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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99화 (99/477)

제99화 미친놈하고 다신 엮이고 싶지 않아(1)

재우 그룹에 채무가 있던 은행들은 투마로우에서 제시한 안을 받아들였다.

중간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정 행장은 매일 몰려드는 채권자를 상대하느라 홀쭉하게 말라 갔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금감원이 나타나 자신들이 교통정리를 하겠다고 선언하자 정 행장은 기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일갈을 날렸다.

“은행들 대출 삭감하고 유예 기간 주면 여기서 은행 몇은 더 무너집니다. 이번 일은 우리가 해결할 테니 그만 물러나세요.”

원래대로라면 금감원 주도로 은행 대출을 어느 정도 감면하고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재우 그룹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투마로우가 대뜸 나타나서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해 버리니 금감원은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났다.

은행들이 전부 투마로우의 위용을 경험하면서 금감원과 자잘한 마찰이 발생했다. 그들은 금감원을 무시하며 더는 끌려가지 않으려 했다.

은행 스스로 관치금융을 벗어나자는 시도를 시작한 것이다.

재우 그룹은 자동차를 제외하고 모두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이어갔다.

투마로우금융지주회사 아래로 현재증권과 투뱅코, 그리고 현재증권의 계열사들이 포함되었다.

재준은 이 일로 며칠 동안 앤드류와 마이클, 박민수, 강호석과 전화를 붙들고 씨름을 했다.

이 모습이 임병달에게는 재준이 자금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재우 그룹 대출 문제는 눈엣가시 같았다.

“재준아, 정말 괜찮겠지?”

“할아버지, 걱정 그만 하세요. 재우 그룹은 잘할 겁니다.”

“그 많은 대출 이자에 원금을 생각하면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어서 그래.”

“재우 그룹 작년 매출액이 91조예요. 저희 대출금은 금방 갚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재준은 임병달과 달리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안 갚으면 다른 대기업에 팔아버리면 되죠.

“미국 투마로우 자금이 바닥을 치는 거 아니냐?”

“여기저기 다 끌어다 쓰긴 했습니다. 그래서 투마로우를 상장시키려고요.”

“뉴욕 증시에?”

“네. 지금 마이클과 앤드류가 열심히 머리 굴리고 있을 겁니다.”

“기업 가치는 얼마나 나올 것 같은데?”

“1,000억 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뭐? 그럼 한화로 120조?”

할아버지 너무 놀라시는 거 아닙니까?

지금 얼반 그룹이 2,000억 달러이고 AAG도 1,700억 달러인데.

우린 아직 멀었다고요.

“그렇게 놀랄 만한 규모는 아닙니다. 금융업계에선 3위지만 전체 기업 순위에선 30위 안에도 못 들어요.”

“30위 안에도 못 들다니. 역시 미국이라 시총이 100조가 넘는 회사가 많구나.”

“그럼요.”

이 시기가 바로 IT 버블 시기라 통신서비스와 IT 장비 업체가 상위를 차지했다.

1년도 안 돼서 그 자리는 은행과 보험사 차지가 되지만.

뱅크오브에이스 순위가 딱 10위였던 것 같은데.

이번엔 스톡체인이 있으니 조금 더 올라가려나.

재준와 임병달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 비서가 임병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모던 그룹 회장님이 여길 직접 찾아오시겠다고? 가급적 빨리?”

“네. 그렇게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오늘 오후에 만나 뵙자고 해. 일식집에 연락해서 오늘은 장사하지 말고 기다리라 하고.”

“네.”

재준은 비서가 나가자 피식 웃었다.

“넌 모던 그룹 회장이 왜 만나자는지 알고 있는 눈치구나.”

“그야 모던투신 때문이죠.”

“너 거기도 장난질을 쳐 놓은 거냐?”

“아니요. 그냥 좋은 정보를 줬을 뿐이에요. 선택은 본인의 몫 아닌가요?”

“장난을 쳤구만, 장난을 쳤어. 으이그, 이 말썽쟁이 손자야.”

***

일식집.

재준과 임병달이 먼저 와서 기다렸고, 곧 모던 그룹 박영주 회장, 왕자의 난으로 한창 싸우던 아들 둘이 함께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건강하셨습니까? 임 회장님. 이렇게 무례하게 약속을 잡아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앉으시죠."

서로 인사 겸 안부를 물으며 인사치레한 후 박 회장이 먼저 본론을 꺼냈다.

“요즘 투마로우에서 재우 그룹 채권을 회수한다고 들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던투신이 보유하고 있는 재우 그룹 채권을 전부 투마로우에 넘기고 싶습니다.”

임병달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 회장님, 그냥 아랫사람을 시켜도 되는 일을 굳이 직접 나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박 회장은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지금 저희 모던 그룹은 정부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모던전자 주가 조작도 있고, 유동성에도 문제가 있다며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난리고.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내에선 유일하게 투마로우만 큰소리치고 있잖습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는 척해 주세요.”

가만히 듣고 있던 재준이 슬쩍 말을 얹었다.

“크게 떠들어 드릴까요? 작게 떠들어 드릴까요?”

“크고 작은 선택이 있는 건가?”

“그럼요. 크게는 모던투신을 없애는 거고, 작게는 채권만 주고받고 신문에 기사 좀 흘리는 겁니다.”

모던 그룹 박 회장은 재준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제 생각은 전자입니다. 모던투신을 없애는 게 모던 그룹에 도움이 될 겁니다.”

“팔라는 말인가?”

당연한 소리를.

“투신사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무엇입니까? 정부나 기업의 입김으로 운영되는 곳 아니었습니까? 외환위기 이후로는 개인과 기업을 상대하는 업체만 살아남을 겁니다. 투신사는 영업해 본 적이 없잖아요. 주는 거 받아먹고, 가진 거 내놓으라면 내놓고.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투신사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괜한 애물단지가 될 뿐이지요.”

“유지하는 건 안 되는 건가?”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애물단지라고. 모던 그룹이 빠진 모던투신은 빈 껍데기 아닙니까?”

빈 껍데기.

한국의 3대 투신사 사장은 전부 기획재정부 출신 아니면 금감원 출신들이었다.

즉, 운영이랍시고 한다는 게 정부의 주가 관리를 위한 일들이었다.

이러니 이걸 배운 대기업들이 투신사를 자신의 주가 관리용으로 쓰는 것도 당연했다.

“버려라…….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까…….”

“시장을 거슬러 성공하는 것보다 시장에 따라 패배하는 것이 브랜드 가치에 좋습니다.”

브랜드 가치라…….

치졸하게 성공하느니 장엄하게 죽어라.

“알겠네. 솔직히 말하지. 나는 자네를 만나려고 임 회장 핑계를 댔네.”

“자금난 때문이시군요.”

“맞아. 대기업이다 보니 한두 푼으로는 해결이 안 돼서 투마로우의 실제 주인인 자네에게 조언을 구할까 하네.”

재준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모던 그룹 일에 이래라저래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말씀만 드리자면.”

모두 재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데,

“회장님 살아 계실 때 그룹을 분리하시죠.”

어차피 피투성이가 되어 분리할 바에는 평화적으로 나눠 가지는 게 낫지.

“뭐라고?”

“이 사람이. 말이면 다인 줄 아십니까?”

“당장 취소하세요!”

“너희들은 가만있어. 어딜 끼어들어!”

두 아들이 재준에게 버럭 화를 내자, 박 회장은 더 크게 고함치며 경고했다.

“여기 앞에 있는 임 대표는 우리 모던 그룹보다 자산이 많은 기업을 거느리고 있어. 너희들 따위가 어딜 감히.”

아니,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없는데.

재준은 도리어 머쓱해졌다.

박 회장의 시선이 다시 재준을 향했다.

“이유를 들려주겠나?”

재준은 박 회장의 둘째 아들 박종구 사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박종구 사장 때문에요.”

“우리 둘째가 왜?”

“박종구 사장이 자동차를 맡으시면 굉장히 잘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 장난스러운 말을 지금 이유라고 드는 거야?

이 새끼가 정말.

박종구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재준을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준은 빙글 웃었다.

“만약 박종구 사장이 자동차를 맡는다면 투마로우가 10억 달러를 투자하겠습니다.”

엥?

노려보던 박종구가 순간 눈을 껌뻑거리며 언제 화를 냈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짝.

재준은 내 말을 잘 들으라는 듯 손뼉을 가볍게 쳤다.

“자, 보세요. 지금은 건설과 전자가 잘나가고 자동차는 그저 그래 보일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자동차 독자 엔진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몇 개나 될까요?”

박종구는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제가 알기론 우리까지 포함해서 7개국입니다.”

“네, 경쟁 상대가 일곱밖에 없죠. 그럼 전 세계에서 잘나가는 건설회사와 전자회사는 몇 개입니까?”

“그건…….”

셀 수 없이 많다.

박종구의 눈빛에 빠르게 희열이 번졌다.

“그래서 전 모던자동차에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박종구가 형 박종헌과 건설과 전자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웠는데 재준의 말 몇 마디로 박종구의 마음이 돌아섰다.

하하하하.

박 회장이 무엇이 통쾌한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임 대표. 고맙네. 고마워. 하하하하.”

왜 아니겠는가.

지금 아들 둘이 자칫 서로 죽일 수도 있었는데.

박 회장은 어찌할 바를 몰랐던 골칫거리가 말끔히 사라지는 걸 느꼈다.

이로써 재준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모던 그룹 왕자의 난을 해결하고 모던자동차 주식을 왕창 얻었다.

“임 대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뭐긴. 다 돈이 되니까 하는 거지.

“박종구 사장님을 믿으니까요.”

“그래, 그래. 나보다 내 아들을 더 믿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조언을 해주게.”

“말씀하십시오.”

“이번 정부와 관계를 개선하려면 내가 뭘 해야 하겠나?”

뭘 하긴.

“소 천 마리를 이끌고 북으로 가십시오.”

“뭐? 소?”

“정부가 지금 햇볕 정책을 들고나온 건 아시죠.”

“정부에 뒷돈이라도 주라는 건가?”

“에이, 그렇게 생각하면 속이 좀 쓰리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편하지 않겠습니까?”

재준이 슬며시 박 회장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속삭이듯 말했다.

“통천에서 처음 서울로 오실 때 소 판 돈 70원을 들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거 갚는다 생각하시고 가시면 어떻습니까? 가는 김에 짝사랑도 좀 찾아보시고.”

실제 박 회장은 북에 가서 어릴 때 짝사랑의 행방을 찾았다.

통천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딸이었고 박 회장이 서울로 간 것도 성공해서 청혼하려고 했단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순간 박 회장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보이더니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임 대표. 나에 대해서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나?”

“전 성공한 사람들 뒷조사는 철저하거든요.”

“뒷조사?”

하하하하. 하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두 아들을 노려봤다.

“에이, 한심한 놈들. 싸움질이나 할 줄 알지. 쯧쯧쯧. 임 대표 반만이라도 닮아봐라. 이놈들아.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놈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박 회장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두 아들을 데리고 갔다.

박종구는 마지막으로 나가며 재준에게 예의를 다해 고개를 숙였다.

임병달은 박 회장이 나가자 재준에게 다가왔다.

“네가 박 회장 짝사랑은 어찌 아냐?”

“책에 다 나와 있다니까요.”

“책에?”

“네.”

“박 회장 책이 있던가?”

“잘 찾아보면 있습니다.”

“나도 한번 보자.”

“네?”

헉! 이건 생각 못 했다.

“버렸는데요.”

“버렸다고? 그걸 왜 버려?”

“그런 책이 버젓이 제 책상에 꽂혀있으면 할아버지가 좋아하시겠어요?”

“아니, 그걸 내가 왜 싫어해? 너 뭔가 나에게 숨기는 거 아니냐?”

“아닌데요?”

이때,

띠리리링.

핸드폰 벨소리가 재준을 구했다.

“앤드류, 무슨 일입니까?”

-보스, 유대인 자본이 지주회사 상장 전 스톡체인 지분을 사들여 지배하려 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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