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90화 (90/477)

제90화 정상에 단 한 명만 올라갈 수 있네(4)

그동안 세뇌 아닌 세뇌에 가깝게 무의식을 지배해온 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멈칫했지만, 말을 이었다.

“그랜드월 포트폴리오 때문이야.”

“그랜드월이 제어할 수 있는 은행을 선택하겠단 말이지?”

“맞아. 그러니 상장에 도움이 안 되는 은행을 선택하고 있는 거야.”

험, 험.

앤드류는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리처드, 자네와 뜻이 같은 파트너는 몇이나 되나?”

“정확히는 모르네. 아마 100명은 넘지 않을까.”

앤드류는 리처드의 말에 피식 웃었다.

100명이면 몰아붙여도 되는데 왜 아직 이 모양이지?

“그대로 밀어붙이면 되겠네.”

“앤드류, 우린 젊어. 아직은 노인들의 입김이 세다고. 뱅크오브에이스를 이끌고 있는 자네의 힘이 필요해. 난 자네의 한마디가 반대편에 있는 파트너들을 끌어올 수 있다고 믿어. 그리고 또 문제가 있긴 한데…….”

리처드는 마지막 말에서 약간 자신감이 떨어졌다.

앤드류가 물었다.

“왜 또 무슨 문제인데?”

“이번에 파트너 회의에서 또 다른 안건이 상정될 거란 소문이 돌고 있어.”

“그게 뭔데?”

“파트너의 다수결이 아닌 파트너의 지분을 바탕으로 안건의 가부를 결정한다는 거야.”

“지분으로?”

파트너의 지분은 총 42%.

당연히 오래된 가문의 지문이 높을 것이고 존의 손을 잡은 사람들은 오래된 가문의 사람들이다.

리처드는 진지한 얼굴이었지만 앤드류는 또다시 피식 웃었다.

“그래서 미스터 임의 지분이 필요한 건가?”

리처드는 미처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할 수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앤드류가 고개를 크게 저었다.

“미스터 임은 파트너가 아니야. 회의에 참석할 수 없어.”

리처드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게 아니라 지분을 잠시 빌릴 수 있을까 해서.”

미친놈.

“하하하, 리처드. 근래 들은 농담 중에 가장 웃겼어. 지분을 돈을 주고 사는 것도 아니고 빌려달라고?”

“알아. 당연히 안 될 거라는 걸. 하지만 이야기는 해줄 수 있잖아. 미스터 임이 너를 꽤 신임하는 것 같은데.”

리처드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앤드류는 가만히 생각해 봤다.

혹시……? 모르는 일이지.

그 임재준이니까.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뱅크오브에이스와 그랜드월의 합병이 그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지가 문제지만.

그래도,

“리처드, 잠시 기다려 보게. 미스터 임의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하자고.”

“뭐? 정말 그렇게 해줄 수 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앤드류의 말에 파트너 여섯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앤드류가 쿡쿡 웃으면서 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근히 기대되는데.

벨이 울리고 재준이 전화를 받았다.

“미스터 임, 급하게 물어볼 일이 생겼습니다.”

하하하하.

앤드류는 재준과 통화하며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리처드와 파트너들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 긍정적인 말이 앤드류를 통해 나올 것을 직감했다.

앤드류가 리처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처드는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앤드류는 모두를 둘러보고 리처드에게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긴 하네. 미스터 임이 자네에게 자신의 지분을 빌려준다는군.”

말을 하는 앤드류로서도 의아한 구석이 있는 결정이었다.

물론 지급각서를 쓰긴 하겠지만 아주 친한 친구에게도 지분을 빌려주지 않는 게 월가의 상식이다.

이건 주식의 의결권을 넘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파트너 회의에서 재준의 의견과 반대되는 안건을 채택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앤드류가 재준의 의견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얼마나 큰 이익을 생각하기에 선뜻 결정을 내린 걸까?

혹시 또 무슨 엉뚱한 짓을 하려는 걸까?

앤드류의 걱정과는 반대로 리처드는 파트너 회의를 소집해서 합병과 상장을 처리할 마음에 한껏 들떴다.

지분 21%면 존의 세력을 저 멀리 따돌리고도 한참을 앞서나갈 수 있다.

그런 리처드를 앤드류는 진정시켜야 했다.

“리처드, 조심하게. 아무리 지분 싸움이라지만 지분 안건이 아직 통과된 건 아니야. 또 존이 어떤 술수를 부릴지 모르고.”

“알아. 단단히 준비할 거야.”

“잠시, 마지막으로 미스터 임이 당부한 말을 들려주겠네. 자, 모여 봐.”

앤드류는 재준이 말한 내용을 파트너들에게 자세히 알려주었다.

***

그랜드월 파트너 회의.

200여 명의 파트너가 거의 대부분 집결했다.

앤드류는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자신들의 의견을 설명하기 위해 고성이 오가고 삿대질도 해가며 난리였다.

난장판, 난장판, 이런 난장판이 없네.

하지만 이게 월가의 방식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 절대자의 강력한 권력은 용납되지 않는 곳이 바로 월가이다.

지난번 연준 회의에서도 보았지만, 어떤 안건이든 누구나 의견을 내놓고 치열하게 의견을 교환해서 결론에 도달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우격다짐이나 고집은 통하지 않는다.

말문이 막히면 물러나야 한다.

한국의 기업 문화를 경험한 앤드류는 이러한 방식이 훨씬 민주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경우가 너무 심한데.

분열.

100년도 더 된 그랜드월이 이렇게 심각하게 분열된 적은 없었는데.

앤드류가 미간을 찡그리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리처드에게 듣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치열할 줄이야.

임재준, 설마 여기까지 생각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재준의 행보를 더듬어 보면 완전히 아니라고 하기에도 석연치 않았다.

뱅크오브에이스를 처리하며 그랜드월의 지분을 획득하고, 리처드를 만나 상장이라는 운을 띄우고, 돈이라는 무게로 파트너의 심리의 추를 무겁게 했다.

그럴 수도 있어.

그럼, 나는 이제 어디에 적을 둬야 할까?

그랜드월이 무너지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짝짝짝짝짝짝짝.

요란한 박수 소리와 함께 존이 회의실 중앙에 등장했다.

“존경하는 파트너 여러분. 오늘은 주요 안건을 다루기 위해 모두 모였습니다. 하나의 안건을 상정하기 전에 그에 대한 찬반 의견을 교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순 고요해진 정적.

“먼저 그랜드월의 상장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그레고리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표정만으로 벌써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랜드월은 유대인의 피와 돈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절대 다른 인종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상장을 한다면 주주들의 입김에 의해 우리의 전통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다른 파트너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지분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전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파트너가 자신의 지분을 시장에 팔지 않는 한 말입니다.”

“어떻게 팔지 않는다고 자신하는가. 사람은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이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돈이 필요한 경우도 있네.”

“그럴 때는 그랜드월에서 매입을 하면 될 일 아닙니까? 지금 논의할 일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를 대비해 예비비를 적립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레고리는 그럴듯하다고 생각이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문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또한 상장을 하고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우리 유대인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있을 수 있네. 세계화가 그 좋은 예이지. 우리도 다른 나라에 진출할 것이고, 당연히 언어도 문제가 될 거야. 그 나라의 인재를 써야 할 수도 있어. 그 인재가 능력을 발휘해 파트너에 준하는 실적을 올렸다면 그를 파트너로 올려야 마땅한데, 그땐 어떻게 할 텐가? 유대인이 아닌데 파트너로 삼을 텐가? 너는 그를 파트너라고 부를 수 있나?”

“물론 지금은 생각도 하기 싫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걸 평생 지속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우리의 울타리를 무너뜨려야 할 날이 올 겁니다. 아니,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을 미뤄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뭐라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그레고리의 억양이 높아지며 회의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때, 존이 나서서 그레고리를 말렸다.

“그레고리, 억지는 안 됩니다.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십시오.”

흥.

그레고리가 콧김을 풀풀 내며 자리에 앉았다.

좌중을 보니 더는 의견이 없는 듯하여 존이 말했다.

“상장에 대해 찬반은 다수결로 결정짓겠습니다. 찬성하는 파트너는 손을 들어 주십시오.”

파트너들은 예상 밖의 일에 웅성거렸다.

리처드에게도 존의 말은 당혹스러웠다.

찬반?

분명 오늘 세 가지 안건 중 지분에 대한 안건이 있었는데.

왜 다수결을 진행하는 거지?

설마 존은 다수결의 우위를 자신하는 건가?

그래서 지분에 대한 안건을 묵살했다?

존도 상장에 대한 찬성의 의미로 손을 들었다. 압도적인 차이로 그랜드월 상장은 통과가 되었다.

“다음은 합병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까 합니다. 우선 모엘라스 파트너스와 합병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모엘라스 파트너스?

웅성웅성.

파트너들 절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까지 10위권 밖의 은행을 대상으로 삼았는데 갑자기 30위권 밖의 은행인 모엘라스 파트너스 이름이 거론되었다.

리처드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모엘라스 파트너스라니요? 저는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입니다. 분명 10위권 안에 있는 웰스 시큐리나 제니퍼 그룹, 라지드, 에버엔딩 파트너스 아니었습니까?”

존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파트너들과 충분한 의견을 교환하고 정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 들어 봅니다.”

“그럴 리가. 그럼, 모엘라스 파트너스 합병 건에 대해 알고 계셨던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파트너의 절반이 손을 들었다.

전부 존과 손을 잡은 파트너들이었다.

리처드는 존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우릴 배제하고 저런 은행을 선택했구나.

이렇게 당하다니.

“너무 일방적인 처사입니다. 파트너의 절반은 들어 보지 못한 결정입니다. 그리고 만약 모엘라스 파트너스가 선택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은행을 올리실 겁니까?”

“당연한 걸 물어보는군요.”

존은 사람 좋은 미소로 허허 웃으며 말을 했다.

리처드는 이게 왜 당연한지 존의 말의 여운에 허탈하기까지 했다.

아니, 당연하지 않아.

2차, 3차에도 계속 30위권 밖의 은행들을 들이민다면 지루한 힘겨루기가 될 수밖에 없어.

리처드는 자신의 이득에만 몰두하는 존을 향해 고개를 뻣뻣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지금 양쪽으로 의견이 나뉜 것 같습니다. 저는 뱅크오브에이스과 합병한 후 상장해야 상장에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민주적이니까요. 그럼 또 다른 은행을 추천하실 분 계십니까?”

모두 존이 왜 저러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럼, 은행은 모엘라스 파트너스와 뱅크오브에이스를 두고 양자택일을 하면 되겠군요. 정말 또 다른 은행을 추천하실 파트너는 없는 겁니까?”

다시 묻는 존의 말에 리처드는 불안함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존은 파트너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합병 은행을 선택하기에 앞서 안건 하나를 먼저 처리하겠습니다. 이번 은행 합병 안건은 신중히 결정할 문제이므로 다수결이 아닌 주총과 같이 지분으로 정하자는 안건입니다.”

리처드는 자신의 파트너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안건을 왜 지금 상정하는 겁니까?

-그런 법이 어딨습니까?

-애초에 이 안건은 제일 처음 해야 했던 거 아닙니까?

파트너들이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존이 자신의 파트너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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