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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75화 (75/477)

제75화 소신껏 행동하라고 하셨습니다(4)

재준은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종합상사 사람들을 나가란 손짓을 했다.

가라. 가. 줄 때 먹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금 수출하는 척하면서 도리어 금을 수입해 쓸데없는 짓거리만 할 놈들이 말이 많아.

“영업부장님. 종합상사 사람들 다 내보내세요.”

정 행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영업본부장과 직원들이 종합상사 직원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자, 자, 나가세요.

종합상사는 밀려나면서 재준을 노려보았다.

“우리도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재준이 쫓겨나며 고함을 지르는 직원을 보고,

“잠깐, 부장님. 종합상사업체들 전부 업체명 적어 놓으세요. 대출 심사에서 다 탈락시키게. 당신들 제발 가만히 있지 마요. 가만히 있으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재준의 말에 종합상사 직원들이 입을 다물고 툴툴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거 참. 나갈 거면서 꼭 분란을 일으켜요. 다음.”

재준은 하우징은행 쪽을 바라봤다.

하우징은행 직원은 밖으로 쫓겨가는 종합상사들을 보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재준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쪽이 은행 대표로 오신 거죠?”

“하우징은행 경영지원부 부장 하지태라고 합니다.”

“네, 말씀하세요.”

“지금 투마로우뱅크가 가격을 높게 잡는 바람에 우리가 심히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네. 왜 곤란해요?”

“우리는 가격이 낮아서 국민들이 금을 팔지 않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아니, 안 사면 되잖아요. 꼭 사야 하는 겁니까?”

“그게 무슨…….”

“그렇잖아요. 그쪽 은행이 사나 우리가 사나 달러가 들어와서 외환고만 늘어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저희도 맡은 일이 있으니 뭔가 해야 합니다.”

“아니, 아니. 지금 얼마나 핑계가 좋아요. 투마로우뱅크에서 다른 은행 대신에 일을 다 해주고 있는 건데. 정부에서 뭐라 하면 이래저래 돼서 우리가 매입을 못 했다. 그러면 되잖아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금감원이 하는 일에 어떻게 손 놓고 있습니까?”

“잠깐, 잠깐만이요. 금감원이요?”

“…….”

“그럼 잘됐네요. 우리가 금감원에 잘 이야기할 테니 돌아들 가세요. 걱정 말고.”

하 부장은 못 미더운 듯 재준을 바라봤다.

“근데 혹시 임재준 씨 아닙니까?”

“네. 맞는데요.”

하.

하 부장이 한심하다는 듯 입을 벌리고 바람을 내뱉었다.

“여긴 현재증권이 아니라, 투마로우뱅크잖아요. 어떻게 당신 말을 믿습니까? 그리고 왜 임재준 씨가 여기서 나서시는 거죠?”

“허허, 이 사람 정말 의리가 없네. 여기 행장님이 누굽니까? 현재증권 경제정책연구실 실장님이셨잖아요. 제가 저분 밑에서 일했던 직원이고. 그럼 옛 상사가 곤란에 처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라고요? 아무리 회사에서 잘렸어도, 그건 경우가 아니지요.”

빠직!

잘렸다는 말에 정 행장의 뒷골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임재준 씨는 책임의 소지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당신 말을 믿어요?”

“아, 그것 때문에?”

재준은 정 행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 행장님, 당장 저를 부행장으로 임명해 주세요. 뭐 양다리 걸쳐서 일해 보죠.”

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재준의 말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정지했다.

그 얼굴에 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정 행장도 입을 턱 벌렸다.

도련님. 지금 무슨 말을 하신 겁니까?

재준은 하 부장에게 빙글 웃었다.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요. 당신이 나를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한 게 아니죠. 하우징은행, 그래, 이번에 금 매입을 맡은 은행들이 금감원 눈치를 보는 게 진짜 문제 아닌가요? 금감원이 무슨 수작을 부려서 은행을 날려 버릴까 봐. 그죠?”

하 부장은 재준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미친놈 아냐?

금감원을 저 많은 기자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까대는 거야?

“아니, BIS비율 안 맞췄어요? 내가 알기론 하우징은행뿐 아니라 이번에 동원된 은행들은 다 맞춘 거로 알고 있는데. 근데 왜 금감원을 무서워하는 거예요? 당당하게 사세요. 당당하게. 뭐가 겁난다고. 그래 봐야 공무원도 아닌데.”

하 부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자리를 빨리 피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저 미친놈에게 엮여 금감원의 철퇴가 날아올지 모른다.

“그만합시다. 이만 돌아가겠어요.”

“아니, 그렇게 유통기간 지난 치즈 먹은 표정 짓지 말고.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니까요. 그렇게 자꾸 금감원을 피해 다니면 안 돼요. 파이팅 해야 해요. 저기 언론 있잖아요. 금감원이 자꾸 건드리면 언론에 확 까발려 버리라니까. 내가 하는 말 무슨 말…….”

팟팟팟팟팟팟팟팟!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자 재준이 카메라를 향해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오른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후아. 후아.

하 부장은 얼굴이 벌겋게 되는 걸 넘어 심장까지 요동쳤다.

그가 터지는 플래시를 피해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기자들을 헤치고 밖으로 나갔다.

행장실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멍한 표정으로 재준을 바라보았다.

종합상사와 은행들이 나간 빈자리를 기자들이 몰려와 채웠다.

재준은 손을 좌우로 흔들며 질문을 하지 말라는 신호를 했다.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 계신 정 행장님의 부탁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지금 행장님이 건강이 아주 안 좋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제가 평소에 행장님의 소신을 대신 이야기하겠습니다. 투마로우뱅크는 앞으로 금 모으기 운동은 지속적으로 할 것이며 또한 금을 팔려는 국민의 애국심을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게 보통 금입니까. 이건 누구의 돌 반지이며 누구의 결혼반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추억이며 사랑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추억을 파는 마음이 얼마나 쓰라리고 아프겠습니까. 저희는 이 마음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짓은 결코 발생하면 안 된다는 마음뿐입니다. 저희 투마로우뱅크는 단 한 푼도 이윤을 남기지 않을 것이며 이 운동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 또한 전부 제공할 것입니다. 결코, 이 소중한 추억을, 금을 판 돈에서 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게 애국과 애향을 바라는 국민의 바람일 것입니다. 대통령님, 저희는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재준은 기자들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하고 정 행장과 함께 행장실을 나갔다.

팟팟팟팟팟팟팟팟!

터지는 카메라가 터지고

짝짝짝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임재준! 임재준! 임재준! 임재준!

재준이 뒤돌아 다시 한번 손을 흔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야, 이거 국회의원 한번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정 행장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그저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차라리 국회로 보낼까?

그럼 임 회장님과 내가 좀 편할 것 같은데.

***

다음 날.

경제정책연구실.

굿모닝.

재준은 동기들에게 인사를 하고 방음 처리된 회의실로 들어갔다.

아직도 동기들이 자신을 편하게 대하지 못하자 회의실을 하나 더 만들어 방음 처리한 뒤 자신의 방처럼 사용했다.

또 다른 회의실은 여전히 동기들에게 성토의 공간이었다.

우루루.

회의실로 모여든 동기들은 재준을 주시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침 신문 봤냐?”

“임재준 장난 아니더라. 지금 인기가 하늘을 찔러.”

“그래? 얼마나?”

“여기저기 칭찬 일색이고 야당은 당장 투마로우뱅크코리아처럼 하라고 난리야. 여당도 정부를 비판하는 척하는 것 같고.”

“신문 사설도 일제히 임재준 이야기야.”

“칭찬이야?”

“당연히 칭찬이지. 근데 과연 임재준이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사설도 많아.”

“무조건 칭찬은 안 된다?”

“아니, 그러게 남의 은행에는 왜 가서 설치는 거야?”

김혜림이 다시 창가로 가서 재준의 동태를 살폈다.

“지금 뭐 하냐?”

“뭐하긴 매일 하던 일이지.”

“야, 사무보조원 투입해.”

“오케이.”

김혜림이 회의실을 나가 사무보조원에게 무언가 속삭였다.

사무보조원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원두커피를 내려 가지고 재준이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동기들의 시선이 똑같이 사무보조원을 따라 움직였다.

탁.

사무보조원이 회의실에 들어가 재준에게 커피를 주고 무언가 지시를 받고 나오는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김혜림이 제일 먼저 사무보조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뭐래?”

사무보조원이 동기들을 일일이 하나씩 쳐다보더니 말했다.

“뮤추얼펀드 조사하라고 하시는데요?”

“뭐?”

“뮤추얼펀드요. 제가 맞게 들은 건가요?”

“응. 맞아. 가서 일 봐.”

사무보조원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최진기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우리나라에서 뮤추얼펀드를 팔 수 있나?”

“아직은 아닌데.”

“어! 임재준 일어났다. 다시 회의실로.”

후다닥.

재준은 회의실에서 나와 사무보조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 투뱅코.”

“아, 네.”

재준이 나가고 동기들은 회의실에서 나왔다.

휴.

“근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회장님께 건의해 볼까? 임재준 좀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그럴까?”

“근데 우리 지금까지 월급 외 성과급 받은 거 얼만 줄 알아?”

“그게, 한 3억쯤 되지 않을까?”

“그래. 우리 이제 2년도 안 됐어.”

“그러네. 음……. 일하자.”

“그래, 뮤추얼펀드라고 했지?”

“난 미국 사례부터 찾아볼게.”

“그럼 난 영국.”

돈맛을 본 동기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가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

투뱅코 행장실.

재준은 위풍도 당당하게 어깨를 쫙 펴고 행장실로 들어섰다.

임 회장과 정 행장은 이런저런 이야기 중이었다.

“할아버지, 행장님, 저 왔습니다.”

“그래, 어서……. 왜 그러냐? 가슴을 너무 펴고 다니는 거 아니냐?”

“어제 일로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그래? 어느 지역구로 밀어줄까?”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저 정치 한번 해볼까 했는데.”

“재준아, 솔잎 먹자. 괜히 뽕잎 먹었다가는 탈 난다. 앉기나 해라.”

“네.”

바로 어깨가 쪼그라들며 자리에 앉았다.

탁. 탁.

임병달이 통쾌한 표정을 지으며 탁자에 펼쳐진 신문과 잡지를 가리켰다.

“어제 일이 기사로만 나와 다행이지. 방송으로 나왔으면 어휴…….”

“왜요? 할아버지가 못 보셔서 그렇지 호응이 아주 좋았어요.”

“도련님, 후, 말투가 점점 거세지는 것 같습니다. 싸울 때 싸우시더라도 존대를 해가며 싸워야 뒤탈이 없습니다. 어제 일이 방송으로 나갔으면 사방에서 사과하라고 난리 났을 겁니다.”

“안 돼요. 좋게 좋게 말하면 말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져서 피곤해요. 눈물이 쏙 들어가게 몰아쳐야 다음부턴 입 다물고 있지요.”

“그건 그렇긴 해. 재준이 말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재준아, 상대가 대기업 종합상사라는 게 문제다. 자그마치 7개야 7개. 이놈들이 떼로 덤비면 피곤해져.”

“알겠어요.”

입을 꾹 다문 재준은 할아버지의 바람을 지킬 마음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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