 휴가 아닙니까? 3주 휴가던데.”
크리스는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걸 느꼈다.
앞에 있는 놈이 롬버그의 휴가 기간에 이사회를 열어 대표를 경질하라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롬버그와 헤어지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의 나이만 해도 이제 회사를 떠날 때가 다 되었고 예전 같은 패기도 없었다.
한때 윌켄과 함께 수많은 LBO 시장의 선두 주자로서 윌가를 호령했었다.
하지만 윌켄이 감옥에 갇힌 후 그의 실적은 단 한 건의 LBO 인수뿐이었다.
그러나 떠날 사람을 자기 손으로 내치는 건 도저히 맘이 내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롬버그가 두려웠다.
이사회에서 롬버그 퇴출이 무산되면 그 화살은 자신에게 향할 것이다.
재준은 크리스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마치 크리스를 자신 안에 가두기라도 하듯이.
“크리스, 만약 윌켄이 승자가 되면 다음은 어디일 것 같아요?”
다음?
“윌켄이 돌아오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그의 주변 사람들 알죠? 그 사람들이 얼마나 몰려갈 것 같아요? ‘제발 내 돈을 굴려줘’라면서. 다음은 투렉셀이 될 겁니다. 당신이 이번 인수에 뛰어들든 뛰어들지 않든 윌켄이 승리하면 롬버그도 당신들도 전부 길바닥 부랑자가 되는 거예요.”
맞는 말이다.
크리스와 로버츠는 윌켄이 회사를 떠나는 걸 지켜만 봤다.
그는 마지막에 언젠가는 이 빚을 갚겠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로버츠 2주 후 이사회를 소집하자.”
“준비할게.”
자, 이로써 두 번째 팀의 입장이 확정되었다.
***
[윌켄은 스톡체인을 6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
[투렉셀 대표 롬버그 이사회에서 퇴출]
[투렉셀 윌켄은 헐값에 스톡체인을 인수하려 한다고 비판. 자신들은 90억 달러 오퍼.]
***
HSCC 금융그룹.
월가 상업은행 대표들이 한곳에 모였다.
이들의 특징이라면 전부 스톡체인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재준이 뱅크오브에이스를 인수하기 위해 제시한 안을 받아들인 이들.
투렉셀이 스톡체인을 인수하기 위해 90억 달러를 제시하자 화들짝 놀라서 급하게 회동을 가진 것이다.
“다들 신문을 봐서 알겠지만 투렉셀이 90억 달러를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스톡체인 가치가 필요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좀 진정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고개를 저으며 한 은행장이 말했다.
“아니요.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지금 인수 경쟁에 뛰어든 이들이 누굽니까? 지난 10년간 적대적 M&A을 주로 하던 이들입니다. 저들이 스톡체인의 미래 가치에 대해 낙관적이니까 뛰어든 게 아니겠습니까? 특히 윌켄은 10년의 침묵을 깨고 나왔습니다. 저들이 단 한 건이라도 손해를 본 적이 있던가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은행장이 편을 들었다.
“맞습니다. 가장 적은 게 20%였습니다. 100억 달러를 쏟아붓고 20억 달러를 벌어들인 이들입니다. 스톡체인의 공모가 30억은 터무니없는 가격이었습니다. 앞으로 온라인은 점점 빨라질 거고, 그만큼 온라인으로 증권을 매매하는 사람 또한 많아질 겁니다.”
“맞아요. 맞아.”
“아마 100억 달러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저기서 스톡체인의 가치를 더 크게 부풀리는 통에 회의장이 떠들썩해졌다.
탕탕탕.
이 회의를 주최하고 지켜만 보던 폴리스트리트은행장이 탁자를 쳐서 좌중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래서 말입니다. 투렉셀이 90억 달러로 스톡체인을 인수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지 않습니까?”
모두의 가슴에 탐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100억 달러 이상을 불러야 합니다.”
“설마, 폴리…….”
“맞습니다. M&A팀을 꾸려서 우리도 스톡체인 인수전에 가담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각자 은행에서 대출을 발생시키면 부담도 적고, 우리 자본이 가장 강력할 겁니다. 어떻습니까?”
하하하.
누군가 호탕하게 웃었다.
“좋은데요. 실패해도 우린 주식을 가지고 있으니 그만큼 가치가 있을 것이고. 성공한다면 우리가 직접 스톡체인을 운영해도 됩니다. 단, 미스터 임이 온라인증권시장에 뛰어들지 못한다는 조항을 첨가하면요.”
“좋습니다. 좋아요.”
“얼마가 되든 좋으니 우리도 가담합시다.”
이렇게 세 번째 팀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