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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89화 (89/477)

제89화 정상에 단 한 명만 올라갈 수 있네(3)

존은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당황한 리처드를 보았다.

“그런 그가 자네와 바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그랜드월 상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처드, 그럴 리가 없지 않나. 바는 그가 만들어낸 세트장이고 자네는 그저 조연으로 출연시킨 것 같은데, 어떤가?”

“하지만 지금 존도 상장을 원하고 있잖아요. 미스터 임과 같은 목표 아닙니까?”

후후.

존은 가볍게 웃고는 담담하게 리처드에게 대답했다.

“리처드, 내 말 잘 들어 봐. 음. 목표가 같다는 것은 정상에 단 한 명만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나와 미스터 임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거야.”

리처드는 의문이 들어 두 눈을 찡그렸다.

한 명은 죽는다고?

왜 그렇지?

-잘 설득해 보세요. 말이 안 통하면 저에게 부탁하고요.

재준의 말을 순간 떠올랐다.

말이 안 통하면…….

설마 그 부탁이라는 게 존을 죽이는 거였다고?

아니야, 그건 너무 바보 같은 짓이야.

공생을 놔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바보는 없어.

리처드는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어째서 한 명이 죽어야 합니까? 존은 그대로 그랜드월의 대표로 남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음.

존은 긴 침음성을 내고 입을 떼었다.

“그건 우리의 정체성 때문이야.”

“유대인이라 그런 겁니까?”

“그건 아니고. 그랜드월의 정체성이라는 게 옳겠어.”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리처드, 만약 우리가 일반 기업처럼 사원으로 입사한다면 승진하고 승진해서 파트너의 자리에 올라올 수 있을까?”

“아니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게 왜 그럴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랜드월 파트너는 자식에게 계승된다.

그리고 그렇게 물려주는 이유는,

“포트폴리오 때문 아닙니까. 파트너 혈통에게 대물림되는 그랜드월의 포트폴리오요.”

“그렇지. 잘 알고 있어. 우리의 무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포트폴리오야. 이게 우리에게 돈을 벌어주고 누구나 탐내는 것이지. 그랜드월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 줬고, 그래서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파트너란 지위는 가문의 적자에게만 계승되는 우리의 방식.”

“알고 있습니다.”

어렴풋이 감이 왔다.

“그런데, 그 상장이란 걸 하면 말이야, 수익을 낼 때는 괜찮아. 하지만 손실이 났을 때는 주주들이 손실의 근거를 요구할 거란 말이야. 이건 당연한 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언젠가는 포트폴리오를 공개해야 하는 날이 올 거란 말이지.”

리처드도 존의 말에 십분 공감은 한다.

그러나,

“그럼, 왜 상장을 반대하지 않습니까?”

후후.

존이 잠시 혼자 웃고는 말했다.

“그건 또 그래. 시대가 변하고 있어. 막대한 자금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지.”

“금융개혁법안 말씀이시군요.”

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리처드, 근데 왜 갑자기 정부가 금융개혁안을 들먹이는 건 줄 아나?”

“세계화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미국이 세계 금융을 지배하려면 먼저 미국 은행의 덩치를 거대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을 백악관도 알고 있는 거야. 그러니 우리도 덩치를 키우려면 상장을 안 할 수 없지. 하지만, 포토폴리오도 지켜야 해. 이게 내가 상장을 늦추고 고민한 이유였네.”

리처드는 재준이 했던 말을 가만히 생각해 봤다.

포트폴리오…….

미스터 임은 포트폴리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일부러 속을 숨긴 건가?

“혹시 미스터 임도 저희 포트폴리오를 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아직 모르지. 앤드류의 말에 의하면 미스터 임은 결코 평범한 생각으로 기업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미스터 임이 상장을 원한다는 건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야.”

“어째서죠?”

“당연하지 않은가. 돈 때문이라면 그랜드월보다 괜찮은 은행들이 널려있는데. 굳이 우리같이 폐쇄적인 유대인 집단을 노리지는 않을 거야. 그렇다면 역시…….”

“포트폴리오군요.”

후후.

존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

텍사스 스톡체인 본사.

재준은 오픈하고 한 달이 지난 인덱스 펀드 부서와 적립식 펀드 부서를 강호석과 둘러보고 있었다.

강호석은 한 달 동안의 적립식 펀드 실적을 보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준에게 말을 걸었다.

“임 대표. 난 누가 주식을 적금처럼 들려고 할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난 아직도 반신반의인데.”

“왜요? 좋잖아요. 매달 조금씩 자신의 자산을 늘리는 건데. 난 좋아요.”

평범한 시절이라면 개인이 주식투자를 해서 수익을 올리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IT 버블이 한창 들끓고 있을 때였다.

적금을 깨고 주식에 몰빵 할 시기였다.

“적립식 펀드라는 게 주가는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매달 높은 가격의 주식을 사는 거잖아. 저점 매수가 아니고 고점 매수라고.”

“에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죠. 물론 한 방에 왕창 사면 수익이야 늘어나겠지만 훅하고 떨어지면 어떡해요? 그럼 폭망 하는 거예요. 이 좋은 황금기에도 왜 돈을 잃는 개인이 있을까요? 그건 다 조심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조심, 조심, 추이를 확인하고 사야 좀 덜 먹어도 나중에 따는 거예요.”

강호석은 이해는 가는데 마음이 안 따랐다.

자신의 실력을 일반인에게 대입하는 오류를 범하는 중이었다.

강호석은 다시 자신이 아는 지식을 꺼냈다.

“주가는 어느 시점에 무너지는 거야. 언제까지 올라가진 않는다고.”

“알아요. 적정선에 도달하면 펀드를 청산해야죠. 끝없이 계속 매수할 순 없어요. 제가 작성한 청산일을 잘 보세요.”

강호석은 들고 있는 서류를 본 뒤 다시 재준을 바라보았다.

“거기 보면 2000년 1월에 청산한다고 나와 있잖아요. 저희 펀드는 그때 전부 청산합니다.”

“그러니까 여기가 고점이다?”

“네, 맞아요. 거기가 고점이에요. 그 이후 추락.”

“허. 정말.”

진짜, 대표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청산 후에는?”

“1년 후 다시 시작합니다.”

“1년은 왜 쉬는데?”

“음……. 애 좀 타라고요.”

“애?”

“네, 우리 펀드가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이면 다른 증권사에서 비슷한 걸 만들어 뛰어들 거예요. 그러다 폭삭 망하면? 전부 우리 증권사로 몰려올 겁니다.”

2002년까지 줄기차게 하락하니까,

그때 막 다시 주워 담아야지.

Cisko와 웰컴, Amaze, Appea, 마이크로SF 주가가 거의 –90%인데.

그냥 노나는 거지.

강호석은 재준을 빤히 쳐다봤다.

“그게 그러니까……. 아니다.”

“네? 또 뭐요?”

“아니야.”

강호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을 해 봐야 뭐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싸울 수도 없고.

하지만 이번에도 맞으면 내가 미친놈 한다.

그래, 차라리 내가 미친놈이 되는 게 속이 편해.

강호석은 머쓱한 나머지 재준에게 뻔한 걸 물어봤다.

“매달 적립식 펀드 실적을 대대적으로 광고해야겠지?”

“그건 당연하지요. 아주 크게 광고하세요.”

그래, 그래.

강호석은 자신이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적 좋은 건 좋은 거고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지금 종목이 IT 기업으로 너무 편중되어있는 것 같은데. 종목을 좀 다양하게 가져가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요. 절대 네버. 이번 펀드는 IT에 집중하세요.”

재준이 펄쩍 뛰며 다그쳤다.

“그래도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아도 돼요. 깨지든 말든 전혀 상관없어요.”

강호석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재준을 봤다.

재준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라리며 쳐다봤다.

절대 안 돼.

먹을 때 왕창 먹어야 한다고.

장장 400%나 뛴단 말이야.

한동안 두 눈이 마주친 끝에 강호석이 꼬리를 내렸다.

“일단 알았어. 깨지든 말든. 난 모르는 일이야.”

“절 믿으십시오.”

하하하.

강호석은 재준의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이 걱정되었다.

“한국에는 적립식 펀드 도입 안 해?”

“해야죠. 일단 미국부터 해 보고요.”

“그럼, 준비는 해 놓을게.”

진짜 적립식 펀드가 MMF보다 수익이 좋을까?

애매하긴 해도 적립식 펀드가 미국에 없었던 건 아니다.

MMF(머니마켓펀드)라고 입출금이 자유로운 펀드가 있었는데 여기에 적금처럼 돈을 부으면 비슷하게 적립식 펀드가 되는 것이다.

아, 물론 MMF는 주식에 투자하진 않는다.

MMF(머니마켓펀드).

펀드에 들어온 돈을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초단기금융상품이다.

그냥 간단하게 일반 은행 통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입출금이 자유롭고 이자 대신 수익률을 주니까.

단, 은행은 고정 이자를 주지만 MMF는 수익률을 준다.

수익률이니까 일정하지 않은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다만 MMF는 정부가 발행하는 단기 증권이나 기업어음(CP), 양도성예금증서(CD) 같은 데 투자하니까 망할 염려도 없고 수익률도 이자보다 많아 쏠쏠하다.

지금이야 주식이 미친놈 날뛰듯이 올라가니까 사람들이 주식으로 몰렸지, 그전에는 미국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다들 MMF를 선호했다.

그럼 뭐해.

지금 받는 MMF 수익률이 10%도 안 되는데.

그런 와중에 앞집, 뒷집, 옆집에서 주식에 투자하여 떼돈을 벌었다고 떠들어 대니 배가 아플 수밖에.

한 달 후 스톡체인 적립식 펀드 수익률이 발표되었다.

[스톡체인 적립식 펀드 수익률 100% 넘어]

사람들은 MMF를 해약하고 스톡체인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다.

스톡체인에 돈 쓸어 넣어.

나스닥이 1999년까지 경사로를 달려왔다면 1999년 이후 1년간 암벽 등반하듯 올라갈 것이다.

***

뱅크오브에이스 행장실.

리처드와 여섯 명의 파트너가 앤드류를 찾아왔다.

모두 얼굴에 ‘나 흥분했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모두 소파에 앉은 채로 책상에 앉아 서류에 사인하는 앤드류를 기다렸다.

앤드류는 평소와 다름없이 여유롭게 서류를 정리했다.

답답한 마음에 파트너들이 한마디씩 성토했다.

-앤드류, 급하다니까요.

-지금 파트너 회의를 열어서 존을 몰아내야 합니다.

-이러다가 우리 상장해 봤자 주당 10달러도 못 건져요.

-아무도 주관사로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고요.

저마다 불평불만을 터뜨리자 앤드류가 고개를 들었다.

탁.

팬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일어나 소파로 와서 앉으며 입을 뗐다.

“그러니까 그랜드월과 뱅크오브에이스가 합병을 해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당연하죠.

-지금 그랜드월이 어떤지 아십니까?

-당장 밀어붙여야 합니다.

“잠깐. 내가 이야기할게요.”

리처드가 손을 내밀어 아우성치는 파트너들을 저지했다.

모두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닫았다.

“앤드류, 존이 10위권 밖의 상업은행과 합병을 추진하려 해. 하지만 우린 미스터 임의 말대로 뱅크오브에이스와 합병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야 주당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고.”

앤드류는 입꼬리를 작게 올렸다.

“뱅크오브에이스와 합병 후 상장을 하자 그 말이지?”

“그렇다니까.”

“존은 왜 다른 은행을 고집하는 건데?”

“그건…….”

리처드는 자신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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