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88화 (88/477)

제88화 정상에 단 한 명만 올라갈 수 있네(2)

재준은 빙글 웃으며 리처드를 봤다.

“근데, 리처드. 그랜드월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우린 아직…….”

“리처드는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아직 고민을 더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간단하게, 먹히는 쪽입니까, 아니면 먹는 쪽입니까?”

왜 서로 손을 잡는 합병은 생각하지 않을까?

“미스터 임……. 듣던 대로 꽤 공격적이군요.”

“살기 위해선 빠른 결정과 과감한 실행만이 필요하니까요.”

“글쎄요. 여러 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재준은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간단한 일이에요. 먹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없으면 먹히는 겁니다. 여기서 실력은 롱숏이나 메크로, 국제 주식 같은 스타일 박스가 아니라 스마트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는데요.”

“왜 이런 말을 나한테 하는 겁니까?”

“내가 그랜드월 지분을 21%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랜드월을 먹어서 난 내 몫을 최대한 불릴 생각입니다. 그래서 파트너들의 생각이 나한테는 중요하고요.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리처드는 앤드류를 쳐다봤다.

“앤드류, 당신은 알고 있었나?”

“그럴 리가. 하지만 일리 있는 말이지. 우리도 대비는 해야 해.”

재준이 재미난 듯 위스키 한 모금을 입에 굴리고 넘겼다.

“리처드, 그랜드월이 본격적으로 포식자가 되는 방법이 있는데 다들 빙빙 돌아가려고 하니까 생각이 많아진 거예요.”

“포식자가 되는 방법이 뭡니까?”

리처드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재준을 쳐다봤다.

“그랜드월을 뉴욕 증시에 상장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아주 간단한 일인데.”

“IPO를 하란 말입니까?”

“네, 그게 뭐 어려운 일입니까?”

“그랜드월은 폐쇄적인 운영…….”

말을 꺼냈지만, 리처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면 가장 먼저 죽는 건 그랜드월이다.

모두가 합병으로 덩치를 키울 때 그랜드월은 폐쇄성을 무기로 지금처럼 꽁꽁 문을 걸어 잠글 것이다.

그랜드월이 먹지도 먹히지도 않은 독자 기업으로 살아남는다면…….

중견 은행으로 전락할 것이 뻔해.

그럼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은…….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미스터 임. 그렇다고 IPO를 진행하면 저희는 충분한 자금을 모금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겠지요. 파트너들이 지분을 쥐고 놓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투자 방식이 다 공개되면?”

그랜드월 같은 헤지펀드 집합체인 투자은행이 IPO(기업공개)를 한다면 지금까지 비밀에 부쳐왔던 모든 투자 활동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포트폴리오가 생명인 그랜드월로서는 마지막 패를 보여주고 배팅을 하는 것과 같다.

돈도 없고 패도 다 깠으니 남은 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돈을 번 것에 대한 무차별 조롱이겠지.

재준은 리처드를 향해 잔을 들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요.”

“그랜드월 총 지분에서 파트너의 지분이 42%, 회사 지분이 12%, 내가 가진 지분이 21%, 외부 투자자의 지분이 25%. 감이 오십니까?”

“50%의 지분을 확보해서 무얼 하고 싶은 겁니까?”

“뱅크오브에이스와 합병 후 상장하는 겁니다.”

“뱅크오브에이스와 합병?”

리처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충분히 승산이 있는 이야기다.

아니, 그게 정답일지 모른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합병 후 상장하면 주당 20달러.”

그랜드월의 주식은 총 2억 8천만 주.

주당 20달러면 56억 달러.

회사의 지분 12%를 시장에 내놓으면 6억 7천만 달러.

리처드는 앤드류를 쳐다봤다.

앤드류는 아예 두 눈을 꼭 감고 생각을 하는 듯했다.

“상장 후 회사에 들어오는 돈이 너무 적습니다. 그 돈으론 은행 하나 인수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니, 아니. 아닙니다. 회사 말고 리차드 당신만 생각하세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리처드 당신은 지분 얼마를 가지고 있습니까?”

“0.5%입니다.”

“2천 8백만 달러군요.”

한화로 330억 원.

리처드는 믿을 수 없는 액수에 마른 입술을 훔쳤다.

“개인이 만지기에는 좀 큰 금액이지요?”

“…….”

“근데 왜 지금까지 상장을 안 했을까요?”

리처드의 시선이 재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그랜드월의 정체성입니다.”

“맞아요, 그랜드월의 정체성 때문에 2,800만 달러가 당신 손에 잡히지 않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리처드도 상장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언젠간 아버지에게도 물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랜드월이 상장하는 순간 주주들이 주인이 되며 유대인으로만 이루어진 정체성이 깨어져서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었다.

“대부분 상장에 반대할 겁니다.”

“아니, 아니, 아니라니까. 왜 다들 자신을 버리고 전체를 생각하려 할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봐서 알잖아요. 뱅크오브에이스가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겨우 1억 달러를 쓰기 싫어서 오웬과 등을 돌린 거 아닙니까? 자신에게 물어봐야죠.”

후후.

리처드는 미처 말을 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넘겼다.

지금 입으론 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머릿속에선 찬성의 박수가 우렁차게 울렸다.

“상장하면 정말 주당 20달러가 정확합니까?”

“스톡체인 IPO팀에서 과거 기록을 가지고 작성한 거지요. 하지만 제 생각엔 더 받아도 된다고 생각이 드는데. 어때요?”

“제가 파트너들을 설득해야겠군요.”

“설득……. 뭐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지금 한 말을 그대로 전하면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하지만 존은 반대할 겁니다.”

“이거 봐, 이거 봐, 또. 그러네. 지금 자신이 결정할 일을 누군가 방해한다고 생각해 봐요. 장애물은 치우라고 있는 겁니다.”

“그럼 존을?”

“잘 설득해 보세요. 말이 안 통하면 저에게 부탁하고요.”

“알겠습니다. 일단 파트너 설득이 마무리되면 파트너 회의에서 IPO를 단행한다. 맞습니까?”

“맞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니까 이 얼마나 간단하고 좋아요.”

리차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2,800만 달러.

돈만 생각하자.

재준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리차드는 파트너들을 한 명씩 은밀하게 만나 상장하게 되면 자신이 벌어들일 돈에 대해 이야기했다.

단, 합병에 관한 이야기는 빼고 상장에 관한 이야기만.

단 0.1%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파트너도 560만 달러.

한화로 67억 원이다.

수백만 달러가 생기는데 부정적일 수 있을까.

하지만 모두 찬성하는 건 아니었고 심지어 존을 찾아간 이가 있었다.

돈에 대한 미련이 없는 은퇴를 앞둔 고령의 그레고리.

“어서 와요. 그레고리. 무슨 일입니까?”

“잠시 이야기 좀 하세나.”

파트너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생각이 깊은 그레고리는 존에게 리처드가 전한 이야기를 상세히 전해줬다.

“음. 그렇군요. 상장이라…….”

“존, 상장은 안 돼. 그랜드월을 창업한 아브라함 호세의 당부를 잊지 말게.”

“알겠어요. 그레고리.”

“상장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돼.”

존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레고리 손을 잡았다.

“걱정 마시고 돌아가세요.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존, 자네만 믿네.”

“네.”

탕.

그레고리가 나가고 사무실 문이 닫히자 존은 수화기를 들었다.

“리처드, 나 좀 잠깐 볼까?”

잠시 후 리처드가 존의 사무실을 찾아 왔다.

“존, 무슨 일입니까?”

“잠시 앉아 보게.”

리처드는 존이 상석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자리에 앉았다.

존은 70대지만 리처드는 30대.

리처드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파트너의 자리를 승계한 케이스였다.

현재 그랜드월의 파트너들은 절반은 30대이고 절반은 60~70대로 구성되었다.

세대 차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존은 리처드를 자식을 바라보는 눈길을 보냈다.

“들리는 소문이 있어서 내가 직접 물어보려고 불렀네.”

“상장에 관한 것 말입니까?”

뜸 들이지 않고 리처드가 먼저 치고 나왔다.

“맞아. 자네가 시작한 이야기라던데?”

“맞습니다. 우리도 상장할 때가 되어서요. 아니, 지금 상장을 놓치면 금융개혁법안이 발효될 때는 늦으니까요.”

존은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나도 상장을 생각하고 있었네. 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었지.”

리처드는 존의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나. 설마 내가 반대할 거라 생각한 건가?”

“네, 그랜드월 원칙을 고수하실 줄 알았습니다.”

존은 리처드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잖은가. 시류에 맞서는 원칙은 멸종을 불러올 뿐이야. 살아남으려면 깨뜨려야 할 때도 있는 거지. 근데 상장을 해도 들어오는 돈은 그리 많지가 않다는 게 문제일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뭔가?”

“합병 후 상장하는 겁니다.”

“합병 후 상장…….”

존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방법인데. 괜찮은 방법이야.

일단 그랜드월과 비슷한 크기의 투자은행과 연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단독 상장보다는 다른 은행과 합병할 때야말로 그 시너지로 그랜드월의 가치가 몇 배로 뛸 수 있다.

그렇다면 합병이 적당한 기업은,

“웰스 시큐리나 제니퍼 그룹, 라지드, 에버엔딩 파트너스 중에 하나와 합병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떤가?”

리처드는 말없이 인상을 쓰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10위권 밖에 있는 투자은행이네.

투마로우뱅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한참 아래야.

저래서는 주당 20달러를 받을 수 없어.

“왜 뱅크오브에이스와 합병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존은 리처드를 ‘당연한 걸 왜 묻지?’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잡은 고기에 왜 낚싯대를 드리우나? 새로운 고기를 잡아야지. 이미 뱅크오브에이스는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지 않나?”

리처드는 존의 말뜻은 이해는 했지만,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어차피 내 은행인데. 내가 그렇게 못 하겠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그랜드월 지분 따위야 돌려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리처드의 귓가에 재준의 음성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미스터 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요.”

“미스터 임을 만났나?”

“네, 바에서 우연히 만나 술 한잔 같이했습니다.”

“우연히 만나서 그랜드월 상장 이야기를 했다?”

“네, 미스터 임은 합병 후 상장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존은 리처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리처드, 미스터 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투마로우뱅크, 스톡체인, 뱅크오브에이스에 관한 거 전부 알고 있습니다.”

존은 잠시 대답 대신에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1억 달러를 손해 본 거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그때 담당자가 앤드류 아닙니까?”

“우리에게 손해를 입힌 상대가 미스터 임인 건 알고 있나?”

네?

전혀 생각 못 한 일이다.

근데 왜 앤드류와 친하게 보인 것일까?

아니 앤드류는 미스터 임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것 같던데.

리처드가 놀란 듯 미간이 찌그러졌다.

존은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일개 증권사 사원의 신분으로 두 개의 그룹을 해체하고 정부와 정면으로 대결을 펼쳐서 이긴 자가 그 미스터 임이네.”

일개 사원의 신분으로?

그룹 두 개를 해체하고 정부와 싸웠다고?

그랜드월 파트너도 하기 힘든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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