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86화 (86/477)

제86화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죽어(5)

은행장들이 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도 화가 나긴 할 거야.

그동안 고생은 그랜드월이 다 했으니까.

존은 윌리엄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오늘 어떻게든 회의를 무산시켜야 한다.

내가 직접 미스터 임을 만나서 확인해야 해.

윌리엄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는 끄덕였다.

하지만 시간이 없네. 존.

“그랜드월은 아직 20억 달러가 더 필요한 상황 아닙니까?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월가 금융시스템이 무너질 겁니다. 뱅크오브에이스가 무너지면 다른 예탁자와 투자자들이 다른 은행으로 몰려간단 말입니다.”

은행장들은 이번엔 윌리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일리가 있지.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가 사는 거야.

은행장들은 월리엄과 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윌리엄은 단호하게 밀고 나갔다.

“모두 1억 달러씩 투자합시다.”

월리엄의 제안에 존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뱅크오브에이스에 대한 지분이 다 다른데 왜 똑같이 1억 달러씩 내야 합니까?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은행 장부를 점검한 후 다시 모였으면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은행 장부를 일일이 따져서 조사할 시간이 어딨습니까? 누가 더 내고 누가 덜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은 월가를 안정시킨 후 조종해서 주고받으면 될 것 아닙니까?”

“나중에 주고받다니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일이 다 끝났는데 지난번에 내가 더 냈으니 어디 가서 받을까요? 하면 저기 가서 받으세요, 할 겁니까? 아예 처음부터 정확하게 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없다고 했잖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무리합시다. 일주일 후에 그랜드월이 해결책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랜드월이 해결책을?

은행장들은 그랜드월 쪽으로 기울었다.

1억 달러가 적은 돈도 아니고 그랜드월이 전부 책임진다면 자신들은 발을 빼도 되지 않을까.

윌리엄과 존이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설전을 이어가던 그때.

“내가 뱅크오브에이스를 인수하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닙니까?”

윌리엄과 은행장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앤드류의 동공이 커졌다.

미스터 임?

그렇지, 네가 안 올 리가 없지.

존이 앤드류를 쳐다보자 앤드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임재준입니다.

“누구십니까?”

윌리엄은 회의를 방해한 것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투마로우뱅크와 스톡체인을 소유하고 있는 L.S.Company 대표 임재준입니다.”

투마로우뱅크를 언급했을 땐 모두 갸웃거렸지만 스톡체인이란 말에 ‘오’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연말 추정치 이익이 6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온라인 증권 1위 기업 스톡체인의 주인이라니.

재준이 윌리엄을 향해 걸어오며 은행장들에게 팔을 벌렸다.

“여러분, 지금 월가가 금융위기에 처했는데 거기에 또 고통을 더해서야 되겠습니까? 투마로우뱅크가 뱅크오브에이스와 합병하면 다 끝나는 일입니다.”

“정말 합병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럼요. 그리고 투마오루뱅크의 규모가 작아서 과연 운영이 될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해서 뱅크오브에이스의 운영은 그랜드월에게 맡길 것입니다. 원하는 수수료를 말씀해 보세요.”

뭐라고?

윌리엄은 존을 쳐다봤다.

존, 이것 때문에 시간을 끌었나?

존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게 물들었다.

진짜구나.

잘하면 돈을 안 들이고 우리가 뱅크오브에이스를 손에 넣는다.

수수료가 문제가 아니다.

은행이 가지고 있는 여신을 이용할 수 있다.

윌리엄이 긴장한 듯 손을 꽉 쥐고 재준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내심 누군가 나서서 뱅크오브에이스를 합병했으면 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은행들이 어려운 지금, 1억 달러는 큰 짐이 되고 자칫 제2의 뱅크오브에이스가 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

“제안은 괜찮군요. 그렇게만 되면 모두의 걱정을 덜어주긴 할 겁니다. 하지만…….”

“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미국 은행을 외국인 손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한국이라면 더욱더.”

재준이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한국이 문제가 된다…….”

재준이 그에 대해 대답하려 할 때,

존이 나섰다.

“행장님. 방금 그랜드월이 운영을 한다고 했던 말을 못 들으신 겁니까? 우리 중 사우디에서 투자받지 않은 은행이 어디 있습니까? 사우디는 되고 한국은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사우디는 투자이지만 이번엔 투자가 아니라 뱅크오브에이스의 지분을 완전히 넘기는 겁니다.”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미국 땅에 있으면 미국 은행입니다. 지분이 무슨 상관입니까? 설마 미스터 임이 뱅크오브에이스를 한국으로 옮겨가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미스터 임, 그럴 생각이 있습니까?”

존이 재준에게 화살을 돌렸다.

재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윌리엄을 바라봤다.

“행장님의 걱정은 따로 있는 것 같군요. 혹시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어서 내가 분풀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래서 뱅크오브에이스를 한국으로 옮긴다? 그건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돈의 메카는 여기 월가인데 제가 굳이 한국으로 뱅크오브에이스를 옮길 이유가 있을까요? 그건 너무 바보 같은 짓인데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주변의 은행장들은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재준에게 달려가 포옹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시기에 40억 달러를 선뜻 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다시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는 은행에.

1억도 아니고 40억을.

이때,

“전 반대합니다.”

헐레벌떡 회의실로 오웬이 뛰어 들어왔다.

아마 은행장 중 누군가가 연락을 취한 듯했다.

“내 은행을 내 허락도 없이 팔다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재준이 아주 싫어하는 사람을 보듯 인상을 찡그리고 오웬에게 다가섰다.

“가만, 가만. 뱅크오브에이스 대표님. 내 은행이라뇨? 언제부터 미스터 오웬이 뱅크오브에이스의 주인이 된 거죠? 난 아직 주주들이 당신에게 의결권을 위임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건…….”

“하긴 오랫동안 CEO로 앉아 있었으니 내가 행장인지 주인인지 헷갈릴 수도 있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당신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아직은 내가 행장이니까.”

“행장, 행장. 말 잘했습니다. 행장이 가장 중요시하는 일은 주주들의 이익을 늘려주는 일입니다. 맞습니까?”

“그렇소.”

“그럼, 지금 오웬 당신이 한 일을 보세요. 고객들의 돈으로 여기저기 투자를 남발해서 투자자와 주주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 보란 말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행장이란 직위를 남용해서 주주들에게 피해를 줬어요. 지금 이 자리에 나와 허락을 운운할 때가 아니라고요. 아시겠습니까?”

재준은 다른 은행장들을 향해 돌아섰다.

“은행장님들, 뱅크오브에이스가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저에게 조언 좀 해주십시오. 그럼 제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고 당장 모든 제안을 철회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자, 말씀해 주십시오.”

그럴 리가.

잘못은 둘째치고 제안을 철회하겠다는 말 앞에서 누구도 입을 뻥끗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웬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좋아요. 그럼 뱅크오브에이스의 정확한 가치를 환산해서 팔겠습니다.”

“정확한 가치요?”

재준은 한심하다는 빙글 웃으며 오웬을 바라봤다.

“오웬, 당신 정말 은행장 맞아요? 지금 이 상황에 무슨 정확한 가치를 논하고 있습니까? 아니, 기업이 무너지는데 어떤 미친놈이 기업의 가치를 산정하고 있어요? 지금 뱅크오브에이스의 가치는 당장 돈을 내주어야 할 예금주들의 돈 40억 달러입니다. 그것도 없으면서 무슨 가치를 논합니까? 돈이 없는 은행이 은행입니까?”

“뭐…….”

오웬은 턱을 덜덜 떨면서 재준을 바라봤다.

“뱅크오브에이스는 지금 부도 직전이라고, 부도. 부도 위기에 처한 당신은 은행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나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고맙다고 비는 게 진정한 은행장의 모습이에요. 왜? 당신은 죽어도 직원들은 죽으면 안 되니까. 그게 오너의 진정한 모습 아닙니까?”

흠. 흠.

주변의 은행장들이 모두 오웬에게 고개를 돌렸다.

재준의 말 몇 마디에 오웬은 직원 승계에 책임을 회피한 무능한 행장이 되었다.

윌리엄이 나섰다.

“오웬, 당신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뱅크오브에이스의 구제 금융을 논하는 자리에 당사자는 배제하는 게 원칙인 거 모르나요? 당장 나가세요.”

오웬이 부들부들 떨면서도 부러 으르렁거리며 버텼다.

“여기 있는 은행장들이 반대할 거야. 여러분, 내가 진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은행장들은 오웬의 시선을 피해서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준은 이해한다는 듯 은행장들을 바라봤다.

“이건 어떻습니까. 각 은행에서 보유 중인 뱅크오브에이스의 주식과 스톡체인의 주식을 시세에 맞게 교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은행장들이 모두 수군거렸다.

당연하지.

스톡체인은 1년도 안 돼서 온라인 증권시장을 장악했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질수록 온라인으로 증권 매매를 하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 잠재력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주식을 교환하면 앞으로 스톡체인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에 반해 뱅크오브에이스의 주식은 떨어지는 낙엽과 같았다.

설사 이번 금융위기에서 살아난다고 해도 예전의 영광을 찾을 때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가서 스톡체인 주식을 팔고 뱅크오브에이스의 주식을 사도 늦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게 훨씬 이득이다.

“난 교환할 의사가 있습니다.”

JP스탠리가 먼저 재준에게 호의를 보였다.

“감사합니다. JP스탠리.”

재준이 고개를 까닥이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저도 교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버피 해서웨이.”

흠. 흠.

그럼 우리 은행도…….

하나둘씩 늘어가는 은행장들을 보며 오웬은 기가 막혔다.

이 나쁜 사람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던 작자들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자신을 버릴 수 있을까.

오웬이 존을 보며 다가가자 존은 뒷걸음질 치며 멀어졌다.

존, 너까지.

오웬의 입에서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큭큭.

오웬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큭큭.

“이렇게 내가 무너지지는 않아.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아직 나에겐 러시아 채권이 있어. 자그마치 80억 달러야. 90일만 지나면 분명 살아난다. 난 이대로 버티겠어. 어디 할 테면 해 봐.”

저 사람 뭐라는 거야?

“미스터 오웬.”

“…….”

“당신이 말한 러시아 채권, 80억 달러 상당의 러시아 채권. 내가 가지고 있어요. 당신이 팔았잖아요. 기억 못 하는 겁니까? 이런, 벌써 치매인가? 은행을 운영하기에는 많이 힘들 것 같네요.”

“뭐?”

순간 오웬의 기억에 마이클이 말했던 정크 본드가 떠올랐다.

그게 러시아 채권이었다고?

재준은 오웬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나 그 자리의 모두가 재준의 목소리를 들었다.

“뱅크오브에이스에 이제 쓸 만한 자산은 없다고.”

오웬은 모든 게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가?”

재준은 빙글 웃었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죽어. 그래야 내가 사니까. 그게 월가 아닙니까.”

“그냥 합병을 했어도 되는 거 아닌가?”

“설마, 오웬 당신 계속 일하고 싶은 거였어요? 양심도 없이? 난 당신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윌리엄이 나서서 경호원에게 손짓했다.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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