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보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게(1)
“이번에 현재증권이 대단한 결심을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재준은 빨간 불이 들어오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현재증권은 지금까지 운영해온 펀드가 청산된 뒤에 추가로 액티브펀드를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에 투자자에게 좀 더 올바른 투자 조언을 하는 체제로 바꾸려 합니다.”
액티브펀드는 우리가 아는 펀드 매니저가 매매를 하는 펀드로, 공격형이라고 부른다.
사회자가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펀드는 증권사의 기본 아닙니까?”
“증권사의 기본은 펀드가 아니라 수수료입니다. 매매 수수료가 증권사의 이익이고 저희는 이 수수료로 여러 가지 수익 모델을 만들 것입니다. 처음엔 힘들겠지만, 정착이 된다면 투자자와 증권사 모두 윈윈하는 체계가 될 것입니다.”
“그럼 일반인들의 펀드는 받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맞습니까?”
“일반 투자자분들이 스스로 투자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에 더 심혈을 기울이려는 겁니다. 굳이 요청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요. 굳이 굳이 굳이 요청하신다면.”
“그래도 이번 현재증권의 결정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 투자자가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까요?”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이걸 보시죠.”
재준이 신호를 주자 대한민국 주가 그래프가 띄워졌다.
“여의도 증권시장의 시작은 1979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종합 주가 지수 그래프입니다. 그래프는 쭉 상승하면서 1989년에 1,051포인트를 찍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1991년 걸프전이 터지며 456까지 하락합니다. 그리고 다시 쭉 상승하면서 1994년에 1,145포인트를 찍습니다. 그러나 역시 지금 외환위기로 인해 277까지 떨어집니다. 보이시죠?”
“네, 그렇군요.”
“자, 그럼 사회자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전쟁과 외환위기 때문에 하락하는 주가를 펀드 매니저가 살릴 수 있을까요?”
“음, 그건 펀드 매니저도 어쩔 수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수수료는 받아갑니다.”
“아. 수수료.”
약간 당황한 사회자가 재준에게 눈치를 주었다.
재준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혹시 ‘마찰 비용’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도시 땅 가격을 결정할 때 사용하는 말 아닙니까?”
“네, 하지만 주식에도 마찰 비용이 발생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이름이 투자자란 사람이 있습니다. 투자자가 10년간 투자를 해서 3배의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이 그래프를 보더라도 3배의 수익이 지어낸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그렇군요. 장기투자를 했다면 3배의 수익을 올렸겠군요.”
“그렇지요. 근데 이 사람이 자신의 수익률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러자 이빨 털기를 좋아, 아니, 입담이 좋은 조력자가 나타나 자신이 도와주면 더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이 사람 이름이 바로 브로커입니다. 자신은 매매할 때마다 아주 작은 수수료만 주면 된다고 합니다.”
“너무 직설적인 이름이군요.”
“자,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다시 3배의 수익이 났습니다. 하지만 브로커는 투자자가 많이 거래할수록 자신의 수수료가 많이 발생하는 걸 알고 잦은 매매를 권합니다. 매매만 하면 주가가 올라가자 투자자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브로커의 수수료를 주고 나니 지난번보다 약간 모자란 이익을 손에 쥐게 됩니다.”
“투자자가 실망하겠군요.”
“그렇죠. 이때 좀 더 전문적인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 이름은 펀드 매니저입니다. 이 사람이 말하길 투자는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그럴듯하게 말하자 투자자는 펀드 매니저를 고용합니다. 자, 이제 펀드 매니저는 브로커에게 자신의 지시대로 매매하라고 지시합니다.”
“어, 그럼 수수료가 두 배로 나가지 않습니까?”
“그래도 전문가라고 하니 안심했습니다. 이들이 워낙 뻐꾸기를 잘 날, 아니 입담이 좋으니 투자자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10년이 지나자 똑같이 3배의 수익을 올렸는데 수수료를 제하고 나니 더 안 좋은 이익이 손에 떨어졌습니다. 그럼 투자자는 어떻게 할까요?”
“설마 또요?”
“맞습니다. 이번엔 재무설계사와 기관 컨설턴트가 나타나 펀드매니저와 브로커와 조력해서 이익을 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시겠지요?”
“수수료만 더 나갔군요.”
“맞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상승하지만, 수수료만 더 나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끝일까요?”
“또 있습니까?”
“그럼요. 이번엔 헤지펀드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여러분도 헤지펀드라면 혹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사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번지르르한 외모로 다가옵니다. 투자자가 돈을 못 버는 것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적게 주기 때문에 의욕이 안 생겨서 그런 거라며 자랑을 합니다. 자신을 보라고 슈퍼카에 값비싼 명품을 입고 있지 않냐고. 과연 자신이 벌어준 투자자는 얼마를 벌었겠냐고. 이해한 투자자는 수수료 위에 성공 보수라는 돈을 얹어 줍니다.”
“이런, 이런.”
“수수료에 성공 보수를 주고 나니 이제 투자자의 이익은 절반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투자자는 믿을 사람이 없군요.”
재준이 카메라를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러분, 유망한 기업이 있습니다. 그곳에 투자하고 방구석에서 따뜻한 차나 마시며 세월아 네월아 했으면 기업들이 열심히 일해서 여러분에게 돈을 벌어다 주었을 겁니다.”
“잦은 매매와 수수료, 성공 보수가 없다면 말이죠?”
“그렇습니다.”
“현재증권이 변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재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우리 현재증권은 여러분에게 브로커도, 펀드 매니저도, 재무설계사도, 기관 컨설턴트도, 헤지펀드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정보를 올바른 제공하고 되도록 단 한 번의 매매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현재증권은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갑자기 일어난 재준을 보고 사회자가 안절부절못했다.
앞에서 조연출이 재준에게 앉으라고 사인을 보냈지만, 재준은 무시하고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현재증권.”
컷, 컷.
광고 내보내.
저게 광고잖아.
***
방송이 나간 후 주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삼오오 모여
‘오늘의 기업’에서 재준이 한 이야기로 옥신각신했다.
-어제 방송 뭐야? 증권사를 이용하지 말라는 거야?
-야, 증권사를 이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주식을 사냐? 직접 기업을 찾아가서 사게?
-그럼, 증권사에 가서 스스로 매매를 하라는 거야?
-현재증권에서 정보를 준다잖아. 그거 보고 직접 매매하라는 거야.
-그러다 잃으면?
-방송 본 거 맞아? 맨 앞에 그래프 보여주면서 임재준이 이야기했잖아. 전쟁이나 외환위기 같은 사건이 없으면 주식은 오른다고. 그냥 사서 기다리면 돼. 큰일만 없다면 주가도 오를 거야.
-얼마나 기다려?
-방송 안 본 거 맞네. 거기 10년에 3배 벌었다고 했잖아.
-그건 예를 든거지.
-그래프 보면 실제로도 3배가 뛰었잖아.
-어, 그래? 그럼. 주식을 사서 10년을 묵혀두라고?
-그래, 암튼 오를 때까지 기다리라 이거지. 반드시 오른다고.
-그래서 결론은 펀드에 가입하지 말고 스스로 투자해서 오래 보유하란 말이지?
-뭐, 그렇지.
-근데 그게 가능하냐?
-왜?
-주가가 떨어지거나 올라가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있냐고.
-그건…… 어렵지.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럼 넌 펀드에 가입하던가.
-현대증권에 펀드 있나?
-당연히 있지. 굳이 가입한다면 받아 준다고 했잖아.
-있긴 있네. 어떤 펀드인데?
-나도 몰라, 가서 물어봐야지.
-일단 현재증권에 가 보고 나서 결정하자.
-그래.
대충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낸 사람들이 현재증권으로 몰렸다.
임병달은 창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인상을 쓰며 돌아섰다.
그리고 대뜸 재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퇴근 시간 다 되었는데 사람들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여. 이제 어쩔 거야?”
“뭘요?”
“저 사람들 말이다. 저렇게 몰려와서 전 직원이 다른 일도 못 하고 상담만 한다잖아.”
“할아버지, 고객들이 몰려오면 좋은 거죠.”
“저, 저. 네가 어제 방송에 펀드 가입하지 말고 스스로 투자하라고 했잖아. 펀드 매니저는 다 도둑놈들이라고.”
“에이, 그렇다고 사람들이 펀드를 가입 안 해요? 설마.”
“뭐?”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믿지 못해요. 아니, 그보다 두려워해요. 그래서 전문가가 대신해주면 안정을 찾아요. 사실 어제 제가 방송에서 한 이야기의 골자는 이건데. 전문가에게 맡겨라. 사람들이 잘못 받아들였네요.”
“뭐?”
“그래서 전에 현재증권은 인덱스 펀드만 취급하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임병달은 뭔가 위기감을 느꼈다.
이놈이 어제 국민을 상대로 협박을 했네.
그나저나 인덱스 펀드만으로 될까?
인덱스 펀드는 시장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시장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패시브 펀드다.
시장평균수익률과 동일한 수익률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장이 나쁘면 수익률도 내려가고 시장이 좋으면 수익률도 올라간다.
그래서 인덱스 펀드에서는 주식을 사고 싶다고 사고, 팔고 싶다고 팔 수 없다.
아, 인덱스 펀드는 개인이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자, 나에게 100만 원의 여유 자금이 있다.
이 돈으로 인덱스 펀드를 구성해 보자.
100만 원이니까 시총 1위부터 10위까지로 구성한다.
먼저 1위 SS전자가 시총 300조, 나머지는 20조~30조 사이다.
그럼 SS전자에 55만 원, 나머지 아홉 종목에 5만 원씩 시장 점유율만큼 주식을 샀다.
다 됐다.
이러면 나만의 인덱스 펀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좀 더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투자금이 많으면 시총 순위를 늘리면 되고.
단, KOSPI200 안에 있는 종목으로 한정해야 한다.
“그러다 수익률이 저조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할아버지, 효율적 시장 가설이라고 아세요?”
“그게 뭐냐?”
아, 아직 이 이론이 안 나왔지.
“주가는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가 즉각적으로 반영된다는 겁니다. 뭘 연구하고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이미 주가에 다 반영이 되었으니까요.”
“음, 모든 정보라면 주가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냐?”
“네, 주가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주가는 오릅니다.”
“왜 올라?”
“물가가 상승하니까요. 기업은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물가 상승률 때문에 더 많은 매출을 올립니다. 그리고 매출은 주가에 반영되고 그럼 주가는 올라가지 않겠어요?”
“그래도 변수가 있으니 주가가 폭락하는 거 아니냐. 그때는 분명 손실이 날 텐데.”
“그러니까 KOSPI200 종목만 매매하는 겁니다.”
“그래도 오일쇼크라든가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을 텐데.”
“걱정 마세요. 그런 일 일어나기 전에 펀드를 청산하면 되죠.”
“그게 네 말처럼 쉽냐?”
“별로 어렵지 않은데요. 그러라고 애널리스트와 경제정책연구실이 있는 거잖아요.”
“허, 거참.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래도…….”
임병달은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었으나 포기했다.
어렵지 않다고?
나 원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할 거예요.”
“뭐, 어련히 잘하려고.”
“반드시 이익이 나도록 하겠습니다.”
“…….”
할아버지, 잘하겠다는데 왜 그런 얼굴로 보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