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98화 (98/477)

제98화 판을 정말 잘 짜는 것 같아(5)

유호근은 곧바로 투마로우뱅크에 전화를 걸어 재준을 찾았다.

-네, 임재준입니다.

“여기 금감원입니다.”

-근데요.

“조사할 게 있으니 들어와야겠습니다.”

-뭔 조사요?

“들어오면 압니다.”

-이봐요. 당신 금감원 누구예요? 뭐 다짜고짜 통성명도 없이 들어오라고 하는 겁니까?

미간을 찡그린 유호근은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방금 루이스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투마로우가 마음만 먹는다면 월가를 동원해 외환위기의 한국은 통째로 사버릴 수도 있습니다.

“전 금감원 유호근이라고 합니다. 한번 들어오시죠.”

-뭔가 순서가 잘못된 것 같은데. 부탁하려면 그쪽에서 와야지 왜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합니까? 할 말 있으면 직접 오세요.

“뭐라고요?”

-이만 끊습니다.

툭.

유호근이 조 원장을 쳐다봤다.

“우리보고 찾아오라는데요?”

“허, 그 사람 정말 큰일 한번 당해 봐야 정신 차리려나.”

“얼마나 대단한지 봐야겠습니다.”

“그럽시다.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봅시다.”

이때,

“가지 마십시오.”

어느새 원장실에 들어와 있던 수석부원장이 충고했다.

“임재준과 붙어서 좋은 꼴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세요.”

수석부원장은 듣지 말아야 할 이름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언제 오셨습니까?”

“루이스가 나가길래 결과를 여쭤보러 왔습니다. 상의 드릴 일도 있고요.”

“근데, 수석부원장은 임재준을 잘 아십니까?”

“잘 알죠. 윤 원장님이 당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으니까요. 만약 원장님이 금감원의 권력을 믿고 임재준을 누르려면 IMF를 상대해야 할 겁니다.”

IMF라는 말에 조 원장은 턱을 가만히 매만졌다.

하긴 윤 원장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미국에서 그 정도 힘을 발휘하면 당연히 미국의 보호를 받을 테니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이긴 한데.

재우자동차 처리는 우리도 해야 하고…… 난감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럼, 일단은 두고 봅시다. 재우자동차는 팔렸고, 다른 계열사 처리는 어떻게 돼갑니까?”

“그 전에 모던투신이 재우 그룹 채권을 다량 보유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습니다.”

“아니, 그 사람들은 언제 재우 그룹 채권을 사 모았습니까?”

“재우자동차가 모던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재우 그룹 가치가 올랐으니까요. 하지만 재우 그룹 분식회계 뉴스가 터지자마자 일제히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거 참, 불똥이 여기저기 튀네.”

***

현재증권 회장실.

임병달과 손 회장, 정 행장과 재준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손 회장은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지 앞에 놓인 차를 연신 마셨다.

“임 회장, 정부가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변할 수 있습니까? 이제 저를 잡아먹을 듯이 대합니다.”

모두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 침묵을 지키던 상황에서 재준이 말문을 틔웠다.

“분식회계잖아요. 전 국민이 지켜보는데 어떻게 회장님을 감싸고 돌아요. 그건 아니에요.”

흠, 흠.

임병달이 ‘이놈아, 그걸 대놓고 얘기하면 어떡해?’라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재준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나갔다.

“각오는 돼 있으시죠? 미국에선 이 정도 분식회계면 형량 150년 정도 때려요. 법정 형량을 줄여도 평생 감옥에서 못 나오게요.”

손 회장의 안색이 점점 허옇게 변해갔다.

임병달은 재준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입을 뻥긋거렸다.

지금 입에 발린 소리를 해서라도 손 회장을 위로해야 할 상황에.

뭐? 150년? 감옥?

손 회장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임 대표, 내가 들어가면 재우가 어떻게 되는지 아나?”

“하이에나들이 달려들어서 뜯어 먹겠죠.”

“그걸 알면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재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래서요. 버티시겠단 말씀이세요? 자 그럼, 정부가 어떻게 나올까요?”

“지들이 무얼 할 수 있는데.”

“일단 회장님을 분식회계 협의로 잡아 놓겠죠. 그리고 회장님이 없는 틈을 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재우 그룹 부채를 늘릴 겁니다. 부채를 늘리는 건 간단해요. 재우 그룹 해외 자본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면 되니까요. 이제 언론이 양념 좀 뿌립니다.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그럼 재우 그룹은 이 외환위기 상황에 분식회계를 한 범죄 집단에다 국민 혈세를 잡아먹는 기업이 되는 겁니다. 자, 회장님이 국민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부들부들.

“어떻게…… 그런 일이…….”

“그다음은, 정부가 재우 그룹 해체를 발표하고 다시 합치지 못하도록 기업을 부서별로 다 팔아버립니다. 사람만 있으면 다시 뭉칠 수 있으니 회장님부터 공금 횡령으로 추징금 한 20조 원 정도 때리겠죠. 주변에 회장님을 도울 만한 사람들에게도 또 그만큼씩 추징금을 때리고요.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아시죠. 그 사람들 평생 불구 아닌 불구 신세로 전락할 겁니다. 취직도 못 해요. 월급이라도 받으면 은닉재산이라고 추징해 가니까.”

재준은 실제 역사의 일을 마치 벌어질 일처럼 몰아붙였다.

“저라면 회장님을 혼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매장시킬 겁니다. 그 주변까지 모두 싹 다.”

“대한민국에 아직…….”

“그런 일은 없었다 이 말입니까? 외환위기는 뭐 매번 겪었던 경험이고요?”

“내가 무죄가 입증되면 다 해결되네.”

“무죄요?”

재준은 손 회장을 ‘이 양심 없는 양반아’라고 말하듯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직원들 다 죽어요. 무죄는 무슨 무죄. 회장님은 범죄자 신분에서 재판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재우 그룹을 경영하지 못한다고요. 그래요, 몇 년 걸쳐 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했다 쳐요. 그 사이 기업이 남아 있기는 하고요? 89조나 대출을 껴안고 있는 채권단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고요? 설마 팔다리 몇 개 정도 떼어주면 끝날 일로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그건…….”

“분식회계 하셨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변명하지 마세요.”

손 회장은 재준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내 잘못이야. 인정해.”

“이제 각오가 돼 있으신 거죠.”

손 회장은 한동안 말없이 재준을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 인생을 감옥에서 끝내는 한이 있어도 죗값을 받을 거네. 하지만…….”

다음 말을 잇지 못하자 재준이 나섰다.

“그룹은 살려드릴게요. 단, 자동차는 팔아야 합니다.”

“왜지?”

“미국이 원하는 건 자동차거든요. 나머지는 제가 나서겠습니다.”

“도련님.”

정 행장이 재준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손 회장을 한 번 쳐다보고 결심을 굳힌 듯 재준을 저지하고 나섰다.

“재우 그룹 전체 대출 규모가 89조 원입니다. 이건 덩치가 커도 너무 큽니다.”

재준이 정 행장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하지만 방법은 있어요.”

“89조 대출을 떠안으면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고, 아니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89조의 8%만 해도 7조 이상의 현금을 확보해야 합니다. 신용공여한도가 초과되어 대출도 불가능합니다.”

신용공여한도란 은행이 한 기업에 자기자본 20% 이상을 대출 못 하게 걸어둔 제도이다.

“방법이 있다니까요.”

재준이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말하자 정 행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재준을 바라보았다.

“재작년에 미국에 부채담보부증권이란 게 나왔어요. 이걸 이용하면 됩니다.”

부채담보부증권?

부채를 담보로 하는 증권?

아니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부채를 담보로 해?

재준은 어리둥절한 정 행장에게 새삼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자, 천천히 설명해 드릴게요.”

부채담보부증권은 일명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라 부른다.

쉽게 설명하면 누군가 파산하면 자신이 대신 빚을 갚겠다는 증서이다.

대신 매달 수수료를 받는다.

다시 한 번 말한다.

파산하면 대신 빚을 갚아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파산하면 대신 빚을 갚아준다?

아니, 어떤 미친놈이 이런 증권을 살까?

그런데,

산다. 그것도 아주 많이.

1998년에 3000억 달러가 팔렸고 2002년엔 2조 달러, 2008년엔 38조 달러가 팔린 증권이 부채담보부증권이다.

놀랍지 않은가?

왜 이렇게 잘 팔릴까?

자, 여러분한테 한아목재라는 기업의 CDO를 사라면 싫다고 할 것이다.

목재 사업은 성장 산업도 아니고, 부도가 나면 빚을 대신 갚아줘야 하는 확률이 높은 기업의 CDO는 사는 게 손해니까.

그러나.

전 세계 석유 기업 순위 1위인 엑슨의 CDO를 사라면?

당장 살 것이다.

왜? 절대 망할 일이 없는 기업이니까.

거기다 엑슨 CDO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수료가 나오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

자, 그러니까 은행은 엑슨에게 대출을 해주고, 엑슨의 부도 위험을 CDO로 만들어 팔았다.

은행은 CDO를 왜 발행할까?

그건 더 많은 대출을 하기 위해서다.

즉, 은행은 1조를 대출해 주면 BIS 8%인 800억을 예비비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800억이 그냥 묶여있는 것이다.

은행으로선 대출이 많아질수록 BIS를 위해 돈이 묶이니 여간 아까운 게 아니다.

그런데 만약 1조 대출에 대한 부도 부담을 누군가 대신 가지고 가면?

그 대출에 대해선 BIS를 맞출 필요가 없어진다.

BIS 비율을 맞추는 게 기업이 부도가 날 때를 대비하는 거니까.

정말 신박한 아이디어다.

그래서 이제 은행은 엑슨에게 1조든 2조든 마음껏 대출해 주고 CDO를 발행해 버린다.

참, 얼마짜리 CDO를 발행하냐고?

8%짜리다.

1조를 빌려주고 800억짜리 CDO를 발행한다.

8%, 어디서 많이 본 숫자다.

바로 BIS 8%.

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하’가 절로 나온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은행이 1조를 대출하고 CDO 800억짜리를 발행하면, CDO 수수료 16억으로 1조 대출 실적도 잡고, BIS에서도 해방되고, 784억을 다른 곳에 대출해 줄 수도 있다.

이거 개발한 사람이 28세 나이로 세계 투자은행 1위 JP스탠리의 임원급까지 승진했다.

“이해하셨죠.”

재준의 설명에 전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있을 수 없어서 정 행장이 나섰다.

“기존 대출 은행들에게서 대출 채권을 회수하려면 그만한 돈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아, 그거요. 그건 미국 투마로우뱅크 채권과 교환하는 겁니다. 물론 투마로우뱅크는 CDO를 발행해서 BIS비율로부터 자유로워지고요.”

“그럼, 수수료는?”

“그건 재우 그룹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해서 최대 채권자인 저희에게 이자를 주면 해결됩니다.”

“근데 재우 그룹 CDO를 누가 살까요?”

“투마로우뱅크가 발행하면 삽니다.”

89조를 대출해 주고 일 년에 8.9조 이자를 번다.

그리고 CDO를 발행한 뒤 1,424억을 수수료로 내주면 된다.

이게 CDO의 힘이다.

“어떠세요. 손 회장님.”

손 회장의 얼굴이 살짝 심각해졌다가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이제 검찰 조사나 착실히 받으면 되는 건가?”

“변호사는 저희가 선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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