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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78화 (78/477)

제78화 보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게(2)

인덱스 펀드에서 이익이 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인덱스 펀드의 목적은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단 돈이 현재증권으로 몰리게 만드는 목적이 더 크다.

자, 이제 ‘겟코리아펀드’로 들어가는 돈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는지 볼까?

재준은 서형길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임재준입니다.”

-네. 도련님.

“오늘 하루 인덱스 펀드 가입 실적 가지고 회장실로 오세요.”

-아,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전국 지점에서 올라온 자료가 좀 많아서 정리해서 올라가겠습니다.

재준이 임병달을 보고 활짝 웃어 보이자 임병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얼마나 가입했다고……. 쯧쯧.

잠시 후.

임병달은 서형길이 가져온 내역을 보고 눈만 껌뻑였다.

5,000억?

서형길은 임병달에게 조용히 다가섰다.

“오늘 하루 가입된 돈입니다. 이대로 가면 이번 달에 10조 이상 몰릴 것 같습니다.”

“진짜? 그게 가능해?”

“전화에, 직접 방문한 사람들에 아주 난리가 났었습니다.”

“재준아.”

임병달의 시선이 빙글거리는 재준의 얼굴에 꽂혔다.

거, 보시라니까요.

이제 현재증권은 투자자를 걱정하는 아주 착한 증권사가 됐어요.

원래 ‘겟코리아펀드’는 4개월 동안 10조 원을 모았다.

이거 이러다 우리 펀드가 모던증권의 ‘겟코리아펀드’가 되는 거 아냐?

***

모던증권 사장실.

모던증권 민승재 사장이 기획실 김호성 실장을 다그치고 있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내가 네놈 의견을 들어야 해?”

“하지만, 사장님. 주가가 너무 올랐습니다.”

“그래서 안 하겠다 이 말이야 지금?”

“위험합니다.”

“위험은 내가 판단하는 거야. 네놈이 아니라, 내가. 사장인 내가. 알아들어?”

민승재 사장의 눈에 분노가 일렁였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영업용순자본비율을 150% 이상 만들지 못하는 증권사는 퇴출시켰다.

그리고 모던증권은 97년 말 영업용순자본비율이 –98.9%로, 올해 안에 150%를 만들어 놓지 못하면 퇴출 대상이 된다.

퇴출을 피해가기 위해 모던 그룹은 모던증권이 가장 많이 소유한 모던전자 주가를 14,800원에서 32,000원까지 끌어 올렸다.

주가가 올랐으니 영업용순자본비율이 급격하게 상승해 150%를 간신히 맞추었다.

퇴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더 이상 자금이 없어 매수를 지속할 수 없었다.

만약 모던전자 주가가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금감원의 퇴출 통보가 떨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다시 주가 조작을 해서라도 금감원의 눈을 막아야 했다.

“나가, 꼴도 보기 싫어”

“사장님.”

“한 번만 더 말대꾸하면 목이 날아갈 줄 알아. 당장 나가!”

김 실장이 나가자, 민승재 사장이 에이, 하며 격하게 짜증을 낸다.

“젊은 놈이 눈치도 없고, 말귀도 없고. 똑똑한 놈 데려다 쓰면 좋다길래 데려왔더니 사사건건 딴지에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젊은 놈이 말이야 패기가 없어요. 얼굴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희멀게서는. 에잇, 확 잘라버릴 수도 없고. 내가 저놈만 보면 열이 뻗쳐요.”

모던중공업 이태준 사장이 민 사장을 진정시켰다.

“거, 젊은 애들 너무 몰아세우지 마.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는데. 저놈 필요해서 데리고 있는 거잖아. 손이 빠르다면서.”

“제가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손이 빠르다고 데려왔는데, 주식 좀 쌓아두라고 하면 위험하다고 저 난리 아닙니까?”

“그럼 잘라. 말 안 듣는 놈 데리고 있어 봐야 골치만 아프니까.”

“요즘은 맘대로 잘랐다간 큰일 납니다. 노동조합 애들이 얼마나 끈질긴지 말 한 번 잘못했다간 사장실 점거하고, 객장에 드러눕고. 피해가는 게 상책입니다. 완전 깡팹니다.”

“작년에 고생 좀 했지?”

“말도 마십시오. 임금 올려달라고 시위하는 통에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떡할까요? 모던중공업은 1,800억이상 들어갔고, 모던상선에서 250억 끌어와 겨우 주가 맞춰놨는데, 이대로 멈추면 위험합니다.”

“지금 우리도 빡빡한데.”

“저희도 더는 여유가 없습니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음······. 현재증권을 만나보는 건 어때?”

“현재증권······ 거기야 요즘 돈이 넘쳐나긴 하는데 뭐라고 하면서 만날까요?”

민승재와 이태준의 얼굴에 갑자기 어두워졌다.

똑, 똑, 똑.

사장의 허락도 없이 아들 민형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는 민승재의 든든한 외아들이었다.

“아버지, 새로운 펀드 홍보 기획서 만들었습니다.”

“이놈아, 회사에선 사장님!”

“다 아는 사람인데 어때요. 오셨어요?”

민형기가 이태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허허, 격식 없어 좋구먼.”

“거봐요. 사장님도 괜찮다 하시잖아요. 그리고 이거 좀 봐 주세요.”

민형기가 내민 기획서를 낚아채듯 가로채서 한 장을 넘겨보았다.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민 사장의 얼굴에 웃음이 맺혔다.

“아들, 아주 좋은데. 현재증권 만큼 히트 치겠어.”

“그죠. 제가 누굽니까. 아버지 아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외국인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해 ‘겟코리아 펀드’에 가입시키자, 이거지?”

“네. 겟코리아, 이름 끝내주죠?”

“음. 아주 맘에 들어.”

민형기가 한발 물러서며 양손을 들었다.

“아버지, 상상해 보세요. 아버지가 광고에 나와서 ‘지금 주식을 사면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됩니다. 2005년엔 코스피지수가 6000까지 갈 겁니다. 겟코리아펀드에 가입하십시오.’ 그렇게 임팩트 때려주면 상품은 히트 치고 잘하면 아버지는 바로 연예인 되는 겁니다.”

민승재 사장은 민망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거, 민망하게.”

“아니에요. 이건 애국 마케팅이라고요. 알면서도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러니까 좀 과장되게 행동하셔야 해요.”

“그래?”

“사람들 마음 움직이는 데, 애국심만 한 게 없지. 잘 건드렸는데. 아주 좋아.”

이태준 사장이 거들었다.

“제가 이놈 때문에 웃는다니까요.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 효잡니다.”

민형기는 우쭐했다.

“아버지, 한 장 더 넘겨보세요. 2탄이 있어요.”

“그래?”

민 사장은 서류를 넘겼다.

이젠, ‘오!’ 환호하며,

짝, 짝, 짝.

요란하게 손뼉까지 친다.

“아들, 이건 더 끝내주는데? ‘한국경제, 외국 기업 하나만도 못합니까?’ 광고 문구가 아주 쏙쏙 들어와.”

여기서 말하는 외국 기업은 일본 기업인 NTX(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으로, 1999년 시총이 세계 1위였다.

굳이 왜 일본기업을 선택했는지는 길게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애국!

일본이라면 무조건 때려눕혀야 하는 한국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른 거지.

“헤헤. 광고 1탄, 2탄이 TV에 나가면 ‘겟코리아펀드’에 미친 듯이 가입할 거예요. 현재증권의 인덱스 펀드 이상이 될 수도 있어요.”

민 사장은 아들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 아주 흡족해했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참, 형기야, 너 현재증권 손자랑 고교 동창이지?”

“동창은 아니고 제가 1년 선배예요. 그런데 왜요? ”

“우리 회사가 영업용순자본비율 150% 맞추려고 주가를 좀 만지고 있잖아.”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금이 좀 모자라. 요즘 현재증권이 잘 나가잖아. 네가 가서 그 녀석한테 모던전자 주식 사라고 말 건네 봐. ‘겟코리아펀드’ 꺼내면서.”

음.

“알았어요. 제가 책임지고 투자하게 만들겠습니다.”

민 사장은 아들의 시원한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

현재증권 로비.

모던증권을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재준을 누군가 불렀다.

“야, 임재준.”

퇴폐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실실 웃으며 민형기가 재준에게 다가왔다.

이놈은 또 뭐야?

“며칠 전 뉴스 봤다.”

일단 재준은 대꾸를 하지 않고 지켜봤다.

“우리 모던전자 매수해라.”

다짜고짜.

남의 회사 로비에서?

재준은 ‘이런 미친놈을 봤나’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민형기가 들고 온 기획서를 꺼내서 재준에게 건넸다.

어라, ‘겟코리아펀드’네.

민형기? 모던증권 사장은 민승재.

그럼 모던증권 사장 아들인가?

재준이 기획서를 보며 골똘히 생각하자 민형기가 떠들었다.

“우리가 대규모 펀드를 기획하고 있거든. 모던 그룹에서 최소한 2조 정도는 출자할 예정이야. 내가 너 생각해서 찾아 왔으니까. 기회 줄 때, 잡아.”

“지금 펀드에 투자하라는 거예요?”

“그래, 현재증권 요즘 돈 많다며. 이럴 때 모던증권 펀드에 투자하면 좋지. 이거 너한테만 특별히 혜택을 주는 거야?”

미친 게 분명하군.

이런 식으로 펀드를 운영하니까 감방을 가는 거야.

근데 뭔 특별한 혜택?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모던전자 주가 좀 올려야 하는데. 주식 좀 사라.”

이 사람 정말 바본가.

이렇게 대놓고 주가를 조작을 떠들어 대네.

다른 사람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모던전자는 적정선을 넘었을 텐데요.”

“더 올라. 그러니까 미리 매입해 두라는 거야. 우리가 펀드를 시작하면 더 매집할 거거든.”

“아, 그래요.”

“그래.”

“그런데 어쩌나. 난 싫은데요.”

민형기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임재준…….

“너 지금 내 말을 거절한 거냐?”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이놈이 뭐라도 되는 건가?

“나 네 고등학교 선배야. 선배.”

아, 선배였구나.

“너 내가 누군지 깜빡한 거야?”

“선배라면서요.”

“그냥 선배가 아니잖아. 호의를 베풀었으면 너도 뭔가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냥 선배가 아니면 뭔데?

이놈 나만큼 막무가내네.

강적이다. 강적.

“난 선배의 펀드에 투자할 생각은 없는데요. 거, 뉴스도 안 보시나 봐요. 현재증권은 인덱스 펀드 외에는 전부 정리했어요.”

“어, 그래? 그럼 그 펀드로 모던전자를 사면 되겠네.”

너 인덱스 펀드가 뭔지 모르는구나.

“저희는 그렇게 아무 데나 막 투자하지 않아요.”

빙글 웃으며 말하는 재준의 모습에 민형기의 표정이 급하게 변했다.

“정말 이러기야? 요즘 현재증권 잘 나가는 거 알아. 선배인 나한테는 힘 빼고 돈지랄 좀 해.”

“제 소관이 아닌데요.”

“이 새끼야! 너 정말…….”

음. 이제 본색이 나오는군.

무식하고 험악하게 나와야 재밌지.

“정말 뭐요?”

“뭐?”

“선배, 증권에 대해 모르죠.”

“뭐라고?”

“뭐, 이해는 해요.”

아버지만 졸졸 따라다니며 나쁜 것만 배웠으니까.

담합해서 주가 조작하고, 이상한 광고로 사람들 현혹이나 하고 그렇게 배만 불렸으니 알 턱이 있나.

민형기가 재준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거칠게 숨을 쉬었다.

“너 할아버지한테 아직도 용돈 타 쓰고 있냐?”

뭐지? 이 유치한 말은?

자존심을 건드려 보겠단 말인가?

쯧쯧, 실망스럽다.

다른 사람 속만 긁으면 이기는 줄 아는 무식한 놈.

“너, 회사 다니더니 진짜 서민 됐구나. 우리처럼 태어날 때부터 황금 쥔 사람들은 누구한테 보고하고 허락받는 위치가 아니잖아. 현재증권 후계자 아니야? 회삿돈 하나 맘대로 못 쓰는 처지였어?”

“그럼, 선배는 맘대로 쓰는 거예요?”

“당연한 거 아냐?”

오호, 그래?

재준이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자 민형기가 재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번에 우리가 펀드 만들면 채권 파킹 끼워줄게.”

“채권 파킹?”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을 봤나.

돈 한 푼 안 들이고 돈을 버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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