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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92화 (92/477)

제92화 정상에 단 한 명만 올라갈 수 있네(6)

존이 재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재준은 오히려 뭘 묻느냐는 듯 태연하게 맞받아쳤다.

“돈 버는 일에 이유가 또 있습니까? 헤지펀드를 몇 년을 했는데 그런 걸 물으실까? 당연히 뱅크오브에이스와 합병해야 제가 돈을 벌지요. 그랜드월이 나랑 엮여 있는데 딴짓을 하려니 내가 직접 나선 거 아닙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랜드월이 아까 뭐? 모엘 뭐라는 은행이랑 합병하면 뱅크오브에이스는 뭐가 됩니까? 이게 나랑 연을 끊자는 거 아닙니까?”

“뱅크오브에이스와 합병하면…….”

“합병하면 그랜드월이 먹힐 것 같다, 이런 생각이신 거죠? 근데 그게 말이 되나? 상업은행이랑 투자은행이랑 먹히고 먹는 관계가 성립되나요? 거, 내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 되네.”

“내가 미스터 임을 이해시킬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한 가지 묻고 싶은데. 인도네시아 택시회사 부도난 건 알고 있어요?”

존의 동공이 커졌다.

이건 뭘까?

아직 인도네시아 택시회사는 부도 직전일 뿐 부도 단계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 회사의 자금 사정은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회사 설립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앤드류조차 모르는 일이다.

근데 어떻게?

파트너들이 수군거렸다.

왜 아니겠는가.

일 처리는 앤드류가 했지만 인도네시아 투자는 존이 전격적으로 밀어붙인 사업이었다.

그런데 부도가 났다고?

존은 여기서 소문을 무마해야 했다.

“근거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이렇게 서로 신뢰하기 힘드니 여기서 그만 관계를 정리하자는 거 아닙니까? 각자 갈 길 가시죠. 오늘부로 디 엔드 하는 걸로. 서로 구질구질하게 변명이나 떠들지 말고요.”

존은 재준의 말을 듣고 탄식을 내뱉었다.

“알았네. 그렇게 하지.”

“오케이, 쿨하시네.”

존과 재준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모두 재준의 행동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지금까지 불을 확 질러 놓고 자기만 쏙 빠지는 모양새였다.

리처드와 파트너들의 시선이 재준을 따라 움직였다.

재준이 볼일은 끝났다는 듯 밖으로 나가려 하자 리처드가 재준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가시면 어떡합니까? 우리 모두 궁지에 몰릴 수 있습니다.”

리처드는 아직 희망을 놓지 못하고 눈가를 촉촉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러다 울겠네.

아직 안 끝났다고 말할 수도 없고 참.

그래도 혼은 내야지.

“리처드, 내가 그렇게 밀어줬는데 이런 일 하나 깔끔하게 해결 못 합니까? 이러니 내가 손을 털지. 혹시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은 생각 안 해 봤어요?”

“네?”

“헤지펀드로 잔뼈가 굵었을 텐데. 이런 경우는 없었나 봐요?”

순간 말문이 막힌 리처드는 뒤를 돌아 자신을 믿고 따라온 파트너들을 바라봤다.

그들 모두 재준과 리처드의 대화를 듣고 있었기에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혹시 한국에서 그랜드월이 벌인 일에 대한 복수라도 하시는 겁니까? 그건 전부 존과 앤드류가 한 일입니다. 저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요. 목적이 돈이 아니었습니까?”

“돈? 아, 맞다. 돈. 돈이 있었네.”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바로 그거잖습니까.”

재준은 리처드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그 돈, 내가 벌어야 하는데 하나도 못 벌 것 같아. 저기 저렇게 꽉 틀어막힌 사람이 딱 버티고 있잖아요. 보이죠. 존, 저 사람 아주 심지가 굳은 사람인데 저 사람을 무시하고 어떻게 합병을 합니까?”

“네?”

“뭐랄까……. 능력은 없는데 자리를 차지하는 데 능통하다고 해야 하나? 대표 자리에 눌러앉은 세월이 오래되어서 엉덩이에 끈끈이라도 붙은 것 같은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요. 그래도 어쩝니까? 자신이 대표라는데. 리처드 당신은 존을 이길 수 없어요. 그냥 난 이대로 관계를 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미스터 임!”

“아, 내가 준 지분 있잖아요? 그거 존에게 주세요. 내가 생각해 보니까 리처드 당신은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거, 전에 내가 말했듯이 방해물이 가로막으면 그걸 걷어차야 하는데 그걸 못하네. 아쉬워. 나라면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릴 텐데. 얼마나 좋아요. 지금 지분도 앞서고 있겠다. 안건 상정해서 투표만 하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다수결로 해도 이겨. 지분으로 싸워도 이겨. 근데 그걸 못하네. 마음이 약한가 본데 어쩔 수 없지요. 이만 갈게요.”

재준이 리처드를 지나치자 리처드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잠깐, 미스터 임. 잠깐만.”

리처드는 자신을 믿고 따라온 파트너들을 돌아보았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존을 대표에서 끌어내리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을.

맞다. 머릿수도 앞서고 지분도 앞서는데.

리처드가 실소했다.

멍청한 새끼.

스스로 늑대란 걸 깨달아 놓고 왜 계속 어설프게 인간 행세를 하고 있어.

이러다 늑대는커녕 한낱 개새끼가 될 판인데.

그럴 수는 없지.

내가 늑대라는 걸 보여주겠어.

리처드는 존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 지난 과거 존과 지나온 세월이 흘러갔다.

그리고 존의 뒤에 있는 벽을 바라봤다.

넘는다.

리처드는 존이 있는 단상으로 걸어갔다.

존에게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한 후.

“존, 새로운 안건을 상정하겠습니다. 모든 파트너에겐 새로운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존의 얼굴에 불안과 흥분, 격정과 분노가 복잡하게 뒤섞였다.

“지금 미스터 임의 말을 실행하려는 건 아니겠지?”

리처드는 존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존은 주먹을 불끈 쥐며 회의실이 울릴 정도로 노성을 외쳤다.

“리처드!”

리처드도 이에 지지 않고 존을 노려봤다.

“이제 그 정도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리처드는 존을 밀쳐내고 마이크를 잡았다.

“전 파트너의 자격으로 새로운 안건을 요청합니다.”

모두 리처드를 쳐다봤다.

흥분에 휩싸인 이들이 있는가 하면 광분으로 노려보는 이들이 있었고 걱정의 눈빛으로 물들어 있는 이들이 있었다.

모두 리처드의 입에 시선이 집중했다.

“존 킨라빈스 루빈스타인 대표의 퇴임을 안건으로 상정합니다.”

넋이 나간 파트너들은 눈앞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장본인에게 누구나 약간의 분노와 약간의 경외감을 품었다.

존이 누구인가.

장장 10년 동안 그랜드월을 이끌며, 유명 헤지펀드 속에서 이벤트 드리븐 하나를 밀고 나가, 지금의 월가의 명성을 유지하게 만든 인물이다.

이벤트 드리븐이란 파산한 기업의 증권에 투자하거나 합병 차익 거래를 주로 하는 펀드 기업 중 하나다.

한국이 외환위기 때 주로 당한 것도 이 기법이었다.

그런 그를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린다?

모두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 중심에 리처드가 있다.

리처드는 자신을 믿는 파트너들을 바라봤다.

눈빛으로 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나에게 힘을 보태.

곧 파트너 중 한 명이 주먹을 쥔 손을 들었다.

그 옆에 있던 파트너도 주먹을 쥐고 손을 들었다.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순식간에 백여 명의 손이 머리 위를 메웠다.

리처드는 승리를 확신했다.

“지랄을 하네.”

어느새 앤드류 옆에 도착한 재준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앤드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스터 임은 뭐 느끼는 것 없습니까?”

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손을 막은 재준이 말했다.

“뭘 느껴요? 서로 죽고 죽이고 있는데. 무슨 헐리우드 영화 찍어요?”

“미스터 임에게 뭔가를 바란 내가 바보지요. 내가 바봅니다.”

“그만 갑시다, 앤드류. 뭐 더 볼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가서 술이나 한잔하죠.”

“끝까지 확인 안 합니까?”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데 쿠키 영상도 없고, 시즌2 나온단 이야기도 없잖아요. 자업자득이지. 그러게 왜 지분 싸움으로 몰고 가냐고. 존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집만 남은 거죠. 한심한 꼰대.”

후.

앤드류는 한숨을 쉬고 리처드를 바라봤다.

존은 이제 끝이다.

이게 유대인의 약속으로 만든 회사이다.

자신들이 한 약속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것이다.

존이 리처드의 지분을 반대했지만 그건 그의 아집에 불과하다.

재준이 발을 빼는 순간 모두가 존의 투자 실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택시회사도,

뱅크오브에이스도.

그밖에 자잘한 건 떠오르지도 않았다.

재준과 앤드류가 회의실 밖으로 나오는데 함성이 들렸다.

와아아아아아!

재준은 심드렁하게 앤드류를 쳐다봤다.

“사람들 나이가 몇인데. 동네 운동회도 아니고 소리는 왜 질러요?”

“미스터 임만 하겠습니까?”

“제가 왜요?”

“소란의 정도로 따지면 최고죠.”

재준은 인정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앤드류.”

“왜요, 보스.”

“태세 전환 빠르네.”

“방금 그랜드월을 봤으니까요.”

“그래서 그랜드월을 나오겠다?”

“월급은 뱅크오브에이스가 더 낫던데요.”

“성공보수 없잖아요.”

“여기서 만들면 되죠.”

“그런가…….”

앤드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 멈췄다.

궁금한 게 생겼다.

“보스, 당신이 원하는 CEO는 어떤 사람입니까?”

“왜요? 그렇게 되려고요?”

“안 잘리려면 노력은 해야죠.”

“사실 타고나야 되는데. 똑똑하고 열정적이며 정직한 사람을 원합니다.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은 많은데 정직한 사람은 별로 없거든요.”

“정직한 것이 제일 중요한 겁니까?”

“그렇죠. 똑똑하고 열정적인데 정직하지 못하면 문제가 수도 없이 생기잖아요.”

“꼭 누구를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걸 그렇게 콕 찍어서 존 머시기라고 말할 순 없죠.”

늘 이렇다니까. 존 머시기라니…….

재준이 앞서가고 앤드류는 그 뒤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따랐다.

***

그랜드월은 리처드를 새로운 대표로 세웠고 리처드는 그랜드월의 상장을 발표했다.

뉴욕 증시는 즉각적인 환영 메시지를 발표했다.

거기다 얼마 뒤에 뱅크오브에이스와 합병이란 이슈로 상장 가격이 20달러에서 40달러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JP스탠리와 버피 해서웨이를 포함한 다수의 은행과 증권사들이 그랜드월의 상장에 참여하여 한 주라도 더 사기를 원했다.

그랜드월 IPO 주관사는 스톡체인으로 지정되었으며 5%의 수수료로 1억 달러 이상을 챙겼다.

주관사 수수료 5%는 너무 많은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스톡체인은 싹 다 무시해버렸다.

심지어.

미스터 임이란 사람이 기자들을 향해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은 그 입 좀 닥치라고 하세요. 남의 돈 신경 쓰지 말고 내가 당신들에게 얼마를 벌어다 주는지나 잘 봐두라고.”

그리고 상장 첫날.

40달러에 시작한 주식이 80달러를 넘어가며 두 배 이상 치솟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L.S.Company 대표실에선 이상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큭큭큭큭큭.

“뭐 해요? 다 던져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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